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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念現於一切處(일념현어일체처) 그렇죠. 한 순간에 一切處에 다 나타난다. 이건 뭐 당장에 우리가 알 수 있어요. 우리가 지금 아침에 일어나가지고‘오늘 공부한 날이다’하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을 것이고 그게 신통변화죠 또. 그래가지고 오늘 무슨 일이 있다 하더라도 전부 이제 시간을 오후로 미룬다든지 내일로 미룬다든지 그렇게 계산할 줄 알아. 그렇게 마음쓰고 모든 일을 그렇게 처리를 해. 이게 如來神變無量門(여래신변무량문)이야. 누가 가르켜줘서 그렇게 할 줄 알아? 타고난 신통변화입니다.
부처님이 어떤 특정인으로 이렇게 내세워놓고 그 사람이 하~ 대단한 초능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이야기는 늘 그렇게 되고 있어요. 그 쉬우니까. 우리가 이해하기는 그게 일단 쉬우니까. 뭐 그런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는 몰라. 그런 부처님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그게 쉬우니까 그게 눈에 잘 들어오는거야. 어느 종교처럼“하나님”하고 딱 이렇게 내세우면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그게 머리에 상상하기에 쉬워. 아주 쉬운거여. 근데 그거는 허상이야 전부. 부처님도 그런 식으로 계신다하면 그건 허상입니다. 너무나도 구체적인 부처님이 우리에겐 있어.
내가 늘 말하는 것. 금방도 말씀드렸지마는 아침에 일어나서‘오늘『화엄경』법회가 있는 날이다’아 이거 탁 떠올려가지고 거기에 맞게 일상생활을 척척척척 처리해 나가는거죠. 이보다 더 훌륭한 신통변화 어디 있겠어요? 그것만 처리해? 온갖 일 처리 다 해. 無量門이야. 한량없는 문 이것이야말로 직접적인 如來고 여래신통입니다. 달리 딴 데서 언제 찾아요. 언제 여래신통을 어디 가서 본단 말이요. 아무도 본 사람 없어. 왜 본 사람이 없느냐? 자신이 그 사람이니까. 자신이, 자신이 그 사람이니까. 그래 자기를 봐버리면 끝나는건데 자기가 자기 보기가 쉽지가 않죠. 그래서 여래라고 부처님이라고 밖에다 제3자로 객관시해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에요.
이『화엄경』에선 이렇게 바르게 이야기해야지 둘러가지고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양심에 어긋나는거여. 신도님들 뭐 기존의 어떤 그 불교상식에 맞춘다고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이렇게 해가지고 그래 언제까지 그렇게 답도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거요? 답이 너무 분명한데, 이 불교는요 정말 아주 뭐라고 할까 정신과학적으로 너무나도 합리적입니다. 너무나도 합리적이여. 알고보면은
如來神變無量門이여 一念에 現於一切處라 한 순간에 한 순간에 一切處에 다 나타나. 一切處에서 降神成道大方便(강신성도대방편)을 나타낸다 그랬어요. 降神 정신을 여기에 데려오고 또 道를 이루는 道를 이루는 큰 方便을 나타낸다. 이 가운데서 우리가 할 것 다하는거죠. 이 순간에 여기 앉아서 한 순간에, 나중에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처님이 그렇게 했든 아니면 부처님이 3000년전에 아니 2700년전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그래 한거하고 나하고 아무 상관없어요. 사실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게 중요한거요. 내 정신을 여기 가져왔잖아요. 그게 降神이야. 하나하나 우리가 뭔가 이치를 깨우치는게 아뇨? 그게 成道라. 그런 모든 方便을 다 나타내.
