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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합의 아닌 여론에 이끌린 교육부의 일방통행
언론보도로 사교육시장 확대되고 공교육현장 경직될 듯
교육부가 서울대로부터 백기를 받아냈다.
서울대는 교육부가 제시한 정시확대, 수능강화의 지침을 2015 전형안에서 그대로 수용했다.
물론 법인화 2년 서울대가 9월 ‘공교육정상화 기여대학 지원사업’의 예산집행 여부를 빌미로 밀어붙인 교육부의 방침을 거부하기는 힘들다.
결국 서울대는 2015학년부터 수시 비중을 축소하고 정시를 늘리는 한편 대학별고사(논/구술)를 폐지한다.
정시는 소폭 늘어난 상태에서 수능 100%로 진행된다.
▲ 서울대는 2015학년도 입시에서 교육부가 제시한 정시확대, 수능강화 지침을 그대로 수용했다. 타 대학 및 고교 현장에 미칠 영향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교육부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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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의 전형방향은 최고대학의 위상 이상으로 다른 대학, 고교 현장, 초등 중등의 현장까지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부의 대입확정안 기사보다 서울대 전형 기사가 일간지에서 훨씬 크게 다뤄진 것이나 이튿날 이어진 고대 연대 이대 등의 전형안 도미노를 이끌어낸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문제는 정시를 늘리고 논구술을 폐지한다는 서울대 전형안이 서울대의 상징성 때문에 대입 전체를 도미노처럼 변화시키고 자칫 고교현장과 나아가 초중등의 교육 체제까지 수능암기 위주의 교육으로 경직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25%에 불과한 정시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수능 100%가 강조되는 언론의 분위기는 마치 서울대 입시가 수능 100%로 일단락된 듯한 착시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상태다.
그렇다면 서울대 입시의 변화는 무엇을 의미할까.
교육수요자 입장에서 과연 개선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이미 확정된 서울대 입시안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파급력을 감안하면 방향성이 올바른지는 따져봐야 할 듯하다. 일방통행 식 교육부의 방식에 대한 검증이나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따져봄으로써 제대로 가는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대는 왜 백기를 들었을까
2015 서울대 전형안의 골자는 ▲정시 기존 나군에서 가군으로 이동 ▲정시 비중 확대 ▲ 논/구술 폐지 ▲의예/치의학/수의예의 교차지원 허용이다. 정시와 수능을 강화하고, 수시의 대학별고사를 축소하라는 교육부의 권고를 서울대가 받아들인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 9월23일 ‘2015~2016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 확정안을 발표, 각 대학의 관련 내용 수용여부에 ‘공교육정상화 기여대학 지원사업’과의 연계를 강조했다.
해당 사업은 대입전형에서 ▲공교육연계 ▲전형간소화 ▲사교육유발 정도 등을 평가해 재정을 차등지원함으로써 공교육을 정상화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교육부는 당시 35개 대학에 각 34억원을 지원하기 위해 내년도 예산 1200억을 기재부에 요구했다.
결국 410억원이 반영됐지만, 위력을 무시할 순 없다.
대학 입장에선 예산확보도 그렇지만 공교육정상화를 저해한 몰염치한 대학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우려가 더 깊기 때문이다.
사실상 명분 실리 챙긴 서울대
서울대는 2015 전형안을 통해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긴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는 교육부의 지침을 입시안에서 충실히 반영해 명분을 얻었다.
교육부가 예산지원을 고리로 ‘2015대입 확정안’에서 내건 주제는 ▲정시확대, 수능강화 ▲논구술 등 대학별고사 축소 ▲수능최저학력기준의 완화와 백분위 금지다.
서울대는 2015학년부터 정시비중을 7.2% 늘린다. 2010년 60% 정도였던 수시비중을 최근 83% 정도까지 꾸준히 확대해왔던 서울대로선, 방향을 대폭 수정하면서 정부안을 들어준 셈이다.
정시에선 100% 수능으로 선발, 인문계열의 논술과 경영대학 및 자연계열의 구술을 시원하게 폐지했다.
