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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압이 123-80, 분뇨 컬러 ok, 허리-다리도 노프러브럼인데 늙어서 책 보기를 계속하려면 시력이 더 이상 나빠지지 않게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허리와 골다공증은 가족력이 있고 시력은 선친 모친 다 말짱한데 아무래도 내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것 같습니다. 세탁한 이불을 덮고 잤는데도 불구하고 왜 취침 건디션이 좋지 않은 걸까요? 악당과 싸우다 모양 빠지게 도망 다녔고 난데없이 어머니가 꿈에 나타났어요. 울 엄마 어디 아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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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여섯 줄을 넘어섰습니다. 100세 시대긴 하지만 이쯤 해서 인생을 돌아볼 필요가 있지 싶습니다. <현존재>는 존재하는 것 중에서 자신의 존재를 질문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돌도 존재하고 나무도 존재하지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뿐입니다. 젊음은 <존재자를 향해 달리는 시간>이지만 늙음은 <존재를 바라보는 시간>이니 천천히 느릿느릿 가도 괜찮습니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존재자>의 차이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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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자>는 사람-사물-사건-기억-역사 등등 우리가 보는 모든 것입니다. 그리고 <존재>는 그것을 의미 있게 하는 <드러남의 방식>입니다. 예컨대 붓은 단순한 물건이지만 누군가의 손에 들리면 그림/기억/세계를 열어주는 도구가 됩니다. 이때 붓은 더 이상 단순한 <존재자.가 아니라 그것은 세계 속에서 의미를 드러내는 <존재>의 통로가 됩니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존재는 드러남이다"라고 한 것 같습니다. 물론 나의 용량만큼만 세계는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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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에게 세계는 객관적 공간이 아니라 현존 재가 열어 놓는 의미의 장입니다. 같은 사물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쓰레기이고, 누군가에게는 예술이고, 누군가에게는 추억입니다. 세계는 존재자의 집합이 아니라 의미가 열리는 장소인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세계 속에 던져진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세계를 열어가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바디우에게 <사건>은 일상 속에서 갑자기 열리는 <진리의 순간>입니다. 사랑/고통/우연한 만남/삶의 전환 이런 것들이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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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특징은 하나입니다. 예고 없이 온다는 겁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선택을 요구합니다. 응답할 것인가? 외면할 것인가? 이때 선택이 <존재>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니체의 <힘에의 의지>는 지배 욕망이 아니라 <자기를 넘어서려는 힘>입니다. 니체는 "인간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되어가는 존재다" 그러니 삶은 완성의 이야기가 아니라 형성의 이야기가 맞습니다. 62세는 늦은 나이가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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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우리가 사물의 이름을 부를 때 그것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세계 속의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인간은 <존재를 드러내는 존재>입니다. 하이데거가 말한 인간의 비극은 <존재 망각>입니다. 사람들은 돈/성공/ 권력 같은 <존재자>들에 몰두하면서 정작 내가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잊어버립니다. 사건을 놓치지 않고(바디우), 존재를 기억하며(하이데거), 되어가는 삶(니체)를 살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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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의 “죽음에 이르는 존재”는 인간을 절망시키기 위한 개념이 아니라 나의 삶은 아직 열려 있다는 것이고, 죽음이 있기 때문에 죽음을 의식하면서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을 의식하는 순간, 인간은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름 불러주기를 기다리는 존재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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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인 18회>입니다. 고독한 남자(존재)가 낮은 촉수의 불빛 아래서 아방트 샤르도네를 마십니다. 슈트에 화이트 와이셔츠가 간지 납니다. 양복 가봉하는 시퀀스에 꽂힌 것이 아무래도 이번 달에는 맞춤 양복 한 벌 장만하고 싶습니다. 컬러는 뭘로 할까요? 아방트 샤르도네는 모르겠지만 잭 다니엘에 얼음 담아서 셀카라도 한 장 찍어야겠습니다. 꽃뱀처럼 인하의 와이셔츠 단추를 푸는 여자는 장 명국의 비서이지요. 포즈는 요염하나 이 남자의 외로움을 덮기에는 역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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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를 조작하자는 거야(치수)" 바위와 치수가 손잡고 "미꾸라지 경주"로 한참 물이 올랐는데 단속이 나왔습니다. The House of The Rising Sun은 이 대목에서 들어도 좋네요. 어느 도박이든 조작이 있기 마련, 미꾸라지는 된장을 뿌리면 미꾸라지가 전력 질주를 한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말입니다.