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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22. 4. 3.~4.(일,월) - 음력(3. 3.~4.), 일출 06:14~일몰 18:54
●산행지: 앵자지맥(鶯子支脈) 1구간(문수봉-염치고개)/ 문수봉, 천덕봉 비박
●산행코스: 중소기업인력개발원 주차장-문수봉(403.2m)-374.4m봉-곱등고개-376.4m봉-칠봉산(446.9m)-442.6m봉-용실고개-갈미봉(441.7m)-양지파인스키벨리-326.8m봉-배실고개-마수고개-총신교-총신대학교-328.4m봉-기남이고개-420.6m봉-361m봉-군부대철책-방도리고개-성황당고개-231.7m봉-해룡산(367.2m)-회고개-386.3m봉-중부고속도로/제2중부고속도로/337번 지방도로(굴다리로 통과)-305.7m봉-국수봉(423.8m)-인배산(319.3m)-302.1m봉-261.2m봉-적산(284.1m)-넋고개(동원대학교)-정개산(433.4m)-490.4m봉-440.9m봉-475.4m봉-천덕봉(632.1m)-554.8m-제2영동고속도로-206m봉-삼합리고개-292.3m봉-353.9m봉-남이고개-393.7m봉-432.1m봉-자작봉(581.8m)-632.8m봉-앵자봉(670.2m)-523.3m봉-430.2m봉-377.7m봉-501.3m봉-392.1m봉-307.8m봉-염치고개-해협산(527.7m)-가마고개-231.2m봉-236.7m봉-209.4m봉-169.6m봉-140.4m봉-분원공동묘지-경강천/한강 합수점
●먹거리: 물 1.5리터, 햄버거2, 콜라, 단백질바2, 양갱3, 자유시간, 사탕 30, 게비스콘4
●준비물: 여름텐트, 무릎담요, 윈드스토퍼, 매트리스2, 바람막이, 반팔2, 스틱, 헤드랜턴, 반장갑, 구급약, 피부연고, 부직반창고, 충전지, 충전짹, 손수건, 면수건, 휴지, 물티슈, 스패츠, 팔토시, 말방울, 세라컵, 경광점멸등, 비닐우의, 안대, 귀마개, 마스크2, 양말, 여분의류, 띠지30
●거리: 약 65.5Km
●소요시간: 22.21h
●누구랑: 나홀로
●경비: 고속버스3,300, 용인터미널편의점17,100, 성황당고개편의점22,250
●날씨: 1~16, 날씨는 좋았지만 시계는 멀리 나가지 못함
●산행경과:
* 4. 3.(일) :
- 05:47 : 문수봉 출발
- 06:15 : 곱든고개(285m)/ 동면계(해곡동 - 원삼면)/ 곱돌고개/ 곱등고개
- 06:52 : 어두니고개(395m)
- 04:50 : 칠봉산(七峰山, 446.9m)/ 삼읍면봉(원삼면, 해곡동 → 양지면)
- 07:10 : 용실고개
- 07:23 : 갈미봉(441m)
- 07:36 : 용실산(422m)/ 면계(원삼면 - 양지면)
- 07:41 : 독조지맥분기점/ 독조봉 0.7km
- 08:18 : 배미실고개(양지허니음식문화거리)/ 편의점
- 08:22 : 제일사거리
- 08:47 : 마수고개 육교
- 09:02 : 영동고속도로
- 09:40 : 370m봉/ 시계(광주시- 용인시)
- 09:54 : 기남이고개(395m)
- 10:28~58 : 금박산분기봉
- 10:42 : 금박산(金箔山, 424.9m)/ 오봉산(烏峰山)/ 긴박산
- 12:13 : 군부대 울타리 끝/ 시계 → 광주시로 진입
- 12:20 : 방도리(芳都里)고개/ 2차선 도로
- 12:36 : 까치봉(鵲峰, 260m)
- 12:57 : 굴바위산(窟岩山, 240m)
- 13:19~14:09 : 성황당고개/ 붉은고개/ 329번지방도/ 편의점 점심
- 14:35 : 토끼봉(302m)/ 시계(광주시 - 이천시)/ 현대해상연수원갈림길
- 14:50 : 해룡산(海龍山, 367.2m)/ 이용산(二龍山)
- 15:29 : 회고개(檜峴)/ 삼면경계면(광주시 도척면, 이천시 마장면 → 신둔면)/ 양각산갈림길
- 15:55 : 더덕바위산(386.3m)/ 각씨봉(閣氏峯)/ 381고지
- 16:17 : 중부고속도로
- 17:11~23 : 국수봉갈림길/ 삼읍면봉(이천시 신둔면, 광주시 도척면 → 곤지암읍)
- 17:18 : 국수봉(國守峰, 423.8m)/ 0.25km
- 17:52 : 인배산(仁倍山, 319.3m)
- 18:38 : 적산(積山, 284.1m)
- 18:56 : 넋고개/ 넓고개(廣峴)/ 육각정/ 이천의병전적비
- 20:03 : 정개산(鼎蓋山, 433.4m)/ 소당산
- 21:01 : 수리봉(547m)
- 21:21 : 비박
* 4. 4.(월) :
- 06:14 : 출발
- 07:16 : 천덕봉(天德峰, 632.1m)/ 삼시봉(광주시 곤지암읍, 이천시 신둔면 → 여주시 금사면)/ 원적산분기봉
- 07:38 : 소시랑봉(554.8m)/ 삼면봉(광주시 곤지암읍, 여주시 금사면 → 산북면)/ 두번째 헬기장
- 08:34 : 제2영동고속도로/ 광주-원주고속도로
- 08:49 : 삽합리고개/ 국정개고개
- 10:25 : 남이(南怡)고개
- 12:16 : 자작봉(581.8m)
- 13:23 : 앵자봉((鶯子峰, 670.2m)/ 삼시읍면봉(광주시 곤지암읍, 여주시 산북면 → 광주시 퇴촌면)/ 목조데크
- 13:49 : 655m봉/ 삼시군봉(광주시 퇴촌면, 여주시 산북면 → 양평군 강하면)/ 헬기장
- 15:34 : 성황당고개
- 16:49 : 관음봉(501.3m)/ 시군면계 → 퇴촌면 내안으로 진입
- 17:00 : 북대봉(北大峰, 480?m)
- 18:05 : 염치(鹽峙)고개/ 영동리고개/ 약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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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부 구간거리
문수봉(文殊峰)-1.2km-곱등고개-3.8km-용실고개-0.5km-독조봉(獨朝峰)분기점-3.3km-마수고개-2.5km-기남이고개-1.3km-금박산(金箔山→0.9k)-1.1km-정수리고개-4.3km-성황당고개-1.2km-해룡산(海龍山)-1.7km-회고개-3km-국수봉(國守峰)-4.1km-넋고개-1.1km-정개산(鼎蓋山)-4.7km-천덕봉(天德峰)-3.1km-삼합리고개-4.4km-남이고개-3.4km-앵자봉(鶯子峰)-1.1km-천진암갈림길-1.9km-455m봉-3.7km-500.9m봉-2.7km-염치고개-1.6km-해협산(海峽山)-3.9km-정암산(正巖山)-2.5km-종여울
* 구간거리
- 중소기업인력개발원~넋고개 30.8km(접속 1.2km)
-. 용암마을 버스정류장~문수봉 1.8km(50분)
-. 문수봉~성황당고개 21.5km
-. 성황당고개~넋고개 9.3km
- 넋고개~분원리 합수점 38.5km
-. 넋고개~앵자봉 18.5km
-. 넋고개~남이고개 14.8km
-. 넋고개~삼합리고개 10.4km
- 성황당고개~삼합리고개 21.7km
- 삼합리고개~해협산 20.2km
- 삼합리고개~귀실마을 26km
- 천덕산~앵자봉 11km
- 삼합리고개~종여울 27.4km
-. 삼합리고개~남이고개 4.4km
-. 남이고개~염치고개 13.7km
-. 염치고개~남한강 종여울 9.3km
- 앵자봉~분원리 20.2km
-. 앵자봉~해협산 11.64km
-. 염치고개~분원리합수점 10.32km
-. 염치고개~해협산 1.72km
-. 해협산~분원리합수점 8.6km
- 해협산~검천2리/ 종여울 7km
-. 해협산~정암산 4.2km
-. 정암산~종여울 2.8km
* 식수 보충 및 참고사항
- 용인중소기업인력개발원~문수봉 1.2km 25분 소요
- 문수봉 아래 마애보살상: 약수터
- 배미실고개/ 제일사거리: 도로가에 식당 다수/ 편의점
- 곤지암버스터미널~방도1리: 성황당고개 (택시 1만원)
- 곤지암행 광역버스: 잠실역 1, 11번 출구 500-1번, 삼성역 코엑스 500-2번, 0.80h, 2,500원
- 곤지암행 경강선: 판교, 이매역~곤지암역
- 성황당고개/ 방도1리: gs25편의점, 유정한식뷔페(포장가능)
- 강변역~동원대: 1113-1번, 05:40, 2,400원, 80분 소요. (동원대 급행버스 등교시간에만 운행, 1시간 소요)
- 동원대 학생복지관: 이마트편의점(031-760-0290), 효암관 1층: 매점 식당