교육부 지침에 따른다는 명분과 함께 그 동안 수시전형의 확대와 논구술 시행의 수시체제를 놓고 사교육비 부담을 늘리고 고교유형간 위화감을 조장한다며 몰아친 비난여론도 일부 잠재우는 효과까지 얻었다.
물론 실리도 챙겼다.
서울대 관계자들이 입학본부에 대해 표출해온 대표적 불만은 ‘수능 고득점자를 타 대학에 빼앗기는 입시구조’였다. 서울대 입학본부는 그간 서울대 입시가 정시비중이 적고 논구술의 부담을 주는 구조 때문에 고득점자들을 타 대학으로 내몰았다는 학내반론에 시달려왔다.
100% 사정관제인 수시전형이 타 대학들처럼 특기자전형이라는 점에서 극상위권이 아닌 바에야 특목고 출신 상당수가 서울대 진학을 꺼리는 문제가 제기돼온 것.
서울대는 정시 논구술 폐지에 따라 2015학년부터 수능만으로 선발한다.
학생부는 동점자처리 및 감점처리의 요소로 활용될 뿐이어서 수능성적이 절대적이다.
수능고득점자 수용의 원칙은 정시에서뿐 아니라 수시의 지균에서도 반영됐다.
3개영역 2등급이내가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수능기준이 높아졌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수능 고득점자와 특목고 자원의 흡수라는 학내여론이 교육부 압력을 계기로 득세하면서 서울대 입학본부가 백기를 든 상황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서울대는 이 과정에서 기존 사정관제 100%의 수시체제를 유지하면서 수능고득점자 그리고 특목고 자원까지 흡수하는 실리를 얻었다.
그것도 수시체제에 대한 비난 여론을 다독이거나 학내반론까지 잠재우면서…
과연 서울대 전형은 잘못된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그간 서울대가 고수해온 수시중심체제가 ‘공교육정상화’를 근거로 칼질을 받아야 할 만큼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
과연 서울대 수시체제가 사회악으로 내몰릴 정도로 잘못된 것이었을까. 혹은 서울대가 비난여론에도 꾸준히 나름의 전형을 고수해온 이유는 무엇일까.
- 현행 83%에 달하는 수시체제 ‘오히려 일반고 살렸다’
서울대가 확대해온 수시전형은 일부 언론과 국회의원들의 맹비난과 달리 일반고 학생들을 흡수하는 데 역할을 해왔다.
2010년 오연천 총장 취임 이후 당시 60% 가량이었던 수시비중은 현재 83% 수준까지 확대되어 왔다.
서울대 수시전형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일반전형은 2013학년부터 수능성적을 아예 적용하지 않는다.
수능에 집중하지 않는 덕분에 서울대 입시는 오히려 많은 기회를 제공했다고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현행 83%에 달하는 서울대 수시는 수험생의 잠재력에 초점을 맞춘다.
수험생들은 자신의 꿈, 혹여 중간에 바뀐다 하더라도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으로서 자기주도적인 교내활동을 통해 자신의 잠재력을 입증하는 것으로 수능점수를 떠나 합격을 바라볼 수 있었다.
교내활동을 중시한 서울대 수시전형은 공교육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많은 고교들이 비교과활동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자기소개서 작성과 학생부 관리를 위해서라도 학생들은 교사들에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
교사 역시 학생 면면의 살피는 데 성적위주의 이전보다는 유연해졌다.
사교육 수용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기숙사 학교들과 비교과활동이 많은 자사고가 각광받은 것도 서울대의 수시체제와 무관치 않다.
특기자전형이라는 명칭을 버리고 일반전형으로 바뀐 2013 입시에서 서울대 수시체제는 상당히 바람직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수능중심체제에서 축소되던 일반고 비중이 읍면단위까지 확대된 것이다.
실제 국정감사를 통해 공개된 2013 서울대 신입생의 출신 고교의 분석결과, 일반고가 가장 많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체 입학생 3283명 가운데 일반고 출신은 2047명으로 62.4%였다.
