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읽고

내 나이 오십대 중반에 만화를 읽고, 눈물 콧물을 흘리다니 남부끄러울 일이다.
‘강 풀’이라는 젊은 만화가가 지은 이 책은 노인들의 사랑을 주제로 다룬 순정 만화다.
70대 후반의 노인들이 사랑하며 죽어가는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듯한 줄거리이다.
주인공 김만석 할아버지는 무뚝뚝한 성격으로 우유배달을 한다.
몇 년 전 아내와 사별할 때 마지막 보내는 길을 다정다감하게 대해 주지 못했던 것을 늘 가슴에 상처로 안고 살아가고 있는데, 한 동네에 사는 송씨라는 할머니를 알게 된다.
송씨 할머니는 이름조차 없이 고난의 세월을 살아온 여자로서, 남편과는 젊어서 헤어지고, 하나 밖에 없던 딸마저 10살 전에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폐지를 수집하여 끼니를 연명하는 의지가지없는 가여운 분이다.
김만석 씨와 송씨와의 사이에 피어나는 애틋한 정이 이 만화의 주요 플롯인데, 무뚝뚝한 김만석 씨의 얼음장 같은 마음에서 눈이 녹고 새순이 돋아나듯 송씨에 대한 애정이 솟아나는 장면들에서는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온다.
김만석 씨의 서투르고, 막무가내 식 구애를 수줍게 받아들이는 송 씨의 순수하고 가녀린 마음씨가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이야기의 중반에 등장하는 또 다른 주인공들은 장군봉이라는 할아버지 부부다.
장씨는 달동네 주차장에서 주차관리를 하는 일로 생계를 꾸려가는 데 그에게는 치매에 걸린 아내가 있다.
새벽 다섯 시에 출근할 때 대문에 자물쇠를 채우고 나서는 것은 치매 걸린 그의 아내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장씨는 밤이 늦어서야 퇴근을 하고 그 시간을 치매 걸린 아내는 방안에서만 갇혀 지낸다.
하루 종일 벽에 그림을 그리는 게 일인 아내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번번이 옷에다 용변을 보곤 하는데 밤늦게 퇴근한 장씨가 뒷치닥꺼리 한다.
그리고는 하루 종일 혼자 있게 한 아내에게 보상이라도 하듯 자신이 밖에서 지낸 하루의 일을 이야기해 주는데 밤 서너 시가 되어야 잠을 이룬다.
한 두 시간 만에 잠을 깨어 다시 출근하는 피로한 나날이 연속되므로, 장씨는 쏟아지는 잠을 깨우기 위해 늘 커피를 과용한다.
장씨의 일터인 주차장과 송씨가 파지를 내다파는 고물상은 이웃이라 자연스럽게 두 쌍의 연인들은 관계가 맺어지고 김 씨와 장씨는 친구가 된다.
송 씨 역시 장씨의 아내를 돌보아줄 기회가 생겨서 이들 네 사람은 피붙이보다 가까운 정을 나눈다. 장씨는 아내를 위해 바깥 나들이를 시켜준 김씨와 송씨에게 한없는 감사를 보낸다.
장씨의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야 할 수 밖에 없을 때 장씨는 아내 혼자 먼 길을 보낼 수 없다며 아내의 죽음에 동행한다.
장씨는 가스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아내와 함께 먼 길을 떠나게 되고, 이는 김만석 씨와 송 씨만 알고, 비밀로 덮어두기 바란다는 유서를 남긴다.
송 씨는 김만석 씨의 도움으로 송이뿐이라는 이름도 갖게 되고, 생계비 지원까지 받게 되지만 둘 사이의 사랑은 송씨의 귀향으로 인해 끝내 결실을 이루지 못한다.
단행본 세 권으로 이루어진 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그리 복잡하지는 않지만 노인들의 행동이나 심리상태를 세밀하게 묘사한 것이 백미이다.
특히 장씨가 위암 말기라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이 아내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통보받고 보이는 행동들이 너무나 감동스러웠다.
아내를 위한 소풍, 가족들을 부르고 서로 얼굴을 보게 하지만 죽음에 대한 예지는 않는 점, 절친한 사이인 김만석 씨와 송씨에게도 아내의 병세를 속인 점, 특히 밖에서 대문을 잠그고 담을 넘어 집안으로 들어간 장씨가 아내와 같이 죽기 위해 문틈에 테이핑을 하고 가스를 틀어놓은 사실을 뒤늦게 알려지도록 한 점 등은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배려가 가슴을 울렸다.
나는 이 부분에서 눈물과 콧물을 쏟아냈다.
심지어는 ‘엉엉’ 소리 내어 울기까지 했을 정도로 감동의 극치를 맛보았다.
15년 전 내 아들 성필이를 저 세상으로 보낸 후로 이렇게 슬프게 운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의 가슴 어떤 구석에 이러한 감성적인 부분이 있었나하고 스스로도 놀라웠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이 말이 노년의 사랑을 고백할 때 쓰인 언어라는 사실이 얼마나 로맨틱한가?
죽음을 앞둔 노인들의 심리를 이렇게도 정확하고 감동적으로 묘사한 작품이 있었다니 놀랍기 짝이 없다.
더구나 그것이 만화였다는 사실이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