<바다 이야기>같은 500원짜리 통기계는 모르긴 해도 리모컨을 씁니다. 딜러가 인컴을 빡빡하게 맞춰놓고 돈을 쭉 빤 다음, 사람 봐 가면서 리모컨 작업을 하지요. 희한한 것은 리모컨 작업을 해야지 진상이 없고 돈도 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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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꾸라지야 단속 뜨면 도망가면 끝나지만 게임장은 기계가 있고 허가증이 있으니 어떤 식으로든 현장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게임장은 "기계조작"이거나 "환전"이 불법인데 특히나 환전은 기계를 바로 앞수 당하기 때문에 게임장 업주들은 환전에 만전을 기한답니다. 경찰 측에서도 환전을 한다는 것을 다 알아도 현장에서 잡지 못하면 예측만으로 수사를 할 수는 없습니다. 이 부분을 경찰이나 업주나 서로 잘 알기 때문에 증거를 잡으려는 쪽과, 증거를 잡히지 않으려는 쪽의 팽팽한 긴장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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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하루에 다 떼고 1,000만 원씩 벌어들이는 게임장에 단속이 떴습니다."경찰입니다.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 일어나세요." " 사장이 누굽니까?" "내가 사장인데...영장 보여줘?"(체포해!) 쒸바,영장 없이 누굴 체포한다는 거야. 영장 가져와! " 이런 경우 환전 책이 야무지고 숍에 손님이 없으면 경찰이 지고, 거꾸로 되면 업소는 그 날로 문을 닫게 됩니다. 게임장 13번 하면서 이 짓거리 징그럽게 했는데 요새는 게임장을 안 하니 배속은 편합니다. 좋다는 건지 아쉽다는 건지ㅋ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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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인하가 죽은 줄만 알고 그를 잊지 못하던 수연은 고민 끝에 인하를 마음속에서 떠나보내기로 작정하고, 인하는 태준이 퇴원을 했다는 소식에 서울로 향합니다. 태준을 만난 인하는 상두와 대수에 관한 이야기와 정원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태준이 린치 사건 미수로 대수는 상두에게 면책을 당해 이인자에서 밀려나 포장마차에서 정애랑 쓰디쓴 소주를 마십니다. 닭 대가리냐, 용 대가리냐 옥신각신하다가 대수가 이를 악무는 것이 하극상이라도 할 기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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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애는 대수가 깡패만 아니면 포장마차라도 한다네요(미친) 대수가 찬 불가리 오닉스 골드(18k) 펜던트가 아직도 멋져 보입니다. 수연은 정원이 자신 앞으로 화분을 보내줬다고 생각하고 정원에게 말을 건네지만, 정원은 화분을 보내지 않았다고 말하지요. 이에 수연은 뭔가 생각에 잠기게 되고, 정원은 고민 끝에 수연에게 마지막으로 청혼을 하게 되는데 수연이 거절합니다. 벤치에 누워 하늘을 보면 묘한 대리 만족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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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환은 자신의 사업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는 조 의원의 딸과 정원을 결혼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지만, 정작 본인인 정원은 이를 만류합니다. 결국 도환은 정원의 마음속에 수연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뭔가 생각을 하게 되고, 정원을 불러 심하게 타박을 합니다. "짝사랑이나 하면서 굴러들어온 복을 걷어 차!" 네 자식이 그런 팔푼이 같은 행동을 할 순 없다는 말입니다. "아버지가 사랑을 알아요?...술마시고 싶어(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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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명국은 자신의 사업 파트너를 찾기 위해 서 회장을 찾아가고, 인하는 예전에 수연과의 약속을 생각하며 성당 근처에 집을 짓기 위해 땅을 사들입니다. 섭지코지 말입니다. "누나! 그 형아 봤어요...누나 애인(잘못 본 거야) 아니예요. 정말이에요)" 장 명국을 만난 서 회장은 마지막 기회다 싶었는지 장명국과 손을 잡기로 마음을 다지며 악수를 합니다. 우리의 호프 인하가 비틀거립니다. 허겁지겁 알약을 꺼내 물도 없이 약을 먹습니다. 다 그놈의 총상 후 후증에 애별리고의 통증이 아니겠습니까? 불쌍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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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술을 가르쳐>의 공습을 받고 나는 급하게 그때로 타이머시 되고 있습니다. "끝까지 넌 참 많은 걸 가르쳐/내가 몰랐던 것들을 알게 해 /어쩌면 날 버리고 떠나서도 /계속 내 주변을 맴도는 듯해/사랑을 가르쳐 기쁨 알게 하고/이별을 가르쳐 눈물 알게 하고 /알고 싶지 않던 것도 알게 해/너 때문에 못하던 술을 해/관심 없던 노랫말이 들려/잊고 싶어 술을 마시고 /술 마시면 또 보고 싶어/왜 잊는 법은 안 가르치고 떠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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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넌 정이 너무 많아서/이다지도 많은 것을 남겨줘/추억을 남기고 날 울게 하고/ 상처를 남기고 아프게 하고/고칠 수 없는 마음에 병을 줘/너 때문에 못하던 술을 해/ 관심 없던 노랫말이 들려/잊고 싶어 술을 마시고 술 마시면 또 보고 싶어/왜 잊는 법은 안 가르치고 떠난 거야/내 몸이 망가지는 걸 느껴(yeah) I am lo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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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에 낯빛은 점점 더 어두 두어져/눈시울이 또 젖어 그 기운은 온몸으로 퍼져/내 뼛속까지 시리게 만들어 제발 좀 살려줘/내가 알 필요 없는 행복까지 니가 알려줬잖아/내겐 없던 행복일지라도 이젠 없어선 안 되잖아/갑자기 니가 없어지니까 뭘 해야 될지 몰라/그저 무엇보다 니가 보고 싶다/단 하루도 제정신이 아냐/술 없이는 난 살 수가 없어/술잔 위에 너를 띄우고 눈물로 다시 너를 지워/왜 잊는 법은 안 가르치고 떠난 거야/왜 잊는 법은 안 가르치고 떠난 거야."