우리 한 생각, 한 마음의 작용이 없다면은 다시 말해서 如來神變無量門이 없다면은 어찌 그렇게 따라올 수 있겠습니까? 안되는거요. 이것은 莊嚴音天王(장엄음천왕)의 解脫(해탈)이니라 참 의미심장합니다. 이건 뭐 게송 하나만 가지고도 하루종일 설명해도 다 못할 내용들이죠. 사실은
여덟 번째 ⑧ 威力所持能演說(위력소지능연설)하며 위신력으로써 가진 바 능히 연설하며 及現諸佛神通事(급현제불신통사)하사 또 諸佛의 神通事를 다 나타내사. 이런 것들도 애매모호하게 뭐 멀리 있는 것처럼 또 딴 세계 어떤 일로 그렇게 생각할게 결코 아닙니다. 이거 다 내 일이에요. 우리가 지금 하루중에 행동하고 생각하고 말하고 추우면 추운데로 대처하고 더우면 더운데 대처하고 배고프면 배고픈데 대처하고 피곤하면 피곤한데 대처하고 참~ 척척척 누가 가르쳐줬는지 참 대처 잘하잖아요. 배고프면 배고픈 줄 알고 밥 찾아먹고 얼마나 대처 잘합니까! 이게 威力所持야. 위력이 가진 바다. 위신력의 가진 바다. 그걸로써 능히 표현하는 能演說하며 及現諸佛神通事 諸佛의 神通事를 다 나타내사.
隨其根欲悉令淨(수기근욕실영정)케하시니 그 근기와 하고자 하는 것을 따라가지고 다 능히 다 청정하게 하니. 다 청정하게 하니. 우리 불교도, 불교궁극도 말하자면은 뭐 저 하나님처럼 부처님을 그렇게 해놓고서 허상을 내세워놓고서 그렇게 설명하면 뭐 전부 글로 밀어부쳐버리면은 쉬워요. 차라리 아주 쉽습니다. 책임없어요. 그런데 그러고 말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도저히 그거는 양심상 용납을 못하는거죠. 이거 잘 알아들어야 되요. 정~말 위대한 것은 우리들 자신이라는 사실, 우리들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불교를 통해서 부처님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가 인식하고 깨닫고 그것을 마음껏 수용하고 즐기고 누리고 만끽하고 이겁니다.
앞서 축제에 대한 말씀을 드렸는데 우리 인생을 만끽하면서 살아라. 만끽하면서 살자. 여기에 뭐 한량없는 신통이야기, 부처님 신통이야기 이게 바로 우리들 자신의 진정한 능력이기 때문에 이것을 우리는 한껏 누리고 만끽하면서 살아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게 이제 隨其根欲하야 근기와 하고자 하는 욕망을 따라서, 다~ 다르죠. 각자 하고자 하는게 다 다릅니다. 취미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참~ 어쩌면 그렇게도 다른지 그런데 그 모든 다른 것을 그 나름대로 다 채워줘. 그 사람은 자기 생각만치 사는거여. 생각만치 살아. 悉令淨이라 다 하여금 청정하게 한다. 이루게 한다 이루게 한다. 여기서는
자기 생각하는만치 삽니다. 나는 왜 이렇게 사는가! 네 생각이 거기까지니까 그렇게 사는거여. (하하하) 다 그거 틀림없습니다. 그거는, 전부 각자 생각만치 사는거요. 그러니까 사실은 크게 불만없어요. 자기 생각만치 사니깐 크게 불만없어. 此光音天解脫(차광음천해탈)이로다 이것은 光音天의 解脫이더라.
아홉 번째 ⑨ 如來智慧無邊際(여래지혜무변제)하사 여러분들의 智慧는 邊際가 없다. 끝이 없다 말이여. 온갖 것 분별 다하죠. 하루동안만 우리가 이해하고 분별하고 판단하고 계산하고 하는 것 참 어마어마합니다. 금정산만해요. 하루동안 우리가 분별하고 판단하고 계산하고 옳다 그르다하고 네다 나다 분별해쌌고 그 모든 계산이 금정산 덩어리보다 더 컸으면 컸지 적지 않아. 無邊際 如來智慧無邊際라 우리 지혜가 그런거요. 아침부터 지혜를 써서 지금까지 온거 아닙니까?‘아이 저 스님 오늘 더운데 빨리 안끝내고...’속엔 그런 계산하는거 이것도 如來智慧無邊際에 해당되는거라. 無邊際 끝없는 지혜가 그 속에 들어앉아있으니까 나는 열심히『화엄경』이야기하는데 또 딴 생각하고 있는거야. (하하) 그것도 신통력이야. (하하하) 그게 뭐 잘잘못을 따지는거 아니에요. 그런 능력이 우리에게 있는 것 제발 이걸 인식하자는거에요. 그걸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가치를 우리가 한껏 누리고 그겁니다.
