(41) 해안을 멀리 하는 해안로

[늙은山나그네]

리마 강의 '뽄치 드 리마'(Ponte de Lima)와 복층교 '뽄치 에펠'(Ponte Eiffel) 유감

알베르게의 아침은 간만의 차가 심한 하구의 썰물 때 같다.
전일 오후에 시차를 두고 입실한 뻬레그리노스가 새벽 ~ 이른 아침 시간대에 앞 다투듯 한꺼번
에 길 떠나버리기 때문이다.
꼴찌로 알베르게를 나온 나는 유스 호스텔로 내려갔다.
어제 석양에 내게 선행을 베풀고 돌아가는 유스 호스텔 녀의 뒷 모습에 대고 한  혼잣말 약속을
지키려고 그랬다.

그 곳(youth hostel)에 가려면  N13국로를 따라 리마 강의 다리(ponte Eiffel)를 건너는 역 주행
해안로(Camino Portugués)와  방향은 같지만 까미노를 벗어나 다리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밤샘 근무는 남자의 몫이기 때문인가.
내 방문 시간이 너무 이른(내 시계 아침7시반) 탓인지  안내실에는 환한 웃음이 천성인 듯 시종
밝은 표정이던 여인은 없고, 보이시(boyish)하지만 밤샘으로 지쳐 보이는 남 하나뿐이었다.

그녀를 만나려면 8시까지 기다려야 한단다.
뽀르뚜갈 시간은 내 손목시계와 1시간의 시차가 있기 때문에 1시간반을 기다려야 하는 것.
어제, 알베르게 앞에서 함께 찍은 내 핸드폰의 사진을 보여주며 방문 목적을 말하고 그녀의 e-
메일 주소를 간신히 받았다.

(그러나,  어렵사리 받은 주소 성명 메모지의 모음집이 백팩과 함께 사라져버림으로서  이 여인
에게는 물론, 그녀 외에도 보내고자 했던 감사 인사는 거의 불발로 끝났다.
내게 도움을 준 무수히 많은 사람 중에서 그녀는 특별한 사람 중 하나였던가.
오래지 않은 훗날에  유스 호스텔로 전화하였으나 응답은  "단기, 임시직(temporário)이었다가
퇴직하였기 때문에 연락 불능"이라니.
인터넷에 매달려, 무진 애를 써서 찾아낸 전화번호였건만 도로(徒勞)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허전한 마음으로 리마 강을 건너야 하다니.
다행히도,  명성 높은(에펠) 다리와 아름다운 리마 강의 아침 경관에 의해서 진정이 된 듯,  강을
건넌 후에는 평상심으로 걷게 되었다.
총 연장 645m(실제다리562m), 폭 8m로 상층은 N13국도와 보도, 하층은 열차가 달리는 철교인
복층 금속교량으로 이름은 '뽄치 에펠'(Ponte/스페인어puente Eiffel/에펠교).
빠리의 에펠탑 설계자 에펠(A.Gustave Eiffel/1832~1923)의 작품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지자체 비아나 두 까스뗄루(Viana do Castelo)를 남북으로 양분하는 리마 강 양안(兩岸).
옛 프레게지아(Freguesia/小敎區마을) 산따 마리아 마이오르(Santa Maria Maior/행정구역개

편으로 사라진)와 다르께(Darque/Freguesia)의 까이스 노부(Cais Novo)를 연결하는 다리다.
교량 이전의 연결 수단은 페리(ferry)였단다.
1818~1820년에 목조 다리가 임시용으로 건설되었고, 1877년(3월)~1878년(6월30일) 뽀르뚜갈
최초의 복층 금속다리가 완성되어 다음날(7월1일) 개통되었다나.
1936년에 수리했으며 20c말에 현재의 사양(仕樣)으로 리모델링하였다는 다리.