2013 서울대 합격자를 낸 고교는 전국 893개교였고, 이 가운데 일반고는 804개교였다.
학교수로는 90.0% 수준이다.
언론이 앞다퉈 집중포화를 쏟은 서울대 합격생 배출자수 상위랭킹에선 특목/자사고에 가려 적어 보였지만, 사실 서울대 최다배출 고교유형은 일반고였던 셈이다.
만약 서울대의 수시-정시 비율이 만약 반대 양상이었다면 상황은 어땠을까.
이미 정시중심의 과거실적들이 보여주듯 뻔하다.
고교현장의 교사들, 특히 입시에 밝은 교사들은 입을 모아 “수능위주의 선발은 특목/자사고의 압도적 승리일 것”이라 내다본다.
게다가 재수생은 재학생 대비 수능에 유리하다.
학생부 중심인 서울대 수시는 이미 포기하고 아예 수능에만 집중해야만 하는 상황인데다 학생부관리에 힘겨운 재학생에 비해 유형학습인 수능에 올인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수능위주의 선발은 특목/자사고 출신과 재수생의 압승으로 이어지게 마련. 이번 서울대의 정시확대 수능100%반영을 달갑게만 볼 수는 없는 배경이다.
- 논구술 시행 ‘암기력 대신 사고력 키웠다’
서울대의 논구술 폐지방침 역시 반갑지 않다.
공교육 현장을 수능유형 암기교육 중심으로 되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논구술의 부작용은 모든 시험유형이 그렇듯 존재한다.
교과과정을 벗어난 대학과정의 출제 때문에 공교육은 물론 사교육까지도 쉽게 다룰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기도 했다.
학생부와 수능 대비 변별력 강한 논구술을 대비하기 위해 믿을 수 없는 학교 대신 역시 믿을 수는 없지만 고액의 사교육을 단기간에 받는 것으로 해결하려 드는 폐해도 있었다.
고교유형별 교육과정의 특성상 특목/자사고 중심으로 이득을 본 측면도 있다.
다만 이렇게 많은 부작용을 안고 있던 논술이 17년째 시행되어온 이유는 분명하다.
상위권대학을 중심으로 한 변별력 확보라는 입시방편의 의미와 함께 암기력 대신 독해력과 논리력 창의력 표현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적 의미가 논술에 상당했기 때문이다.
대입논술은 1997학년 시작됐다.
물론 처음엔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
94학년 첫 시행된 수능이 해를 거듭할수록 폐해가 쌓여가자 변별력 제고 차원에서 출발한 게 논술이고, 수능체제가 변별력을 놓고 갈팡질팡하는 동안 논술은 시행착오 끝에 수능의 대안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2005학년 즈음부터 대거 확대되기 시작했다.
초반 철학중심의 프랑스 바까로레아를 본떴던 논술은 점차 교육과정을 담아낸 교과통합형논술로 정착해왔고, 2008학년부턴 고교연계강화가 뚜렷해졌다.
현재 많은 대학들이 출제과정에 고교교사를 검토위원으로 위촉, 교과과정을 넘어서지 않도록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있으며, 모의논술시행과 무료첨삭 및 자료배포, 심지어 대학차원의 현장특강과 동영상강의 공개로 사교육 폐해를 막고자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단기간에 실력을 향상시킬 수도 없는 게 논술인 터라 사교육으로 해결할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여기에 선발효과는 물론 교육적으로도 손색없는 시험체제라며 상당 수 대학교수들이 입을 모아 극찬해왔던 게 논술이다.
고교 중엔 자발적으로 교사들이 팀을 구성, 통합형논술을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곳도 있고, 현 교육과정상 있을 수 없는 철학교사를 둬 논술교육을 강화하기도 한다.
덕분에 고교현장은 수능기출문제를 달달 외우는 경직된 교육과정에서 벗어나 훨씬 유연해지고 말랑해질 수 있었다.
구술 역시 마찬가지다.
논술에 비해 비중이 적고 아직 일반에 홍보가 덜 되어 있긴 하지만, 논술을 말로 푸는 구술은 암기학습으로는 아예 접근이 불가능한 것 이외에 다양한 장점을 갖추고 있었다.
