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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21. 4. 9.~10.(금,토) - 음력(2. 28.~29.), 일출 06:04~일몰 18:56
●산행지: 수도지맥 2구간 졸업(산제현-청덕교)
●산행코스: 산제현-두무산-두무산신선통시-수포대갈림길-두산지음재-오도산-삼각점봉-봉화대봉-싸리터재-삼면봉-오리재-개금불갈림길-마령재-산불감시초소봉-토곡산-녹대산갈림봉-매화재-만대산-노태산-월미재-지릿재-큰재-시리봉-장승재-좌랑봉갈림길-너릿골산-기미재-솜등산-유천령갈림봉-율원고개-삼면봉-고랑큰음달산-절골봉-부수봉-면계갈림봉-성산-청덕교/말정마을-황강-낙동강
●먹거리: 생수4.5리터, 빵(옥수수꿀호떡, 단팥빵, 띠베패스츄리, 땅콩크림빵), 홀스4, 사탕2, 알마겔3, 홍삼스틱5
●준비물: 쟈켓, 경량우모, 스틱, 헤드랜턴, 구급약, 피부연고, 부직반창고, 마스크3, 충전지2, 충전짹2, 반장갑, 손수건, 수건, 휴지, 우의, 물티슈, 긴팔, 말방울2, 매트, 스패츠, 안대, 귀마개, 양말, 여분의류, 띠지37
●거리: 약 55.4km
●소요시간: 29.19h
●누구랑: 나홀로
●경비: 고속버스21,800, 택시15,900, 저녁32,000, 편의점2,400, 가조모텔30,000, 곰탕8.000, 택시9,600, 버스4,600, 뒤풀이9,000(짬뽕+공기밥), itx31,100
●날씨: 3~18, 그런대로 맑음
●산행경과:
* 4. 9.
- 06:50 : 산제현
- 08:02 : 두무산(1,036.2m)/삼면봉(거창 가조면, 합천 가야면→묘산면)
- 09:43~55 : 오도산(1,120.1m)/삼면봉(합천 묘산면, 거창 가조면→합천 봉산면)
- 11:10 : 봉화대터(682.2m)
- 11:50 : 싸리터재
- 13:32 : 삼면봉(묘산면, 봉산면→합천읍)
- 14:09 : 오리재
- 15:30 : 마령재
- 17:29 : 토곡산(644m)
- 18:03 : 녹대산갈림봉/ 삼면봉(합천군 합천읍, 묘산면→고령군 쌍림면)
- 18:10 : 매화재
- 18:32 : 만대산(688m)/ 삼면봉(고령군 쌍림면, 합천군 합천읍→율곡면)
- 19:22 : 노태산(498m)
- 21:06 : 지릿재봉(307.4m)
- 21:20 : 지릿재
- 21:53 : 큰재
- 22:14~02:20 : 휴식
* 4.10.
- 02:34 : 시리봉(408m)
- 02:58 : 장승재/ 삼면경계면(고령군 쌍림면, 합천군 율곡면→쌍책면)
- 04:00 : 좌랑봉갈림길
- 04:14 : 너릿골산(278m)
- 04:50 : 기미재
- 05:42 : 솜등산(270.5m)
- 06:03 : 유천령갈림봉/삼면봉(합천군 쌍책면, 고령군 쌍림면→덕곡면)
- 07:05 : 율원고개
- 07:27 : 삼면봉(쌍책면, 덕곡면→청덕면)
- 07:35 : 고랑큰음달산(230.8m)
- 08:41 : 절골봉(265.6m)
- 09:13 : 부수봉(332.9m)
- 09:36 : 면계갈림봉(쌍책면→청덕면)
- 09:42 : 필봉(327.5m)
- 11:17 : 성산(250.7m)
- 11:30 : 청덕교
- ??:?? : 낙동강합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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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간거리
- 산제현~기미재 40km
- 산제현~마령재 20.6km
-. 산제현~싸리터재 12.3km
- 싸리터재~지릿재 20km
-. 싸리터재~마령재 8.3km
- 마령재~기미재 18.8km
-. 마령재~지릿재 12.6km
- 지릿재~미곡천합수점 23.7km
-. 지릿재~기미재 8km
- 기미재~청덕교 15.4km
-. 기미재~율원고개 4.7km
* 사전 정보 및 식수 공급처
- 산제현에서 거창휴게소 1.8km(왕복 3.6km)
- 가조모텔: 055-943-8009
- 거창 가조면 택시: 개인택시,010-3854-5125, 콜택시,055-942-1231~2, 943~1231
- 합천 묘산면 택시:
- 합천읍 택시: 055-931-2757, 933-5555
- 마령재 내려서기 전 우측으로 약 200m 아래 화엄사 절 있음.
- 기미재: 매점 영업 안함, 대원휴게소
- 고령군 택시: 054-956-1116, 954-1234
- 청덕교~낙동강합수점 1.5km (미곡천 합수점 지남)
- 청덕 양진리 적교 개인택시: 055-932-8604
- 적교장, 도일장, 강변모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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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산제현 가는길
- 동서울터미널~거창 ~15시, 17:10, 19:10, 3.30h, 28,400
- 남부터미널~거창 07:30~16:10, 18:10, 23시, 3.30h, 24,000
- 거창시외버스터미널(서흥여객)~산제현 06:50~19:30, 0.30h
* 거창 서흥여객버스터미널: 055-944-3720
- 거창읍-가야면 왕복 버스 (산제현 하차)
* 청덕면 말정마을에서 초계, 합천 버스시간
- 서흥여객 합천영업소: 055-931-2467
- 미곡~초계 버스: 07:20, 10:00, 12:20, 15:50, 17:50 (운봉 출발시간표)
* 합천에서 서울 올라오는길
- 합천시외버스터미널~남서울, 13, 15:30, 17시, 32,400~42,100, 4.20h
* 고령터미널~남서울 17:25, 3.55h, 3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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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분수령 원칙은 신경준의 산경표시절 정맥 개념에만 적용된 원칙입니다.
그 이하 기맥과 지맥에도 그 원칙을 적용하려 하는건 산자분수령 원칙을 과잉확장한 확장해석의 오류입니다.
산줄기가 물을 가르는 산자분수령원칙은 맞습니다. 그러나 모든 산줄기는 정확히 합수점을 향해야 한다는 말은 사실과 다릅니다. 신경준의 산경표는 정맥 개념에 적용되어 정맥의 끝지점을 입해처로 한다고 정했습니다. 정맥의 입해처와 지맥의 합수점은 엄연히 다릅니다. 지맥에도 산자분수령 원칙을 적용한다면 몇몇 지맥이 합수점으로 향할게 아니라 모든 지맥이 합수점으로 향해야 원칙이랄 수 있습니다. 원칙이란 제반 모두에 한꺼번에 미치는 것이기 때문이죠. 일부를 가지고 전부라고 주장하는 것은 마치 바다와 강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와 같습니다.
수도지맥의 끝이 황강과 낙동강의 합수점으로 가지 않는다며 이의를 제기하는 분들이 계시다죠.
뒤끝 정리는 머리로 이해하면 됩니다.
(70년대 제방공사 이전에는 청덕교까지 낙동강물이 밀려올만 하게도 보이던걸요.^^)
굳이 어거지로 지맥의 산줄기를 합수점으로 견강부회를 해 산꾼들을 이간시키고 혼란에 빠뜨릴 문제는 아니거든요. 그 때문에 홀대모에서 이해충돌을 겪고 홀산이 떨어져 나갔다지요.
그럼에도 지맥의 물줄기가 합수점을 향해야 한다며 산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소모전을 치르게 만드는 배경에는 다른 목적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산은 명예를 추구하는 대상이나 사익을 추구하는 방편으로 이용될 수 없음에도 영악한 누군가에 의해 이용되려는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합수점을 주장하는 그 분들은 원하시는 대로 유명세를 얻었나요?
외려 정맥은 입해처로 향해야 한다는 원칙을 정하고도 정작 당대 산경표에서 마저도 일치시키지 못한 미완성을 완결한 걸작이 신 산경표입니다.
신 산경표 162지맥 중에 마지막 산줄기가 합수점을 향하지 않은 지맥이 몇개나 됩니까. 오히려 신 산경표의 지맥과 기맥이 있기에 합수점을 주장하는 이론이 파생된 겁니다. 자그마한 차이도 머리로 이해하지 못하고, 산경표의 합수점이론을 임의대로 확장 적용하여 마치 신 산경표에 필적하는 새로운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신 산경표를 이용해서도 안되는 겁니다.
저는 그 이론 덕분에 물줄기와 산줄기를 좀 더 자세히 이해하는 선에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수도지맥 2구간을 시작하며 가조에 가서 자축 생파를 하고 싶었습니다.
가조면에 일찍 도착하여 주변 산세에 대한 궁금증부터 풀었답니다.
뾰족한 박유산, 탕건봉, 면사무소 뒤편의 장군봉, 미인봉과 숙성산, 그리고 비계산 지인봉이 밤하늘의 별을 한군데로 모아 가조들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물 보급처가 없어 4.5리터를 지고 시작했더니 등짝이 뻐근합니다.^^
싸리터재까지 4리터를 온전히 모셔가 의문의 일패를 당했는데 싸리터재에서 물냄새를 맡았기 때문이죠.
기미재에서 노박하리라던 계획을 변경해 큰재에서 올라선 산불감시초소에서의 휴식은 신의 한수가 되기도 했답니다. 기미재는 너무 추워 입돌아갈 뻔 했네요.