- 천덕봉~원적산: 왕복 1.8km
- 삼합리고개버스정류장~만선리~곤지암: 17:40. 20시, 자주 없음
- 삼합리고개: 공장지대, 주택가 물보층 가능(수도꼭지 많이 보임)
- 염치고개: 영동리약수터 물 없음
- 염치고개 버스 자주 없음, 퇴촌면(퇴촌 농협앞)으로 가서 강변역 방향 버스 이용
- 대원고속 광주영업소: 031-765-2611~3, 홈페이지: http://www.buspia.co.kr
- 퇴촌 택시: 031-761-1000/ 031-798-9005
- 강변역~퇴촌농협앞 버스정류장: 테크노마트 버스정류장/구이공원쪽 가변차로 버스정류장
* 앵자지맥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사암리 중소기업인력개발원 가는 교통편
- 서울경부~용인: 06:30~19:20, 19:50, 20:30, 21:10, 21:40, 22:30, 0.40h, 3,300~3,900
- 용인공용버스터미널: 031-338-4444 (처인구 김량장동), 031-339-3181(경남여객)
- 용인공용버스터미널~용인시 용암버스정류장방면행(10-4, 16번), 25분 소요
- 용인시 원삼면 사암리 내동부락 용암마을버스정류장: 10-4번 막차 22:10, 16번 막차 21시
* 서울에서 염치고개 가는 교통편
- 강변역 1번출구~퇴촌농협: 13-2번, 06:05, 1.20h
- 퇴촌농협~영동리: 38-83번, 택시15,000
* 합수점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
- 분원농협 버스정류소~퇴촌농협앞 버스정류소: 38-2번, 택시 5,000원
- 경기도 광주시 검천2리 종여울~퇴촌농협앞버스정류장 방면행 이용: 38-2번
- 종여울(검천리)~퇴촌농협: 택시 12,000원
- 퇴촌농협앞 버스정류장~서울 강변역: 13-2번 버스, 1.20h
- 퇴촌농협~강변역: 광주행을 타고 고속도로입구 하차, 길건너편에서 1113, 1113-1, 1h, 2,800
* 앵자지맥 염치고개 가는길
- 강변역1반출구: 13-2, 06:05, 1.10h
- 퇴촌농협앞~염치고개: 38-83, 07:25, 0.12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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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디션 난조로 너무 힘들었던 앵자지맥이었습니다.
출발을 여유있게 잡는건데 꼭 엄한짓 하다가 막바지에 서두르느라 행동식 사놓은걸 빼먹어서 용인터미널에서 다시 구입했네요.
서울경부터미널에서 간신히 용인가는 19:50분 차를 탔고, 이번에 새로 지을 예정이라는 허름한 용인공용터미널에서 사전 알아본 대로 21시 출발하는 용암마을 가는 미니버스를 탔습니다.
중소기업인력개발원을 21:26분 지나고 21:53분에 문수봉에 도착하여 비박을 준비했는데 여기서 경험부족이 확인되었습니다. 문수봉 오르기전 약수터 목조데크에서 비박할까 했는데, 역시나 불과 150m 거리였지만 바람 때문에 온도는 2~3도 정도 차이가 남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밤새 잠을 못 자고 뒤척였습니다.
또 하나 넋고개를 막바로 잇고자 성황당고개에서 햄버거 3개와 콜라 등 먹거리를 준비해 져날랐는데, 약간의 거리지만 동원대 정문에 도착해 사거리로 편의점에 조금 다녀오는 편이 나았던듯 싶었습니다.
첫번째 우회길인 제일사거리에서는 범산선배님 후기를 참조하여 정통지맥길을 밟았습니다. 남는건 영광뿐인 상처였습니다.^^ 밀림같은 가시 잡목길이 대기하고 있더군요.
탄약창울타리를 지나는데, 중간 정도에서 군부대를 벗어나라는 방송에 울타리 밖에서 우회하느라 낑낑 댔습니다. 울타리 마지막에 카메라가 앞쪽을 주시하다가 저를 향해 휙 돌아서네요. 손을 흔들어 주고 벗어났습니다.
두번째 우회길인 동원대는 의병전적비를 찾지않고 동원대 내로 올라가다 묘지 있는 곳에서 달라붙었네요. 어두워지니 맘이 급해져서 그랬습니다.
세번째 우회길인 삼합리고개 직전 제2영동고속도로는 계획대로 끝까지 밀어붙여 살짝 바이패스 하였습니다.
첫날에 바람을 피하지 못한 비박지 선정을 경험으로 둘쨋날은 천덕봉을 지나 소시랑봉까지 가야겠다 싶었는데 천덕봉 직전에서 도저히 힘들어 주저앉았습니다. 이번엔 핫팩도 하나 구했고, 바람을 피했더니 첫날보단 많이 나았습니다.
사실은 삼합리고개에서 그만두고 2구간으로 끊을까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이후로는 영축지맥 마지막을 힘겹게 넘으시던 우리 방장님 몸상태가 내몸속에 빙의한 것처럼 너무너무 힘들었습니다. ㅋ
그래도 억지로 억지로 남이고개까지 갔습니다.
건업리로 내려설까 하다가 혹시 컨디션이 올라올 수도 있고 앵자지맥인데 앵자봉은 넘어보자고 달라붙었습니다.
차이점이라곤 직장을 출퇴근하며 하루 만보 정도는 걸었는데 직장이 가까워지는 바람에 그마저 하루 만보를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인데...
앵자봉에서 마지막 영동리고개까지 많이 힘들었습니다.
거리보다 멀게 느껴지고 어거지로 가는 느낌이었답니다. 산행을 이렇게 하면 힘들어서 오래 못 살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왼쪽에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주택이 보이는 성황당고개에서 성우농원 울타리 옆 계단으로 관음리갈림봉까지 오르는 지점이 제일 힘들더군요.
영동리 고개에서 약수물을 떠다가 라면이라도 끓여먹을까 했는데 영동리고개 약수터는 물이 없었습니다.
앵자지맥의 마지막 해협산을 오르는데 아주 중요한 정보인데 미리 광고까지 했는데 말씀을 주는 분이 안계셨습니다.
서올 올라가는 길은 염치고개에서 히치에 성공하여 퇴촌농협터미널로 갔고, 터미널에서 강변역으로 오가는 13-2번 노선버스를 이용했습니다.
제 또래 아주머니인데 어제도 정개산을 다녀왔고, 몇해 전 추석에 원적산을 혼자 다녀오며 집앞까지 데려다 주신 분이 있어 그 고마움을 릴레이한다고 하시네요.
염치고개에서 비박을 하고 이른 아침에 시작해 오전 중에 끝낼 수도 있었지만 몸상태가 그게 아니었습니다. 풍치까지 느껴지고, 관자놀이를 누르면 통증이 감지되었는데 몸살기가 아니었을까요.
이것은 순전히 앵자지맥의 끝마무리를 확실하게 하라는 산신령의 계시가 아닌가 해석되었습니다. 조만간 다시 방문하여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해협산에서 분원리로 내려서고 다시 귀여1리를 통해 해협산에 오른다음 검천리로 내려설 계획입니다.
버스를 타고 강변역으로 오는데 어떻게 왔는지 두통으로 기억이 안날 정도입니다. 집근처 도착해 주린 배를 채운다고 고추장불고기에 쇠주한잔 마시는데 잘 씹어지지가 않아 김치찌개를 더시켜서 먹고, 늦게까지 문을 여는 동네 약국에서 머리아픈데 잘 듣는 몸살약을 지어 쌍화탕에 약을 먹고 저녁 10시에 잤는데 일어나니 아침 8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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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자지맥(鶯子支脈)이란?
속리산 천황봉에서 백두대간을 벗어난 한남금북정맥은 칠장산(492m)에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으로 나뉜다. 한남정맥은 김포 문수산(376m)까지 이어지는데 용인시 처인구 문수봉(文洙峰, 403.2m)에 이르러 북동으로 가지 하나를 분가시키는데 이 가지가 바로 앵자지맥이다. 앵자지맥은 432m봉에 이르면 다시 두 갈래로 나뉘는데 동으로 독조지맥(상동)을 흘리고, 앵자지맥은 계속 북동으로 향해 가다가 천덕봉(635m)에 이르면 북서향으로 틀면서 광주시와 여주군 경계를 이루면서 나아가다가 남이고개를 지나 앵자봉(鶯子峰, 670.2m)을 빚는다.
