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연합뉴스)
손대성 기자 = "배움에 대한 갈증으로 야학을 찾아갔는데 제가 운영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경북 구미의
상록야학 교장 정태하(50)씨는 한때 이 학교의 학생이었다.
고향 김천에서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초등학교만 졸업한 뒤 남들이 공부하던 시기에 신문배달부, 구두닦이, 술집 종업원, 생선장수 등 갖가지 직업을 전전해야
했다.
갖은 고생 끝에 전파사를 차려 어느 정도 돈을 모은 그는 양복을 입고 중형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사교모임에 가입해 활동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을 만나면 왠지
주눅이 들었고, 초등학교를 다니던 아들이 가정환경조사를 하게 되면 중졸이나 고졸로 속여야 했다.
가슴 속 빈 공간을 채우지 못했던 그는 1989년 31세의 나이로 상록학교의 전신인 구미향토학교(1987년 개교)란 야학 문을
두드렸다.
곱셈이나 나눗셈도 서툰 그였지만 조금 지나자 공부에 재미가 붙어
낮에는 과외를 받아가며 공부에 매진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입학한 지
3개월만에 야학이 운영난을 겪으면서 문을 닫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공부에 재미를 붙여가던 그는
안타까움에 자신이 직접 나서기로 했다.
동사무소 회의실, 병원 사무실 등을 옮겨다닌 끝에
상록학교는 1995년부터 구미시로부터 무상으로 배움터를 임차해 현재의 송정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1993년 정씨는 심훈의 농촌계몽운동을 소재로 한 소설 '상록수'에서 이름을
따와 교명을 상록학교로 바꾸고 교장으로 취임해 본격 운영에 나섰다.
정 교장도 그 사이 고입.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해 1998년 김천대학 전자통신학과를 졸업했다.
매달 필요한 300여만원의 운영비를
정 교장이 사재를 털고 국비 보조를 받아 마련하고 있다.
1987년부터 지금까지 상록학교를 거쳐간
졸업생은 1천260명이고 각종 검정고시 합격한 사람은 825명이다.
올해도 고입검정고시에 10명,
고졸검정고시에 13명이 합격했다.
상록학교는 한글반을 비롯해 초.중.고등부, 컴퓨터.외국어 등
다양한 과정에 15세의 청소년부터 83세의 노인까지 160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
뒤늦게 배움의
길을 걷는 사람들도 있지만 30% 정도는 청소년이다.
정 교장은 "IMF 환난 이후 가정이
해체되면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청소년들이 많아졌다"며 "늘 160~180명 정도의 학생이 유지된다"고
말했다.
그만큼 배움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학원강사나 정년 퇴직한 교사, 대학교수, 현직 교사 등 56명의
자원봉사자.
정 교장은 내년부터 국가청소년위원회가 야학에 청소년보다 성인이 많다는 이유로 지원을
중단키로 한 것이 가장 큰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교육부도 손을 놓고 있어 상당수 야학이
운영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정 교장은 "내 삶의 90%를 차지하는 분신이자
모교가 상록학교"라며 "힘든 것도 많지만 검정고시 합격증을 전달할 때의 감격은 고단함을 잊게 해준다"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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