청덕교에서 말정마을로 들어간 버스를 기다리는데 어느 고마운분께서 따오기다리인 합천-창녕보를 건너 산토끼마을 창녕 이방까지 픽업해주셔서 대구서부터미널로 들어왔고, 대구역으로 옮겨 ITX를 탔습니다. 현풍으로 나오다 우연히 마주친 조화봉의 비슬산강우레이더관측소 다음엔 얘를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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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령군(高靈郡)
고령군은 경북 서남부에 위치해 있는 군으로 군청 소재지는 대가야읍이고, 고령군의 행정 구역은 1읍 7면이다. 또한 과거 대가야가 소재해 있던 지역이다. 경북의 최남서부에 위치하여 경남 합찬군과 인접하고 있으며, 수도지맥의 여맥이 뻗쳐 서쪽에는 문수산(文壽山), 미숭산(美崇山)이 솟아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낙동강의 본류는 군의 동쪽 경계를 곡류하면서 대략 군의 중앙을 남류하는 대가천, 소가천과 북류하는 안림천을 중앙 부근에서 합치고, 남류하여 낙동강에 합류하는 회천(會川)이 있다. 낙동강 서안과 이들 지류의 유역에 좁은 평야가 있고 옛날에는 수운이 좋았다. 고령 박씨 등의 성씨들이 고령군을 관향으로 하고 있다. 삼국시대에 대가야국의 도읍이었으므로 지산동·고아동·본관동 등지에는 가야시대의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다. 김해의 금관가야(金官加耶, 본가야)가 쇠퇴한 뒤 가야연맹의 맹주로서 세력을 떨쳤으나 562년 신라 진흥왕이 파견한 이사부와 사다함의 공격을 받고 멸망했다. <삼국사기> 지리지, <대동지지> 등에 의하면 시조 이진아고왕으로부터 도설지왕까지 16대 520년간 존속했다고 되어 있다. 대가야 멸망 후 신라는 이곳에 대가야군(大加耶郡)을 두었으며, 757년에 고령군으로 개칭하여 강주(康州, 진주)에 소속시켰다. 고려시대 들어 1018년에는 경산부(京山府, 경주)에 소속되었다. 조선시대에는 1413년에 현감이 설치되어 큰 변화없이 유지되었다. 1895년 지방관제 개혁으로 고령군이 되었고, 1896년 경상북도에 소속되었다. 1906년 성주의 두입지 9개면이 성주로부터, 그리고 현풍의 비입지 3개면이 현풍으로부터 편입되어 행정구역이 대폭 확대되었다. 고령의 별호로는 고양(高陽)·영천(靈川) 등이 있었다. 1975년 고령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2015년 고령읍의 명칭을 대가야읍으로 변경했다. 동쪽은 낙동강이 군계를 따라 곡류하며, 서쪽은 가야산 줄기의 북두산(688m)·미숭산(757m)·만대산(688m) 등이 솟아 있다. 낙동강 유역에 자리하여 300m 이하의 구릉지가 대부분이며, 곳곳에 의봉산(540m)·제석산(387m)·사월봉(380m) 등이 솟아 있다. 이들 산지 사이로 대가천·소가천·안림천 등이 흐른다. 군의 중앙을 남동류하는 대가천은 고령읍 본관리와 고아리 일대에서 각각 소가천과 안림천을 합류하여 낙동강에 흘러든다. 평야는 이들 하천 연안을 따라 소규모로 발달했으며, 낙동강 서안의 곡구 부분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특히 낙동강 연변의 다산·성산·개진·우곡 등 4개면은 과거에 상습 수해지구였으나, 1970년대초에 완성된 호안공사와 양수장·배수장의 설치로 그 피해가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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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제치에는 버스가 서지 않지만 보이면 불러 세워야겠죠.^^ 게스트 하우스는 언덕 너머 150m,, 물이라도 얻을 수 있을지는 정보가 없네요.
♤ 산제현(山際峴, 580m)/ 산제치/ 1084번 도로
산제현은 경남 거창군 가조면 도리와 합천군 가야면 성기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다. 북쪽의 비계산(1,130m)과 남쪽의 두무산(1,036m) 사이의 능선에 형성된 고개이며 고개 북쪽으로 88올림픽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합천터널이 있다. 조선시대 사료에서 산제현을 찾기는 어려우나 『광여도』(거창)에 읍치 동쪽 상가남면과 합천의 경계부에 산제동험액(山際洞險阨)이 묘사되어 있고, 『조선지지자료』(거창)의 상가 남면에 대학동 동쪽 가에 있는 산으로 (山峴)이 수록되어 있다.
- 대학동 산제치는 동쪽 59번 도로와 서쪽 1084번 도로가 갈리고, 아델스코트 게스트하우스로 진입하는 도로가 고개 옆으로 나 있다. 1971년에 공병단이 길을 뚫었다는 준공기념비와 아델스코트 CC 표석이 있다.
- 거창 휴게소를 지나 가조면 온천지구에 모텔이 많고, 하나로마트와 음식점도 있으니 가조택시를 불러 이용할 수도 있겠다.
합천 묘산면 산제리에서 거창군 가조면을 넘나드는 고개라 산제현이라는 명칭이 붙었는듯 합니다.
♤ 합천군 묘산면 산제리
두무산에서 남쪽으로 뻗어나온 산줄기의 끝자락에 위치한 산간마을로서 비교적 낮은 고도에 자리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지대가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산제, 다물, 새터마을 등이 있는데 산제마을은 산지라고도 불리며 오도산 밑에 위치한다 하여 불리워진 이름이고 다물마을은 다물(담불)이 많다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으며 새터마을은 새로 된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예전에 합천군 숭산면 지역으로서 옛 성터가 있으므로 성터, 또는 성기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산재동, 상두동, 하두동을 병합하여 성기리라 하였다. 현재 성기리는 성터, 나부골, 하두, 상두동, 점터 등 다섯개의 자연마을로 형성되어 있으며 성터 뒤에는 비계산과 남에는 오도산이 있고 거창군 가조면과 접경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골프장 아래로 국도보다도 못한 88고속도로가 지나간다.
두무산 정상은 갈림삼거리에서 좌측으로 20m 정도 비켜나 있습니다. 50m 정도 더 가면 전망좋은 바위가 나옵니다.
♤ 두무산(斗霧山, 1,036.2m)/ 두모산(豆毛山)/ 삼면봉(거창군 가조면, 합천군 가야면 → 합천군 묘산면)/ 합천3등삼각점두무산은 경남 거창군 가조면과 합천군 묘산면ㆍ가야면 사이에 위치한 산이다. 1,000m 가 넘는 산봉우리에 항상 안개가 끼여 있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또 정상 일대가 두루뭉실하여 「두문산」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북쪽의 비계산과 산줄기가 이어지고, 남서쪽으로 오도산(1,134m)이 우뚝 서 있고 그 뒤로 숙성산(899m)과 합천호가 있다. 오도산 오른쪽에는 여인이 머리를 풀고 누워 해산하는 형상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미녀봉이 가파르게 솟아있다. 조선시대에는 두모산(豆毛山)으로 불려왔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합천)에 "두모산(豆毛山)은 오두산 북쪽에 있다."라고 하였으며, 『여지도서』(합천)에도 "두모산은 오두산 북쪽에 있다. 주맥은 가야산에서 시작한다."라고 하였다. 한편 『조선지형도』(가야산)에는 두무산(斗霧山)으로 기재되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현재 지명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 두무산 신선통시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로 이곳을 신선통시라 한다. 두무산 신선이 이 통시에서 합천군 묘산 쪽을 바라보며 큰 일을 보니, 바라보는 묘산에는 신선을 닮아 인물이 많이 나고 뒤로하는 거창 가조에는 농토가 비옥하여 부자가 많이 난다고 한다.
수포대 가는 이정표를 보고 90도 우틀해야 해요. 직진하면 알바~ 급경사 내리막에 등산로 정비를 했던데 그 바람에 띠지도 몽땅 사라져 몇 개 주워다 세웠습니다.
♤ 수포대(水泡臺) 갈림길 이정표(↓두무산 1.7km, ↑오도산 1.7km, 수포대 2.5km→ )를 지난다.
수포대는 거창군 가조면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6㎞되는 곳, 오도산 깊숙한 골짜기인 산제치 남서쪽에 있다. 오도산의 영봉을 지붕으로 삼아 그 주위에 전개되는 산수풍경은 천하절경이라 할만한데, 뾰족한 오도산에서 발원한 물은 북쪽으로 깊숙한 산골짜기 산자락을 적시며 크고 넓은 화강암반 수포대와 소를 만들고 그 위를 도란거리며 흘러넘친다. 점필재 김종직(金宗直) 선생의 수제자인 동방오현 중 두분인 일두 정여창(鄭汝昌)과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이 평촌공(坪村公) 최숙량(崔淑梁)과 함께 수포대에서 5년간이나 강학하며, 당시의 신학문인 성리학을 향토 선비들에게 전하며 자연을 노래한 유서 깊은 명소이다. 두 거목들이 평촌리의 최숙량과 함께 베푼 학문의 영향으로 산이름이 ‘오도’(吾道)로 바뀌고 마을 이름을 ‘대학동’(大學洞)이라 하였다. 수포대 입구에 있는 모현정(慕賢亭)은 1898년(광무 2) 김굉필, 정여창, 최숙량 등 3현을 추모하기 위하여 평촌공의 후손과 유림들이 건립하였다.
♤두산지음재(680m)
거창군 가조면과 합천군 묘산면을 잇는 고개로, 남쪽 묘산면 산제리 쪽으로 뻗은 골짜기가 ‘두산지음골’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미녀봉(931m)
미녀봉 능선은 그냥 일반적인 산 능선에 불과하지만, 가조들판에서 남쪽으로 보면, 마치 만삭의 여인이 머리를 뒤로 헤쳐 풀고 누워 있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미녀봉에는 두 가지 전설이 있다. 옛날 바다였던 이곳에 장군이 탄 나룻배가 표류하자 옥황상제가 딸을 지상으로 보내 구하고자 했다. 장군은 딸과 사랑하게 되었고, 그런 딸을 보고 노한 옥황상제는 너희 둘은 영원히 산으로 화해 누워 있으라는 형벌을 내렸다고 한다. 다른 한 전설은 아래 예쁜 처녀가 어머님의 병을 고치기 위해 미녀산에만 있는 약초를 캐기 위해 왔다 뱀에 물려 죽자 가련히 여긴 산신이 죽은 처녀의 모습대로 만든 산이 미녀봉이라 한다. 88고속도로 인터체인지에서 바라보는 미녀봉 그림은 참으로 감탄스럽기 그지없다. 잘 다듬어진 이마, 세련된 화장술로 그려낸 듯한 눈썹, 오똑한 코, 힘겨워 헤 벌리고 있는 입, 봉긋 달덩이처럼 솟아오른 젖가슴, 아이를 잉태한 듯한 볼록한 배 등, 산봉우리들이 모여 하나의 아름답고 고운 여인 형상을 빚고 있음이다. 창날처럼 우뚝우뚝 솟은 오도산으로 발을 뻗고 숙성산을 향해 긴 머리카락을 흘러내리며 누워있는 모습은 신비롭다. 미녀가 뻗은 발을 무뚝뚝하게 내려다보는 두무산, 미녀 무릎 옆에 앉아 명상에 잠긴 오도산, 미녀 머리 위로 날아오르는 비계산, 멀리서 지켜보는 근엄한 의상봉, 우뚝 서서 호위하는 늠름한 장군봉 등이 주위를 완벽하게 장식해 미녀산을 눈부시게 만든다. 미녀산 속에 널려있는 선바위, 음양석 등 성신숭배 사상이 엿보이고, 산 전체가 하나의 여체로 만들어져 성적 호기심을 자아내게 만든 것은 거창 미녀산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 정상은 머리 부분이 아니고 동쪽 미녀의 배에 해당하는 931m 봉우리다.