앵자지맥은 한남정맥 문수봉에서 북쪽으로 분기하여, 곱든고개, 칠봉산(446.6m), 용실봉(422m), 배미실고개, 마수고개, 성황당고개, 해룡산(367.1m), 국수봉(424m), 정개산(433.4m), 천덕봉(634.1m), 앵자봉(670.2m), 염치고개, 해협산(527.1m), 정암산(402.8m)을 일으킨 뒤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 한강이 되는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검천리 팔당호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62.7km의 산줄기를 말한다. 경안천의 왼쪽 물막이가 된다.
♤ 앵자지맥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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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자지맥을 지나는 동네
* 용인시(龍仁市)
용인시는 '땅모양이 거북과 같다'하여 금구음수형(金龜飮水形, 거북이 물 마시는 모습), 금구몰니형(金龜沒泥形, 거북이 뻘에 묻힌 모습), 영구하산형(靈龜下山形, 거북이 산에서 내려오는 모습), 부해금구형(浮海金龜形, 바다 위로 거북이 떠오르는 모습), 금구입해형(金龜入海形, 거북이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 금구입수형(金龜入水形, 거북이 물로 들어가는 모습), 구갑주형(龜甲胄形, 거북 등 모양), 금구하전형(金龜下田形, 거북이 밭으로 내려 오는 모습) 등등 여러가지 모습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풍수지리에서 얘기하는 명당보국의 길지로 알려진 곳이 많다. 풍수에서 거북은 부귀와 장수 그리고 번창을 상징한다. 또한 풍수에서 형상이 제일 많은 대표적인 동물이 거북이고, 하늘의 기(氣)을 먹고 사는 영험하고 신성한 동물로 알려진 거북은, 십장생(十長生) 중의 하나로 팔괘를 완성하는데 낙서를 제공한 동물이 거북이다. 풍수에서는 이러한 거북을 금구(金龜)라고 부른다. 수지구가 거북이 머리에 해당하며, 용인시청이 있는 곳이 거북이 배에 위치하고 있다 한다. 용인지방의 지리적 특성 중의 하나는 경안천, 탄천, 오산천, 청미천, 진위천, 안성천 등 대소 하천이 모두 용인에서 발원하여 인접 시.군으로 흘러 나가고 있다는 것인데, 이와 같은 현상은 용인지방이 분지를 형성하면서 인접 시. 군을 내려다 보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멸오'나 '용구(龍駒)', '구성(駒城)'이 ‘높다’는 의미에서 표기된 지명이라면, 이미 삼국시대에 이와 같은 용인(龍仁)의 지리적 특성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용인시(龍仁市)에서 '용(龍)'자가 들어가게 된 유래에는 이런 설화가 내려온다. 용인시의 좌측으로는 투구봉이 있고 우측으로는 칼봉이 자리잡고 있는데(봉우리의 형상이 투구와 칼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투구봉과 칼봉 사이에는 넓은 터를 마을 사람들은 '장군대지형의 땅'으로 믿고 있다. 장군이 무술을 연마하기에 꼭 알맞을 정도의 넓은 지형이다. 옛날에 남씨 문중에서 이곳에 묘를 썼는데, 그후 얼마 안 있어 그 문중 가운데 한 집에서 아기장수를 낳았다. 아기는 낳은지 사흘 만에 옆구리에 날개가 돋아났으며, 힘 또한 장사여서 상대할 사람이 없었다. 아기장수가 태어날 무렵은 당파싸움이 치열하던 때로, 자신의 가문을 보존하기 위해 서로간에 암투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혹여 다른 집안 자제 가운데 훌륭하게 될 소지가 있는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는 물론 그 집안 전체를 몰살하였다. 열세에 몰려 있던 남씨 문중에선 아기장수가 태어난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될 것이라고 불안해했다. 남씨 문중에서는 전체 회의를 열어 숙고한 끝에 아기장수가 성장하기 전에 처단할 것을 결의하였다. 워낙 힘이 센지라 여럿이 커다란 바위로 눌러 죽였고, 아기를 양지 쪽에 묻어 주려고 땅을 파 보았더니, 거기에서 투구와 칼이 나왔다고 한다. 한편 남씨 가문에서 아기장수가 태어날 때 장군대지형에서 마주 보이는 액교산에 있는 바위에서 용마(龍馬)가 나와 울었다고 한다. 이 용마는 아기장수가 죽자 태울 주인이 없음을 슬퍼하며 성산(城山, 석성산)을 향해 달려 나갔다. 현재 고림리의 액교산에는 용마가 났다는 용마바위가 아직도 전하는데, 용마가 몸부림치며 울부짖던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 지역은 이런 설화가 많다. 「고장군 묘소 전설」, 「아기장수와 용마바위」, 「유방리의 남씨네 아기장수」등이 내용이 비슷하다. 이것이 훗날에 조선시대의 남이장군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이런 전설들이 전해져 삼국시대의 구성현(駒城縣)이 고려초 용구현(龍駒縣)으로 바뀌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통합포털에서 발췌정리]
* 이천시(利川市)
이천시는 경기도 동남부 최남단에 있는 시이다. 동쪽으로 여주시, 서쪽으로 용인시, 안성시, 북쪽으로 광주시, 남쪽으로 충북 음성군과 경계를 이룬다. 중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가 교차하여 통과하고, 멀지 않은 곳에 주웁내륙고속도로도 있는 교통의 요지로 많은 제조업 공장과 물류창고들이 위치하고 있다. 삼국시대 초에는 백제의 영지였으나, 고구려 제20대 장수왕 63년 고구려에 속하며 남천현이라 불렸다. 551년 신라 제24대 진흥왕 때 남천주로 군주(오늘날 도청소재지)를 두었다. 757년 신라 제35대 경덕왕 16년 황무현으로 개칭하고 광주(지금 광주)에 편입시켰다. 현재의 지명인 이천은 936년 고려 태조가 후백제 남정을 할 때의 일화에서 기인 했다고 한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 하기 위해 이천의 복하천을 건너려 했으나 물이 불어 어려움을 겪었던 일이 있었다. 다행히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건넌 뒤, 큰 내를 건너 이로웠다는 뜻의 이섭대천(利涉大川)이라는 고사성어 앞뒤 글자를 따와 한때 이천군 이라 이름했고,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1257년(고종 44) 영창현으로 개칭하였다가 1390년(공양왕 2) 남천군으로 승격 되었다.고려 제23대 고종 44년에는 영창이라 불렀다. 1390년 제34대 공양왕 8년 남천군이라 이름을 바꾸고 승격하였다. 조선 태조 원년 이천현으로 감무를 두었으며, 제 3대 태종 13년 현감을 두었다. 1444년 세종 26년에 도호부가 되어 부사의 부임지가 되었다. 1894년 갑오경장 때 현재의 이천군이라는 지명이 되었다. 1914년 일제의 부군면 통폐합으로 음죽군을 병합 하였다. 또한 예하 면들을 통폐합하였다. 구 이천군 지역은 부면·발면을 부발면으로, 대면·월면·초면을 대월면으로, 마면·장면을 마장면으로, 모면·가면을 모가면으로, 백면·사면을 백사면으로, 신면·둔면을 신둔면으로, 호면을 호법면으로 통합하였다. 그리고 구 음죽군 지역은 현내면·동면·남면을 청미면으로, 근북면·원북면을 설성면으로, 상율면·하율면을 율면으로 통합하였다. 구 이천군의 면들은 부군면 통폐합 이전에는 전부 이름이 한 글자였다는 것이 특이하다. 1938년 읍내면이 이천읍 으로 승격 되었다. 1941년 청미면이 장호원읍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 부발면이 부발읍으로 승격되었다. 1996년 3월 이천군 전역이 시로 승격되면서 이천읍이 창전동, 관고동, 중리동 3개 동으로 분할되었다. 그리고 동년 5월 대월면 단월리, 장록리, 대포리, 고담리를 중리동으로 편입하고 대월면 소재지를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다. 그 결과 대포동(...)이 신생했다. 2003년 안흥동, 갈산동, 증포동, 송정동지역을 증포동으로 분할 하였다. 2012년 여주시와 선거구가 분할되었다. 반도체 SK하이닉스와 국내엘리베이터업계1위인 현대엘리베이터가 부발읍 아미리(부발역 인근)에 있다. 서울특별시와의 거리가 잠실까지 45km 정도 나오고 강남역으로 진입하는 데도 최단거리 기준으로 50km이면 충분한데 경기도 맨 변두리 치고는 서울과 꽤 가까운 편에 속한다. 시외버스로 동서울터미널이나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 가는데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특히 동서울 터미널 까지는 빠르면 40분 가량 걸린다. 그래서인지 대중교통으로 서울에 출퇴근하는 직장인이나 통학하는 학생들도 제법 있다. 광역 버스도 2020년 3월에 이천역~잠실역간 G2100번이 신설 되어 운행 중이다. 특징 중 하나로는, 현재의 행정구역 모양이 1914년 부군면 통폐합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거다. 즉, 현재의 행정구역 형태는100년이 넘은 셈이라는 것. 또한 행정구역 모양이 파라과이와 매우 닮았다. [통합포털에서 발췌정리]