如來智慧無邊際하사 世中無等無所着(세중무등무소착)하사대 세상 가운데서 같은 이도 없고, 내 인생은 다른 사람하고 같은 이가 아무도 없어. 無等無所着이라 집착하는 바도 없어. 慈心應物普現前(자심응물보현전)하시니 자비의 마음으로 應物 중생에게 응해서 應物 物은 이제 중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다른 사람에게 응해서 널리 앞에 나타나게 하시니 廣大名天悟斯道(광대명천오사도)로다 廣大名天王이 이 道를 깨달았더라.
그 다음에 열 번째 ⑩ 佛昔修習菩提行(불석수습보리행)하야 부처님이 옛날에 菩提行을 修習해서 닦아서. 菩提行 자비와 지혜를 닦아서 供養十方一切佛(공양시방일체불)하고 十方一切佛에게 供養하고, 十方一切佛에게 뭐 석가모니 부처님이라고 이럴 때는 생각하면은 제일 이해하기가 쉽죠. 十方一切佛 결국은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을 부처님으로 보고 부처님으로 알고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고 공양했다 이 말이죠.
一一佛所發誓心(일일불소발서심)하사대 낱낱 부처님 처소에서 맹세의 마음을 세우대 맹세의 마음을 세우대. 그러니까 중생제도를 하겠다. 중생들에게 진리의 가르침을 전해서 제도를 하겠다 하는 그런 맹세의 마음을 세워라. 그래서 最勝光聞大歡喜(최승광문대환희)로다 最勝光天王이 듣고는 크게 歡喜했더라. 最勝光天王이 듣고는 크게 歡喜했더라. 열 번째는 그 뭐지요? 最勝淨光天王(최승정광천왕)이죠. 전부 고 이제 게송으로 하다보니까 글자가 생략이 돼서 그렇지 이름이 다 해당됩니다.
(5) 第六地의 尸棄大梵天王
가, 天王衆의 得法
復次尸棄梵王은 得普住十方道場中說法호대
而所行淸淨無染着解脫門하고 慧光梵王은 得使一切衆生으로
入禪三昧住解脫門하고 善思慧光明梵王은
得普入一切不思議法解脫門하고
普雲音梵王은 得入諸佛一切音聲海解脫門하고
觀世言音自在梵王은 得能憶念菩薩의
敎化一切衆生方便解脫門하고
寂靜光明眼梵王은 得現一切世間業報相各差別解脫門하고
普光明梵王은 得隨一切衆生의 品類差別하야
皆現前調伏解脫門하고
變化音梵王은 得住一切法淸淨相寂滅行境界解脫門하고
光耀眼梵王은 得於一切有에 無所着하며
無邊際하며 無依止하야 常勤出現解脫門하고
悅意海音梵王은 得常思惟觀察無盡法解脫門하시니라
그 다음에 여섯 번째 第六地(제육지)의 尸棄大梵天王(시기대범천왕) 天王衆(천왕중)의 得法(득법)이라
① 復次尸棄梵王(부차시기범왕)은 尸棄梵王은 범천왕은 得普住十方道場中說法(득보주시방도량중설법)호대 十方道場 가운데 널리 머물면서 說法하대 而所行淸淨無染着解脫門(이소행청정무염착해탈문)하고 所行이 淸淨해서, 행하는 바가 淸淨해서 染着이 없어. 물들고 집착하는 바가 없는 解脫門을 얻었다. 좋네요. 十方道場中에서 說法하는데 어떤 다른 생각도 없고