2011년에 까미노 뽀르뚜게스의 내륙 루트를 걸을 때 리마 강가의 알베르게에서 1박했다.
그 때, 전날 밤을 보낸 바르셀루스(Barcelos)에서 뽄치 드 리마(Ponte de Lima)까지 한 구간의
까미노가 통째로 바뀐 사실을 알고 분개했으며 나홀로 옛길을 걸어서 리마 강에 당도했다.
미뇨대학교(Universidade do Minho-Campus de Gualtar)를 방문하려면 그래야 했지만(메뉴
'까미노이야기' 57번글, 포르투길4참조), 생생한 채로 버려진  까미노의 흔적들,  무용지물이 된
신축 알베르게 등에  잔뜩 부어오른 부아였는데 아름답고 청결한 리마 강이 요술사 같았다.
리마 강 돌다리 위에서 황홀한 낙조 살(矢)을 맞은 내 부아는 바람빠진 풍선이 되고 말았으니까.

이 다리(Ponte Eiffel)에서 그 다리(Ponte de Lima)까지는 동서로 24km쯤 되며 5시간쯤 걸리는

편편한 길이라는 어떤 이의 말에 잠시 머리가 어찌 되는 듯 싶었다.
아마도, 뽀르뚜의 약속(Loger Phillips교수와 상봉)이 없다면  당장에 리마 강 따라 거슬러 올라
가는 그 길(Ponte de Lima까지)을 걷기 시작했을 것이니까.

까미노에서 최초로, 그리고 유일한 복층교(duplex bridge)
이 다리가 불러온 것은 국내의 거금대교((居金大橋)였다.
한센인들(癩患者)의 한(恨)이 서려 있는 소록도(小鹿島/전남 고흥군 도양읍)~거금도(居金島/금

산면)를 잇는 복층 사장교(斜張橋)다.
총 연장이 2.028m(사장교1.116m, 접속교912m, 폭13m/왕복 2차로)로  645m인 에펠교의 3배가
넘는, 비교의 여지가  없는 대교다.
열차가 달리는 에펠교와 달리 차량 전용(상층)과 자전거와 보행자용(하층)으로 되어 있다.

2012년,  한반도 남반부의 서해안 북단(인천 연안부두)을 떠나 남해안 ~ 동쪽 북단인 고성 통일
전망대에 이르는 '서-남-동(西南東)길'(내가 지은 이름)을 걸을 때 하루를 내어 걸었던 다리다.
한여름의 불 같은 햇살과  무더위에는 더없이 좋은 피서지가 되며,  때를 가리지 않고 쏟아 붓는
바다의 빗줄기도 걱정 없는 다리.
바다의 한가운데에 떠서  탁 트인 다도해의 정경과 해풍이 함께 하는  전천후 휴식소, 미팅 장소

등 다목적 용도로 적격인 건조물이다.

장대한 천연 해안을 두고 해안을 멀리 하는 해안로

으쓱하여 에펠교를 건넌 후 본격적인 까미노 행진을 시작했다.
머물(1박할) 예정인 곳은 까바두 강(Río Cávado) 하구, 이스뽀젠지(Esposende)의 알베르게.
다르께에서  23km 미만으로  하루치 보행거리로는 미흡한 느낌인데다 오르내림이 있기는 해도
난이도 '하'의 편한 구간이지만 해안로 답지 않게 해변을 멀리 하는 실망스런 구간이다.
지도에는 그렇다 해도 해변에 어떤 형태의 길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우리 일상에서 곧잘
쓰이는 말을 빌리면 "혹시나는 역시나"였다.(expected but failed)

까미노가 N13국도를 떠나는 지점에서 까미노를 이탈하여 무작정 해변으로 갔다.