* 여주시(驪州市)
경기도 동남부 최동단에 위치한 시로 동쪽으로는 강원도 원주시, 남서쪽으로는 이천시, 서쪽으로는 광주시, 북쪽으로는 양평군, 남쪽으로는 충북 충주시, 음성군과 접하고 있다. 2013년 9월23일, 여주군에서 여주시로 승격되었으며 남한강이 지역의 정중앙을 관통하는 상수원보호구역이다. 상류가 충주댐이므로 보호구역 지정에서 해제될 확률은 낮다. 여주평야가 남한강을 끼고 펼쳐져 있다. 여주시를 관통하여 흐르는 한강을 여강이라고 부르며 여강의 동북 지역은 산지가 많고, 강남지역은 전형적인 여주평야로서 넓은 들과 야산이 잘 발달되어 있다. 여주시는 천혜적인 지리로 인해 진국 시대부터 평화로운 집단 마을을 영위해 왔으나 역사상 지명이 뚜렷이 나타난 것은 476년 고구려 장수왕 63년에 골내근현(骨乃斤縣)이라는 이름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후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에는 황요, 940년 고려 천수(天授) 23년에 황려현(黃驪縣), 고려 고종 원년(1214년)에 영의(永義)로 개칭하였다가, 1305년 충렬왕 31년에 여흥군(驪興郡)으로 승격하였다. 조선 태종 2년(1401년)에 여흥부(驪興府)로 승격하였고, 1413년 태종 14년에 도호부가 설치하였다. 이때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이관되었다. 1469년 조선 예종 1년에 여주목으로 승격하였다. 이 지역을 본관으로 하는 여흥 민씨(驪興 閔氏)들이 비교적 많이 거주한다. 민씨들의 본관은 여주가 유일하다. 2세기 후반, 지금의 여주시 자리에 마한의 속국인 '고리국' 이란 도시국가가 존재했다. 도시국가 치고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었으나, 3세기 무렵에 백제에 병합되었다. 그 후 고려시절에 여흥군으로 불리다가 1469년 조선 예종1년에 여주목으로 승격했다. 17세기 계축옥사에 연루된 강변칠우가 지은 정자 무륜정이 여주목의 북한강 근처에 있었다 한다. 1895년에 여주군이 되고 1924년에 원주의 지내면, 서면이 여주군에 편입되었다. 1941년 여주면이 여주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63년 개군면이 양평군으로 편입되었다. 1992년에는 북내면에 오학출장소가 설치되어 1읍·9면·1출장소 체제로 정비되었으며 2007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북내면 오학출장소가 여주읍 오학출장소로 개편되었다. 2013년 여주군이 여주시로 승격되어, 여주읍은 여흥,중앙,오학동으로 개편되었고, 가남면은 가남읍으로 승격되었다. 2001년부터 2년마다 이천시, 광주시와 함께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를 개최하고 있다. 매 회 전세계 70개국 이상의 도자기 예술가들이 참가한다. 2015년에는 능서면을 세종대왕면으로 바꾸려고 하다가 잠시 보류되었으나 2021년 최종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천시와 행동을 같이한 적이 많은데, 과거에는 소방서도 이천에 있었고, 지금은 분리됐지만 이천시와 선거구도 묶여 있었으며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이천에서 보기도 했다. 여주시민들이 이천의 상권에서 많이 쇼핑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천시와 다툼이 없는건 아닌데 대표적인 예가 쌀 상표권 분쟁이다. 여주는 대왕님표, 이천은 임금님표. 쌀과 도자기가 유명한 것도 똑같다. 영영릉 즉, 영릉·녕릉(英陵·寧陵)은 대한민국 사적 제195호로, 조선 제4대 세종대왕과 그 비 소헌왕후의 능인 영릉과 제17대 효종과 그 비 인선왕후의 능인 영릉을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다. 능서면 왕대리에 두 개의 왕릉은 700m 거리를 두고 있다. 신륵사는 봉미산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로서 신라시대에 창건했다고 여겨진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절은 산 속에 짓는 경우가 많은데 반하여 신륵사는 남한강이 보이는 강변에 세워져 있다. 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이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광주원주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여기에 수도권 국도와도 연계되는 국도와 국가지원지방도들이 많아서 교통이 편리한 지역이다. [통합포털에서 발췌정리]
* 양평군(楊平郡)
경기도 동부에 있는 군으로 동쪽으로 강원도 홍천·횡성·원주와 접하며 도계를 이루고 있다. 면적은 도 내에서 가장 넓지만 인구밀도는 가평군, 연천군과 함께 매우 낮은 편이다. 광주산맥의 영향으로 높은 산지에 둘러싸여 있어 산업의 발달이 미약하고 서울과 가까운 지리적 조건을 인구 감소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서울과 강원도로 연결되는 국도가 나 있으나, 군내 교통은 불편한 편이다. 행정구역은 양평읍·강상면·강하면·양서면·옥천면·서종면·단월면·청운면·양동면·지평면·용문면·개군면·국수출장소 등 1개읍 11개면이 있다. 군청소재지는 양평군 양평읍 군청앞길2이다. 양평군은 옛 양근군과 지평현이 합해져 이루어진 곳이다. 양근군은 지금의 양평군의 동부에, 지평현은 서부에 위치했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백제의 영역이었다가, 고구려의 남하로 고구려의 영역에 포함되고 6세기 중엽 이후 신라의 세력확장으로 신라의 영역에 포함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빈양현(濱陽縣)·지평현(砥平縣)으로 불렸다. 고려시대에 양근지역은 양근현(楊根縣)·익화군(益和郡) 등으로 이름이 바뀌기도 했으나, 지평현은 이름을 그대로 유지했다. 조선 초기의 군현제 개편으로 양근군과 지평현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 춘천부 양근군·지평군, 1896년에 경기도 양근군·지평군이 되었다. 1908년에 양근군과 지평군을 합하고 각각의 머리글자를 따 양평군이라 이름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고읍면·서종면·갈산면·양서면·설악면·용문면·지제면·청운면·단월면·강상면·강하면·양동면으로 재편되었다. 1931년에 고읍면을 옥천면으로, 1938년에 갈산면을 양평면으로 개칭했다. 1942년에 설악면을 가평군으로 이관했으며, 1963년에는 여주군에서 개군면을 편입받았다. 1979년에 양평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 양서면에 국수출장소가 설치되었다가 1998년에 폐지되었다. 2006년 지제면이 지평면으로 개칭되었다. 한강기맥의 한 줄기에 군내 최고봉인 용문산(1,157m)이 솟아 있으며, 그 산세가 군내 곳곳으로 미쳐 험한 산지를 이룬다. 군은 대체로 이들 산지로 둘러싸인 침식분지를 이룬다. 군의 북부에 화야산(755m)·통방산(650m)·중미산(834m)·유명산(862m)·봉미산(856m)·갈기산(685m)·시루봉(504m) 등이 가평군과 강원도 홍천군의 경계를 이루고, 동부에 금물산(780m)·성지봉(791m)·당산(541m) 등이 강원도 횡성군·원주시와 경계를 이룬다. 남부에는 옥녀봉(419m)·고래산(543m)·우두산(480m)·파사산(231m)·양자산(710m) 등이 여주군과의 군계를 따라 솟아 있다. 서쪽 남양주군과 경계를 이루면서 남류하는 북한강과 남서부에서 북류하는 남한강이 양서면 양수리에서 합류해 한강의 본류를 이룬다. 북한강에는 중미산 일대에서 발원한 수입천과 문호천 등의 지류가, 남한강으로는 흑천·금당천·삼산천·신내개울 등이 흘러든다. 양수리 일대에는 충적지가 발달해 있으며, 하천변을 따라 발달한 저지대는 주로 논으로 이용된다. [통합포털에서 발췌정리]