그 다음에 두 번째 ② 慧光梵王(혜광범왕)은 慧光梵王은 得使一切衆生(득사일체중생)으로 一切衆生으로 하여금 入禪三昧住解脫門(입선삼매주해탈문)하고 禪三昧에 들어가서 머무는, 모든 중생이 禪三昧 명상, 삼매, 참선 뭐 기도면 기도삼매, 삼매에 들어가서 머무는 그런 解脫門을 얻었고
그 다음에 ③ 善思慧光明梵王(선사혜광명범왕)은 善思慧光明梵王은 得普入一切不思議法解脫門(득보입일체불사의법해탈문)이라 일체 불가사의한 법에 들어가는 解脫門을 얻고
그 다음에 ④ 普雲音梵王(보운음범왕) 普雲音梵王은 得入諸佛一切音聲海解脫門(득입제불일체음성해해탈문)하고 諸佛 모든 부처님의 모든 音聲의 바다에 들어가는 解脫門을 얻고
⑤ 觀世言音自在梵王(관세언음자재범왕)은 또 이제 관세음보살하고 이름이 같네요. 觀世言音自在梵王은 관자재(觀自在) 또는 관세음(觀世音) 우리가 그러잖아요. 세상의 言音을, 세상의 말소리를 관찰하는데 自在한 범천왕 이 말이죠. 得能憶念菩薩(득능억념보살)의 敎化一切衆生方便(교화일체중생방편)이라 菩薩이 一切衆生을 敎化하는 方便을 憶念해. 다 기억해. 그런 解脫門(해탈문)을 얻었고
여섯 번째는 ⑥ 寂靜光明眼梵王(적정광명안범왕)은 寂靜光明眼梵王은 得現一切世間業報相(득현일체세간업보상)이 一切世間의 業報의 모습. 우리 각자 다 業報가 있어요. 부처님은 부처님 업보가 있고 관세음보살은 관세음보살의 업보가 있는거에요. 불업(佛業) 보살업(菩薩業) 그래요. 業이 우리 중생에게만 해당되는게 아닙니다. 모든 존재는 전부 그들의 삶이 있고 그들의 삶의 표현을 業報라 그래. 그래 佛業, 菩薩業 그 業에 대해서 알레르기 일으킬 필요가 없어요. 업이란 말 절대 나쁜 말 아닙니다.
一切世間業報相이 各差別(각차별)이라 그렇죠. 각각 차별함을 나타내는 解脫門(해탈문)을 얻었다. 참 이치에 딱 맞습니다. 一切世間의 業報의 모습이 각각 差別해. 어쩌면 그렇게도 差別한지 쌍둥이도 차별하고 뭐 형제차별한건 말할 것도 없고 각각 다 달라요. 같은 피를 타고 났어도 다 차별하고 다 다릅니다. 그것을 나타내는 解脫門을 얻고
그 다음에 ⑦ 普光明梵王(보광명범왕)은 普光明梵王은 得隨一切衆生(득수일체중생)의 品類差別(품류차별)하야 一切衆生의 品類가 差別함을 따라서, 이런 말이여. 品類하면 사람 그 다음에 말, 소, 개 이게 品입니다. 중생들의 品類가 다 다르잖아요. 사람은 사람의 한 品類고 개는 개대로 한 品類고 말은 말대로 한 品類고 소는 소대로 한 品類고, 그런 差別을 따라서 皆現前調伏解脫門(개현전조복해탈문)하고 現前해서 앞에 나타나서 調伏하는 解脫門을 얻고
