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옆에 뜨는 달”
추석과 추분, 자연의 질서 앞에서 사랑과 겸손 배워
추석이 며칠 전에 지나갔다. 한국의 달력을 보면 지난 한 주의 가운데가 빨갛다. 21일 화요일부터 시작한 추석연휴가 23일 목요일까지다. 이러면 한주가 통 째로 연휴가 된다. 한국에서는 주중에 추석이 오는게 좋다고 한다. 1주일을 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는 어떤가. 주말에나 잠깐 기분 내는 정도다. 그저 마트에서 송편 한 팩 사다가 하나씩 맛보고 한국의 친지에게 전화나 하는 걸로 끝이다.
추석 연휴기간에 한국 곳곳에 집중 폭우가 쏟아졌다. 그 빨간 시간을 식히려고 그랬나 보다 억측을 해 보지만 아직 거두지 못한 농작물에 마음이 더 가는 건 내가 시골 출신이어서 인가 보다. 명절은 늘 그렇듯이 외로운 사람들을 만들어 낸다. 가족이 없는 사람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 갈 수 있는데 안 가는 것과 못 가는 것은 마음의 차이가 크다.
여기 시카고에서 나는 이번 추석을 그냥 보냈다. 아니, 잊고 지냈다. 아이들이 크면서 한국의 추석이 미국의 추수감사절과 같은 명절이라고 주절주절 대기도 멋적다. 추석을 일깨워 주는 사방 팔방의 미디어 덕분에 가끔 밤하늘을 올려다 보고 보름인가 보네 한 것이 전부인 것 같다. 이렇게 시들해 지고 이렇게 심드렁해 지는 건가. 마음 한구석이 휑하다.
추석 다음날인 23일은 추분이었다. 추석 보다는 이 날이 시선을 잡는다. 영어로는 어텀널 에퀴녹스. 우주과학 속으로 들어가면 복잡하다. 간단히 이해하기로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이날 이후 밤의 길이가 길어지는 분수령이다. 한 관련 기사를 보니까 에퀴녹스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콜 나이트란 뜻이란다. 그런데 해가 완전히 지평선 아래로 떨어져도 인간의 착시현상 때문에 낮이 수분간 지속된다고 한다. 그래서 사흘 뒤인 오는 26일이 낮과 밤이 12시간씩을 정확히 나누어 가지는 날이라는 것이다. 북반구에서는 이날을 기점으로 가을이 시작되고 남반구는 봄이 시작된다.
추분이 갑자기 내게 의미있는 날이 된 건 아니다. 월초에 선배가 여러 지인들이 공유하는 이메일을 띄웠는데 ‘우주의 신비로 나를 깨우치는 고귀한 사진’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첨부 파일은 당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했다. 사물을 넓게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작은 우주가 여기에 있다는 안내문 뒤로 허블 천체망원경이 등장하고 은하계 성운들, 지구 옆으로(위가 아니다) 초승달, 보름달이 뜨는 사진들이 이어졌다.
이어서 지구와 태양계의 행성들 크기가 비교되고 지구에서 1천광년 떨어져 있고 밤하늘에서 15번째로 밝게 빛나는 별 안타레스와 태양 크기를 비교한 그림들이 펼쳐진다. 여기서 태양은 한개의 점에 불과하다. 대강 짐작이 될 것이다. 이 파일 사진을 여는 순간 티끌 만한 지구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미움, 슬픔, 사랑, 그리고 인간이 만든 민족과 종교, 국가 등이 갑자기 하찮은 문제가 된다.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좀 더 편하게 고민할 수 있게 할 것이라는 종결어를 붙였다.
자칫 허무주의에 빠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한반도 남쪽과 북쪽의 불빛이 확연히 차이를 보이는 지구의 밤 사진을 보고는 현실과는 너무 먼 우주를 생각에서 접기도 했다.
추석은 음력을 따져 맞고 추분은 양력이다. 우리에게 고향을 떠오르게 하는 추석의 상징은 보름달과 송편이다. 이날 설마 소나무에 걸린 달을 보면서, 또는 구름 사이로 빠르게 가는 달을 보면서 암스트롱이 밟은 달을 떠올리는 한인은 없을 것이다.
조금 이른 추석에 늘 정확히 찾아오는 추분은 태양계의 질서를 인간이 찾아내 붙인 이름이고 절기다. 가을이 오고 곧 겨울이 온다. 밤은 동지까지 길어졌다가 다시 낮의 공격을 받는다. 우리가 발견한 질서지만 우리가 어찌 해 볼 수 없는 자연의 흐름이다.
추석에서 그리움을 느낀다면 추분에서는 겸손을 찾고 싶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 태양계 저편의 우주를 영상으로 찍어내고 어찌 생각하면 무의미한 수억광년이라는 숫자를 나열하는 중에도 밤하늘의 점들을 이어 시를 짓고 낭만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한편으로 거대한 자연의 질서를 하나씩 깨우치는 인간의 지혜가 아직은 멀고 먼 길을 앞에 두고 있다.
그리움이나 겸손이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온다. 한국의 고향에는 우리가 추석에 더욱 그리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동시대에 미국에 와서 시카고에서 만나는 한인들의 인연을 생각한다면 알지 못하는 질서 앞에 겸손할 수 있겠다.
그 이메일이 전하는 메시지는 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깨닫고 그래서 겸손을 배우고 개개인이 안고 있는 크고 작은 고민들, 문제들을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도록 도와 줄 수도 있겠다.
그 넓은 우주를 보면서 우린 선택을 한다. 우주시대를 열 꿈을 꾸는 사람, 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키우는 사람, 지구 환경 보호 운동에 동참하는 사람, 착하고 겸허하게 살자고 결심하는 사람, 그리고 세상사가 크게 보면 별 것 아니라고 달관의 자세를 갖추는 사람 등. 이들 모두가 인연으로 맺어진 지구인이라고 한다면 서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2010.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