자연계열의 구술을 풀어내려면 개념학습이라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유형학습으로 찍어 맞추는 수능에 비해서 구술은 개념을 토대로 개념간 유기적 연결과 창의적 발상을 이끌어내는 학습 지향점을 가능케 했다.
특히 서울대 구술은 학과별로 시행되면서 인문 경영 자연의 큰 덩어리 강의체제 위주인 사교육의 접근을 더욱 어렵게 했다.
입시주체로선 출제와 채점에 상당한 공력이 불가피함에도 불구하고 서울대가 모집단위별 구술을 고집한 내막이다.
해당 학과 교수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입시체제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수험생 역시 수능 1~2점 차이로 당락을 결정 당하기보다 자신의 역량을 뽐낼 수 있는 자리로 의미가 있다.
시험현장 역시 말랑하다.
수험생이 막힌 부분에 교수들이 힌트를 주고, 힌트를 얻어 풀만한 수준이면 합격할 수 있는 체제라는 것.
공정성 시비가 붙을 수 있지만, 힌트를 받고도 못 푸는 경우와 아닌 경우가 있는 바에야 큰 문제가 될 리 만무하다. 사실상 서울대는 끊임없이 시행하며 가다듬어서 사교육이 따라올 수 없는 대학별 고사체제의 정점에 바로 구술이 있었다.
논구술은 상위권 대학의 변별력으로 기능하는 측면도 있지만, 고교교육과 대학교육의 완충역할을 해온 측면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주입식 암기식 학습에 익숙한 신입생에게 이뤄지는 대학들의 입학 전과 초기 교육은 학문의 기초인 읽기와 쓰기 그리고 사고력의 훈련이다.
대입의 문턱에서 고교와 대학의 너무 이질적 교육체제를 타고 넘어가는 가교의 역할을 논구술이 해온 것이다.
논구술은 그 자체로 수능과 내신 유형을 달달 암기하는 데서 벗어나 책과 신문을 들여다보고 사고의 깊이를 더하며 글과 말로 표현하는 훈련으로 고교교육에 활력을 불어넣은 측면과 더불어 학생들이 대학교육의 기초학습을 한다는 데도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이미 공교육 내에서 논구술 대비를 위해 노력하면서 바람직한 방향의 시스템을 만들고 있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논술과 구술면접고사가 특목/자사고 출신에만 유리하다는 의견이라면, 발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선발체제와 교육과정 운영상 특목/자사고 학생들이 서울대 입시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는 특목/자사고를 원망할 게 아니라 만족할 상황을 구축하지 못한 채 경직된 일반고 체제, 그리고 이런 체제를 손 놓고 방치해온 교육정책당국을 문제삼아야 할 것이다.
서울 강남구 특목고 자사고가 아니라 교명을 처음 들어보는 시골 한가운데 작은 일반고도 서울대 합격생을 다수 배출한다.
2013 서울대 합격자 중 일반고 출신이 62.4%, 배출고교 중 일반고 비중이 90.0%라는 수치를 상기하자.
솔직히 이만큼의 합격자를 배출할 만큼 논구술 사교육시장이 대단하지도 정교하지 않다는 건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팩트’다.
2015 전형계획, 서울대 자신감의 발로
어찌 보면 서울대의 이번 2015 전형안은 ‘자신감의 발로’라고도 이해할 수 있다.
교육부 지침을 따르면서 수능최상위권 흡수라는, 명분과 실리의 두 마리 토끼를 확실히 잡은 것에 더해 수시전형을 통해 공정성과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경험에 의한 자신감과 함께 정시비중을 다소 늘리고 수능 100%로 반영함으로써 오히려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다른 대학이 범접할 수 없는 서울대의 자존감도 확인시켰다.
서울대의 영향력도 입증됐다.
이만한 홍보효과도 없다. 서울대의 발표는 즉각 타 대학들에 영향을 미쳤다.