여기서 一切衆生의 品類差別해서 내가 이제 무슨 사람, 소, 개 이렇게 표현을 했지마는 뭐 멀리 볼게 없습니다. 사람 안에서의 品類, 사람 안에서의 각각 差別된 모습들 각각 다 다르잖아요. 그것을 다 調伏하는 解脫門을 얻고
그 다음에 ⑧ 變化音梵王(변화음범왕)은 得住一切法淸淨相寂滅行境界(득주일체법청정상적멸행경계) 一切法이 淸淨해서 寂滅하게 行하는 그런 그 境界의 境界에 머무는 解脫門(해탈문)을 얻었고
그 다음에 ⑨ 光耀眼梵王(광요안범왕)은 一切有(일체유)에 無所着(무소착)하며 一切有 모든 있음, 모든 존재에 대해서 집착하는 바가 없어. 집착하는 바가 없고 또 邊際(변제)가 없어. 끝이 없으며 無依止(무의지) 依止가 없어. 의지할 데가 없어. 그래서 常勤出現(상근출현) 항상 그래서 부지런히 출현하는 解脫門(해탈문)을 얻고
그 다음에 ⑩ 悅意海音梵王(열의해음범왕)은 悅意海音梵王은 得常思惟觀察無盡法(득상사유관찰무진법) 無盡한 法을 항상 思惟하고 觀察하는 解脫門(해탈문)을 얻었다.
그렇죠. 법이라고 하는 것 아니면 이치라고 하는 것, 존재의 원리라고 하는 것은 끝이 없어요. 정말 無盡이야. 그렇지마는 항상 사유하고 관찰해야 돼. 사유하고 관찰해서 거기에 맞게 이치대로 사는 것 이겁니다.
그 다음 偈頌(게송)으로 讚歎(찬탄)하다.
나, 偈頌讚歎
爾時에 尸棄大梵王이 承佛威力하사
普觀一切梵身天梵輔天梵衆天大梵天衆하고 而說頌言하사대
佛身淸淨常寂滅하사 光明照耀遍世間하사대
無相無行無影像이여 譬如空雲如是見이로다
佛身如是定境界여 一切衆生莫能測이어늘
示彼難思方便門하시니 此慧光王之所悟로다
佛刹微塵法門海를 一言演說盡無餘호대
如是劫海演不窮이여 善思慧光之解脫이로다
諸佛圓音等世間이여 衆生隨類各得解호대
而於音聲不分別하시니 普音梵天如是悟로다
三世所有諸如來의 趣入菩提方便行이여
一切皆於佛身現하시니 自在音天之解脫이로다
一切衆生業差別이라 隨其因感種種殊어든
世間如是佛皆現하시니 寂靜光天能悟入이로다
無量法門皆自在하야 調伏衆生遍十方)호대
亦不於中起分別하시니 此是普光之境界로다
佛身如空不可盡이라 無相無碍遍十方하사대
所有應現皆如化하시니 變化音王悟斯道로다
如來身相無有邊하며 智慧音聲亦如是하사
處世現形無所着하시니 光耀天王入此門이로다
法王安處妙法宮하사 法身光明無不照하사대
法性無比無諸相하시니 此海音王之解脫이로다
爾時(이시)에 尸棄大梵王(시기대범왕)이 承佛威力(승불위력)하사 普觀一切梵身天(보관일체범신천)과 그 다음에 梵輔天(범보천)과 천상이름입니다. 그 다음에 梵衆天(범중천)과 大梵天(대범천)의 대중들을 두루 관찰하고 普觀 두루 관찰하고 而說頌言(이설송언)하사대 게송을 설해 말하대
