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 김류수
양평을 가기 위해 남한강 길을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먹장 구름이 몰려 온다. 소나기가 오려나 보다 생각하고 있는 동안 차량의 지붕에서는 벌써 후두둑 콩소리가 난다. 제법 굵은 빗줄기다. 주변의 숲과 흘러가는 강도 함께 소란스러움에 잠겨들고, 금새 젖은 바닥에서 물길이 만들어진다. 후덥던 날씨가 소나기로 인해 시원해졌다. 주변의 모든 초목이 환호성을 지르는듯하다.
빗속으로 달려나가 시원하게 마음까지 적시고픈 마음을 억누르며 운전을 한다. 길가의 잎새들은 비가 후려치는 채찍으로 인해 아플듯한데 세찬 빗줄기를 맞으며 오히려 웃고 있다. 더불어 나의 마음도 가볍다.
오늘의 날씨 예보를 듣지 못했다. 소나기를 기대 한 것이 아니어서인지 내리는 비로인해 운전하는데는 방해가 되었지만 길에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유별나게 비를 좋아하는 내게 오늘처럼 내리는 소나기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저 빗속에 서 있는 산과 들의 초록꾼들이 부럽다. 차 안에서 운전을 하면서도 눈과 귀는 연신 내리는 비가 만들어내는 향연을 향해 있다. 소나기로 인해 그윽한 향기의 찻잔을 대하는 것처럼 온몸이 반응을 하고 마음은 더불어 즐겁다.
나는 섬에서 태어났다. 돌담 밖으로 눈을 돌리면 땅의 경계는 바다와 잇대어 있는 곳이다. 섬의 6월은 한창 모내기를 할 시기였다. 모내기철이 되면 섬은 품앗이철이기도 했다. 농사일이나 바닷일은 서로 품앗이를 하는 경우가 가끔있기도 하지만 모내기는 온전히 품앗이를 통해 이루어졌다. 모내기가 시작되면 누구든지 이웃집의 일을 먼저 도왔다. 그리고나서 우리집 모를 낼 때 친척들과 이웃 품앗이를 한 만큼의 사람들이 와서 돕는 식이다. 섬의 모든 손길이 바빠지는 때여서 아이들이 학교를 결석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모내기를 하는 날은 학교를 가지 못하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조와 수수를 섞은 오곡밥과 함께 평소 구경하기 어려운 찬을 맘껏 먹을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기다려지는 날이기도 했다.
섬은 물을 저장하는 저수지가 없거나 있어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해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이 대부분이었다. 모내기철에 비가오지 않으면 발을 동동구르며 비가 내릴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섬에서 비는 뭍의 비와는 다른 의미를 지녔다. 그나마 졸졸거리는 냇물에서 물대기를 할 수 있는 논은 상답이었다. 모판의 모가 노랗게 타들어가 녹아버리는 것을 바라보는 심정은 발로 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모가 모자라면 들 이곳저곳을 다니며 모내기를 하고 남은 모를 주워다 심기도 했다.
빗줄기는 여전하다. 조금 열린 문틈으로 지나가는 차량에서 흥겨운 음악이 흘러 나온다. 강줄기를 흘러가듯 느려진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꼭 농부가 아니더라도 무더위에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는 반가운 법이다. 소나기가 금새 지나가지 않고 두어시간 만이라도 내려 주었으면 싶다.
몇시간 동안 소나기라도 시원스레 내리고 난 후에는 들에서 일제히 모내기가 시작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아낙들이 모판에서 모를 쪄내고 아버지는 미리 쟁기질이 되어 있는 논에서 써래질로 바닥 고르기를 했다. 남정네들과 아이들은 쪄낸 모를 바지게에 지고 날라다 듬성듬성 논에다 던져 넣었다. 논에는 개구리와 물방개, 소금쟁이가 어우러져 저들끼리 바쁜 날이기도 했다. 모 쪄내기를 마치면 모심기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논의 가장자리와 논둑 사이에서 못줄을 잡았다. 아낙들은 왁자한 농을 주고 받거나 솜씨좋은 노랫가락을 뽑으며 잰 손놀림으로 모를 심었다. 놀리는 아낙의 손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피아노 연주를 보는 듯 했다. 눈이 보는 곳과 손이 가는 곳이 달라도 못줄 표시된 곳에 정확히 갖다 꽂는 재주를 신기하게 바라 보았던 기억이 난다.