합천호와 황매산의 전망이 좋은 전망대에 망원경도 있고 화장실도 있습니다. 군부대가 있다가 철수했다는 kt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통신철탑 앞에 제단이 설치된 정상석이 있습니다.
♤ 오도산(吾道山, 1,120.1m)/ 천촉산(天燭山)/ 오두산(烏頭山)/ 삼면봉(합천군 묘산면, 거창군 가조면 → 합천군 봉산면)
오도산은 경남 거창군 가조면 도리와 합천군 묘산면ㆍ봉산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북동쪽에 두무산(斗霧山), 북쪽에 비계산(飛雞山), 서남쪽에 숙성산(宿星山, 898.9m) 등과 더불어 가야산의 산각(山脚)을 이룬다. 북서 사면은 황강(黃江)의 상류인 지산천(知山川)ㆍ가천(加川)이 침식한 분지와 연속된다. 오도산은 도선국사가 깨달음을 얻었던 곳으로 숙성산 정상에서 이 산을 보면서 산의 기운과 형상에 도취되어 꼬박 일주일을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본 주민들이 도선이 잠든 것이라 여겨 숙성산 정상을 성수단(聖睡壇)이 된 것이라고 전해진다. 도선국사가 도취될 만큼 이 산에는 지실골, 한시골, 폭포골, 두오골 등 맑고 깊은 계곡이 포진해 있어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깊이를 더하는 산이다. 골짜기는 오도산, 미녀산, 숙성산에서 흘러내리는 물들을 모아 수량이 풍부하다. 원래 이름은 '하늘의 촛불' 이라는 뜻의 「천촉산(天燭山)」, 혹은 까마귀 머리처럼 산꼭대기가 검다고 해서 「오두산(烏頭山)」이라 불렀다. 또 수포대를 품은 산으로 자라와 관계된 「오대산(鰲戴山)」이라 하여 ‘기러기포구에 자라처럼 우뚝 솟은 산’으로 표현했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오두산(烏頭山)이라 표기되어 있는데, 『합천군지』에는 "한훤당 김굉필(金宏弼)과 일두 정여창(鄭汝昌) 선생이 계곡에 소요하면서 유도(儒道)를 진작시킬 상징으로 '오도동(吾道東)'이라고 하면서 지금 이름으로 명명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 1982년 한국통신이 오도산 정상에 중계소를 설치하면서 오도산 정상을 약 12m나 깍아내는 바람에, 정상의 고도가 1,134m나 1,120.1m 등으로 상이하게 표기되고 있는데, 중계소 설치를 위해 만든 도로를 일반인들이 승용차로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일출(동쪽), 일몰(서쪽) 포인터는 전국에서 찿아오는 사진작가들로 인산 인해를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 오도산은 마지막 한국 표범과 관련된 산으로, 1962년 2월 오도산 정상 부근 [주춤바위 부근으로 추정]에서 오도산 입구 가야마을에 살던 황홍갑씨(1923년생, 사망)가 노루사냥을 위해 설치한 덫에 걸린 1년생 수컷 표범 한마리를 생포하여, 서울 창경원 동물원에 기증하였고, 이후 11년 5개월 동안 한표(韓豹)라는 이름으로 산 마지막 동물원의 한국 표범이 되었다.
수도지맥은 오도산을 마지막으로 1,000m급 산도 없고 명산도 찾을 수 없습니다.
♤ 삼각점봉(1,067m)/ 1등삼각점
삼면봉이기도 한 오도산 봉우리에서 우측이 거창군 가조면에서 합천군 봉산면으로 들어서서 온전히 합천군 안을 지나게 된다.
- kt통신중계기 옆에서 도로가 우측으로 휘어져 대부분 그냥 도로따라 진행한다지만, 직진 숲길로 올라 약간 진행하면
국가지점번호(라마 5171 4192)가 산림보호용 무선중계기 통신시설물 앞에 1등삼각점이 있다.
♤ 숙성산(宿星山, 907m)/ 소현산/ 봉수대
경남 거창군 가조면 기리와 합천군 봉산면 압곡리 사이에 위치한 산이다. 북쪽이 오도산에서 산줄기가 남서쪽으로 이어져 숙성산이 되며 서쪽으로는 가천이 남쪽으로 황강에 흐른다. 숙성산 지명과 관련해 옛날 도선국사가 별을 보고 방향을 잡았던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도선국사가 별을 보며 점을 쳤던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옛날 이 산 별이 떨어졌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조선시대 사료에서 숙성산을 찾아보기 어려우나 조선지형도의 합천편에 숙성산으로 기재되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지명이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 봉화대봉(682.2m)
어지럽게 돌들이 흩어져 있다. 봉화대봉에서 좌측으로 내려선다.
♤ 권빈(勸彬)마을
권빈이란 동명(洞名)은 함안 조씨와 김해 김씨가 새로 이곳에 터를 잡은 후, 관직(官職)을 버리고 방랑하던 전주 이씨(全州李氏) 한 분(전설에 의하면 효령대군 후손이라함)이 이곳을 지나치는 것을 보고 전착하여 같이 살자고 권하였다고 해서 권빈(勸賓)이 되었는데, 후에 빛날 빈(彬)자로 바꾸어 勸彬이 되었다. 동쪽은 살태재가 있어 묘산면과 경계를 이루고, 남쪽은 깨곡재와 도치골 · 저어실곡 · 통시곡 · 굴바곡 등 지명이 있다.
수도지맥은 싸리터재까지는 전반적으로 길이 좋은 편이나 이후로는 산객의 발길이 뜸하고 맥꾼들이나 다니기에 잡목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남도 악명높은 지맥에 비한다면 양반길입니다.
♤ 싸리터재/ 살티재/ 권빈재/ 26번국도
경남 합천군 봉산면 권빈리와 묘산면 반포리 사이의 재로 24번과 26번 도로가 지난다. 근동 마을에서는 「살태재」라 부르는 재로, 지도에는 「싸리터재」로 바뀌어 적고 있어서 지금은 지명이 싸리터재로 굳어버렸다. 반세기 전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권빈재」라 하여, 좁고 꼬불꼬불한 비포장 산길 신작로로 다니던 버스가 골이 깊은 고개 마루에서 더러 굴러 떨어져 줄초상이 나기도 했던 곳이었다.
- 전국 제일의 / 내륙호반 봉산면」 표지석이 있다. 도로 건너 양회임도 좌측 절개지 위로 이어지는 수레길이 들머리다.
- 거창행 버스가 정차하지 않아 인근 권빈마을까지 걸어가야 하나 버스가 보이면 세울 수 있다.
헬기장에서 7분여 진행하면 소나무를 세워 쌓아놓은 삼면봉이 나옵니다. 여기서 마루금은 직진의 인덕산 가는 등로를 버리고 좌틀하여 내려서야 합니다.
♤ 삼면봉(568.1m)/ (묘산면, 봉산면 → 합천읍)
지금까지 좌측 합천군 묘산면, 우측 합천군 봉산면을 가르며 이어져 온 맥길은 이 봉에서 좌측으로 꺾이면서 우측이 합천읍으로 바뀌어, 계속하여 남동향으로 이어지다가 묘산면 극남점에서 동북향으로 바뀌어 이어지게 된다.
- 이 봉에서 우측 봉우리 방향으로 나가면 상두재와 두리터재를 지나 인덕산(647.7m)과 논덕산(545.4m)으로 이어지는데, 정신줄 놓고 무심코 진행하다 보면 이 방향 능선으로 들어서기 쉽다.
- 묘산면 최남단 지점인 478m봉을 지나, 지금까지 남동향으로 이어져 오던 능선길에서 북동향으로 방향을 바꾸어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고도를 높여 오리재로 향한다.
♤ 오리재(497m)
오리재는 합천군 묘산면 팔심리에서 합천읍 인곡리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지금은 인적이 끊겨 호랑이가 나올것 같다.
- 권빈재/ 살티재에서 4.8km 지점이다.
♤ 합천군 묘산면
경남 합천 묘산면은 합천군 북서부에 있는 면으로 전체적으로 남서쪽이 높고 북동쪽이 낮은 지세이다. 묘산천이 산지에서 발원한 계류들을 받아들이고 북동쪽으로 흘러 야로면으로 들어가며 거창과 고령을 연결하는 국도가 하천의 방향과 나란히 남서에서 북동 방향으로 놓여 있다. 특히 북쪽에는 두무산과 오도산 등이 솟아있어 험준한 산지를 이루어 골이 깊고 농경지는 매우 소규모로 분포하는데 조선시대에는 거을산면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큰 산이 많은데서 붙은 지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1914년 거을산면에 심묘면, 현내면 2개 동리, 산어면 1개 동리가 합쳐져 묘산면이 되었고 심묘면과 거을산면에서 한 글자씩 빌려 조합한 것이다. 현재 면소재지인 산제리를 포함하여 11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지리적 위치와 관련되 지명이 많다. 산제리는 오도산 밑, 광산리는 화성산 밑, 거산리는 토곡산 밑, 팔심리는 상투재 밑이라는 지리적 위치에서 각각 유래하였고 관기리는 심묘면의 관 터에서, 도옥리는 옛 질그릇 굽던 터에 기초하고 있다.