① 佛身淸淨常寂滅(불신청정상적멸)하사 光明照耀遍世間(광명조요변세간)하사대 참~ 좋은 뜻입니다. 佛身은 淸淨해. 텅 비었어. 우리 마음 하~ 근데 이 마음이 얼마나 많은 작용을 합니까? 그렇지만 우리가 마음을 찾아보기로 하면은 먼지만한 것도 찾을 수가 없어. 寂滅이야. 常寂滅이야. 항상 寂滅하는 가운데 어떻게? 光明照耀遍世間이라 온 세상 다 비춰. 환~하게 비치고 있어. 그래서 뭐 온갖 시시비비 다 하는거야. 신문보고 화도 내고 텔레비보고 웃고 울고 그냥 세상 돌아가는거 시비 다 하고 光明照耀遍世間이야
참~ 어찌 이렇게 그렇게 온갖 것을 다 분별하고 간섭하고 시시비비하고 하다가 괜히 지나가다가 젊은 사람 잘 못하는 것 보고 막 그냥 꾸중하다가 된통 혼이 나기도 하고 (하하) 요즘은 세상이 그래 돼가지고 그러면서도 나중에‘내가 왜 이랬는고?’하고 돌이켜서 그 주인공을 찾아 볼라치면 어떻다? 없어. 常寂滅이야. 뭐라고? 佛身은 淸淨해서 常寂滅 항상 寂滅해. 텅 빈 자리야. 그 텅 빈 것이 또 그걸 무아(無我)라고 해. 無我 我가 없다. 我가 없으면서 없는 것이 그냥 없다는 뜻이 아니에요. 없으니까 자유자재로 여기도 간섭하고 저기도 간섭하고 이 사람하고 싸우고 저 사람하고도 친하고 이 사람하고 삐끼고 별 짓 다 하는거지 하루종일 (하하하)
그게 뭐라고? 光明照耀遍世間이여 光明照耀遍世間이라 내 마음의 光明이 여기저기를 막 비춰. 비치면서 世間에 두루두루해. 야~ 신기하잖아요. 우리 마음자리가, 이게 마음자리가지고 설명을 안하면은 설명이 안됩니다. 부처님 몸이 뭐란 말이요? 도대체가, 우리 마음자리말고 부처님 몸 따로 없습니다. 제일 가까운 설명이에요. 정곡을 찌르는 설명입니다. 佛身淸淨常寂滅 하지마는 光明照耀遍世間이여 그 이 온갖 하루종일 우리가 일어나서 지금까지 뭐 수만가지를 분별했잖아요. 수만가지 분별하고 여기까지 온거여. 또 내가 여기에 글자가 얼마나 숫자가 많습니까? 또 그 속에 담겨있는 이치가 무궁무진한 것 까지도 다 낱낱이 분별하고 이해하고 하면서 이렇게 공부해나가죠.
근데 無相無行無影像(무상무행무영상) 하 여기 다 설명해놨네. 이제 보니까 (하하하) 형상도 없고 어딜 가고 시비를 하고 좋다 나쁘다 뭐 해도 행동하는 바가 없어. 심지어 그림자조차도 없어. 無影像 그러면서 온갖 일을 다하는게 또 그 물건이라. 또 옛날 선사들은‘물건’그랬어.‘한 물건’有一物於此(유일물어차)하니 한 물건이 여기에 있다. 上柱天(상주천) 下柱地(하주지)라 위로는 하늘까지 버티고 아래론 땅을 버틴다. 하늘과 땅 사이에 꽉 차있는게 그 물건이다. 선문(禪門)이 참 명쾌하죠? 선사들의 그 글이 참 명쾌합니다. 上柱天 下柱地라 위로는 하늘까지 버티고 있고 밑으론 땅을 꽉 온 우주에 꽉 차 있는 것이 그 물건이다. 내 물건도 꽉 차 있고 여러분들 각자의 물건도 그 한 물건이 꽉 차 있어.
