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표현 2001년 9/10월호 시조평
문학의 길, 삶의 길
이 재 창
1.
시조에 있어서 현실인식의 수용은 아직까지도 상당히 먼 곳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국
에 1천여명에 가까운 시조시인들이 나름대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 작품의 질은 천차만별이
다. 어느 장르나 마찬가지겠지만 유독 시조단의 경우 상당수의 작품이 아직까지 고티를 벗
고 있지 못하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처음 시조를 공부하던 시절의 선배시인들의 작품을 모방하던 때의 그런 고티를 내비치는
작품류들이 아직까지 시조단을 활개하고 있는 있다는 것은 심히 유감이다.
고시조가 그 당시의 현실상황을 수용하며 작품화했다면, 현재의 시조도 마찬가지로 지금
의 현실인식을 수용하며 작품화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고시조와 현대시조를 구분하기 어려운 정년퇴직파 신인들을 무작위로 등단시키는 문예지
의 등단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시조창작에 처음으로 공부하던 시절인 고교시절엔 전국에서 최초의 유일한 전남학
생시조협회라는 고교생 문학서클이 있었다. 광주시내 남녀고등학생들로 짜여진 이 동호회에
서 지도교사인 송선영 시인을 모시고 공부를 했었다.
매주 일요일 오후 광주시 충장로 3가 3·1웅변학원에서 10여명 이상이 모여서 작품 품평
회를 가졌다. 거기서 나는 시조 창작법의 기본을 배웠다. 선후배 할 것 없이 그날 품평할 작
품이 칠판에 적혀지면 작품 하나를 두고 몇 시간동안 작품을 뜯고 고치고 완전히 걸레가 될
때까지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작품을 써온 회원은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혹평을
받아도 모임이 끝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시내를 거닐며 군것질을 하기도 했다.
필자는 지금도 그 때의 습작과정과 토론문화를 잊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1년마다 동인지
『토풍시』를 발간하거나 시화전을 개최하면서 문학의 꿈을 키워왔다. 필자가 등단한지 20
여년이 지났지만 등단 후 그러한 신랄한 품평을 받아보거나 해본적이 없다. 그만큼 기성시
인들의 자만과 매너리즘을 필자는 부인할 생각이 없다. 그리고 등단후의 문학을 위한 참신
한 문학동호회가 없었다는 말도 된다. 기존의 모든 문학 동호회나 단체들이 작품을 위한 모
임이 아니라 친목모임 성격으로 변질되고 말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지금도 전국에 산재한 문학모임들이 엄청나게 많지만 진정한 작품 읽기와 작품토론회를
가진 곳이 몇이나 되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일부 정년퇴직파 신인들이 수없이 등장하면 할수록 시조단은 쇠락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 인생의 마지막 여생을 시조를 쓰면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이야기다. 문학이
인생이 노리개란 말인지 아니면 신선놀음이나 하는 그런 장르로 이해되지는 않았는지 의심
스러울 뿐이다.
그러한 분들이 양산되면서 시조단은 등단연대의 선후배가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
다. 이상하게도 시조단은 등단연대의 문단 선후배를 가리는 예절과 도덕성이 결여된 듯한
느낌이다. 정년퇴직파 신인들이 많다보니 나이로 선배를 따지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인생의
선배란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문학과 인생은 별개의 것이라는 것은 생각지 못하는
부류들이 많다.
2.
필자가 10여년전에 광주시인협회에서 발간한 광주시문학에 그때까지 보아온 호남시조단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그때 나이든 일부 후배 시조시인들이 한 말은 심히
유감이었다. 필자를 명예훼손혐의로 고발하겠다는 것이었다. 재미있고 우울한 현상이었다.
필자의 비평언어가 과격한 탓도 있었지만 나이든 후배시인들의 그때 자세는 진정한 문학인
의 자세는 아니었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글은 글로써 대하는 것이 문학인의 자세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의 필자가 쓴 내용은 현실인식의 수용에 관한 내용이었다. 나이든 많은 시조시인들의
문학작품의 경향이 나의 작품성격과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30대초반의 팔팔한 정열을 가진 필자가 보기에는 시조단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에서 그 글
을 썼었다. 지금에 와서 그 대상이 호남지역에 거주하신 분들로 한정되었다는 점에서는 심
히 죄송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그 당시엔 언제까지 시조단이 고리타분한 형식논쟁이나 벌이고 있을까하는 우려와 고시조
의 가락이나 흉내내는 고티 나는 작품들에 대한 자극을 주기 위한 글이기도 했다. 그러나
형식논쟁은 현대시조가 출발할 때부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형편이다. 시조시인이라면
기본 형식을 모르는 이는 없다고 본다. 고시조의 가락이나 현대시조의 가락이나 그 형식적
리듬은 동일하다. 하지만 가락은 동일하되 내용까지 고시조의 내용적 성격이 유사하다는 것
은 통시적 공시적인 문학적 특징에서 큰 문제가 된다.