여유로운 시간대인 아침나절이라 그랬을 것인데,  대서양의 수평선 끝까지 이어진 듯 아득하여

상반된 탄성이 잇따라 나오게 한 백사장에 압도되고 말았다.
노르떼 길 해안로는 물론 나의 까미노 초유일 뿐더러 80평생에 최초인 장대한 해안에 놀랐는데
더욱 놀란 것은 출입용 방부목 보행교가 간혹 있을 뿐 차도도 어떤 시설(편의)도 없음이다.
보행교도 자연의 파괴를 피하기 위한 가설(架設)일 뿐이고.

그러므로, 손쉬운 방부목교의 철거만 단행하면 자연의 모습이 완벽하게 살아나게 되어 있다.
인위적이 아닌,  천연대로의 해변에 놀랐으며 불편을 감수하고 모여들고 있는 사람들에 놀랐다.
그럼에도 한산하게 보이는 것은 백사장의 광대함을 의미하며 각기 한가롭고 여유롭다는 느낌인
것은 자연과 친화적임을 입증하는 것이리라.
지도에는 리마강 하구의 까베젤루 해변(Praia do Cabedelo)에서 남으로 여러 이름(Luzia Mar,
Rodanho, Amorosa, Abilio & Lea,  Lordelo,  Pedra Alta)의 해변으로 적혀 있으나 구분(경계)
표지판 하나도 없이 이어진 광활한 백사장이다.
관점이 다른 쪽에서는 황량하게 방치하고 있다고 당국을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이 지역은  스페인에 비해서 엄청 작은(좁은) 뽀르뚜갈 땅인데  이 황금 해안을 어이해 방치하며

이대로가 언제까지 지속될까.
보다 넓은 스페인의 해안에서도 꽂혀 있는 개발 예정 말뚝들과 나돌고 있는 전단들을 보았다.
한국이라면 이 대자연을 화중지병처럼 바라만 보라거나 제한적으로 즐기라고 방관할 리 없으며
개발업자들의 난도질로 이미 만신창이가 된 해안일 것이다.

내가 자연과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정의한  '타워-크레인'(tower crane)이 점령군 처럼 들어와
굉음을 질러댈 날이 각각으로 다가오고 있는가.
까미노가  이 악마를 물리치고 자연을 지켜낼 만큼 막강하다면 오죽이나 좋으랴 마는 까미노라
해서 이 대세를 막거나 우회하게 할 힘이 있을 리 없잖은가.
그래서 멀지 않은 그 때까지 방치하고 있는 것이리라 추리해 보며 해변을 떠났다.

걸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는 백사장.
컴퍼스(compass)가 가리키는  남쪽의 미로에 다름아닌 길을 헤매듯 하여  까미노 마크가 있는

포장 도로에 올라섰다.
한동안 까미노 뽀르뚜게스의 해안로가 되는 산간길 지방도로(M544)다.
일부 자투리길이 까미노인 것으로 미루어 신설된 EM544도로가 까미노를 흡수하였으며 짧지만
자투리 숲길 까미노는 직선화 과정에서 버려진 행운(?)의 길일 것이다.

다르께(Darque)~아냐(Vila Nova de Anha)의 약 2.7km 구간에 2시간여를 소비했기 때문에 이

하루의 여유로운 시간도 모두 아침나절에 써버렸다.
마치,  백두대간에서 약채꾼들에 의해 만들어진 미로들 처럼 생기다 만 길들을 방황하는 고행이
되기는 했으나 까미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경이로운 자연 감상이므로 아쉬울 것 없는 소비다.
어떤 대가(代價)가 전제된 뽀르뚜게스의 역방향 해안로가 아니라 해도 과소비한 시간과 체력에

이처럼 거창한 보상이 준비되어 있을 줄이야.

어떤 야고보도 걸은 적 없는 길인데 어느 길이면 어떠냐

설영 이 일로 인하여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도중 하차한다 해도  전혀 후회되지 않을 만큼

만족스럽고 유쾌한 걸음으로 아냐를 통과했다.
아냐의 교회(Igreja Matriz da Paróquia de São Tiago de Vila Nova de Anha) 이후의 까미노

는 샤피(Chafé)로 이어진다.
아냐와 샤피는 지자체 비아나 두 까스뗄루의 소교구마을(freguesias/parroquias) 중 하나다.
인구 2.415명과 2.841명(2011년현재)의 특징 없는, 평범한 마을.