♤ 합천군 묘산면 팔심리(八尋里)
팔심리는 경남 합천군 묘산면 서남쪽 끝에 있는 리(里)로 대부분의 지대가 산지로 이루어져 있는 산간 마을이다. 비교적 높은 고도에 자리하고 있으며, 서쪽에서 동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낮아지는 지형이다. 자연마을로는 띠밭마, 팔심, 진밭골 마을 등이 있다. 띠밭마 마을은 띠밭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팔심 마을은 팔시미라고도 불리며 상투재 밑에 위치한다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진밭골 마을은 긴 밭이 있다 하여 불리워진 이름이다.
간판인가 횡단막 같은게 있다는데 못 보고 지나쳤네요.
♤ 개금불 갈림길/ 봉곡리캠핑장/ 작은 마령재
야영,캠핑장으로, 합천군 묘산면 봉곡리 330번지(봉곡1길 24-11)에 위치하고 있다. 넓은 캠핑장에 12팀만 받는 조용한 캠핑을 지향한다. 원래는 집안 식구들만을 위한 휴양지로 꾸몄다가 캠핑 사업을 시작했다 한다. 그리고, 두 분의 사장님 중 한분이 음악과 관련한 일을 하고 있어서 정기적으로 연주회도 개최한다고 한다.
♤ 합천읍 장계리
장계리는 경남 합천군 합천읍에 있는 마을로 뒤로는 산이 있으며 도로변에 위치한 농촌이다. 자연마을로 장계와 남암이 있는데 장계는 본동을 비롯하여 내기동과 육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계는 마을 앞에 인덕산에서 합천으로 긴 시내가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내기동은 안터라고도 부르며 마을 뒷산에는 아주 오래된 절터가 있는데 옛적에 장계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육정은 마을 주변에 정자나무 여섯 그루가 있어 육정으로 불렸는데 그 중에 한 그루가 지금도 마을 어귀를 지키고 있다. 남암은 백옥, 남옥, 넘실로 이루어져 있는데 백암은 뒷산에 힌 바위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좌측으로 지나온 두무산과 오도산의 지맥 마루금이 희미하게 올려다 보이고 묘산면의 사리마을도 내려다 봅니다. 잡목이 우거진 512.3m 삼각점봉을 지나 마령재로 내려섭니다.
♤ 마령재(330m)삼거리/ 버스정류소
합천군 합천읍 외곡리와 묘산면 광산리를 연결하는 24번과 1034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가는 삼거리로 이곳 산의 형태가 말처럼 생겼다고 하여 마령재라 하며 수준점표지판과 남실마을 입석에 세워져 있다. 도로에서 맞은편으로 분기되는 도로는 장계리 장계저수지와 연결되는 도로다.
- 마령재 버스정류소 맞은편 합천경찰서 안내판과 전봇대 사이 숲길이 들머리다.
함 가보겠다고 지도를 열심히 디다봤는데도 언제 지나쳤는지... ㅜㅜ
♤ 산불감시초소봉(602m봉)
토곡산 직전에 있는 무명봉으로, 평범한 능선에 있는 갈림삼거리에서 기맥은 우측으로 휘어져 밋밋하게 이어지는데, 좌측 50~60m 정도 맥길에서 벗어난 산불감시초소봉이 훌륭한 조망대로, 산불감시원이 만든 나무 의자와 그네까지 있다고 한다. 그네에 앉아 멀리 가야산부터 이어온 지맥은 물론이고 황매산으로 이어져 나가는 진양기맥과 합천 언저리의 산들을 조망하며 여유를 즐길 수 있다.
♤ 토곡산(吐谷山, 644m)
경남 합천군 합천읍과 표산면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토곡산의 이름은 가야문화의 영향으로 산의 계곡 등에서 그릇을 만들던 옹기터가 많다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비좁은 정상에는 몇 개의 바위가 산재되어 있는데 정상석도 없고 조망도 없으며 산벚나무 가지에 토곡산이라는 이정판만 매달려 있다.
♤ 녹대산갈림봉(564m)/ 삼면봉(경남 합천군 합천읍, 합천군 묘산면 → 경북 고령군 쌍림면)/ 도계
녹대산 갈림봉은 삼면봉으로 지금까지 좌 묘산면, 우 합천읍으로 이어져 오던 등로가, 좌측이 합천군에서 고령군 쌍림면으로 바뀌어 남동향하게 된다. 즉 이 봉에서 가야산 앞의 두리봉에서 헤어졌던 경남북 도경계를 다시 만난다.
- 기맥길은 우틀로 내려서서 매화재를 향한다.
- 만대산에 대한 「한국지명유래집 경상편」의 기술에 따르면, 녹대산분기봉이 만대산으로 표시되어 있는 듯하다. 즉 “만대산(萬代山, 688.7m)은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산주리와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ㆍ 묘산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에서 합천읍과 묘산면 경계라면 이 곳 녹대산분기점인 것이다. 그러나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나 개념도에는 동남쪽으로 약 0.9km 내려선 또 다른 삼면봉(고령군 쌍림면, 합천군 합천읍, 율곡면)을 만대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갈림봉에서 알바하면 이 녹대산 봉우리를 만나게 됩니다.
♤ 녹대산(鹿臺山, 509.9m)/ 삼면봉
경북 고령군 쌍림면 산주리와 경남 합천군 야로면 및 묘산면에 걸쳐있는 산이다. 숲이 많이 우거져 녹대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녹대산의 남쪽에는 만대산이 위치하고, 남동쪽으로는 노태산이 연결되어 있는데 노태산에서 만대산과 녹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경남북의 도계이고 안림천의 남쪽 분수계 역할을 한다. 녹대산의 동쪽 기슭에는 묘성암이 자리잡고 있으나 조선시대 지리지와 지도에는 녹대산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 매화재(530m)/ 매징이재
만대산(萬代山)에서 녹대산으로 700m 정도 북서쪽에는 해발고도 530m 정도의 매화재가 있다. 이 매화재는 과거에 고령군 쌍림면 산주리와 신촌리 지역 사람들이 합천군 합천읍 용계리를 오가는 교통로 역할을 하였으나 현재는 등산로로만 이용되고 있다. 매화재 유래는 옛날에 어느 풍수가가 이 고개는 매화꽃이 떨어지는 형상이라 한데서 연유하여 매화재로 불리우다가 어음변화로 매징이재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매화재는 동쪽으로 지릿재를 통과하는 33번 국도가 개설되면서 고개의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 고령군 쌍림면 산주리(山州里)
산주리는 경북 고령군 쌍림면에 속하는 법정리로, 본래 고령군 상동의 지역으로서 '큰산(만대산) 밑 골짜기 마을'이라 하여 산골 또는 산주, 산촌이라 하였다. 만대산이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고령군에 있는 대부분의 마을 이름이 -동, -리로 되어 있는데, 산주만은 ‘고을 주(州)’자를 썼다. 그 이유는 옛날 적화현이 지금의 경남 합천군 야로면 중심이었을 때, 신라와 백제가 전쟁을 하면서 잠시 이곳으로 적화현을 옮겼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라고 여겨진다.
♤ 만대산(萬代山, 688.7m)/ 가점산(可岾山)/ 삼면봉(고령군 쌍림면, 합천군 합천읍 → 합천군 율곡면)/ 고령신씨 시조묘
만대산은 경북 고령군 쌍림면 산주리와 경남 합천군 합천읍· 묘산면(실제는 율곡면이다)에 걸쳐 있는 산이다. 만대산은 동쪽으로 노태산· 시리봉과 연결되며, 북쪽으로 녹대산과 이어져 있다. 만대산의 북쪽 사면에서는 묘산천에 합류하는 계류들이 발원하는데, 묘산천은 부레마을에서 가야천과 합류하여 안림천으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만대산은 철쭉 군락지로 유명하여 봄철에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만대산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처음 등장하며, 가점산이라고도 하는데, 현의 서남쪽 34리에 있다."라고 쓰여 있다. 『해동지도』, 『조선지도』 등에는 만대산이라고 기재되어 있으나, 『대동여지도』에는 가점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만대산은 합천과 고령 경계에 있지만 합천보다는 고령 만대산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만대산은 명당으로 유명하여 고령신씨 시조묘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곳은 소위 '등잔설'의 명당으로 등잔 바로 아래는 어둡지만 등잔은 멀리 비추므로 고령신씨 시조묘가 있는 산주리에는 정작 신씨들이 거의 살지않고 대부분 외지에 산다는 것이다. 산 이름은 산의 북쪽 기슭에 있는 고령 신씨(高靈申氏) 시조이자 신숙주(申叔舟, 1417~1475)의 선조인 신성용(申成用)의 묘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고령 신씨가 이 산에 시조 묘를 쓰면서 만대(萬代)에 걸쳐 영화(榮華)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만대산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전해진다.
- 정상에는 울타리가 쳐진 컨테이너박스가 있었다 하고, 합천24, 2등삼각점이 있다.
- 만대산-노태산 구간에 알바가 잦다. 굴뚝봉을 지나 헬기장에서 완만하게 내려가다 벤치 두개가 설치되어 있는 545.5m봉 쉼터에 도착한다. 이윽고 나무 계단을 따라 진행하다가 임도를 따라가지 말고 잡목이 무성한 길도 없는 곳으로 우틀해야 한다. 이후 줄줄줄 흘러내리는 급내리막이 기다린다.
♤ 노태산(魯泰山, 498.4m)/ 점필재 김종직
노태산은 경북 고령군 쌍림면 산주리와 경남 합천군 율곡면 노양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 공자의 노나라와 태산을 조합하여 붙인 이름이다. 인근 주민들은 그 산을 녹대산이라 부른다. 노태산이 발음되면서 녹대산으로 굳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근의 녹대산도 그 잔영으로 보인다. 노태산이란 지명이 언제, 누구에 의해 생겼는지 확실치는 않으나 조선시대 공자를 숭모하는 유교 지식인이 이름을 지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심증이 가는 곳은 노태산 지맥의 동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쌍림면 합가리(合伽里) 개실마을이다. 이 마을의 주산인 화개산은 노태산에서 산줄기가 뻗어 나온다. 개실마을은 조선 전기 영남학파의 영수 점필재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이 무오사화에 연루된 뒤, 1651년에 그의 5세손이 은거하면서 세거지를 이룬 유가집단의 정체성이 뚜렷한 마을이다. 한옥이 잘 보존된 지역으로서 경상북도 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되어 있다. 지도상 노태산의 서쪽에는 만대산(萬代山, 688.7m), 북서쪽에는 녹대산(509.9m), 동쪽에는 시리봉(408m)과 연결된다. 시리봉 이후 동쪽으로 솜등산(269.2m), 노구산(325m), 소학산(巢鶴山, 622m)을 잇는 능선은 경북과 경남의 경계 능선으로 안림천의 남쪽 분수계에 해당된다.