현행 나군에서 2015학년 가군으로의 이동은 연/고대를 중심으로 즉각적인 변화를 감지케 했고, 특히 적었던 정시비중을 늘리고 논구술을 폐지한 대목에선 다른 대학의 동참까지 예상케 했다.
실제로 서울대 발표 다음날인 15일, 고려대와 연세대는 서울대를 피해 2015학년에 기존 가군에서 나군으로 이동할 것을 발표했다.
정시비중도 늘어난다. 고려대는 70대 30으로 전년도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발표한 대부분 대학들이 정시를 소폭이나마 확대, 발표하는 액션을 취했다.
이화여대가 60대 40(2014학년 64대 36), 동국대가 51대 49(2014학년 59대 41), 건국대가 53대 47 (2014학년 60대 40) 수준으로 조정했다.
이들 대학의 2015 전형계획은 발표 당일인 15일까지 대교협에 제출했어야 했던 자료다.
마감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대의 발표에 내로라하는 상당수 대학들이 부랴부랴 전략수정을 하는 것은 물론 지지부진한 대교협의 내년도 전형계획 수합 이전에 이례적으로 언론을 통해 발표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교육당국보다 한발 앞서 문/이과 융합의 단초를 제시한 점도 눈길을 끈다.
서울대는 이번 발표를 통해 교육부가 시안을 밀었다가 도로 거둔 문이과 융합의 실질적인 도입가능성을 선보였다. 서울대의 2015 전형계획 중 사회적 반향이 가장 컸던 건 의예계열의 문과학생 수용에 있다.
서울대는 2015학년부터 의예과 치의학과 수의예과의 문/이과 교차지원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서울대가 의예 치의학과를 문과생에게 문호를 개방한 것은 1994학년 수능 체제 도입 이래 처음이다.
서울대는 “모집정원의 78.8%를 계열구분 없이 선발함으로써 융합교육을 선도한다”는 입장을 자신 있게 밝혔다.
서울대 전형안에 대한 착시현상
2015서울대 전형안은 언론들의 일방적 해석과 보도로 인해 다양한 착시현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일단 2015 서울대 전형안을 차분하게 뜯어볼 필요가 있다.
일단 수시비중은 75%로 여전히 높다.
서울대의 정시확대 움직임은 크지 않다는 데 인식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서울대는 여전히 수시에 무게를 싣고 있기 때문이다.
2015학년 서울대의 수시비중은 무려 75.4%, 정원내 2364명이다.
정시선발인원이 771명인 데 비해 수시선발인원은 2364명으로 정시대비 3배의 인원을 수시로 선발한다.
25% 수준으로 늘어난 정시가 더 확대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서울대측은 이날 2015 전형안을 밝히면서 “정시확대는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학생부를 중심으로 한 수시체제는 여전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수능준비만으로 서울대 진학이 가능하다고 하기는 힘든 셈이다.
서울대의 수시엔 여전히 면접이 살아있다.
서울대의 대학별고사(논구술) 폐지는 정시에 한해서다.
2015학년 정원의 75% 비중을 지닌 수시전형에선 여전히 면접을 진행한다.
가장 많은 쿼터를 지닌 일반전형에 대해 서울대는 아예 “인문계열과 자연계열 면접 문항을 공동 출제하며, 공동 출제된 문항을 활용하는 모집단위에서는 동일한 답변준비 시간과 면접시간을 부여하고, 공동 출제된 문항을 활용하지 않는 모집단위에서는 교과 관련 문제풀이형 면접 문항을 활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사정관제의 단순한 인성면접만으로 보기에는 너무 장황한 설명이다.
계열을 아우르는 공동 출제가 단순한 인성면접으로 이해되진 않는다.
전형에 관련한 구체적인 안은 내년 3월 발표될 예정이다.
현재로선 “공동 출제된 문항을 활용하지 않는 모집단위에서 교과관련 문제풀이형 면접 문항을 활용하지 않는다”는 데서 이들 공동 출제 문항들은 문제풀이형으로 자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인성 면접 수준의 단순 면접을 굳이 서울대가 ‘공동 출제’를 시행할 필요에 대해서도 석연치 않다.