이 두 마을도 몰레두 못지 않게  근래에 신설한 길 외의 모든 길이 돌길이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해안에는 최소한의 방부목교가 있을 뿐 인위적 가공이 전무한 것이 극명하게 대조된다.
관계 당국자들의 뜻을 극동의 늙은이가 헤아릴 수 있으랴 마는 동요없이 고이 보존하면 개발의
이익 보다 엄청 값진 보상이 따르련만, 이같은 기대가 과연 가능할까.

미려한 세라믹 벽돌집들이 날로 늘어가고 있다.
대부분은  여러 세기의 세월을 뜻하는 낡은 돌집들을 밀어내고 들어서서 신. 구(新舊)가 어색한
동거를 하고 있다.
보수(補修)가 요구되는 골목길들도  돌의 고갈로 인하여(?) 아스팔트 포장으로 바뀌어 감으로서
낡은 돌담에 새 포장도로.
이 언밸러스(unbalance)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아직 샤피 땅의 예배당(Capela do Senhor Do Socorro)을 지나 곧 네이바(Neiva)에 들어섰다.
인구 1.267명으로 아냐, 샤피와 같은 지자체 비아나 두 까스뗄루의 크지 않은 소교구마을이다.
드물게 본 것은,  번호를 받지 못한 무명 시골길(Av. do Mosteiro)의 양쪽 가장자리에 붙박이로
서서 서로 환영하고 있는 두 마을(Chafé, Neiva)의 문장(紋章/coat of arms)이다.
마을 간의 경계 표지판으로 용도를 넓혀가고 있는가.

까미노는  잠시 남하하다가  상 로망 두 네이바 교회( Igreja de São Romão do Neiva/수도원)

를 지나 아스팔트 도로를 버리고 입산(monte Castelo do Neiva)한다.
잠시나마 우측(서쪽) 산으로 들어가는,  앞에서 말했듯이 어처구니없는 산길(山道) 해안로다.
산다운 산의 길이라면,  오히려 연목구어(緣木求魚)를 이룬 듯 쾌재를 부를 일이지만  산도 들도
아니고 언청이에 다름아닌 길을 걸어야 하니 어처구니없다 할 밖에.

공원묘지(Cemitério de Castelo Do Neiva)와 교회(Igreja de Santiago de Castelo de Neiva)

에서 산길(해안로)은 마감되고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길.
파란 화살표가 이따금 나타나는 길이다.
순(順)방향(de Santiago a Lisboa/Fatima)으로 안내하는 노란 화살표에 반하여 반대(逆) 방향

(a Santiago de Fatima)을 가리키며 나를 안내한 까미노 마크다.
(노란 화살표가 리스보아 또는 파티마 發 산띠아고 着 까미노 마크라면 산띠아고에서 시작되는
뽀르뚜길의 파란 화살표는 뽀르뚜갈의 산티아고로 불리는 파티마에서 끝난다)

남서진하는 까미노(Av. de Moldes)는  양편(右左/순방향 左右)의 예배당(N.S. Guadalupe)과 

알베르게(Albergue Dom Nausti/Albergue Castelo do Neiva이름이 다를 뿐 同一)를 지난다.
이어서, 남동으로 방향을 틀어(R.802) 숲길을 이어가다가 좌측의 간이다리를 건넌다.
비아나 두 까스뗄루 현과 브라가(Braga) 현의 경계를 이루는 네이바 강(rio Neiva)의 다리다.
이 다리를 건넌 것은 비아나 두 까스뗄루 현과 동명(同名) 지자체의 까스뗄루 두 네이바 마을을

떠나 지자체 이스뽀젠지(Esposende/브라가縣)의 안따스(Antas) 마을에 진입했음을 뜻한다.