- 봉우리 같지않은 평이한 등로이다. 국립지리원지도에는 노태산, 고령군지에는 어태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점필재 선생이 알면 혼쭐이 날 일이다. 노안이 씌였나 노(魯)자와 어(魚)자도 구분을 못하다니...
♤ 월미재(307.6m봉)/ 지릿재봉
영진 5만지도와 개념도에는「월미재」로 표기하고 있으나, 국토지리정보원은 307.6m봉으로만 되어있다. 합천307, 3등삼각점이 설치되어 있고, 맥길은 급우향이다. 서래야 박건석님은 지릿재봉이라 표찰을 붙여놓았다.
- 지릿재 터널 위를 지나 307.6m봉에 도착한다.
예전엔 주유소도 있었다는데....
♤ 지릿재(220m)/ 장현/ 지령
지릿재는 경북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와 경남 합천군 율곡면 와리, 기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고령군에 있는 고개는 산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으로, 도보나 우마에 의지하여 이동하던 고대에는 매우 중요한 교통로로 여겨졌으며 지릿재는 고령과 합천을 오가는 길목 중 가장 중요한 길목에 해당되며 특히 대가야는 미숭산(美崇山, 755m) 주변의 야철지인 다락국(합천)의 철기 제작 집단을 바탕으로 철 교역권을 장악하고 주변 세력을 규합한 집단으로, 다락국과의 철기 교역을 위한 교역로로서 지릿재를 이용하였다. 지리하도록 길고 험하다 하여 지릿재 또는 장현으로 부른다. 가야분지와 합천분지는 큰 산지에 의해 가로막혀 있는데 지릿재, 장승재, 큰재, 매화재와 같은 고개들이 두 지역을 오가는 교통로로 이용되었다. 진주ㆍ사천 등지에서 대구ㆍ구미로 가는 길목이라 현재는 그 아래 새로 뚫린 4차선 도로로 인해 이곳 33번 구(舊) 국도는 통행이 뜸하다. 특히 합천군 율곡면 와리에는 원촌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원촌은 예로부터 합천과 고령을 오가는 길목으로 관원의 행차시 지릿재를 넘어가기 전에 머물다가 가는 원(院)이 있었고, 행인이 쉬어가는 주점도 있어 이 지역의 왕래가 많았다고 전해오고 있다. 교통의 요지일 뿐 아니라 국방과 치안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지릿재가 처음 수록되어 있는 사료는 『1872년지방지도』(고령)의 「지현(芝峴)」으로, 여기에는 고령현 하동면(下洞面) 매촌리(梅村里)에서 하가곡(下加谷)ㆍ점막(店幕) 등을 거쳐 합천으로 가는 고개로 묘사되어 있다. 한편 『조선지지자료』에는 “지령(芝嶺)은 하동면 상가동(上伽洞) 남쪽에 있다”고 쓰여 있다.
- 내고향 율곡면이란 표석이 서있고, 도로따라 좌측으로 조금 걸어가면 등로가 보이는데 그 앞에 경북 고령군 쌍림면이라는 도로표지판도 서있다.
대중교통은 이곳에서 1.5km 거리에 있는 기리까지 내려가면 합천으로 버스가 왕래합니다.
♤ 큰재/ 양회임도
경북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와 경남 합천군 율곡면 기리의 경계능선에 있는 고개로 우측에 전두환 전대통령의 선영이 자리를 잡고 있다. 전대통령 선영은 큰재 내려서기 직전 우측에 전대통령 부친의 묘소가 있는데 둘레석 12간지 동물조각도 무궁화꽃에 양쪽으로 사슴조각 하나씩 있으며 비문을 보면 묘를 쓴 시기가 단기 4311년(서기 1978년)이니 대통령이 되기 전의 일로서 완산전씨이고 어머니는 광산김씨이다. 전두환 대통령의 할아버지는 완산에서 거주하다 동학난을 피해 합천으로 이주했다하니 좁은 동네에서 지역감정이란 한낱 정치적 놀음에 불과할 뿐이다.
- 전두환 전대통령의 생가가 이곳에서 가까운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이며 큰재에 전두환씨 선산으로 가는 입구가 있다.
- 큰재 지나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첫번째 봉우리(364.5m)가 높은 산은 아니지만 마지막 구간 최고의 조망처로 직전 지나온 토곡산, 만대산, 노태산의 마루금과 멀리 수도지맥의 연봉 비계산, 의상봉, 우두산과 고령의 미숭산, 북두산 너머 가야산도 보인다. 남서쪽으로 합천호 지나 진양기맥 황매산과 한우산-자굴산(도굴산)의 팔랑개비도 보인다는건 그 앞으로 미타분맥이 흐른다는 얘기다.
♤ 시리봉(408.1m)/ 시루봉
경북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와 경남 합천군 율곡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북쪽에는 쌍림면 합가리가 위치하며 남쪽에는 합천군 율곡면 기리가 위치한다. 동쪽으로 솜등산과 노구산으로 연결되고 서쪽으로 노태산과 만대산으로 연결된다. 솜등산에서 노구산과 시리봉 및 노태산을 거쳐 만대산으로 연결되는 산줄기의 북쪽 사면은 안림천의 남쪽 분수계를 이루고 있으며 시리봉의 서쪽에는 지릿재와 큰재가 있는데 지릿재와 큰재는 과거 고령군과 합천군을 오가는 교통로로 이용되어 왔으나 현재 큰재는 거의 이용하지 않으며 지릿재는 33번 국도가 통과하고 있다. 시리봉은 조선시대 문헌과 지도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으며 일제강점기 자료에도 기록이 없다. 시리봉이란 이름은 산꼭대기가 떡시루 모양으로 생겨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 시리봉의 전망도 좋지만 잡목에 가려져 지나온 서쪽으로만 조망이 트여있다.
♤ 장승재(213m)/ 삼면경계면(고령군 쌍림면, 합천군 율곡면 → 합천군 쌍책면)/ 장등재
경북 고령군 합가리와 경남 합천군 쌍책면 상신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한쪽은 시멘트 양회임도이고 한쪽은 비포장 임도 갈림삼거리이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던 등로는 여기부터 남쪽에서 북쪽으로 방향이 바뀐다. 국토지리원 지명설명엔 고개가 길에 뻗쳐 있음으로 진등재 또는 장등재라 칭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 좌측은 고령 합가리, 우측은 합천 상신리로 이어진다. 장등재 임도 건너 바리케이드를 넘어간다.
♤ 좌랑봉(306m) 갈림길/ 삼거리
좌랑봉은 경북 고령군 쌍림면 신곡리에 있는 산이고 동쪽으로 만산 및 안산과 연결되며 남쪽으로 너릿골산과 장등재와 이어지는데 만산에서 안산과 솜등산을 지나 좌랑봉을 잇는 산줄기는 천박실개울의 분수계를 이루며, 이 하천은 안림천의 지류이고 좌랑봉이 위치한 신곡리에는 대가야시대의 고분들이 있다. 좌랑봉을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33번 국도가 지나고 동쪽에는 907번 지방도가 남북으로 통과하며 조선시대 문헌과 지도에는 좌랑봉에 대한 언급이 없다. 좌랑봉이 처음 기재된 자료는 조선지지자료로 하동면 매촌동 남쪽에 있는 것으로 쓰여 있으며 좌랑산이라는 이름은 이곳에 정6품의 벼슬인 좌랑을 지낸 신유한의 묘가 있어서 붙여진 것이라 한다.
- 좌랑봉은 이곳 삼거리에서 북쪽으로 약 1km거리에 있으며 지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주위에 무덤도 많고, 무덤 규모도 큼직합니다. 다들 왕년에 한자리씩 하셨는건지...
♤ 너릿골산(278m)
산성터 같은 돌들이 널부러져 있는 봉우리로 영진지도에만 이곳을 너릿골산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 정상에는 종2품의 하계 벼슬인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합천이공묘 두 기가 있으며 널찍한 공터이다. 가선대부+동지사+중추부사는 행수법에 따라 봉작(품계)이 종2품이면 자동으로 따라오는 관직명이다. 오늘날의 차관급 정도로 실직이 아니어도 산직으로 전관예우차원에서 주어진 경우도 많다.
컨테이너 매점과 화장실이 있으나 매점은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
♤ 기미재(150m)/ 간이휴게소/ 907번지방도
경북 고령군 쌍림면 신곡리에서 경남 합천군 쌍책면 상신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907번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나고 있다. 이 도로는 고령군 대가야읍에서 떡곡재를 지나 쌍림면 안림리-신곡리-합천군 쌍책면 상신리를 이어준다. 대가야읍에서 합천군 합천읍 방향으로는 지릿재를 이용하는 것이 더 가까우나, 고령군 쌍림면과 합천군 쌍책면을 왕래하는 데는 기미재를 이용하는 것이 더 가까우므로 두 지역을 왕래하는 교통로로 이용된다. 기미재는 솜등산의 서쪽에 위치하는 고개로 솜등산과 노구산으로 가는 등산로 입구가 있다. 기미재는 고령군 쌍림면 신곡리의 북서쪽에 있는 해발고도 309m의 봉우리와 동쪽의 솜등산 사이에 있는 해발고도 150m의 낮은 안부에 있다. 지금도 고령군에서 합천군 쌍책면·초계면·창녕군을 통해 남쪽으로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기미재의 북쪽은 천박실개울의 발원지로, 천박실개울은 북류하여 쌍림면 신곡리 신기마을에서 안림천과 합류하는 개천이다. 기미재를 통과하는데 세 군데의 돌무덤이 있어, 오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3개의 돌을 던져서 안녕을 빌었다고 한다.