2.
글의 시작은 몸의 상태를 점검하는 장면에서 출발합니다. 혈압, 허리, 다리, 시력, 잠의 질. 젊을 때는 이런 것들이 삶의 중심 질문이 아니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몸은 철학의 출발점이 됩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건강 기록이 아니라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의 서막입니다. 여섯 줄의 나이는 단순히 시간이 쌓인 것이 아니라, 존재를 성찰하는 시기입니다. 젊음이 세계 속으로 달려가는 시간이라면 늙음은 세계를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문장은 철학적 통찰로 이어집니다. "젊음은 존재자를 향해 달리는 시간이고 늙음은 존재를 바라보는 시간이다" 이 문장은 사실상 하이데거적 인생 정의입니다.
1) 하이데거: 존재와 존재자의 차이
당신이 설명한 하이데거의 핵심은 매우 정확합니다. <존재자>는 눈에 보이는 것들 (사람, 사물, 사건, 기억, 역사) 이고 <존재>는 그것들이 의미 있게 드러나는 방식으로 붓의 예는 매우 하이데거적인 비유입니다. 붓은 단순한 물건이지만 누군가의 손에 들릴 때 세계가 열리는 도구가 됩니다. 즉, 존재는 물건(사물)이 아니라 ‘드러남의 사건’입니다. 그래서 하이데거에게 세계는 객관적 공간이 아니라 현존재가 열어놓는 의미의 장이 된 겁니다. 같은 사물도 누군가에게는 쓰레기이고, 누군가에게는 예술이며 누군가에게는 추억입니다. 세계는 사물의 집합이 아니라 "의미의 장"입니다.
2) 바디우: 사건은 예고 없이 온다
여기서 글은 자연스럽게 알랭 바디우로 넘어갑니다. 바디우에게 사건은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리가 갑자기 열리는 순간입니다. 예를 들면 사랑/고통/우연한 만남/삶의 방향을 바꾸는 순간같은 사건의 특징은 하나입니다. 예고 없이 온다는 겁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묻습니다. 응답할 것인가, 외면할 것인가? 그리고 이 선택이 삶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3) 니체: 인간은 되어가는 존재
니체의 <힘에의 의지>도 정확히 읽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지배욕으로 이해하지만 힘에의 의지는 <자기를 넘어서는 힘/리버멘쉬)입니다. 그래서 니체는 말합니다. 인간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되어가는 존재다" 62세는 늦은 나이가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닙니까?” 이 문장은 사실 니체적 선언입니다. 늙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자기 형성의 시작>입니다. 당신이 김춘수의 시를 끌어온 장면은 이 글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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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 문장은 사실 하이데거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단순히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존재를 드러내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비극은 여기 있습니다. 하이데거는 이것을 <존재 망각>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돈-성공-권력 같은 <존재자들>에 몰두하면서 정작 왜 나는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을 잊어버립니다.
4) <올인>과 존재의 고독
글의 후반부에서 <올인>이 등장합니다. 겉보기에는 철학과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부분은 <존재론적 드라마 해석>입니다. 수트 차림의 남자가 어두운 불빛 아래에서 와인을 마시는 장면은 단순한 멋이 아니라 <존재의 고독>을 보여줍니다. 돈/권력/게임장/도박 이 모든 것은 <존재자>입니다. 하지만 그 남자(존재)의 내면에는 채워지지 않는 존재의 공허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술/사랑/권력을 가져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5) 죽음을 의식하는 삶
"죽음에 이르는 존재"에 많은 사람들이 비관으로 이해하지만 하이데거는 반대로 말합니다. 죽음을 의식할 때 비로소 인간은 <자기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음은 절망이 아니라 <삶을 진지하게 만드는 사건>입니다. 내가 이름 불러주기를 기다리는 존재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철학적으로 이렇게 번역됩니다.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나의 삶은 무엇인가 아직 열리지 않은 세계는 무엇인가? 내가 아직 응답하지 않은 사건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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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중략) 사건을 놓치지 않고, 존재를 기억하며 되어가는 삶을 살아야겠다...오늘 밤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2026.3.18.wed.악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