건넌 강가,  안따스 숙박소(Casa da Azenha Branca)  이후의 해안로는 1km 정도에 불과하나
다시 2개의 길로(Costa/Camino Portugues의) 나뉜다.
동진하다가 남하해서 N13도로와 만나는 길(R.da Carnalha)과  남하하다가 동진해  N13도로에
합류하는 길(R. das Fontainhas~R. Monte de Guilheta)로.
전자는 잠시나마 길례따(Guileta) 산기슭의 걸을 맛이 나는 숲길(R.da Carnalha)인데  이 짧은
구간이 왜 2개의 길로 나뉘었을까.

'까미노'라 하지만 어차피 어떤 야고보도 걸은 적이 없는 길이므로 아무 길이면 어떠냐.
마는,  나는 간혹 있는 우회로 외에는 외길인 까미노와 달리  무수한 길로 나뉘는 시코쿠 헨로를
걸으며 많이 비판했는데 까미노가 그같은 경향으로 가고 있을 줄이야.
지형(地形)으로 보아  전자(前者)는 산띠아고로 가는 순 방향 뻬레그리노스가, 후자는 파띠마와
리스보아를 목표로 걷는 역 방향 도보자들이 선호하는 길인 듯 하지만.

알츠하이머(Alzheimer/癡呆)가 오고 있는가?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수 없을 만큼 공복감이 와락 대두하여 식사를 했다.
거의 늘 하는 대로 아침을 겸한 점심식사라  당연히 꿀맛이며 포식하게 되어 있지만  이번(2015
년) 까미노 1.5개월(이날까지) 중에서 최고로 맛있는 음식으로 포만감이 극에 달하도록 먹었다.
(5개월 까미노 생활에서 전무했으며 후무한 식사였다)

까미노의 내게 브라가 현은 식사의 예루살렘(聖地)인가.
전번(2011년)에도 2.5개월 까미노 생활에서, 같은 뽀르뚜게스의 순 방향(de Santiago a Porto)
내륙 루트에서 오늘처럼 경험한 유일한 식당(Pedra Furada)이 바로 브라가 현에 있다.
지자체 바르셀루스에 속한 안또니우(Antonio)의 집(Restaurante Pedra Furada)이다.
그러니까,  관할 지자체가 바르셀루스(Barcelos/2011년)와 이스뽀젠지(Esposende2015년)로

다를 뿐 동일한 현(Braga)에 있는 식당들이다.

그러나, 이 최고의 식사에 관한 내 기억은 이것이 전부다.
운 좋게도(?) 도둑을 면한 한 메모지에도 "까미노에서 가장 저렴하고 실속있는 음식은 뽀르뚜길
안또니우의 식당(Pedra Furada) 다음으로는 오늘의 5.5€ 점심"이라고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1개월여를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하고 백방으로 애를 써보았지만 100% 허사였다.
5년의 세월이 흘렀으며(2020년 기준) 기억을 살려주는 유일한 매체인 메모리칩(사진)을 도난당
했기 때문으로 돌려보지만 타당성이 떨어진다.
왜냐면, 이 때 보다 4년이나 전의 일들이 모두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으니까.

"안또니우의 식당 뻬드라 푸라다는 바쁜 점심시간인데도 한동안 소란스러웠다.
까미노(뽀르뚜 길)에서 순례자의 아미고(amigo/벗),  순례자를 후대하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로
소문나 있는 최고의 친(親) 순례자 안또니우(Antonio Martins Ferreira)가 일을 벌린 것.
그가 권하는 6.5€의 정식을 먹었는데  75일 간의 전 여정을 통틀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장
값싸면서도 푸짐하고 최고로 맛있는 식사였다.
내 순례자여권에 스탬프를 찍어주다가 놀란 그는 좌중에 펼쳐보이며 수선을 떨어서 77세(당시)
의 한국 할아버지와 사진찍으려는 사람들로 순번을 정하는 등 한참 북새를 피워야 했다."