이런 날 시원한 소낙비라도 내리면 모내기를 하기엔 더없이 좋은 날이 되었다. 뙤약볕을 등에 지고 모를 심다가 시원한 비라도 내리면 노랫가락은 저절로 터쳐 나왔다. 바지게를 지고 미끄러운 논둑을 걷다가 미끄러져 논으로 굴러도 웃음꽃이 피었다. “모가 모자라네. 이쪽으로 던져주게” 이 외침과 함께 던져진 모에 촤악 논물이 온몸을 덮어도 “나한테 불만 있냐” 하며 또 웃음이 파도치곤 했다. 쉼없이 지게로 져나르고, 여기저기 모 심부름을 하며 몸은 피곤해도 내리는 소나기로 인해 피로는 말끔히 씻어졌다. 그런날의 소나기는 말랐던 목을 타고 넘는 냉수 한바가지 역할을 톡톡히 하곤 했다. 하여 모내기 하는 날 비가 오면 부모님의 얼굴에선 하늘이 내린 특별한 축복의 날의 의미를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유독 비를 좋아하는 것은 온통 비를 맞으며 흥에 겨워 일하는 풍경을 바라보며 자라서 인지도 모른다.
섬에서는 하늘을 보는 일이 잦았다. 보잘것 없는 전답일지라도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하늘의 도움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바다위로 먹장구름이 몰려 오는 것이 보이면 바쁘게 비 설겆이를 하시던 어머니. 연이어 소나기가 마을의 지붕위로 지나가며 한바탕 위세를 떨치는 난 후 맑아진 하늘을 사랑했다. 비는 때로 쉼을 주었다. 허리도 펴지 못하고 김매기를 하던 어머니가 모처럼 마루에 우두커니 앉아서 먼 바다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 비가 가져다주는 그 여유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모내기를 마치고 모가 자라는 모숲에 소나기라도 내리면 맑은 연주가 따로 없었다. 연초록 모숲과 개구리와 소나기는 내겐 치유 자체였다. 한껏 땀을 흘리며 들에서 일하다가 내리는 소나기를 맞으며 천천히 집으로 걸어 들어 올 때도 나는 한껏 여유로웠다.
섬의 천수답에 소농으로 삶을 일구던 부모님과 함께 기다리던 그 비가 지금 차창 밖에 내리고 있다. 살아가다 마음마져 더워질 때 내리는 소나기는 오늘처럼 반갑다. 소나기 내린 후 맑은 투명한 하늘을 기대하지만 그 옛날 섬에서 바라 보았던 그 하늘은 기대할 수가 없다.
유년시절 소나기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좋은 것들이다. 내겐 소나기가 오랜 친구와 같다. 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릴 때 소나기를 생각한다.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때가 되면 반드시 오는 것이 소나기이다. 소나기는 내게 희망 같은 것이다. 답답할 때 시원스레 내리는 소나기는 내일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삶이 팍팍 할수록 소나기가 한바탕 쏱아진 후처럼 맑고 훤한 내일은 반드시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필요한 것일 게다.
오늘처럼 내리는 소나기는 내 삶에서 꼭 있어야 할 여유와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어느날 다시 소나기가 내리면 지게를 지고 논두렁에 넘어졌던 그날처럼 웃음을 흘리며 흠뻑 소나기를 맞고 싶다.
2014. 6. 19
첫댓글 시원한 소나기가 내리려나 아침 하늘은 찌푸리고
설렁설렁 바람이 스친다.아버지의 억지투정? 옛날
부모들의 공통된 가부장적 표시일까...그리운 풍경이다 모밥 언제 먹어 볼수 있을까?
귀한 글 잘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bundun 행님! 모밥...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 삶을 반쯤 내어 놓고 싶은데...
강파랑님! 소낙비 온 뒤 파랑물 들었던 하늘... 나는 지금도 그 하늘을 보고파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