* 광주시(廣州市)
경기도 중남부에 있는 시로 동쪽은 여주시, 서쪽은 성남시, 남쪽은 용인시·이천시, 북쪽은 하남시와 한강을 경계로 남양주시와 접하고 있다. 시청은 경기도 광주시 송정동에 있다. 동쪽에는 정암산(正巖山, 403m)·해협산(海狹山, 531m)이 남종면에 입지하고, 앵자봉(鶯子峰, 667m)·천덕봉(天德峰, 635m)이 여주시와 경계를 이루고, 서쪽에는 불곡산(佛谷山, 313m)·검단산(黔丹山, 535m)이 성남시와, 남쪽에는 해룡산(海龍山, 367m)이 이천시와 접하고 있다. 중앙에는 용마산(596m)·태화산(泰華山, 644m)·무갑산(武甲山, 578m)·관산(冠山, 556m)이 있으며 이들 산지 사이로 남한강의 지류가 흐르면서 주변에 좁은 곡저평야를 형성하고 있다.용인에서 발원하는 경안천(京安川)은 광주시의 서부를 복류하면서 능원천(陵原川)·직리천(直里川)·중대천(中垈川)·목현천(木峴川)과 합류하고 초월읍에서 곤지암천(昆池巖川)과 합류하여 남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남한강은 군의 북쪽을 동서로 흐르고 있다. 산지가 많아 지역 간의 교류를 위해 일찍이 고개가 개발되었는데 그중에서 성남시로 통하는 갈마치(葛馬峙)·태현(台峴)·곧은골고개·이배래고개·새나리고개, 이천으로 통하는 넓고개, 용인으로 통하는 봉골고개·부천당고개·말치고개가 있다. 삼한시대에는 광주를 중심으로 일어난 마한이 지금의 군청소재지인 경안에 도읍을 정하여 광주의 별호를 회안(淮安)이라고도 하였다. 삼국시대에는 백제가 기원전 18년부터 475년까지 약 500여 년 동안 도읍을 하였던 곳은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일대였다. 이곳은 오늘날 서울시 송파구에 속해있지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광주지역에 속해 있었다. 한강유역에 도읍했던 백제는 국력이 날로 신장해 근초고왕대에는 고구려와 싸워 고국원왕을 전사시킬 정도까지 성장하였다. 그러나 475년(문주왕 1) 고구려 장수왕의 침공을 받아 개로왕이 피살되고 백제는 공주로 천도했으며, 이후 76년 동안 광주지역은 고구려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아차산 일대의 고구려 보루유적과 몽촌토성에서 발견되는 고구려 토기들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 551년 광주지역은 백제·신라의 연합군에 의하여 탈환되어 잠시 백제의 영역에 속했지만, 553년(진흥왕 14) 나제동맹을 파기한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한 뒤에는 신주(新州)로 되었다가 660년(태조무열왕 7)에 한산주(漢山州)로, 다시 756년(경덕왕 15)에 한주(漢州)로 개칭되었다. 이 지역은 당시 지금의 경기도와 충청도를 합한 지역만큼 넓었던 신주와 한산주·한주의 읍치(邑治)지역으로서 행정과 군사의 중심지였다. 940년(태조 23)에 한주는 현재의 이름인 광주로 개칭되었고, 983년(성종 2)에 전국을 12도로 나눌 때 광주목을 두어 관내도(關內道)를 다스리게 하였다. 세종 때 진을 두어 광주목 진영소속으로 여주목·이천도호부·양근군과 지평·음죽·양지·죽산·과천의 5현을 두었다. 1566년(명종 21) 방어사와 토포사를 겸하였고 1577년(선조 10) 부(府)로 승격되어 방어사를 겸하였고 1592년의 임진왜란 때는 수어부사(守禦副使)를 겸하였다. 1623년(인조 1) 남한산성을 쌓고 주치(州治)를 옮긴 뒤 1630년 광주부윤으로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조정이 남한산성으로 옮겨져 45일간 항쟁의 격전을 치러 국난극복의 보루가 되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인물로는 세종 때의 상신인 맹사성(孟思誠), 세조 때의 대신이며 학자인 최항(崔恒), 임진왜란 때의 명장 신립(申砬) 등이 있으며, 묘가 모두 군내에 있다. 또한 실학자 안정복(安鼎福)도 이곳 출신이다. 1895년(고종 32)에 다시 광주군으로 되었으며 태종과 원경왕후(元敬王后)의 헌릉(獻陵)이 대왕면에 쓰여진 뒤로는 광릉(廣陵)으로 별칭되기도 하였다. 또한, 한강과 경안천의 수로를 통한 교통이 편리했기 때문에 조선 초기부터 사옹원(司甕院) 분원(分院)이 설치되어 분원백자의 산지로 유명했다. 현재 남아 있는 조선백자 요지만도 85개 소에 달하고 있다. 1917년에는 군청이 남한산성에서 경안리로 이전되었고, 근대의 인물로는 역대의 시가를 모아 『가곡원류』를 편찬한 안민영(安玟英), 신소설 『추월색(秋月色)』을 발표하여 신문학 개척에 공이 큰 최찬식(崔瓚植), 민족대표 33인 중의 1인으로 3·1운동을 주도했던 이종훈(李鍾勳), 개화기의 선각자 유길준(兪吉濬), 근대의 정치가였던 신익희(申翼熙) 등이 있다. 1963년에 구천면·중대면·언주면과 대왕면의 일부가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었고, 1964년 중부면 성남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73년에 성남시가 신설되면서 중부면 일부와 대왕면·낙생면·돌마면이 광주시에 편입되었다. 1979년 5월 1일에 광주면이 읍으로, 1980년 12월 1일에 동부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 1월 1일에는 동부읍·서부면 및 중부면 산산곡리가 하남시로 승격, 분리되어 군세가 일시 약해졌으나 수도권 위성지역으로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2001년 3월 21일에 군에서 시로 승격되었으며, 오포면도 읍으로 승격되었다. 2004년 6월 21일에 초월면과 실촌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다. 2011년 6월 21일 실촌읍이 곤지암읍으로 2015년 10월 16일 중부면이 남한산성면으로 개칭되었다. 이 지역의 교통은 예로부터 중부내륙과 통하는 서울의 관문이었고 한강의 수운을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이 지역을 지나는 도로는 중부고속도로가 군의 중심부로 서북·동남향으로 지나고 국도 3호선이 이천시에서 곤지암읍과 광주시내를 거쳐 성남시로 들어가고 국도 43호선이 여주시에서 들어와 남한산성면을 동서로 지나고 있다. 철도로는 경기도와 강원도를 잇는 경강선이 2016년부터 부분적으로 개통하여, 광주시를 지나고 있다. 교통이 편리하고 제조업체가 많이 입주하고 있으나 전 토지의 37%가 개발제한 구역에 묶여 있어 개발이 억제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광주의 생활권 가운데 고속도로가 지나는 경안동·남한산성면·초월읍 등은 서울시의 영향권에 있다. [통합포털에서 발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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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중소기업인력개발원 들머리는 본건물 우측에 있고, 들머리에서 8분여 오르면 한남정맥에 합류합니다.
♤ 문수봉(文洙峰, 403.2m)/ 팔각정
문수봉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해곡동과 원삼면 문촌리와 사암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지금은 폐사된 문수사가 있었던 봉우리라 해서 문수봉이란 이름이 되었다. 문수(文殊)란 대승불교에서 지혜(智慧)를 상징하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보살을 이르는 말이며 산 아래에 있는 마애보살상이 있는걸로 보아 불교와 깊은 인연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쪽은 곱든고개를 거쳐 어은산으로 남쪽은 쌍령산으로 동쪽은 낮은 능선이 매봉재로 이여지며 서쪽사면은 운학천 남동쪽사면은 경안천 동쪽사면은 청미천으로 흘러든다. 문수봉은 한남정맥에서 앵자지맥이 분기하는 지점이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10여분 거리에 한남 10지맥의 하나인 쌍령지맥 분기점이 있다.
- 4등삼각점 (449/ 건설부)이 있다.
