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 1876~1928년)
‘독일에 슈바이처가 있다면 일본에는 노구치 히데요가 있다’는 말이 있다.
노구치 히데요는 일본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지폐인 천엔에 나오는 인물로
일본인이 세계에 가장 자랑하는 인물이다.
일본을 방문하기 앞서 꼭 한사람의 일본인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분이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보았다.
이분의 전기를 읽고 그 내용을 요약하여 그분과 대화형식으로 꾸며보았다.

필자: 선생님 고향은 어디입니까?
노구치: 일본 동북지방인 후쿠시마현 오키나치마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마을 뒤쪽에는 반다이라는 아름다운 산이 있고 마을 앞에는 바다처럼 넓은 이나와시로
호수가 있어 경치가 아주 아름다운 곳입니다. 눈이 많은 고장이라
연중 절반은 눈속에 묻혀 지내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몹시 가난했습니다.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여 돈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술 마시는데 다 써버리곤 하셨어요.
어머니는 혼자서 나와 세 살 위 누나를 키우느라 매우 고생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이웃집 농사일도 돕고 품팔이 등 온갖 잡일을 하며 겨우 집안 살림을
꾸려 나갔습니다. 나는 논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마을 사람들에게 팔아
연필과 공책 등 학용품을 사곤 했습니다.
필자: 당신의 사진에는 오른손만 보이고 왼손은 항상 호주머니 속에 넣고 있던데요.
노구치: 두 살 때 왼손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아버지는 멀리 머슴살이를 가고 어머니는
나를 할머니에게 맡기고 이웃집에 품팔이를 갔어요. 어머니가 저녁 늦게 돌아와 불 위에
냄비를 얹고 채소를 가지러 뒷마당에 가는 사이에 불꽃 속에 넘어졌어요. 마을엔
의사도, 약도 없었습니다. 화상이 심한 왼손은 손가락이 모두 쪼그라져 서로 엉켜
붙고 말았습니다. 그후로 자라면서 친구들은 나를 손병신이라고 놀렸습니다.
필자: 집이 몹시 가난한데도 학교에서 공부를 늘 1등을 하셨다지요?
노구치: 어머니가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넌 손이 불편해서 농부도 될 수 없고 노동도 할 수 없어. 어떻게 해서라도 열심히
공부해서 학문으로 출세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렸습니다.
필자: 생각나는 은사님이 있습니까?
노구치: 소학교 4년을 졸업하고 학비가 없어 학업을 그만두려는데 담임이셨던
고바야시 선생님이 공납금을 대신 내주어 고등과 4년도 무사히 다니게 되었습니다.
동네사람들이 수근거렸죠.
“워메, 손병신 세이사쿠(어릴 때 이름)가 고등과에 다닌다는구먼. 당장
내일 먹을 양식도 없는 주제에 자식을 고등과에 보내다니 정신이 나갔구먼.“
필자: 왼손 때문에 힘들었겠군요.
노구치: 고등과 작문시간에 ‘나의 왼손’이라는 주제로 글을 지었습니다. 손병신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의 고통, 이런 불행을 안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슬픔,
칼로 오그라 붙은 손가락 사이를 잘라버리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 등...
제 글을 읽고 교장선생님이 감동하여 전교생에게 읽게 했습니다. 선생님과
전교생이 모금하여 손 수술비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인근 도시에 미국에서 돌아온
와타나베라는 의사가 있어서 그분에게 수술을 받았습니다. 보통 사람의 손까지는
안 되어도 물건을 잡고 놓을 정도가 되어 나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여러 사람이 나를 도와준 결과입니다.
필자: 고등과 졸업 후엔 무엇을 했습니까?
노구치: 제 손을 고쳐준 의사선생님을 보니 정말로 존경스러웠고, 고통받고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싶어 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필자: 의사가 되려면 의과대학 6년을 다녀야 하는데 힘들지 않겠습니까?
노구치: 당시엔 의사가 너무 적어 정규 의과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독학으로 의사시험에
합격하면 의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필자: 네 그런 말 들어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생존하는 1920년대 초반출생 의사선생님 중엔
독학으로 공부해 의사시험을 쳐 의사가 된 분들이 있었습니다.
노구치: 17세에 고등과 졸업 후 와타나베 의사선생님에게 찾아가 문지기든, 급사 등
아무 일이라도 좋으니 받아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분은 나를 제자로 받아주었습니다.
낮에는 병원 일을 돕고 밤에는 의학서적을 구해서 읽고 의사가 되기 위해 필수과목인
독일어를 독학으로 공부했습니다. 독일어를 잘하시는 목사님이 계시다는 말을 듣고
교회에 찾아가 틈틈이 목사님에게 독일어를 배웠습니다.
한번은 물체가 1,200배나 크게 보이는 독일제 현미경이 병원에 들어왔습니다.
와타나베 선생님이 가르쳐 주어서 현미경으로 열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을 처음 보았습니다.
현미경에 완전히 사로잡혀서 현미경을 이용하여 병균을 발견하는 것이 내가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결심을 했습니다.
어느 날 원장님 친구분인 치과의사 지와키 선생님이 놀러 오셨다가 내가 독일어 책을
읽는 것을 보시고 아주 놀라시며, “네가 독학으로 이처럼 어려운 독일어 책을
읽을 수 있단 말이냐! 넌 정말 천재구나. 도쿄에 오면 나를 한번 찾아오게나.“하셨습니다.
21세 때 꿈에도 그리던 도쿄에 진출하여 지와키 선생님 밑에서 일했습니다.
필자: 도쿄에서 생활을 어땠습니까?
노구치: 지와키 선생님이 잘 아는 학교의 급사로 취직시켜 주셨습니다. 수업시작 종을 치고
석유등잔을 손질하고 변소청소 등을 했습니다. 1년간 피나게 공부한 끝에 정규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의사시험에 합격했습니다.
필자: 정말 축하합니다. 의사면허증을 받고 개업을 했습니까?
노구치: 아닙니다. 지와키 선생님과 의논하여 내가 급사로 있던 학교의 선생으로 취직했습니다
수업 첫날 학생들이 나를 보며 아주 놀라며, '변소청소하던 심부름꾼 선생님이다!'하고 외쳤습니다.
첫댓글 정말로 훌륭하신 분이군요
부끄럽습니다
그 열정의 반만 있어도 내 인생이 달러졌을 터인데 ..............
안병남
이전에는 천엔 인물로 이토 히로부미가 나왔는데
10년전에 노구치 히데요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조현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