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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정보자료실 스크랩 사패산과 포대능선
제주오름 추천 0 조회 23 09.07.29 18:3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알고 지내던 지인은 등산 이야기만 나오면 기록 단축이란 용어를 쓰곤 한다.

유유자적이란 표현 보다는 얼마만큼 빨리 정상을 정복했고 저번에 올라갔을때보다 시간을 얼만큼 줄였냐는 얘기인데... 곰탱이 아빠로서는 두 눈만 껌뻑일뿐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2년전인가.... 의정부에 있는 산악회와 함께 폭설이 내린 대청봉을 올라갈 기회가 있었는데 오색에서부터 설악동까지 이어지는 구간을 눈썹이 휘날리게 굴러내려가도 보이지 않던 산악회원들은 파김치가 되어 버스까지 도착한 곰탱이 아빠를 보자마자 한상 차려 마시고 있던 자리를 털고 버스에 올라탄다.

무릎까지 빠지는 폭설에서도 9시간의 종주가 그리 짧지는 않았을터인데 옆자리 계신분께 물어보니 7시간도 안 걸렸다니.... 다음번 등산에서는 30분 더 단축하자는 산악회 팀장말에 몰려오던 잠이 확 깨어나고 그 뒤로는 기록 단축 운운하는 등산은 호랑이 다음으로 무서운 용어가 되고 말았다.

 

이번 산행은 오랜만에 혼자서 즐기는 여유를 가졌다.

엄마곰과 아기곰은 영어 발표회 때문에 이번 등산에는 빠져 버리고 장비 챙기느라 어수선을 떨다가 2시가 넘어서야 집을 나섰다.

마을버스를 타면서도 행선지를 잡지 못해 난감했는데 범골에서 시작해서 사패산과 능선을 타고 도봉산 매표소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호승심이 인다.

 

누가 지켜볼 사람도 없고, 기록 세웠다고 등 두들겨 줄 사람도 없지만 몇개월동안 같이 등산을 했던 엄마, 아기곰이 빠지고 난 빈자리의 쓸쓸함을 뭔가 의미있는 일로 채워보고 싶었다.

 

사패산 올라가는 길은 회룡역에서 범골로 이어지는 제방을 따라가면 우회도로 아래에 뚫려 있는 터널을 지나 호암사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간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벌써 하산을 서두르는 오후 3시에 계곡을 따라 구부정하게 포장된 시멘트 길 오르막을 터덜터덜 올라가면 호암사와 등산로의 갈림길이 나오고 잘 다듬어진 등산로가 포대능선쪽으로 이어져 있다.  

 

마을 뒷산을 오르듯이 가벼운 복장으로 나들이 나온 가족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포대능선으로 올라가는 갈림길까지 왔다. 사패산까지는 600미터 정도 거린데 포대능선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다시 돌아와야하기 때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내친김에 사패산으로 올라가 보기로한다. 명색이 의정부시민인데 사패산 한번 안올라가보고 등산이 취미라고 말할순 없지 않은가....

 

등산로 초입에서 40분만에 사패산 정상에 올라섰다. 평평한 바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멀리 자운봉과 수락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가족과 저녁식사를 해야했기에 오래 머무를수 없어 왔던 길을 돌아 포대능선을 박차고 올라갔다.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지만 오늘은 사우나를 하는 것처럼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등산로를 살짝 비켜 바위로 엄폐된 곳에 앉아 막걸리 한잔을 들이킨다. 남들은 건강이니, 경치를 보기 위해서 온다고 하지만 뭐니해도 막걸리 한잔하는 맛에 비할수 있을까! 이 덕분인지 모르지만 매주 짧지 않은 등산을 하면서도 내 몸무게는 3개월전보다 3kg이 더 불어났다... 아아....

상승기류를 받아 높이 오르는 까마귀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한무리 사람들이 내 앞에 진을 치고 마음을 어지럽힌다. 전세 놓은 자리는 아니지만 명상을 방해받은 김에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시계는 4시 30분.

 

포대능선은 우리 곰 가족이 두번이나 오르내린 곳이라 여유만만한 코스지만 자운봉 못미쳐 우회로에서 잠시 멈춰섰다. 추락 위험이 있는 구간이라 우회로를 만들어 놓은 곳이다. 저번에는 우회로를 따라 갔지만 이번은 나 혼자니 위험 구간으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포대능선은 대공 감시를 하기 위한 대공포대가 있었던 곳의 명칭이 유래가 되었다고 하는데 어느 바위에 벙커가 세워져 있고,

 

능선 바위길을 조금 더 비켜가면 추락 위험으로 우회하라던 이유가 고개를 끄덕일만큼 가파른 수직 계곡 등산로가 있다. 자칫 실수라도하면 큰 사고가 날 수 있는 계곡 틈새에 어느 부부가 대롱대롱 매달려 내려오는 모습이 아찔하기만 하다.

 

 

내려다보면 회음부가 짜릿한게... 암벽등반은 아니어도 나름대로 스릴있는 구간을 조심스럽게 오르면 바로 자운봉으로 이어지는 오늘의 마지막 코스기도 하다.

80도 넘는 경사에 굳건히 두손과 두발을 디디면서도 누가 이렇게 쇠봉과 쇠줄로 코스를 만들었을까 자뭇 궁금해진다.

6시가 조금 넘어 도봉산 매표소쪽으로 하산하다가 틈나는대로 빈터에 앉아 막걸리를 홀짝인다. 큰병을 산것도 아닌데 내 등 신세만 지고있는 막걸리를 반길리 없는 엄마곰한테 시치미를 떼기 위해서는 증거인멸이 필요한 법!

버스로 집앞에 도착한 시간은 8시가 넘어서고 곰가족은 항상 그렇듯이 대단원의 막을 식당에서 마무리한다. 아기곰이 내 앞에서 코를 킁킁이다가 어마곰한테 고자질한다.

"아빠곰 술 마셨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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