상당 쿼터를 차지하는 지균의 경우에도 면접은 진행된다는 사실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서울대가 대학별고사를 폐지했지만 연고대에서까지 논술고사가 아예 사라진 게 아니다.
오히려 변별력에 더 힘을 얻었다는 평가도 만만치 않다.
서울대 발표에 이은 타 대학 발표에 따르면 2015 수시는 수능중심의 논술우선선발제도를 폐지한다.
수능의 영향력이 적어진 논술전형에서 논술의 변별력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실질적인 논술의 비중이 늘었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다.
서울대의 발표 이후 타 대학들이 일제히 논술비중을 줄였다는 보도도 일부 가려 읽을 필요가 있다.
선점효과가 있는 수시전형의 비중을 크게 줄일 가능성이 적은데다, 현재 발표된 대학들의 전형계획에서 논술전형은 소폭 축소되었을 뿐이다.
연세대는 15일 보도자료를 통해 논술축소에 대한 언급을 아예 하지 않은 채로 “수험생들은 수시는 학생부와 논술, 특기 정시는 수능 중심으로 대비하면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려대는 논술 선발인원을 현행 1366명에서 2015학년 1277명으로 줄이는 수준으로 여전히 많은 인원을 논술전형을 통해 선발한다.
논술반영비율을 현행 70%에서 변경 45%로 낮췄지만, 고교별 편차가 큰 학생부 대비 논술에 변별력을 실을 게 당연하다.
왜곡되는 교육현장, 어쩌나
- 고교현장 ‘기형’ 이끌 수도
문제는 왜곡되는 교육현장.
당장 서울대의 의예계열 교차지원 허용방침이 불러온 파장은 대단했다.
발표 당일부터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사교육기관들의 ‘외고 전성시대 도래’ 선언은 당장 11월말 있을 서울권 외고 입시에까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튿날 발표된 다른 주요대학들의 변화도 주목할만하다.
고려대는 2015학년에 융합전형을 신설, 특기자전형의 일부를 흡수할 전망이다.
연세대도 국제계열인 특기자 모집인원을 현행 313명에서 2015학년 393명으로 확대하겠다 발표했다.
융복합을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외고/국제고를 포함한 인문계열에 서울대 의예계열이 문호를 개방한 데 따른 대책이라 풀이할 수 있다.
의예계열 진학을 노리는 문과생들의 외고행을 조장할 위험이 있는 대목인데, 문제가 커 보인다.
현재 교육부는 외고/국제고의 설립목적 이행 여부를 ‘학교유형 취소’로까지 강력 규제하고 있다.
이과반 의대준비반을 외고/국제고에서 운영할 필요 없이 고교내 과정만으로도 서울대 의예계열 지원이 가능한 상황이긴 하지만, 해당 학교의 설립목적과 맞지 않는 꿈을 품고 단지 수능성적을 올리는 데 유리한 환경이라는 이유로 학생을 진학시키는 풍토는 분명 바람직하지 않다.
게다가 2015 서울대 의예계열은 수시중심이다.
치의학과와 수의예과는 학생부중심의 수시에서만 선발하고, 의예과의 경우 정원 95명 중 65명을 수시에서 선발, 정시 정원은 올해보다 줄어든 30명에 불과하다.
결국 교차지원이 허용된 서울대 의예계열은 학생부중심의 수시에 맞춰 준비해야 한다.
의대진학계획이 분명한 학생에게 ‘외고 진학이 유리하다’는 얘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심지어 관련 사교육기관의 영업활동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다.
- 주입식 암기교육으로 교육과정 ‘경직’ 문제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수능100%의 정시의 확대를 환영하는 고교현장의 분위기다.
특목/자사고는 상대적으로 수능고득점에 유리한 자원의 유리함에 주목하고, 일반고는 손 대기 어려운 논구술 없이 수능만으로 서울대 진학길이 열렸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당장 고교일선이 서울대의 정시확대와 논구술폐지에 환영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언론조명이 등장한 상황이다.