- 기미재를 기점으로 솜등산-노구산-듬말리-유산삼거리를 잇는 등산로가 발달되어 있어, 기미재의 고갯마루에는 등산객을 상대로 하는 간이 휴게소가 있다는데 요즘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기미재 부근에는 1995년에 설치된 고령군 환경위생사업소(쓰레기재생처리장)가 자리하고 있다.
- 깊은 절개지를 이루고 있어 합천방향으로 100여 미터 내려간 뒤 도로 좌측 수로를 건너 절개지 위로 오르면 임도가 나온다.
♤ 솜등산(270.5m)
경북 고령군 쌍림면 평지리와 경남 합천군 쌍책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구릉성 산지이며 동쪽으로 노구산(324.7m), 서쪽으로 시리봉(408m)과 노태산(498m) 및 만대산(688.7m)으로 연결되며 이들 산지를 연결하는 산등성이의 북쪽 사면은 안림천의 남쪽 분수계를 이루고 있다. 솜등산의 북쪽에는 안산(247m)이 위치하며 만산(267m)에서 안산, 솜등산과 좌랑봉(306m)을 잇는 산등성이는 고령군 쌍림면 신곡리에 있는 천박실개울의 분수계를 이룬다. 이 천박실개울은 고령군 쌍림면 소재지에서 안림천과 합류하는 안림천의 한 지류이다. 솜등산에서 약 1.5km 서쪽에 기미재가 있다.
- 약간의 잡목지대를 올라 봉우리 같지 않은 곳이 정상이고 조망도 없다.
♤ 합천군 덕곡면(德谷面)
덕곡면은 조선시대에 낙동강변의 포구마을로 수로 교통의 주축으로 서부의 경제 중심지였고, 낙동강변의 초계(草溪) 밤마리(栗旨)는 오광대(五廣大) 야유(野遊)의 발상지이다. 전설에 따르면 350여년 전 대홍수 때 큰 나무궤짝 하나가 떠내려 와 열어보니 많은 가면과 「영노전초권」이라는 책이 들어 있었다. 당시 마을에는 전염병과 재앙이 그치지 않아 좋다는 온갖 방법을 다 해봐도 소용이 없었으나 나무 궤짝 안의 탈을 쓰고 책 내용대로 연극을 하니 재앙이 깨끗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 뒤로 율지리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가면을 쓰고 연극을 하기 시작하였고, 이 산대가면극이 오광대 가면극으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이 탈놀음이 오광대라고 불리게 된 것은 이 놀음의 첫 과장(科場)이 다섯 광대로부터 시작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오광대(五廣大) 및 야유(野遊)는 경남 일대에 분포된 한국가면무극 (韓國假面舞劇)의 영남형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발생지 밤마리(당시 3백호 가량의 인구) 장터의 대광대(竹廣大)패들에 의해 시작되어 경남 내륙과 해안선 일대의 각지로 퍼져 나갔다. 이러한 분포는 초계 밤마리 대광대패가 각지로 순회 공연을 하였거나 또는 밤마리 장터에서 이를 보고 간 사람들이 제각기 자기 고장에서 흉내를 내면서 시작한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발상지인 밤마리 오광대를 비롯한 여러 지방의 것은 전해지지 않고, 다만 통영(統營)ㆍ고성(固城)ㆍ 진주(晋州)ㆍ마산 오광대만이 전해지고 있다.
♤ 합천군 덕곡면 율원리(栗院里)
율원리는 경남 합천군 덕곡면에 있는 리(里)로, 대부분의 지대가 완만한 구릉성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 율원, 점깨울, 웃밤무지 마을 등이 있는데, 율원 마을은 밤나무가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점깨울 마을은 옹기점이 있었다 하여 불리워진 이름이다. 웃밤무지 마을은 율원 위쪽에 위치한다는 의미에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 유천령 갈림봉(272m)/ 삼면봉(쌍책면, 쌍림면 → 덕곡면)
좌측으로 고령군과 경계에 있는 유천령, 노구산, 소학산으로 연결되는 능선으로 이곳은 경남북 도계능선으로 도계를 따라 동진하던 지맥이 이곳 부터는 경북 고령군 쌍림면과 이별하고 완전히 경남 합천군 쌍책면과 덕곡면의 면계로 접어들며 남하한다.
- 묘지가 두기 있고, 급우틀하여 내려서야 합니다.
수도지맥 마지막에 대해서 여러 말들이 많습니다. 박성태선생님은 율원고개, 필봉 성산을 지나 청덕교에서 수도지맥을 끝낸다고 했는데 문제는 황강에서 끝낼 뿐 낙동강과 황강의 합수점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다남산으로 가는 이들도 종종 있는데 구슬고개 지나서는 그곳도 미곡제방에서 낙동강으로 가는 물을 건너게 됩니다.
♤ 율원고개/ 율원재
율원고개는 경남 합천군 쌍책면 사양리와 덕곡면 율원리를 잇는 고개로 남쪽으로 이어지는 1번군도가 있고, 1034번 2차선 지방도가 지나는 고갯마루로, 좌측으로는 창녕으로 우측으로는 합천으로 이어지고 있다. 좌측(동)은 덕곡면으로 우측은 쌍책면으로 1034번 도로가 좌우로 넘고 있는데 고개 이름은 덕곡면 율원리의 마을 이름에서 따왔다. 율원리를 밤무지라고도 부르는데 율원리는 밤머리인 율지리와 함께 밤나무가 많고 이곳에서 생산된 밤을 저장하는 큰 창고가 있어 밤무지라고 불렀다고 하며 율원리는 율원마을 1개의 행정리로 형성되어 있으며 장, 나, 안씨가 많이 살고 있고 마을에는 수정 나씨의 재실인 덕원정이 있다고 한다.
- 커다란 인동장씨 납골묘를 내려 내고향 덕곡이라는 표석이 서있고 배수지 시설이 있다.
♤ 삼면봉(239.5m), (쌍책면, 덕곡면 → 청덕면)
율원고개 지나 아스팔트 도로를 타고 한참 1.5km(20분)을 올라 고갯마루를 넘으니 도로 우측에 반사경이 있고, 좌측으로 흐르는 1번 군도 2차선 포장도로를 버리고 전봇대가 있는 곳에서 우측 능선으로 오르면 미곡천의 서쪽 능선으로 가는 길이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면 미곡천의 동쪽 능선으로 고랑큰음달산을 지나 다남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분기되는 장소인데 1번 군도가 개설되어 산줄기가 잘라져 있다. 즉, 이곳 도로가 다남산 분기봉으로서 삼면봉(254m)인 합천군 덕곡면, 쌍책면, 청덕면의 경계 봉우리인데 이 봉우리를 1번 군도가 지나는 도로가 되어버렸으니 봉우리의 개념이 없어졌다. 이 삼면봉은 수도지맥의 마지막 줄기를 결정짓는 주요 갈림봉이다. 이 봉에서 미곡천(尾谷川)의 동북쪽 산줄기로 이어가느냐, 서남쪽 산줄기로 이어가느냐의 선택을 해야 되기 때문이다.
※
신산경표 저자 박성태님은 이 지맥을 일제 때의 지도와 지형을 토대로 답사한 뒤 「수도지맥」이라 칭하고, 맥길의 끝을 이 곳 삼면봉에서 남쪽 쌍책면과 청덕면을 가르며 이어져 필봉과 성산을 거쳐 말정 청덕교로 내려서는, 즉 황강의 동쪽 미곡천(尾谷川)의 서쪽 산줄기로 정하였는데, 이 산줄기는 낙동강과 황강의 합수점이 아닌 합수점에서 약 1.3km 안쪽의 황강 하류에서 그 맥을 다한다는 약점이 있다.
문제는 두 산줄기 사이에 흐르는 미곡천의 물이 바로 낙동강으로 흘러 드느냐 아니면 황강으로 흘러드느냐 인데, 영진 5만지도는 구슬고개 남쪽 미곡제방 앞의 미곡천물이 구슬고개 남쪽에서 동으로 흘러 낙동강으로 합류를 하고 있다. 그러면 미곡천물은 낙동강 본류로 들어가니 지금 통상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필봉·성산 줄기가 수도지맥의 끝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미곡천(尾谷川)의 서쪽 산줄기는 낙동강과 황강의 합수점이 아닌 황강에서 그 맥을 다하기 때문에, 산자분수령의 원칙에서 보면 낙동강과 황강 합수점으로 떨어지는 산줄기가 더 합당하므로, 삼면봉에서 동쪽 덕곡면과 청덕면을 가르며 이어지는 다남산 줄기 즉 미곡천의 동쪽 산줄기가 더 합당하다고 주장하는 산꾼들이 더러 있다. 지금은 인위적으로 물줄기의 흐름을 변경시킨 제방 공사 등으로 옛날 물줄기가 어떻게 흘렀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현재 나타나 있는 상태로만 본다면 새로운 주장의 산줄기가 낙동강과 황강 합수점으로 떨어진다고 보아 더 합당하다고 여겨지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주로 택하고 있고 그런대로 이름이 붙여진 산이 다수 포함된 말정 청덕교로 내려서는 필봉· 성산 능선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 다남산(多男山, 402m)
다남산은 경북 합천군 청덕면 소례리 정산마을과 덕곡면 장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다남산(多男山) 혹은 다남산(多南山)으로 표기되는데, 多南山은 산 줄기가 남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 많다는 데서 유래되었고, 多男山은 이 산에 와서 정성을 들이면 아들을 얻는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 고랑큰음달산(230.8m)
국가정보원 지도상 고랑큰음달산이다. 영진 5만지도와 개념도 등에는 삼면봉에서 다남산 방향의 264.9m봉을 '고랑큰음달산'으로 표기하고 있어서 서로 상이하다.
절골봉 직전에 좌측으로 민가가 한채 있고 우측에는 대규모 축사시설이 있는 양회임도를 따릅니다.
♤ 절골봉(265.6m)
절골봉은 산이름을 나타내는 아무런 표식이 없다. 지맥은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좌틀로 이어간다.
- 앞쪽에는 쌍묘가 자리하고 있고 좌틀하여 내려서야 한다.