현대시조가 현대인의 삶과 현실인식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문학작품으로서의 역할은 없다
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그것은 한마디로 배설과 쾌락의 유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나이는 들었을 지라도 정말 참신한 현대적 감각을 유지하며 별처럼
빛나는 좋은 작품을 발표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런 것을 보면서 하나의 문학작품은 인식의
문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인 개개인이 가지는 시조에 대한 문학적 인식은 나이든
분들에게서는 결코 변화되기가 힘들다는 것도 알게 됐다.
현대시조가 고시조와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내용까지는 의미하지는 않는
다. 시조하면 고시조를 생각하는 일반인들과 타 장르 문인들처럼 똑같은 생각을 한다면 시
조시인으로서의 자질도 문제가 된다. 그러한 인식의 차이에서 나오는 작품들이 현대적 감각
을 유지하고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리는 없다고 본다. 독자들의 입장에서도 시조가 그러면
그렇지 하는 고리타분한 느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이를 극복하고 이미 머리 속에 저장되어 있는 시조의 고리타분한 인식은 변화 될 수 있
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다양한 독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시조집 몇 권
읽고 등단했다는 그 무례한 일부 발언들을 대할 때마다 시조가 또다시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구나 하는 울분이 치솟곤 한다. 그 어떤 천재라도 시집 몇 권 읽고 시인이 된다는 사실에는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거기에는 문예지의 무분별한 신인등단이 문제다. 잡지들끼리 힘겨루기라도 하듯이, 수를
늘리기 위한 신인등단은 문단의 필요악이다. 서경이나 읊는 습작정도에 불과한 작품들이나
여전히 고티를 벗지 못하는 작품들이 버젓이 신인의 감투를 눌러쓰고 나오는 것은 시조단의
풍토 문제다. 또한 그들을 심사한 심사위원들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학연과 지연, 친분
에 의한 정에 얽매여 등단을 시킨다는 것은 정치판과 다를 바가 없다.
이 복잡한 산업사회에 제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라고 비우냥 거린다면 할
말이 없지만 이제 시조단도 제대로 된 작품을 선별하는 제정신을 지녔으면 한다. 그래야 시
조의 미래도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3.
재미없고 제 얼굴에 침 뱉는 이야기만 지껄인 것 같다.
장마가 끝나고 연일 30도를 넘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만히 사무실에 앉아 있
어도 불쾌하고 짜증이 난다. 그리고 골치가 아프고 모든 게 무기력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러한 무더위 속에서도 최근의 작품 몇 편은 신선하고 재미있어 반갑다.
한때 농부 발목 잡아 물꼬 볼 때 놓치게 한
全群街道 겹사꾸라 저 멀리 물리치고
새파란 어린 병정들 늠름하게 돌아왔다.
아득히 펼쳐진 허허롭던 연병장에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오와 열 잘 맞춰 서서
나날이 날을 벼린다. 제 몸까지 담금질한다.
망초꽃물 한창 번져 도배되는 둔덕 위에
제 한 철 미리 어림 측량하던 메뚜기가
가만히 더듬일 세워 빈 하늘만 헤아린다.
-이애순「만경평야」전문 (정신과표현 7/8월호)
위 작품은 그 넓은 만경평야의 풍경에서 벼이삭 하나 하나를 병정에 비유한 것이 이채롭
다. 여름 들녘에 날을 세운 벼들이 줄지어 섰는 만경평야의 연병장에 새파란 어린 병정들이
모여 있다. 겹사꾸라 물리치고 의기 양양하게 돌아와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오와 열 잘 맞춰
서있는 우리들의 양식. 제 몸까지 담금질을 하며 익어가는 그 수많은 벼이삭을 보며 만경평
야의 그 시원한 바닷바람을 생각하게 한다.
목사리 어중간히 기둥에 묶여 매맞는 짐승은 개 말고 또 있나.
과수댁, 뭣 땜에 심기 또 편찮으신가? 왜 자꾸 가엾게 개패듯 패는가 누렁이만.
모르긴 몰라도, 불쌍한 건 잠 못자는 사람만 절대 아니지. 싸리빗자루 피하자면 목사리
달칵 목에 걸리고, 도망도 못치고 꼬리 사린 채 깨갱거리는 누렁일 보면 개팔자가 상팔자란
말 단박에 퇴출이야, 퇴출!
밥 때 밥 주고 짝지어 주고 알콩달콩 집 보라면 놓아기르니 도망갈까, 밤중으로만 님 오
신다니 사납게 캉캉 뛰어들까. 씨암탉 병아리 미운 오리 까투리 고망쥐 도둑괭이 죄 놓아기
르면서 과수댁!