2011년5월 어느 날에 동일지역(Braga distrito/縣)에서 있었던 위의 장면이 지금도(2020년6월)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건만 그보다 4년이나 후(2015년6월)의 일이 완전한 백지 상태라니.
인터넷 위성지도에서,  전후 사정으로 미루어서 현장 일대가 될 만한 지역의 음식점들을 샅샅이
검색해도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기억이다.
중요한 글의 한 대목 또는 그 부분을 담은 사진이 완전히 삭제된 느낌이다.
까미노 뿐 아니라 80대 중반에 이르기 까지의 내 인생에서 최초의 일이다.

알츠하이머(Alzheimer/癡呆)?
드디어 반길 리 없는 불청객이 막무가내로 온 것인가?
그렇다면, 어떤 대책이 있어야 하는가.
최초의 충격이기 때문에 당장에는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다.
또한, 이 무법자의 횡포가 얼마나 자주 있게 될지, 망각의 영역을 얼마나 넓혀갈지, 빈도와 범위
를 알 길이 없는 상태에서는 어떤 대책도 나올 수 없잖은가.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상시를 유지하는 일이 당면의 과제일 것이다.

대동소동(大同小同)한 에스빠뇰과 뽀르뚜게스의 지혜가 부럽다

N13국도를 횡단, 잠시 남하(Tv. do Ferreiro)하다가 EM546도로를 따라서 남남동진하는 해안로
(Camino)는 곧 성모 마리아 예배당(Capela de Nossa Senhora dos Remédios)을 지난다.
예베당 앞에서 이 길(EM546) 죄측으로 직각,  남남서진하다가 남하하는 소로(R.de Maracanã)

를 따라 1km쯤 지나면 숙박소인 안따스 게스트 하우스(Antas Guest House)다.
한가로운 시골을 찾는 이들의 민박집이라 할까.
호텔은 커녕 소규모의 호스텔도 운영될 수 없는 시골에는 안성맟춤일 듯 하며, 알베르게 마저도
사치라 할 수 있는 뻬레그리노스에게는 이 또한 그림의 떡(畵中之餠)일 것이다.

지자체 에스뽀젠지의 프레게지아스(freguesias/civil parishes)는 안따스를 지나 벨리뇨 이 마

르(Belinho e Mar)로 이어진다.
야산을 개간하여  더러는 아직도 농토로 사용하거나  농가의 텃밭으로 활용하는 농촌의 소로가
어떤 연유로, 당치않게 까미노 뽀르뚜게스의 해안로가 되었는가.
취락이 형성되기 까지 긴 세월에 걸쳐서 건물과 함께 조성했을 것으호 보이는 모든 길이 촘촘히
심은 돌길인데, 이 지역의 선대(先代)들은 선견지명이 있었던가.
언젠가는 이 길이 까미노가 될 것이며, 그러므로 후대를 위해서 견고한 돌길로 닦아놓은 것?

상뚜 아마루 예배당(Capela de Santo Amaro) 앞뜰의 벤치에서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오전에 시간과 체력을 과소비했기 때문인가.
지자체 이스뽀젠지의 다운타운이  8km 미만으로 줄었으며  마리냐스의 알베르게(Albergue de
Peregrinos de Marinhas)가 5km 이내로 다가왔다는 위치에서 약간의 갈증을 느꼈다.
슈퍼마켓(Loja Santo Amaro)에서 맥주 1캔을 구입해 마시는 드문 일을 한 까닭이다.

해안 없는 해안로는 N13국도에 올라섰다가(Lampião Caffé) 남하를 계속한다.
시민문화회관(Centro Civico de Mar), 보아뜨 게스트하우스(Boat Guest House), 마리냐스의
성 미겔 교회(Igreja Matriz de São Miguel Arcanjo das Marinhas)까지.
맥주를 마신 후 4.6km의 거리다.