♤ 부수봉(富樹峯, 332.9m) 갈림길
좌우 갈림길에서 좌측(동쪽)으로 200m 떨어진 곳이 부수봉인데, 잡목과 잡풀에 가려 조망은 보이지 않는다.
♤ 면계 갈림봉(261m)/ 쌍책면 → 청덕면
합천군 쌍책면과 청덕면 면계는 부지산(312.5m) 우측 함박산(313m)으로 뻗어내려 남쪽으로 보내는 갈림 삼거리로, 기맥길은 온전히 청덕면 안으로 들어서서 288.4m봉을 향해 좌측 능선을 따른다. 서래야 박건석님이 '작은필봉'이란 이름표를 달아 놓았다.
- 우측으로 유씨들의 묘가 자리잡고 있으며 함박산으로 가는 갈림삼거리이다.
♤ 필봉(筆峰, 327.5m)
합천군 청덕면 소례리 정산마을 뒤편에 자리한 봉우리로 합천군 홈페이지에는 한자로 필봉(筆峯)이 아닌 필봉(必峰)으로 표기되어 있다. 국토지리정보원 고시지명 유래에 의하면 ‘봉우리 모양이 붓처럼 생겨 필봉(筆峯)’이라 한다'고 하므로, 한글로 된 필봉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한자를 잘못 사용하였다.
♤ 성태리
경남 합천군 청덕면에 있는 마을로서 마을 뒤쪽으로 산이 있는 농촌지역인데 자연마을로는 성태, 양촌, 궁동, 화동이 있다. 양촌은 임진왜란 당시 절충장군겸 수군절제사를 역임한 차향리공의 자손이 터전을 잡아 인근 운봉리와 삼학리에 걸쳐 300여 호가 집성촌을 이룬 400여 년의 덕원서원(경남 지정문화재 138호) 차씨문중의 본거지다.
♤ 성산(250.7m)
경남 합천군 청덕면 성태리와 삼학리의 경계능선에 있는 산으로 4등삼각점(창녕 450/ 1983 재설)이 있는 수도지맥의 마루금상 산 이름을 기록되어 있는 마지막 봉우리이다. 성산에 올라 펑퍼짐한 봉우리 앞쪽으로 약간 나간다. 좌측으로 참봉을 지낸 파평윤씨 묘지 2기가 내려다 보인다.
- 내려서다 보면 작은 돌들이 흩어져 있는데 가야시대의 성터 흔적이라 하며, 이 곳에서 가까운 옥전고분군과 함께 다라국(옛 대가야에 인접한 소국)의 유물들이 출토되는 곳이란다.
- 날머리 우측은 낭떠러지로 황강이 흐르고, 그 앞쪽으로 황강을 가로지르는 '청덕교'가 보인다. 황강을 지나 좌측으로 조금 더 멀리 수도지맥의 실질적인 날머리인 황강과 낙동강의 합수점도 보인다. 다리 건너편은 미타분맥 능선이 이어지고 있고, 앞쪽 뾰족한 소미산(191.7m)과 그 우측 멀리로 또 다른 성산(301.9m)이 가늠된다.
♤ 다라국(多羅國)
다라국은 삼국시대 가야의 소국 중의 하나이다. 다라국이 기록에 등장한 것은 중국의 양직공도(梁職貢圖)와 일본의 일본서기(日本書紀)에서이다. 지금의 합천군 쌍책면에 다라리(多羅里)라는 마을이 있는데, 다라국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땅 모양이 반달모양이라 하여 붙여졌다 하는데, 다라는 대량(大良), 대야(大耶)등으로도 전해지고 현대어로 모두 "달내"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라리와 함께 성산리 일대에 옥전고분군이 발굴되어 다라국의 중심은 쌍책면 일대로 여겨진다.
다라국은 다른 소국에 비해 역사가 짧은 것으로 보인다. 400년에 구야국 중심의 가야연맹이 고구려에 의해 패망하자, 변한지역은 6가야 중 아나인 반파국 중심의 대가야국이 들어서기까지 극심한 혼란기에 들어섰는데, 다라국도 이시기를 전후해 성립된 듯 하지만, 그 이전에도 청동기 시대 전후로 사람들이 살기 시작해 유물이 출토되기도 했다. 다라국은 성립되고 얼마 뒤 대가야에 소속되었고 대가야가 신라에 멸망하면서 신라에 편입되어 대야주(大耶州)가 설치되어 옛 가야땅을 관할하였다가, 642년 대야성전투로 백제에 점령되었고, 삼한 통일 후 강주의 강양군(江陽郡)이 되어 지금의 합천이 되었다.
다라국의 전반에 대해서는 위의 두 사서의 기록과 옥전고분군의 발굴성과가 현재 밝혀진 전부로 더 연구가 필요하다. 정치체제에 대해서는 하한기(下旱岐)와 이수위(二首位)라는 관직이 있었다는 정도이다. 경제는 고분군이 확인된 마을 이름인 옥전(玉田)이라는 이름에서 보듯 옥(玉)이 많이 산출되었다. 옥전고분군에서는 신라식과 김해식 목곽묘가 확인되었다. 다수의 옥제품 및 보석제의 유물과 함께 토기와 금동제 관모, 환두대도, 고구려풍 투구 등이 출토되었다. 고구려풍 투구는 신라문화권의 영향하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 등자와 말 투구 등의 많은 량의 마구류가 발굴되었다. 토기는 이후의 도굴피해에도 불구하고 꽤 많이 발굴되었는데 굽높이 술잔(高盃)이 여러가지 다양한 형태로 발견되었다. 대개 김해, 함안 등지의 것과 유사한 면이 있지만 옥전 2기 4호분에서는 신라식의 것이 나오기도 했다.
♤ 청덕면 미곡리 말정마을
말정은 낙동강과 황강의 합류지점이자 청덕면의 강남과 강북을 잇는 관문이다. 예전에는 나루터가 있어서 주민을 실어나르는 나룻배가 있었으나 철교가 가설되고 2003년 청덕교가 완공된 이후부터 나룻배가 사라졌다. 말정마을은 말이 쉬어가는 마정(馬停)이 있었던데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
- 청덕교에서 황강을 바라보며 좌측으로 500m 진행하면 미곡천과 황강의 합수점이 나오고, 약 1km 더 진행하면 황강과 낙동강의 합수점이 나온다.
♤ 황강(黃江)
황강은 낙동강의 지류로, 길이 111.00km, 유역면적 1,339.88㎢이다. 경남 거창군 가북면(加北面)과 고제면의 산악지대에서 발원, 거창읍에 이르러, 덕유산(德裕山)에서 흘러오는 거창 위천(渭川) 등을 합류하고 이후 합천호를 이룬다. 합천군 봉산면(鳳山面)에서 가천천(加川川)ㆍ옥계천(玉溪川)을 합치고 대병면(大幷面)에서 다시 흐름을 동으로 바꾸어 합천읍을 지나 계속 곡류, 청덕면(靑德面)에 이르러 낙동강에 합류한다. 황강 지명은 옛 삼가현의 황산(黃山)과 관련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고, 조선시대 초계에서는 황둔진 또는 황둔강이라고도 하였다.『신증동국여지승람』(합천)에 "남강이 동쪽으로 흘러 초계군 경계에 들어가서 황둔진이 된다."라는 관련 기록이 있다. 합천에서는 예전에 남강-앞강으로 부르기도 하였는데, 서쪽에서 흘러온 황강이 고을 남쪽을 휘돌아 흐른다는 것에서 지명이 비롯되었다. 황강이 낙동강과 합류하는 지점에서는 감물창진이라 하였고, 문헌상 '영호수'라는 이름도 보인다. 황강 일대는 고대에 가야와 신라 사이의 국경지역이었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세종 때 황산강 상류에서 황룡(黃龍)이 물속에 나타났으며,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또 합천 고을 동쪽 13리에 견천(犬遷) 또는 개비리(개벼리)라는 황강변의 벼랑이 있는데 위는 절벽이고 아래는 깊은 못으로서 꼬불꼬불한 잔도(棧道)였다고 한다. 이곳에 길이 생긴 것은 합천과 초계 고을에 사는 암수 두 마리의 개가 서로 만나기 위하여 다니다가 벼랑에 길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 제 산행후기는 후답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위해서, 선답자님들의 산행후기를 정리하여 간추려 보았습니다만 미진하기만 합니다. 다른 분이 제 산행후기를 토대로 수정, 보완하여 더욱 완성도 높은 산행후기를 작성한다면 그 이상 바람이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풍라라운영자님 수도지맥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오도산 정상석을 보지는 못했는데 대신 봅니다. 오도산에서 일출이 멋있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다음 여정이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청덕교에 내려서서 졸업식 사진을 찍는데 다리 위로 버스가 터덜거리며 넘어옵니다.
배낭 정리하고 낙동강 합수점을 다녀올려고 출발하며 말정마을 앞에 서있는 화물차 아저씨에게 서울가는 방법을 물어보니 타랍니다. 흐미~
버스는 말정마을 안쪽을 휘젓고 다시 나온다니 그것으로 초계를 걸쳐 합천읍으로 나가도 되지만, 다음 버스는 언제 있는지도 모르고,,,
별 부탁을 다 한다며 합수점에서 잠깐 세워달라고 하여 사진 한방 박았습니다.^^ ㅋㅋ 복이 터졌어요.^^
퐁아저씨수도지맥 완주하시었네요 축하드려요 저는 오늘 밀린숙제 우두령에서 추풍령까지 두구간에해결하여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축하드린데요 할아버지는 엄첨 힘들게 하시었다 는 데 퐁아저씨께서는 너무 쉽게하시는 것 같다하시네요 그러시면서 힘이 안드는산이 어디있냐고 하시는데요
원균이도 산행은 힘들지 않니?^^
할아버지와 아저씨의 차이도 있겠지만~
산행은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고 다만 내색하는 정도가 다르지 않을까 싶은데...
산행은 요령인것 같아~
재미있게 힘들지 않게 산행을 하려면,
컨디션도 최고조로 조절해야 하고,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고,,,
무릎에도 통증이 없도록 잘 조절해서 걸음을 걸어야 하겠지...