여러분들이 뭐 다~ 온갖 것 이 방안에 다 분별하고 세상시비 다 하고 세상 사람들이 다 똑같이 그렇게 해도 서로 상충이 없어. 여기 마치 등을 몇백 개를 켜놓으면은 다 아무 상관없이 그 불빛이 한 개를 켜도 이 법당 안에 꽉 차고 두 개를 켜도 이 방 안에 꽉 차고 열 개를 켜나 백 개를 켜나 천 개를 켜나 이 방 안에 각자 자기 불빛이 다 꽉 차. 그러면서 싸우지 아니해. 다~ 융화돼. 그야말로 빗방울이, 무수한 빗방울이 바다에 떨어지면은 하나의 바닷물로 이렇게 융화하듯이 동화가 되듯이
형상도 없고 가는 바도 없고 그림자마저 없음이여. 야~ 좋습니다. 그래서 이제 못알아들으니까 비유를 하나 들었네요. 譬如空雲如是見(비여공운여시견)이로다 비유자면은 허공에 하늘의 구름과 같이 이와 같이 보는 도다. 그랬어요. 구름은 허공을 떠나지 아니해. 구름이 허공에 있죠. 근데 허공은 구름이 아무 장애가 없어. 허공이“구름 네 왜 왔느냐? 남의 집에 왜 왔나?”이렇게 안 해. 허공하고 구름하고 관계처럼, 허공하고 구름하고 관계처럼 우리가 그렇게 마음을 쓰고 살아가는거다. 그렇게 쓰고 살아가는거다.
아무리 뭐 사람을 가둬가지고 수갑을 채우고 올가미를 묶고 무슨 뭐 첩첩이 경계를 세워가지고 저~ 깊은 감옥 속에 가둬놨다 하더라도 몸만 가뒀지 몸만 가뒀지 그 사람 마음은 천 리, 만 리로 마음대로 날아다니면서 마음대로 할 생각 다 해. 저~ 미국으로 아프리카로 마음대로 돌아다녀. 그건 어떻게 가두지를 못해. 도저히 그건 가둘 길이 없어. 뭐 죄지어 가지고 뭐 형무소에 갇힌게 어디 꼭 이야기입니까? 우리 모두가 다 형무소에 갇혀 있지. 사실은, 갇혀 있으면서도 마음대로 돌아다니잖아 또.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어. 갇혀 있을 때는 또 갇혀 있어야 되는거고
그런 면이, 마음대로 無相無行無影像해가지고 譬如空雲 하늘이, 하늘 공(空)자입니다. 하늘의 구름관계와 같이 이와 같이 보는도다. 하늘의 그름처럼, 구름과 하늘의 관계처럼 구름은 하늘을 떠나지 않고 하늘은 또한 구름을 장애하지 안해. 방해하지 안해. 구름이 마음대로 생기든 뭐 말았든 어디에서 오든 말든간에 아무 방해 아니해. 이게 이제 참 적정(寂靜)한 가운데서 佛身은 淸淨해서 적정한데 그 적정한 가운데서 우리가 이렇게 모든 것이 또 일체행과 활동을 다 펼치는 그런 내용들입니다.
그 다음에 또 佛身입니다. 앞에 첫째 게송도 佛身淸淨常寂滅이라 여기는 ② 佛身如是定境界(불신여시정경계)여 그랬어요. 佛身은 이와 같이 定의 境界 선정의 경계, 입선경계라 그래. 입선경계(入禪境界) 선에 들어간 선정에 들어간 그런 그 경계여. 우리 마음자리 또 한 마음 거둬들이면은 뭐 꼼짝안하잖아요. 하~ 그토록 뭐 온통 세상을 삼킬듯이 그렇게 밖으로 향하다가 내 마음, 한 마음 싹 거둬들이면은 냉랭~하게 내가 언제 뭐 마음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냉랭하게 제자리에 있는거여. 하~ 열렬하게 그냥 사람을 불로 태울듯이 사랑하다가도 어떻게 한 순간 오해가 생겨가지고 그 사랑이 딱 식으면 마음 싹 거둬들이면은 아무것도 없어. 그게 定境界여. 입선경계. 우리 마음도 또한 그런 면이 있다.