♤ 문수산 마애보살상(龍仁 文殊山 磨崖菩薩像) (경기도유형문화재 제 120호)
보살상은 대승불교를 특징하는 상징물이다. 보살은 깨달음을 얻었으나 부처가 되길 마다하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애쓰는 존재이다. 용인 문수산 마애보살상은 처인구 원삼면 문촌리에 있는 마애보살 입상이다. 지금은 없어진 절터에서 50여 미터 떨어진 바위에 새겨져 있다. 신체에 비해 얼굴이 크고 손과 발이 단순하게 표현된 점등을 볼 때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보살은 서로 대칭이 되도록 2구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이처럼 부처가 없이 보살 둘 만 대칭으로 있는 것은 드문 경우로 가운데에 부처를 따로 놓았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확인할 수 없다. 새김 기법은 돋을 새김을 한 부조(浮彫)와 선을 파 내려간 선각이 혼용되어 있다. 암반 위에 부처를 새기면 마애불(磨崖佛) 또는 마애여래(磨崖如來)라 하고, 보살을 새기면 마애보살(磨崖菩薩像)이라고 한다. 마애여래와 마애보살은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를 비롯하여 중국, 한국, 일본 등지에서 폭넓게 발견된다. 한국의 경우는 7세기 무렵 백제에서 시작되어 삼국에 퍼진 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마애보살 또는 마애불은 민간 신앙과 관련이 깊다. 한국의 마애불은 놓인 위치에 따라 인가와 떨어진 은밀한 곳에 놓인 것, 사람들이 주로 왕래하던 길목에 세워진 것, 그리고 산마루에서 마을을 굽어보는 형태로 새겨진 것으로 나뉠 수 있는데, 이들은 각기 놓여진 곳에 따른 민간 신앙적 의미가 담겨 있다. 이 가운데 산 속에 사방이 가려진 은밀한 곳에 세워진 마애여래나 마애보살은 한국 고유의 바위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 경안천발원지 문수샘/ 처인구 동부동 호동(용해곡) 문수산
경안천의 원 발원지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호동 용해곡 상부, 한남정맥 바래기산 아래에 있었으나 일대에 석유비축기지가 들어서며 문수봉 아래 문수샘으로 바뀌었다. 처인구청에서 운학리를 통해 원삼으로 넘는 곱든고개 아래 해곡동에 별미마을에 있는 석유비축기지 삼거리에서 비축기지쪽으로 향하면 호3통 자연 해실마을 갈림길을 지나 비축기지 입구에서(해실교 가기 전)왼편으로 경안천 발원지 가는 길이란 이정표가 있다. (해실교에서 물길을 따라 갈수도 있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넓은 농로는 왼쪽 산으로 향한다. 산에 가까이 들면 왼편 계곡이 발원지에서 내려오는 계곡하천이다. 오른쪽 능선으로 발원지로 가는 길이란 표지가 있지만 능선길은 길고 힘들다. 왼편 계곡을 끼고 있는 소로길은 산중턱에서 물을 가로 지르며 능선과 계곡 사이에 둔덕으로 발원지 까지 연결된다. 발원지에서 문수봉으로 오를 수 있다.
♤ 곱든고개(285m)/ 동면계(해곡동 - 원삼면)/ 곱돌고개/ 곱등고개
용인시 처인구 해곡동에서 원삼면 사암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2차선 도로가 지나며, 정상에는 동물이동통로가 있고 고개가 굽이굽이 휘어져 굽은고개, 곱등고개, 곱든고개라 불렸다. 용인시에서 지명을 통일하면서 공식적인 명칭을 곱든고개로 하였다. 험한 지형 때문에 옛날부터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여 고개 밑에 범암굴, 호리 등의 지명이 생겼었다. 또한 임꺽정이 죽산 칠장사에 있는 스승을 만나러 가다 가짜 임꺽정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곳이기도 하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사암리에 있는 고개로 이 고개에서 내려다본 원삼 북쪽 뜰의 용담저수지와 아름다운 경치를 용인팔경의 제3경으로 꼽는다.
왼쪽으로 은이성지 갈림길이 나오면 어두니 고개입니다.
♤ 어두니고개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사암리와 해곡동의 경계에 위치한 고개이다. 어두니 고개는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사암리와 해곡동의 경계에 위치한 고개로 300m 떨어진 곳에 칠봉산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곳에서 왼쪽 갈림길로 천주교 은이성지가 있는 은이산으로 가는 길이다. 어두니의 유래는 양지면 남곡리 어은(御隱)마을이 있는데 임금이 은둔(隱遁)한 곳이라 해서 붙혀진 지명에서 유래된 듯 하다. 은이성지는 은이산 아래 골배마실에 있는데 지명의 유래는 옛날 이곳은 첩첩산중인데다 뱀과 전갈이 많이 나오는 지역이라 뱀마을, 즉 뱀마실이라 부르는 동네에서 부르는 산골짜기 안쪽에 있다고 해서 골배마실이라 부른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어릴적 자랐던 곳이며 천주교 은이공소에서 프랑스 신부에게 세레를 받고 사목활동을 시작했던 곳이라 천주교 성지가 많이 있다.
♤ 칠봉산(七峰山, 446.9m)/ 삼읍면봉(원삼면, 해곡동 → 양지면)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과 양지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용인시 해곡동, 원삼면, 양지면의 삼읍면 경계인 칠봉산 0.3km란 이정목을 지나 올라서는 446.9m봉이 칠봉산이다. 어디에서 보아 칠봉인지 확인할 수 없다.
- 3등삼각점(312/ 76. 9. 건설부)이 있다. 갈미봉까지는 1.6km이다.
♤ 갈미봉(441m)/ 운동시설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와 원삼면 좌향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이다. 정상에는 용인시에서 설치한 이정목과 철봉대가 있고 조향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다. 아래로는 양지파인스키벨리 스키장이 있다.
- 청소년수련원 방향으로 진행한다.
용실고개를 지나 양지파인스키장 상부탑이 있는 곳을 오르면 서쪽으로 한남정맥 석성산, 향수산, 문형산이 차례로 조망되며 북쪽으로 마구산, 태화산, 미역산, 무갑산이 조망되는 전망이 좋은 곳이다. 설악산 중청에서 보았던 대형탁구공으로 보이는 시설은 미군 기상레이더시설이다.
♤ 용실산(422m)/ 면계(원삼면 - 양지면)/ 독조지맥분기점/ 독조봉 0.7km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과 원삼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실질적인 독조지맥의 분기점이다. 바로 아래에는 스키장인 양지파인스키벨리와 골프장인 양지파인클럽이 있다. 용실봉에서 3분 정도 내려서면 독조지맥 분기점이다.
- 독조지맥 방향으로 0.7km거리에 있는 독조봉이 바라보인다.
♤ 독조지맥(獨朝枝脈)이란
독조지맥은 칠장산에서 김포 보구곳리로 이어지던 한남정맥은 용인시 문수봉에서 남으로 이어가고, 북쪽으로 또 하나의 산줄기 앵자지맥이 분기한다. 앵자지맥을 이어가면 용실봉에서 두갈래로 갈라지는데 앵자지맥은 북쪽 앵자봉으로 향하고, 또 하나의 산줄기가 동쪽으로 분기하여 독조봉(434m), 건지산(410.4m), 소학산(309.8m), 봉의산(324m), 대덕산(309.4m), 마국산(445.4m), 노성산(269m), 돌박지산(164.8), 철갑산(225m), 신통산(279m), 소무산(249m), 달걀봉(218.4m), 중군이봉(224m)을 거쳐 남한강과 청미천 두물머리 여주시 점동면 장안리에서 맥을 다하는 63.1km되는 산줄기를 말한다.
♤ 독조지맥 개념도
♤ 326.8m봉/ 삼각점봉
남곡리 갈림길을 지나고 오르는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이다.
- 식별하기 힘든 삼각점이 있다.
♤ 배미실고개/ 왕복 6차선
배미실 고개는 용인시 양지면 남곡리와 제일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양지파인리조트 정문이 있는 곳이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양지면 양지리 옛 국도와 남곡리 신 국도가 만나서 송문리로 빠지는 42번국도 양편으로 산이 막혀 거대한 호수가 형성됐다. 이 마을은 배를 매던 곳에 해당했다는 설명이다. 즉 배를 매던 장소가 배매실이 됐다는 것이다. 또 큰 물과 배 매는 곳이 있었다는 설명에서 변형된 행주형국(行舟形局)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개 배는 옛 지명에서 산을 이르는 말로 사용되고 매실(마실)은 마을의 고어임을 생각해 보면 산골마을 정도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 길건너 원 마루금은 대형건물이 들어서 있고 지금도 공사중이라 제일사거리까지 도로로 걷는다.
♤ 제일사거리
제일사거리에서 길 건너 대각선 방향 절개지가 마루금인데 마루금으로 가지 못하니 길을 따라 우회하기도 하고, 길없는 막길을 치고 올라 한국가스공사 울타리를 지나고 학촌시내버스 승강장 위 육교를 건넌다. 제일사거리에서 도로를 따르면 학촌시내버스승강장 위 육교를 건너지 않는다.
♤ 마수고개(馬手峴)/ 육교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서 제일리 사이로 있는 고개로 용인과 이천을 연결하는 42번 국도가 지나간다. 말도 고개를 넘기 힘들어서 사람이 말을 타지 않고 내려서 손으로 끌고가는 고개라고 해서 “馬手峴”이라 불렀을 것이라고 누군가 짐작했다.
- 학촌 시내버스승강장 위 육교를 건너 마루금은 오른쪽으로 이어지지만 영동고속도로를 지하차도로 건너기 위해 총신대 방향으로 좌틀하여 올라간다.
영동고속도로 밑 지하차도를 통과하자마자 왼쪽으로 붙어서 올라가도 되고, 조금 더 진행하여 도로따라 조금 더 진행하여 총신대학교 정문에서 좌틀하여 오르다가 도로가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지점에서 왼쪽으로 올라서서 마루금에 오른다. 무명봉에 4등삼각점(안성 405/ 1983 재설)을 확인하고 100m정도 오르면 328.4m봉이다. 등로 오른쪽으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이 조망된다.