정시의 비중확대와 함께 수능100% 반영의 취지는 논구술 등 대학별고사에 대한 사교육비 부담과 공교육 현장의 부담을 상쇄시킬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역설적으로 공교육현장은 예전의 수능중심체제로 굳어질 위험이 크다.
정시확대, 수능100%반영의 충격이 상당한 탓에 입학사정관전형과 논구술고사 준비로 탄력적이었던 공교육현장이 일제히 수능학습으로 인한 암기교육으로 전락할 수 있다.
서울대의 수시전형이 여전히 75% 가량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일단 눈 앞에 보이는 쉬운 길을 찾기 위해 정시를 향한 수능유형암기에 집중할 것이란 우려다.
교육부 정책 신뢰도만 떨어뜨려
상황은 스펙타클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특히 이번 서울대 발표에 핫이슈로 떠오른 ‘대입논술 폐지’ 소문은 교육부의 대표적인 일방통행 식 정책추진의 결과로 꼽을만하다.
논술은 시행 17년 째다. 많은 대학과 고교들이 머리를 맞대며 혹은 싸매며 연구해온 논구술에 대해 한 생명이 태어나 고등학생으로 성장할 엄청난 시간인 17년 간 교육부는 왜 손을 놓고 있었나.
논술시행 관련해 고교현장이 가장 힘들다고 하소연했던 배경은 교사 자신들 역시 논술고사를 치러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논술을 교육받지 못했고, 논술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교육받지 못했다는 것.
이런 하소연이 17년을 이어오는 동안 교육부는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논술교육에 공을 들이지 않는 한 일반고에서 논술교육을 교육과정으로 흡수하기엔 한계가 있다.
교육부의 가이드라인대로 학제를 운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일반고의 비애가 묻어난다.
상대적으로 교육과정 편제가 자유로운 특목/자사고들은 교육과정 내에 논구술을 대비하기에 수월하지만 일반고는 꼼짝할 수가 없다.
정규과정이 아닌 방과후과정으로 운영한다 하더라도 교사들의 헌신만을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다.
교사들이 교수법 교육과 연구 혹은 연수에 시간과 노력을 들일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정책적 지원은 일반고 현실에선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나마 교육부가 내놓은 ‘축소 권고’라는 문제해결의 방식 역시 한심하다.
사교육 유발요소라는 일부의 사회적 비난을 그대로 전달, 지적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교육적 효과에 주목해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고교현장에 적극 지원할 대책을 강구하기보다 대통령 공약이라는 맹목과 일부 여론에 기대 쉬운 길을 택한 탓이다.
논구술, 특히 논술은 17년을 시행해오며 중하위권에선 아예 포기하고 상위권 대학 위주로 자체적으로 정착해온 대학별고사다.
교육적으로 지원할 대책이 마땅치 않으면 차라리 논술고사 시행을 촉발시킨 국가시험 수능의 안정화와 변별력 강화를 이뤄내야 했을 텐데, 그러지도 못했다.
94학년 도입 이후 수능의 역사는 매년 변화가 극심했고, 가장 최근인 2014학년 수능은 특히 고교와 대학들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준별 A/B형 시행으로 밀어붙여 그 누구도 예측 불가능한 사상 최악의 정시대란을 앞두게 했고 올해 단 한 번 시행으로 접어버림으로써 정책의 신뢰도를 스스로 떨어뜨렸다.
올해 교육부의 정책들은 결과론적으로 낙제점으로 보인다.
올 초 대학 입학처장들의 ‘시행 재고’ 의견을 무시, 강행하면서 최악의 정시상황을 만든 ‘수준별 A/B 선택형 수능’을 시작으로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대입 개편’ 등 아니면 말고 식의 정책추진 과정에 이어 이번 서울대의 2015 전형안이 가져온 후폭풍까지 정책당국의 신뢰는 바닥 수준이다.
문제는 교육부의 어설픈 정책방향에 따라 뒤틀리고 밀리는 현장교육과 정책불신의 대가를 결국 교육수요자인 수험생이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기사출처:베리타스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