남하와 서진을 2km쯤 하면 다시 대서양 해안이다.
교회에서 남으로 200m 미만의 위치에 알베르게가 있으나 주저 없이 통과했다.
여기도 이스뽀젠지 땅이지만 목표는 해변의 다운타운이니까.
석양의 시간대에는 늘 그러하듯 시작된 가속에 주마가편(走馬加鞭)하며 이스뽀젠지 일로(一路)
하여 대서양 해안에 다시 진출했다.

아침나절에 헤어졌을 뿐인데 꽤 오래된 듯 반가운 해변.
감탄을 연발하다가 아쉽게 헤어진 천연 해변과 완벽하게 다른,  경이롭게도 조화로운 정비가 이

뤄진 해안을 따라 남하하여 당도한 대서양의 까바두 강(Rio Cávado) 하구.
스페인의 여러 루트에서, 특히 직전의 노르떼 길에서 자연과 충돌하지 않고도 친화적으로, 무리

없이 개조하는 그들의 능력에 이미 감탄하며 왔는데 대동소동(大同小同)한 뽀르뚜갈이다.

그러나,  이 하구가 극동의 늙은이를 탄복하게 한 것은 그들의 개조 능력이 아니라, 이 능력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천연대로 살려두는 그들의 억제력이다.
면적이 대한민국의 남반부(대규모 간척사업 이전)와 비슷한 뽀르뚜갈은  땅덩이가 대략 스페인
의 5.5분의 1이며 인구는 4.5분의 1 정도다.
따라서,  인구밀도가 평방km당 90명과 114명으로 스페인 보다 협소한 뽀르뚜갈이므로  국토의
확장이 절실한데도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지 않는 현명(賢明)을 찬양하는 것이다.

늙은 나그네의 가련스런 자화상?

하루 묵고 싶도록 매혹적인 인공 강안도시(江岸)인 지자체 이스뽀젠지의 다운타운에 당도했다.
알베르게를 찾아가는 급선무를 목전에 두고 운 좋게도, 누구의 도움도 없이 관광안내소(Centro
de Informação Turística de Esposende)를 찾아가기는 했으나 어이없는 일이 되었을 줄이야.
도심에는 다수의 숙소가 있으나 알베르게가 없고  2km쯤 먼 곳에 있다며 안내원이 그려준 약도
대로 가다가 놀란 것은 길이 다를 뿐 북쪽(Marinhas)으로 가고 있음이었다.
참으로 어이없게도,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성 미겔교회 앞에 서게 된 것이다.

낙심천만하여 넋 나간 듯 교회 앞에 서있는 내 꼴이 몹시 측은하게 보였던가.
내게 다가온, 아주 호의적인 한 영감이 말을 걸어왔다.
뽀르뚜갈어를 전혀 모르지만 "알베르게가 필요한가" 묻는 듯 했다.
내가 뻬레그리노인 것은 누구나 쉽게 알겠지만 숙소까지 관심가져주는 사람은 흔하지 않은데.

교회 아래(남동쪽 Rua Padre Francisco Cubelo Soares 따라서 200m 미만)의 알베르게까지

앞장 서서 안내한 그.

2시간쯤 전에 주저 없이 지나쳤던 그 알베르게(Albergue de peregrinos de São Miguel)다.
내가 다운타운을 돌아서 다시 왔음을 알 리 없는 그는 내게  이 알베르게를 적극 추천했다.
"뽀르뚜갈 적십자사(Cruz Vermelha/Red cross)의 마리냐스지부가 '도나치부'(donativo/寄附

金制)로 운영하는 알베르게로 지자체 이스뽀젠지 안에서 유일하다"며.
도심에는 알베르게가 없기 때문이며, 뻬레그리노스의 부담을 덜어주는 이 알베르게에서 하루를

마감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뜻이리라.

