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수지에서(13)
2005년 6월
신흠(申欽)의 야언(野言)이란 글을 보면, 문을 닫고 마음에 드는 책을 읽는 것, 문을 열고
마음에 맞는 손님을 맞는 것, 문을 나서서 마음에 드는 경치를 찾아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추구해야 할 세 가지 즐거움이라 하였다.
나는 문 닫고 집에 있을 때 더러 불교방송 듣는다. 새벽 인시(寅時)에 커튼 젖히고 내다보면 가로등 불빛만 졸고있다. 가부좌 틀고 명상도 하고 염불 해보고 목탁도 쳐본다.
'개자원화보' 펼쳐놓고 화선지에 소나무, 매화나무, 국화 그려본다. 추사 글씨 집자해서 만든 반야심경 현판 보며 한 50번 쯤 써봤더니, 이젠 추사 글씨 맛을 좀 알겠다.
문 열고 마음 맞는 친구와 간혹 지리산 다녀오곤 한다. 흰구름처럼 할일 없이 찾아가서 놀다오곤 한다. 산에 가면 우선 마음 편안하다. 산은 나의 성당이요 법당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신비롭게 생긴 나무나 바위가 스님이나 신부 같다는 생각도 한다. 잡념을 없애준다. 산에 기도하고 바위나 나무에 기도 드리고 싶을 때가 있다.
물소리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물소리의 파동은 어머니 뱃속에서 들은 양수의 파동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래서 편안함을 느끼는지 모른다. 내가 약수를 떠오는 약수터에서도 낮으막한 물소리 들으며 기도드리고 싶을 때 있다. 약수 뜨러 가는 시간은 안개 자욱한 새벽일 때도 있고, 한낮일 때도 있다. 거기 고요한 물소리는 신선이 사는 곳에서 들리는 음향처럼 마음을 청정하게 해준다.
재벌 비서실장 자리란 것이 모르면 근사하지만 알면 못할 짓이다. 재벌이 그 욕심이나 능력면에서 사람들을 능가한다면 그를 보좌한 비서는 어때야 하는가. 재벌에게 양심이 있던가. 인간이 할 수 있는 인내 다하여 큰 공로 세우고 배신 당하는 것이 비서의 운명이다. 잠 못자고 24시간 분노에 젖어, 그대로 가다간 정신병자 될까 걱정하던 때다.
그때 마침 내가 일주일에 한번 속초 모 대학 강의가 있었다. 서울서 양평 쯤 나가면 분노가 잊혀졌다. 홍천 쯤 가면 완전 자연에 눈이 팔렸다. 속초서 강의하고 콘도서 자고 이튿날 다시 양평 쯤 오면 서울 하늘 시커먼 스모그가 보인다. 마음 속 분노가 다시 가슴 속을 채웠다. 그렇게 5년 간 강의하러 다닌 바람에 나는 살아남았다. 청산녹수가 내 병을 치유하는 명의란 걸 깨달았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 한줄기 바람처럼 온 곳 알 수 없고 갈 곳 모르는
인생이다. 산에서 떠온 약수로 갈근, 산뽕나무, 석창포 넣고 차 끓여본다.
'욕심을 버리자. 산 속에서 말 없이 지는 꽃처럼 고요히 지자. 하심(下心)을 배우자. 물처럼 아래로 흘러가자.' 그런 생각들을 해본다.
전원일기/수지에서(14)
2005년 6월
두견새는 우리말로 뻐꾹새, 쑥꾹새, 접동새, 꾸꾸기, 풀꾹새로 불린다. 외형상 차이가 있다고 까다롭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게 대수랴. 한자로는 자규(子規), 촉혼(蜀魂), 불여귀(不如歸), 귀촉도(歸蜀道), 곽공조(郭公鳥), 망제혼(望帝魂)으로 불린다.
사람들은 두견새가 봄날 밤 목이 터지게 슬피 울 때, 그 핏방울이 떨어져 핀 꽃이 두견화라고 한다. 영월 청령포에 가면 단종이 유배되어 살던 곳이 있다. 단종을 두견새에 견주어 말하는 사람도 있다. 두견새가 슬픈 원조(怨鳥)인 건 틀림없다.