佛身如是定境界 一切衆生莫能測(일체중생막능측)이라 一切衆生이 능히 측량하지를 못해. 남이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어. 저 사람 왜 저런가? 왜 저런가? 아무리 헤아릴려고 하고 아무리 알려고 하지마는 본인도 모르는데 남이 어떻게 알거여. (하하) 본인도 몰라. 왜 그런지 본인도 모른다고, 그게 따로 없어. 본인하고 본인 마음하고 따로가 아녀. 본인 마음이 그게 본인이야. 본인 마음이 본인이기 때문에, 내 마음 내가 알려고 내 마음 나도 몰라. (하하하) 그게 맞는 말이여. 왜냐? 왜 모르느냐? 그게 본인이니까. 그 자체가 본인이야. 따로 알려고 할 수가 없어. 주객(主客)을 나누는거요. 우리는 주객을 자꾸 나눠서 알려고 하는데 어디 주객이 나눠집니까? 그 나눠지는게 아니야. 안 나눠져있다고 본래. 그런데 거기는 나눠놓고 자꾸 생각하는거야.
그래 이제 경전이나 어록같은데도 주객을 나눠가지고 설명을 합니다. 근데 그게 나누는게 헛일이다. 결국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내 하나의 나에서 거기서 주와 객을 나눠놨다가 다시 주와 객을 거둬들여가지고 하나인 나로 돌아가는 것 이게 깨달음이다. 이렇게 이제 설명을 하고 있어요. 본래 한 덩어리이거든요.
一切衆生莫能測이어늘 示彼難思方便門(시피난사방편문)하시니 저 불가사의한 難思 생각하기 어려운, 이걸 이제 쉽게 표현하면 불가사의한 方便門을 보이시니. 참 불가사의합니다. 어찌 그리 불가사의합니까? 저 앞에서 그랬잖아요. 光明이 照耀해서 빛나서 온 세간을 다 비춘다. 그러면서도 無相하고 형상도 없고 가는 바도 없고 그림자마저 없다. 하늘과 구름과의 관계처럼, 그리고 또 佛身은 마치 선정에 들어가는 경계와 같다. 그렇게 싹 숨어버리니까. 한 마음이 싹 숨어버리니까. 一切衆生莫能測이라 一切衆生이 측량할 길이 없더라. 참 불가사의한 존재다. 저~ 難思 불가사의한 그런 方便門을 보이시니 이것은 慧光王 慧光梵王(혜광범왕)이 깨달은 바더라. 慧光梵王이 깨달은 바더라.
자 오늘 게송 두 개 여기까지 하고 다음 시간에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이 언제라고? 9월 둘째주 14일입니다. 둘째주, 셋째줄이 다음 시간입니다. 그때 하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화풍정님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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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有一物於此. 上柱天, 下柱地. 고맙습니다. 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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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來智慧無邊際하사 世中無等無所着하사대 慈心應物普現前하시니...여래의 지혜는 끝이 없으사 세상 가운데서 같은 이도 없고 집착하는 바도 없어 자비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응해서 널리 앞에 나타나게 하시니..] [佛身淸淨常寂滅하사 光明照耀遍世間하사대...佛身은 淸淨해서 우리 마음은 항상 寂滅하는 가운데 온 세상 다 환하게 비치고 있다.]
화풍정 님! 수고 하셨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上柱天 下柱地...고맙습니다. ()()()
佛身淸淨常寂滅하사 光明照耀遍世間하사대...고맙습니다. _()()()_
上柱天 下柱地라/ 위로는 하늘까지 버티고 있고 밑으론 땅을 꽉 온 우주에 꽉 차 있는 것.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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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부처님 가르침을 통해서 인식하고 깨닫고 수용하고 즐기고 누리고 만끽하는 것이 불교 공부의 보람
佛昔修習菩薩行 供養十方一切佛
常思惟觀察無盡法
佛身淸淨常寂滅 光明照耀遍世間
고맙습니다._()()()_
有一物於此. 上柱天, 下柱地......._()()()_
감사합니다_()_
고맙습니다
무상무행무영상 나무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_()()()_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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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화풍정님! 고맙습니다 _()()()_
머물다가 공부하고 갑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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