370m봉에서 앵자지맥과 헤어져 용인시 양지면 대대리와 광주시 도척면 추곡리 경계를 이루며 서북쪽으로 가지를 치는 단맥이 있다. 이 능선이 약 6.5km 거리에 이르면 마구산(馬口山, 595m)을 빚고, 마구산 이후 북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서쪽 용인시 모현면 초부리·갈담리와 동쪽 광주시 도척면 상림리 경계를 이룬다. 마구산 북쪽 능선은 정광산(正光山, 562.1m)-노고봉(老姑峰, 579.1m)-발리봉(發梨峰, 511.5m)-용마봉(龍馬峰, 503.3m)-백마산(白馬山, 460.6m)-마름산(316m)으로 줄줄이 이어진다. 마름산 이후 능선은 약 5km 더 이어지다가 광주시 초월읍 지월리 경안천과 곤지암천 합수지점에 이른다. 마구산에서 동남으로 가지 치는 여맥 능선이 있다. 이 가지 친 능선으로 약 1.4km 거리에 들어 올려진 산이 태화산(泰華山, 641.1m)이다. 따라서 태화산이 마구산보다 산 높이는 높지만, 족보상으로는 마구산이 큰집, 태화산이 작은집이 되는 셈이다.
지맥은 총신대학 양지캠퍼스 뒷산인 370m봉을 오르며 우틀하여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이 광주시 도척면 추곡리와 경계에 이르고, 군부대철조망에서 용인시와 광주시의 시계인 방도리와 식금리의 경계를 따르다가 도롱골고개를 지난 232m봉에서 시경계를 버리고 광주시 도척면 방도리로 들어선다. 이후 광주시 내를 지나는 지맥이 성황당고개를 지난 토끼봉 직전 올라선 능선에서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의 경계와 다시 만난다.
왼쪽으로 아시아나 C.C.가 보입니다. 기남이고개를 지나 4등삼각점(이천 465/ 1983 재설)이 있는 420.6m봉에 오릅니다.
♤ 기남이고개
정수리고개는 대대리 한터마을에서 광주시 도척면쪽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그 고개의 원래 이름이 기남이 고개였는데 용인에 있는 고개 가운데 사람 이름이 붙은 고개로 유일한 경우이다. 기남이 고개는 정수리에 살았던 박기남이라는 분의 선행을 기려 마을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가난속에서 고개를 넘어 양지초등학교를 다녔던 박기남이 후에 자수성가하여 마을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특히 고리채가 악명을 떨치던 시절, 마을기금을 쌀로 기부하여 저리(低利)로 늘린 결과 많은 돈이 되자 중장비를 동원하여 양지로 이어지는 길을 닦았다. 이때부터 비로소 양지로 다닐 수 있는 큰 길이 열리게 되었으며, 정수리마을 사람들이 고마움을 고개 이름에 붙이고 1960년에 기남이고개에 기념비를 세웠던 것이다.
- 왼쪽은 길이 희미하고, 오른쪽으로 순교자기념관으로 가는 길이다.
한번 더 순교자기념관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오는 곳이 정수리고개입니다.
♤ 정수리고개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정수리에서 광주시 도척면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고개 아래 정수리에서 따온 지명이다. 양지면 식금리와 광주시 도척면 추곡리를 넘나드는 고개로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추곡리와 경계에 정수산(395.9m)이 있다. 오른쪽 기독교 순교자 기념관으로 내려가는 길은 나무계단으로 잘 정돈된 등로가 나 있으나 광주시 도척면 방향으로는 등로가 없는것 같다. 이 곳은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정수리고개로 많이 표기되는데 실제 정수리고개는 이 곳이 아닌 대대리 한터마을에서 광주시 도척면쪽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 금박산분기봉(425m봉)/ 금박산 0.9km
금박산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곳은 금박산이 아니고 금박산 분기봉인 425m봉이다. 금박산은 오른쪽으로 0.9km 정도 떨어져 있다.
♤ 금박산(金箔山, 424.9m)/ 오봉산(烏峰山)/ 긴박산
금박산은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추계리와 식금리에 접해 있는 산으로 오봉산 또는 긴박산으로도 불리는 산으로 양지면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과거 흑연광이 채굴되었기에 숫자가 아닌 까마귀 오(烏)자를 쓴다. 풍수상 임금이 나올 명당으로 불렸는데 독조지맥 좌전고개에서 보면 주봉 근처 3봉은 삼정승, 왼쪽으로 늘어선 6봉은 육조판서를 상징한다고 한다. 일본이 한국을 합방한 후 우리 민족의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인 진산의 혈을 끊기 위해 일제가 박아놓은 쇠말뚝이 나왔던 곳이다. 전두환 전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씨가 조부모 묘를 이곳으로 이장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산 아래 순교자 기념관은 친일파 송병준의 99칸 짜리 집터라고 한다.
금박산분기봉을 지나자마자 군부대가 나타납니다. 군부대 울타리를 따라 용인시와 광주시의 시계를 걷습니다. 중간 지점에서 감시카메라가 저를 인지한듯 그 자리에 멈춰 서라며 곧 사람이 간다고 방송을 합니다. 무시하고 손을 흔들며 카메라 두 곳을 더 지났습니다. 이번에는 손만 흔들지 말고 그 자리에 서 계시라고 재차 경고 방송이 나옵니다. 손목의 시계를 가리키며 시간이 부족하다고 반대 방향에서 올라오라고 바디랭귀지를 보내고 계속 직진합니다. 장교인지 부사관인지 한명이 허겁지겁 달려와 지금 즉시 밖으로 이탈하랍니다. 할수없이 밖으로 나가니 이미 많은 분들이 우회했는지 우회길 흔적이 나있네요. 울타리를 통과하는데 1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ㅠㅠ
♤ 시계(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 광주시 도척면)/ 군부대(57탄약대대)
지맥길 오른쪽에 엄청난 면적의 군부대가 자리잡고 있다. 군부대 울타리를 따라 약 45분, 3km정도를 진행한다. 초병이 제지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단체인 경우 인솔 장교가 나와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 북쪽 전방으로 마구산-태화산-미역산이 조망된다. 조금 더 진행하면 오른쪽으로 해룡산과 양각산도 조망된다.
용인과의 시계를 따르던 지맥이 광주시 도척면 방도리 내안으로 들어가 성황당 고개를 넘고, 해룡산으로 토끼봉(285m)에 오르며 다시 이천군과의 시군계를 만납니다.
♤ 방도리(芳都里)고개/ 2차선 도로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방도리에 있는 고개로 2차선 도로가 지나가며, 도로를 따라 가면 우측으로 내려가면 성황당 고개가 나온다. 방도리는 조선조 말기까지 방등리(芳燈里)와 내도척리(內都尺里)로 나누어져 있었으나, 1914년 일제 강점기에 행정구역을 축소 개편하면서 방등의 '방'(芳)과 내도척의 '도'(都)를 따서 '방도리'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 오른쪽으로 약간 이동하여 맞은편 임도길로 이동한다.
♤ 광주시 도척면(都尺面)
도척면의 面名은 현 도척면 방도리(芳都里)를 예로부터 내도척(內都尺)이라고 하였는데, 190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내(內)자를 제외한 도척(都尺)만을 따서 도척면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百濟 始祖 온조왕(溫祚王)이 漢江유역에 도읍(都邑)을 정하려고 할 때, 수없이 이곳 저곳을 탐사하였는데, 방도리 일대를 방문하여 대화산과 그 넘어 오포면, 용인시 모현면에 걸쳐있는 산들을 중심으로 성(城)을 쌓기 위해 수차례 답사하였고 한다. 그래서 도읍(都邑)을 정할까 말까 심사숙고(深思熟考) 하느라고 재고 또 재고 하였다는 전설이 내려오며, 그래서 방도리를 “되재”라는 자연부락명으로 부르게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즉 都邑을 정하기 위해서 재고 또 재고 하였다 하여, 도읍 도(都)자와 자 척(尺)자를 써서 도척(都尺)이라는 지명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확실한 문헌(文獻)상의 기록이 없으므로 분명한 것은 못되나, 重訂南漢誌(朝鮮憲宗14년 간행)에도 이러한 說話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傳說이 아주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으며, 지역 내에 오래 이어져 내려오고 있어 거의 定說로 굳어졌다.
군부대 지나고 방도리고개를 지난 임도구간의 마루금이 난해하다. 253m봉에 까치봉 시그널이 달려있다. 까치봉 도착전 임도삼거리에서 왼쪽 길을 따른다. 까치봉 정상을 찍는다면 다시 되돌아 내려와야 한다. 까치봉에서 내려선 돼기고개(190m)에 반바지님 코팅지가 있다. 마루금이 공장지대에 둘러쌓여 있다. 마루금에 눌러앉은 공장을 우회하여 지나기도 하고 절개지로 오르는 마지막 봉우리가 굴바위산이다. 한현우대장님 표지기와 띠지가 매달려 있다. 굴바위산에서 급좌틀하여 내려서서 공장지대를 지나는데 수도가 보여 물을 얻을 수도 있다.