날개 있는 놈 풀어 놓고, 눈칫밥 슬슬 기는 놈에 뭣도 없는 놈 묶어 놓고… 참, 하느님
두! 모르긴 몰라도 잘못 가르치셨수, 잘못.
“유전이 무죄하나니 無錢有罪 하니라!”
-홍성란「개같은 세상」전문, (유심 2001 여름호)
홍성란 시인의 위 작품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던져주는 작품이
다. 또한 그가 줄곳 주장해온 사설시조의 존재론적 의미를 부여해 주는 작품이다.
홍시인은 자신이 사설시조를 계속 써온 이유를“그동안‘속(俗)의 미학’을 담아내는 사
설시조에 주력해 온 게 사실이다. 왜? 퍼붓고 싶은 말이 많았기 때문에. 재미있고 직설적이
고 비속하고 비루한 말의 운용으로 시정의 세속적 욕망을 폭로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맛보고
싶었기 때문에. 어법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이 말은 현
대시조에 있어서 사설시조가 지니는 내용과 형식의 특성을 가장 쉽게 표현해 내는 말이다.
위 작품「개같은 세상」도 이러한 그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개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
이 사설시조의 해학성과 세태비판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목사리 기둥에 묶여 매맞는
개는 일명 돈 없고 빽없는 사람을 비유한다. 과수댁을 통해 길러지는 개를 보면서 인간이
살아가는 가장 비극적인 하층민들의 억울함을 묘사해 낸다. 즉 무전유죄(無錢有罪)인 세상을
매맞는 누렁이를 통해 해학적으로 표현해 냈다.
홍성란의 위 작품은 최근에 많이 발표되는 사설시조의 맹점인 시도 아니고 사설시조로도
보기 힘든 작품들에게 하나의 창작전범 역할을 해주고 있다.
안쪽 노을의
목젖이 부었다
안개 풀린 三冬에도
타박없이 흐르는 강물
울음이 아픈 세월만
감청색으로 변한다.
-김종「영산강」전문 (시조세계 2001 여름호)
목숨의 밑바닥까지 육신을 헐어 태우시다
숯덩이 흰 뼈로
저 광대한 우주를 향해
조금씩
서서히 조금씩
침몰하는
조선의 달.
-조주환「어머니」전문 (시조세계 2001 여름호)
김종 시인과 조주환 시인의 작품 2편은 단시조로서의 특성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영산
강과 어머니를 통한 서민의 생활상을 단명하게 드러내 준다. 어쩌면 시적인 대상만 틀릴 뿐
작품이 보여주고자 하는 의미는 거의 같게 보인다.
영산강은 호남인들의 삶의 애환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강물을 중심으로 취락이 형성되면
서부터 그 곳에는 도도하게 흐르는 인간사가 말없이 흐른다. 그것은 우리 부모형제, 그리고
선조들이다. 조주환의 작품「어머니」처럼 목숨의 밑바닥까지 육신을 헐어 태우시다 말없이
가신 어머니의 인생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라도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 그것은 역사에서 서서히 그리고 조금씩 침몰하는 어머니의 사랑과도 같은
것이다.
두 작품에서는 어머니와 서민적인 이미지들이 어쩌면 우리들에게 교훈적 상상력을 가져다
준다.
귓전을 맴돌며 흐느끼는 몸부림
여며놓은 옷깃너머 마른 가슴 적시련가
건네는 부드런 체취 물오른 촉수잎.
가녀린 그대음성 허공을 가로질러
영혼의 체온으로 다가서는 숨찬 입김
그 오랜 해후의 갈증 풀어보는 오르가즘.
자욱한 안개무리 육중한 무게로 다가서
온몸을 저며대는 나긋한 몸짓으로
저 깊은 대지의 자궁 신음하며 파고든다.
-김순금「단비」전문,
김순금 시인의 작품「단비」는 읽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상상력을 제공해 준다. 대지를
통한 단비의 모습은 말 그대로 여성의 성적 쾌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예전에 몇몇 시인들
이 이와 비슷한 묘사를 한 적은 있지만 김시인의 작품은 대지가 단비를 껴안는 그 과정을
여성의 오르가즘으로 묘사한 것이 흥미롭다.
*이재창 시인은 /
1959년 광주광역시 학동에서 태어나
1978년 《시조문학》에 「옛 동산에 올라」로 1회 추천과
1979년 《시조문학》에 「墨畵를 옆에 두고」로 2회 천료,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거울論」 당선,
1991년 《심상》 신인상 시 「年代記的 몽타주 · 2」 외 4편이 당선돼 문단 활동.
시조집 『거울論』, 시집 『달빛 누드』,
창작과비평 6인 시조집 『갈잎 흔드는 여섯 악장 칸타타』,
문학평론집 『아름다운 고뇌』 등이 있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10여년간 〈시조창작〉을 강의함.
현재, 濟州와 光州에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