단종은 '자규시(子規詩)'에서 '두견새 소리 끊긴 새벽 봉우리 잔월이 희고, 피 흐르는
봄 골짜기 낙화가 붉구나(聲斷曉岑殘月白 血流春谷落花紅)'하고 읊었다. 이조년은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銀漢)은 삼경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야 알랴마는'
하고 읊었다. 김소월은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의 혼이 넋이 되어 운다'고 <접동새>란 시를 썼다. 서정주는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리'라는 '귀촉도(歸蜀道)'란 시를 썼다.
그래서 그럴까? 옛날부터 우리는 두견화로 술을 빚어 1백일만에 마신 두견주, 또
진달래꽃 화전, 오미자즙이나 꿀물에 띄운 화채를 즐기었다. 운치있는 옛풍습이다.
두견화 피는 봄 두견새 소리 들으며 두견주 한잔 없을 수 없다. 나는 언제가 E마트 매장에 두견주(杜鵑酒)가 있는 걸 봐두었다. 광교산 안에 외딴 음식점 하나 있다. 진달래 핀 봄에 거기서 두견주 독작하고 달빛 속에 답월(踏月) 하리라. 소복 여인의 울음같이 가슴 아픈 두견새 소리를 들어보리라.
간혹 뻐꾸기 비슷하게 우는 새가 있다. 나는 '꾹꾸 꾹꾸 꾹꾸르르' 하며 마치 누구를 원망하듯 우는 이 새가 뻐꾸긴 줄 알았다. 그런데 여름에 내가 고교 동기들과 운동하는 청담동 족구장에서 울길래 '도시에 웬 뻐꾸기야?'하고 물었더니, 한 친구가 '그건 뻐꾸기가 아니라 산비둘기 울음 소리다' 하고 알으켜 준다. 그래 곰곰히 생각해보니, 뻐꾸기는 고향의 우리 할아버지 논가에 찔레꽃 피는 봄철에 '뻐꾹 뻐꾹' 두 구절로 낭낭히 울고, 산비둘기는 봄부터 가을까지 운다.
전원일기/수지에서(15)
2005년 6월 -아이리스
내가 아이리스(Iris)를 처음 알게 된 곳은 도꾜 황궁의 뜰에서 이다. 거기서 물가에 핀 고결한 청자빛 푸른 꽃을 보았다. 붓꽃의 꽃색은 흰색, 노란색, 자주색, 금색도 있다. 그 중 금색은 금붓꽃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색은 고결한 청자빛이다. 아! 붓꽃이 이렇게 깔끔하고 고결한 멋을 지닌 꽃이던가? 나는 일본 황실이 붓꽃을 선택한 그 안목에 감탄했던 적 있다. 그건 깔끔함의 극치였다. 그 푸른 빛은 세련된 여성의 목에 감긴 스카프를 연상시킨다. 위즈워스는 스콧트랜드 호숫가에 핀 수선화를 시로 승화시켰지만, 나는 붓꽃에서 깊은 영감을 느꼈다.
붓꽃에 개안한 이후 가장 감동적인 만남은 속초 화암사 계곡에서다. 거기 앙증맞게 작은 각시붓꽃이 있었다. 그건 호사가가 작은 청자화분에 심어 서재 책상머리에 놓기 딱 좋은 크기였다. 앞으로 유망 화훼 품종으로 기대할만 하다 싶었다.
엉뚱하게도 통영 매물도에서 독일붓꽃(German iris) 알뿌리를 구해온 적 있다. 그것은 양재동 화훼센터에 딱 하나 있는 붓꽃 파는 집에서도 구하기 힘든 고급 품종이었다.
여행 중에 그 무슨 횡재랴! 노지에 무더기로 심어져 있길래 한 뿌리 얻어 봉투에 넣어온 것이 기특하게 겨울엔 잎이 파란 채로 월동하더니, 봄에 꽃이 핀다.
독일붓꽃은 일본붓꽃은 크기도 큰 데다 화려한 흰색과 하늘색 자주색 벨벹색 등이 사람 감탄시킨다.
붓꽃을 iris라고 부르는데, '무지개의 여신'이란 뜻이다. 딸아이가 공부하던 이리노이에서
집집마다 뜰에 심어진 붓꽃과 매발톱꽃 보고 반가워 한 적 있다. 그런데 매발톱꽃은 설악산에 자생하여 한국이 원산지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미국 남부라 한다.
첫댓글 붓꽃= i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