2시간여 전,  이 곳을 지날 때 만났더라면 어처구니 없는 낭비(시간과 체력)를 하지 않게 되었을
이 영감은 누구길래 해안로(Camiino) 알베르게의 정보력이 이다지도 풍부할까.
해안과 내륙 양 루트, 뽀르뚜 한하고 알베르게의 현황을 내게 알려주었다.
뽀르뚜갈어를 모르기 때문에 대충 짐작하는 정도였지만.

마리냐스의 알베르게는 2개의 방(hall)에 2층 벙크가 배치되어 있는데 총 34베드란다.
마지막 입실자가 된 내가 들어선 시각(19시/뽀르뚜갈 시간)에  한 홀에 몇명의 뻬레그리노스가
있을 뿐, 아침에 퇴실할 때까지도 운영자(hospitalero, 기타) 쪽은 아무도 대면하지 못했다.
정액 입실료를 수금할 일이 없기 때문에 뻬레그리노스 개개인의 자율에 맏기는가.

적십자사의 이미지와 달리 청결이 부족하다는 느낌인 알베르게. 
공공(公共) 알베르게 중에서는 인터넷이 가능하다는 최초의 집이다.
그러나 '사용불가'란다.
(마치, 폐업 수순을 밟고 있는 중인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최근/2020년의 알베르게 정보를
검색했는데 도나치부에서 정액제(5€)로 변경, 운영하고 있단다)

젊은이들과 같은 홀의 베드에 드는 것도 무방하며, 운영자에게는 절략효과(管理費)도 있겠으나
그들(젊은이들)에게 부담이 될 듯 하여 방을 달리 한 후 이용할 시설들을 점검(?)했다.
놀랍도록 잘 갖춰진 주방(cozinha).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에 입성(노르떼 길)  전야(Monte do Gozo)  이후의 알베르게에는 주방

시설이 없거나 있어도 내가 할 일이 없기 때문에 무심했는데 이 일품 주방에 자극을 받았는가.
한꺼번에 대두한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거나 "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 는 우리 속담이 나로

하여금 지체 없이 거리로 나가게 했다.
제사도 지내고 경마도 잡히려면 거리(材料)가 있어야 하니까.

그러나, 아무 것도(식자재) 구하지 못했다.
궁벽한 농.어.산촌이라 해도 취락(聚落)이 형성된 지역에서는 유명 슈퍼마켓들이 성업중이다.
이 하룻길에서도 곳곳에서 목도했지만,  개간한 땅  대부분이 너른 농지일 뿐  마을이 형성되지

못한 이 지역에 슈퍼가 있을 리 없잖은가.
겨우 찾은 구멍가게 수준의 마트에는 필요한 물건이 없는데다 그나마도 값이 대형 마켓의 곱절
안팎이며 정가표도 셈도 모두 엉망이었다.

공교롭게도,  모든 구입이 원만하게 가능한 지역의 알베르게에는 주방 시설이 없거나 빈약하고,
그 것(주방)이 완비된 곳에서는 식자재의 구입이 난망인 경우가 비일비재다.
무슨 요리라도 해낼 만한 주방에서 겨우 물을 끓이고 있는 늙은이.
막 구워낸 것 보다 더 비싸게 산, 구운지 몇 날이 된 듯 굳은 바게트를 먹기 위해 엽차물을 끓일

때 한 순간의 헛꿈을 깬, 허탈한 늙은이의 모습이 가련스러웠으리라.                     <계 속>

뽀르뚜 길 내륙 루트의 리마 강 다리(Ponte de Lima/위)와 해안로의 복층교 뽄치 에펠(Ponte Eiffel/아래)

에펠교 이전의 다리(아래)

거금대교(위/전라남도 고흥군의 소록도와 거금도를 잇는 복층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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