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달성공원에는(4)
활터(國弓場)가 있었다.위치는 토성 오른쪽 끝 지금 연못과 새장 이 있는곳,
재미있는 것은 원래 이 곳은 연못이 없었다. 그저 지대만 낮았을뿐,6.25이후언젠가
큰 비후 갑자기 물이 고여 연못을 이루고, 자연적으로 생기다 보니 배수가 않되고
흙탕물 범벅이었다. 겨울이면 얼어붙어 나무판자로 썰매를 만들어 타고,성이차지
않으면 지금 바다사자 사육장 뒤로 토성을 넘으면 지금 서부시장 전체가 "사리못"
이라는 저수지가 있었다.그때 어린시절에 보면 바다 만 했지.
마음껏 어름 지치기를 할수 있었고, 익사 사고도나고,옷도 젖어서 말리기도 하고
사리못은 달성공원 부설 수영장이고 스케이트장 이었다.
다시 공원으로 되돌아가서,연못이 생기기전 그곳에 국궁장이 있었다.
사대는 연못 동쪽끝이고 과녁은 서쪽 토성밑에 있었다.
5,6명씩 사대에서 활을 쏘면 과녁 멀직히 비켜서있든 15,6세된 소년이 깃발을 들고
한발,한발 과녁에 명중 여부를 표시 하는 것이다.그러다 한 사람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미확인 소문도 있는데 아직 확인이 않됐다.
그당시 다른곳에는 활쏠만한 자리가 없기에,아마도 국궁 동호회 정도 거나 대구시
대표 선수 인지도 모르겠다.
가끔 여성 회원도 더러 있었다.
오늘 이자리를 살펴보니, 참 원시적 시설이었고 ,바로 옆의 뚝위가 많은 사람이 오가는
산책로이고, 양궁은 거의 수평조준을 하는데 비해 ,국궁은 거의 하늘을 향하다 싶이
상향 조준을 하는데,좀 세게 힘을 가하면 토성 서쪽 부분 산책 객이 맞을수도 있겠구나
싶을 정도 인데도 안전시설도 하나도 없이 활을 쏘아 됐으니,~~끔찍하고,오싹하네요.
과녁에 있는 소년도 화살이 날아오는 것을 눈으로 보고 피해 다녔으니, 그때 혹시 해외
토픽에 다른나라 뉴스에 보도는 않됐는지? 모르겠다. 그뒤 자연적으로 연못이 조성 되니
활터는 폐쇄돼었고 그다음 부터는 흙탕물 천지로 개구장이 놀이터가 되었다.
그래도 그런 활터라도 있었기에 오늘날의 "양궁한국"이 존재 하는지도 모르겠네요.
아니면 안전 불감증이 그때부터 유래 되었는지도 모르지요.
출처: https://changyj2.tistory.com/42?category=456381 [송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