무릎이 비틀어지면 그걸 잡아주려고 통증이 오고, 그게 반복되면 슬개골과 인대에 무리가 가는거 아닐까... 싶어...
제일 중요한게 체중 조절과 바르게 걷는 방법, 그리고 배낭의 무게이겠지...
장시간 산행에는 중간중간 다리쉼을 하며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에 하나이고...^^
추풍령까지 땜빵을 다 했다는거구나! 속이 후련하겠다.^^
퐁아저씨가 고딩였을 때는 추풍령에 동물원이 있어서 넘나들며 구경하기도 했단다...^^ 수고 많았구~
수도지맥 졸업을 축하 축하혀유~
장거리 산행 비법좀 가르쳐 주셔유~
주왕지맥 종주가 남았는데 걱정이 많이되유~
원삿 종주는 않되고 4구간으로 종주해야하는데 교통편도 걱정되고 숙소도 어되로 잡아야 되는지 걱정되유~
법광선배님!
주왕지맥 저도 올해 목표로 올려놓고 여름에 가보려고 계획 중입니다.
먼저 가시게 되면 지맥 끊는 인근에 식당이나 식수를 구할 수 있는 정보 공유해 주심 감사하겠구요.^^
특히 물이 많이 필요로 하는 여름에는 식수 공급처를 많이 알면 그때그때 거리 판단에 따라 배낭이 가벼우니 힘이 훨 적게 듭니다.
주왕지맥은 한강기맥을 했기에 시작점은 알겠고,
평창을 길게 지나 정선군을 넘어 영월군 하송리로 진입, 남한강의 상류인 동강과 평창강의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87, 실거리 약 92km에 육박하네요.
부뜰이운영자부부님 산행기를 따라 한번 가본 적은 있습니다.^^
모두들 자기 기준과 스타일대로 가시는데
저의 경우 두번에 끊기는 애매하고, 한번에 하기는 부담되는 거립니다.
주간 35, 야간 25로 잡아도 주,야,주로 간다면 저녁 늦게 합수점에 도착해 숙박해야 하네요.
고로, 거리상으론 심야에 출발하여 주왕산쯤에서 비박지를 알아봐야 할거 같아요.
비박지는 노상이 될 수도 있고, 바람만 피할 수 있는 편편한 장소면 됩니다.
여름에 할 계획이니 목재계단이나 전망대 같은 곳도 좋은 비박지입니다. 참고만 하십시요~^^
퐁라라 님 반갑습니다
먼저 수도지맥 완주심을 축하합니다
자신이 정한 목표애 도전해 성공해 나가는
자신의 역사 한페이지가 완성됨을 바라보는 마음 이해합니다
무엇보다도 지금이 중요합니다.
과거와 현재가 연관이 되어 미래를 결정짓지만,
지금 이 시간도 곧 과거로 돌아가니 현재에 충실함,
현재에 다시 시작함은 미래를 결정짓는 일입니다.
건강을 지켜내야만 정해진 결말이 아닌
새로운 결말을 만들 수 있는 지금입니다.
수고하심에 기립박수 보냅니다
계백대선배님!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까운 지인 분 중에 혼자 다니면 사고가 나기 쉽고 위험하다는 걱정을 주십니다.
어느 분은 저에게 항상 지독하게 걷지말고 건강할 때 조심하고 몸을 챙기라는 염려를 주십니다.
그럴때마다 그럼 건강할 때 몸을 잘 챙겨 조심하고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되는건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이 길을 먼저 가신 선배님들이 계시기에 항상 웃으며 대답을 해줍니다.
운명은 팔자 소관이요, 인명은 재천이라면서
사전에 공부를 많이 하고 준비를 잘 하면 된다고 제가 오히려 걱정을 달래드립니다.^^
수도지맥 2구간은 두무산 올라갈 때 젤 힘들었지만 처음 시작하는 기운으로 쉽게 넘어섰고
오도산 이후로는 크게 힘든 고비 없이 부지런히 걷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가장 위험했던 순간으로 기억되는 것은 걸으며 원경을 감상할 때가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멈추지는 못 하고,, 앞을 보고 발바닥을 보며 걸어야 되는데 옆을 보고 걸으니 그때가 가장 위험했지 않았을까요? 항상 조심하며 걷겠습니다.^^
이틀간 온전히 산에 빠져서 산만 생각할 수 있다니
퐁라라님은 참 행복한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산에 들면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산에만 들어서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될 필요가 없고 무엇인가를 의식할 필요가 없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흔히들 한 분야에 치열하게 몰두하면 어떤 경지에 도달한다고 합니다.
열심히 준비하고 산행하고 또 정리하는 열정이 극에 달하면 한 경지가 열리리라 생각됩니다.
나무의 몸집과 키가 커질수록 그 뿌리는 더 깊어지듯이
산에 대한 몰두가 더 큰 산사람으로 커가는 과정이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땀 흘린 흔적 즐감하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갑니다. 감사합니다.
범산선배님!
생각하고 말씀하시는게 어쩐지 선배님 보다는 선생님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군요.^^
말씀드렸듯이 저의 바람은 신산경표 모든 산길에 테마와 스토리가 가득 차는 일입니다.
산행후기를 제가 저승에 가져갈 거도 아니고,
저의 후기를 함께 공유하고 더 나은 산행후기를 만드는데 작은 토대가 된다면 영광이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정보는 이미 나와 있습니다. 다만 여러곳에 흩어져 있을 뿐입니다.
선배님들 산행기에 널려있는 정보를 한 곳에 취합해
후답자들은 필요한 산길의 정보를 얻는데 저처럼 괜한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없도록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랍니다.
어느날 홀연히 이 자리를 떠나더라도 아무 후회없이 미련없이 가지는 단순한 작업입니다.
저는 이제껏 누구를 의식해 저의 생활을 허풍으로 장식한 적이 없습니다.
주위 영향 받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제 삶을 꾸려갈 뿐이랍니다.^^
좋게 봐주시니 더 힘이 난답니다. 감사드립니다.^^
퐁라라운영자님
두번에 걸친 길고도 길었던 수도지맥도 뒤안길로 두셨네요.
황강합수점에 이른 감회가 느껴 집니다. 빛나는 졸업장을~#
산줄기 주변으로 드러나는 산하의 모습이며 ,
솜등산 가는 길에는 멋진 일출 장관도 맞는 호사도 누리셨네요.
산행 내내 날씨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너무 수고많으셨구요..
이어지는 비슬지맥길도 멋진 추억의 여정을 기대합니다.^^
네~ 방장님!^^
이제 비슬 다음에 선수를 지정해야 합니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어느 선수부터 앞세워야 운용이 유리한지 고민 중입니다.
수도는 참 멋졌습니다. 그 중에 가조들을 알게되고 가봤다는게 가장 기억에 남을듯 하고요,
무엇이 문제인지 말이 많다는데 직적 보고 걸어보니 쉽게 이해되었습니다.
그 분이 평범한 분이라서 박성태선생님의 커다란 업적을 곧이곧대로 인정하기 어려운 분들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비온 뒤라 공기가 너무 맑고 깨끗해 어디로든 나서고 싶은 날씹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이루십시요. 감사합니다.^^
그긴 비슬지맥을 두번만에 끝을 보셨네요.
날씨도 좋아서 사진이 한폭의 그림입니다.
우리가 지날때도 지금 이맘때었던가 같은데 오도산에서 보는 아침풍경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한참을 머물럿던 기역이납니다.
비슬지맥 졸업 축하드림니다.
네 부뜰운영자님!^^
오도산에서 합천호 너머 황매산도 잘 보이고요.
팔랑개비 감악산이 보이니 진양기맥 라인을 희미하게 그려볼 수 있었답니다.^^
가조에 갈려면 동서울에서 15시, 남서울에서 15:10분 거창행을 타야만 거창에서 가조행 19:30분 막차를 이용할 수 있는데,
성수역에서 택시로 갈아타고 동서울로 갔는데도 그만 몇 초 차이로 놓쳐 거창에서 택시를 타고 가조로 들어갔고요,
가조 마상사거리에 대각선으로 개인택시와 콜택시 사무실이 있던데,,, 신세 질려다가 생일이라 한잔하고 모텔에서 숙박했습니다. ㅋ~^^
오우 수고많으셨습니다.
웃기는게 대구 살면서 10여년 전에 두세번이나 오도산을 갔었는데 정상석 있는지도 몰랐네요
오늘 첨 봅니다. ㅎㅎㅎ
혼자 무거운 짐을 메고 열심히 오르내릴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럼에도 그 무언가가 그렇게 하도록 당기겠지요?
수도지맥 완주 축하드리며 앞으로도 즐겁고 행복한 산행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힘내십시오~ ^^
네 부케님!
사전에 선답자님들 산행기로 철문 안쪽에 정상석이 있다는건 알고 갔는데요.
넘어가진 못하고 잠겨져 있는 문을 열려고 요리저리 조물락거리며 궁리를 했습니다.
결국은 문 가운데를 고정시킨 말뚝?을 들어올리니 열리더군요.
출입을 막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재미가 없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만들어서 가는 스퇄입니다.^^ ㅋㅋ
수도지맥 완주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수도지맥을 지맥 중 감명 받으면서 진행한 지맥입니다 두무산 오도산 정말 멋져요 미인봉도 강상하고요 황강이 보이는 산불감시초소봉 밤에 지나셨네요 전두환 부모 선영이 있던데 몹쓸놈 ㅎ 항상 응원합니다 화이팅입니다 ~~~~
아니, 이 시간에 안 주무시고 워쩐 일이래유~^^
수도지맥 오도산까지는 산이 참 굵직굵직하더군요.
하지만 다음에 할 비슬지맥 그리고 팔공지맥은 굵기로 말하면 수도보다 더할거 같아요.
그 산불초소봉에 오르며 길바닥에서 쉬고갈까 하다가 조금만 더 가보자 하며 초소를 만날지는 모르고 올랐어요.
낮에 시리봉보다 거기 조망이 더 좋다는데....
바람은 시원하고 멀리 합천시내 야경은 좋더라구요.
거기서 황강도 보이는거군요.
아마도 율곡면이고 전통의 태생지도 그쯤에 있지않을까 싶습니다. 얼릉 한숨 더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