성황당고개에는 고속도로가 가까워 물류센터가 몰려있습니다. 고개 양쪽으로 편의점이 보이는데 오른쪽 gs편의점이 가까워 1시간 가까이 충전을 하며 수제비라면을 뎁혀 햇반에 식사를 합니다. "DESIGN BY NATURE" 건물 오른쪽 아래로 내려서서 도로를 따라 끝까지 오르면 KTS곤지암물류센터 경비실 뒤쪽으로 들머리가 있습니다.
♤ 성황당고개/ 붉은고개/ 329번지방도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유정리에서 방도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며, 곤지암에서 도척면을 거쳐 이천시 마장면을 잇는 329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예전에 성황당이 있어서 성황당고개라 부른다. 이 지역 사람들은 서낭고개 또는 붉은고개라 부른다. 성황당고개에서 건너편 gs25편의점 앞으로 들어간다.
- 성황당고개에 있는 버스정류장에는 방도 1리로 표기되어 있다.
♤ 이천시 마장면(麻長面)
경기도 이천시 북서부에 있는 면으로 동쪽으로는 중리동 및 관고동, 서쪽으로는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및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쪽으로는 호법면 및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북쪽으로는 신둔면 및 광주시 도척면과 인접해 있다. 마장면은 조선 초에는 장수왕 또는 마전동으로 불리었고 그 후 장수왕면과 마전동면으로 개칭되었으며 장수왕면에는 목동리(목리), 장수왕리(장암2리), 문암리(장암1리), 둔전리(표교), 각씨동리(각평), 이치리, 이평리, 토곡리(호법 매곡)가 포함되었고 마전동면에는 억만이(회억), 오천리(오천), 관동리(관리), 작별리(작촌), 덕평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장면과 마면으로 개칭되었으며 일제의 부군면 통폐합에 따라 마장면으로 통합되면서 장면의 토곡리는 호법면으로 편입되어 법정리 13개리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면계에 양각산(386m)·설봉산(394m)·건지산(411m) 등이 솟아 있으며, 동부에는 표교천이, 중앙에는 관리천이 남류하여 복하천으로 유입한다. 이 두 하천유역에 발달한 평야를 중심으로 주로 쌀과 땅콩이 생산된다. 유물·유적으로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태평흥국명마애보살좌상(보물 제982호)가 있다. 해월리의 지산포레스트리조트는 스키장·골프장 및 콘토미니엄 등을 갖춘 종합관광시설로 연중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명소이다. 중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가 각각 면의 북동부와 중앙부를 통과하며, 덕평리에는 영동고속도로의 덕평 인터체인지가 있다.
♤ 토끼봉(302m)/ 시계(광주시 - 이천시)
방도리 관내를 지나온 지맥이 다시 이천시와의 경계에 닿는다. 토끼봉에는 벤치들이 있고 해발 280m 현 위치 표지목이 있다. 토끼봉이란 아무런 징표도 없는 무명봉에 작명한 봉우리이다. 1분여 Back하여 현대해상연수원 갈림길 이정표(해룡산0.54km/더덕바위산2.94km/국수봉5.69km/까치봉2.74km/성황당고개0.87km/현대해상연수원0.43km)3거리로 돌아와서 해룡산 방향으로 능선길 이어간다. 완만히 오르다가 교통호처럼 패인 등산로를 가파르게 올라간다. 해룡산 갈림 이정표(해룡산0.10km//더덕바위산2.50km/국수봉5.25km/인배산6.70km//까치봉3.18km/성황당고개1.31km)서있는 3거리다. 이정표 해룡산0.1km 방향으로 0.1km 해룡산을 향한다. 해룡산은 주능선에서 살짝 벗어나 있어 완만히 따르다 가파르게 봉우리로 올라선다.
- 해룡산 방향으로 좌틀한다.
♤ 해룡산(海龍山, 367.2m)/ 이용산(二龍山)
해룡산은 광주시 도척면 노곡리, 유정리와 이천시 마장면 관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광주 진우리 쪽에서는 용 두 마리처럼 보인다 하여 이룡산(二龍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정상에는 정상석과 삼각점이 하나 있으며, 긴능선으로 동쪽과 중간에 조그만 바위가 있다. 광주문화원 자료에 따르면 이용산(二龍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각씨봉 아래에 위치한 산으로 두 마리의 용이 엎드린 형상이라고 한다. 이천에서 열두번째로 높은 해룡산은 높이도 엇비슷한 더덕바위산, 양각산과 함께 정삼각형으로 모여 이천 북서쪽을 경계 짓는 하나의 산군을 형성하고 있다. 「조선지지」자료를 보면 노곡리에 쌍룡정(雙龍亭)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유정리 해룡산의 용과 용머리의 용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라고 한다.
- 맥길에서 100m 떨어져 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없고, 몇 발짝 거리에 삼각점이 있다.
♤ 회고개(檜峴)/ 삼면경계면(광주시 도척면, 이천시 마장면 → 신둔면)/ 양각산갈림길
광주시 도척면 노곡리와 이천시 마장면 관리를 넘나드는 고개로 커다란 회나무 노거수 한 그루가 고개를 지키고 있다. 사거리 갈림길이지만 광주 쪽은 사유지 주택단지라며 휀스를 쳐서 막아놓았고 지겹게 따라오던 철망울타리도 이곳에서 끝난다. 회고개에서 지맥길은 울타리를 따라 오른쪽으로 이어지고 고개 왼쪽으론 양각산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있다. 이정표(더덕바위산 0.73km/국수봉 3.48km/인배산 4.20km/ 성황당고개 3.08km/해룡산 1.87km)가 있다. 이정표 방향따라 더덕바위산으로 오른다. 곧바로 가파르게 바위벼랑이 있는 둔덕에 올라서고 완만히 올라가는 능선은 대체로 순탄하다. 더덕바위산에 이르면서 가파르게 올라간다.
- 성황당 자리인지 무너진 돌탑의 흔적이 있다.
♤ 양각산(羊角山, 381.5m)/ 왕복 3~40분, 다녀오기엔 빠듯한 거리이다.
양각산은 이천시 마장면 관리와 신둔면 고척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예로부터 신성하고 영묘한 산으로 여겨져 왔다. 두 개의 뾰족한 산봉우리가 양의 뿔 모습과 흡사하다고 해 양각산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양각산 정상석이 있는 381.5m봉 우측능선상 0.5km 지점 승적산(327m)에서 동북쪽으로 약0.2km에 솟은 338m봉을 국립지리원 발행지도는 양각산으로 표기하고 있어 이를(두 개의 뾰족한 산봉우리가 양의 뿔 모습과 흡사하다고) 뒷받침한다. 조선 영조 때 이인좌의 난에 가담하고 반란을 꿈꾸며 한양 진군 계획을 세웠으나 사전 발각되어 처형된 평안도 관찰사 이사성이 무술을 연마하던 치마대(馳馬臺)가 봉우리에 있다. 양각산 정상에 오르면 넓게 펼쳐진 이천 평야에 신둔면 학암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 이천시 신둔면(新屯面)
경기도 이천시 북쪽에 위치한 면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신면과 둔면을 통합하여 신둔면이 신설되었으며 이천시청으로부터 북서쪽 4km 지점에 위치한다. 신둔천과 양각산, 정개산(소당산), 원적산이 타 지역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원적산에서 이어지는 능선이 서쪽과 남쪽까지 에워싸 병풍을 이루고 있다. 동쪽은 백사면, 남쪽은 이천시와 마장면, 서쪽은 광주시 도척면, 북쪽은 광주시 곤지암읍과 여주시 금사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중부고속도로와 서울·충주를 잇는 국도 제3호선이 지나는 교통의 요지이다. 《세계도자기 EXPO》와 때를 맞춰 개통한 중부고속도로의 서이천 I/C와 시도 12호선, 15호선이 연결되는 이천의 관문이며 교통의 요충지이다. 면의 중심부에 신둔천이 흐르며 고품질 미질을 자랑하는 진상미와 농가소득 증대에 기여하는 인삼, 화훼 등을 농업의 주축으로 삼고, 국내 유일의 도자박물관인 해강도자기박물관을 비롯한 광주도자문화연구소 등 260여개의 크고 작은 도자기 업체가 운집하여 《세계도자기 EXPO》의 성공적 개최를 계기로 명실상부한 한국 도예의 메카로 자리잡아 국내외의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한국관광대학이 위치하고 있다.
♤ 더덕바위산(386.3m)/ 각씨봉(閣氏峯)
더덕바위산, 토끼봉(285m)은 광주시 도척면 노곡리와 이천시 마장면 관리 경계에 있는 산이고 승적산(327m), 고시락골산(338.7m)은 이천시 마장면 관리와 신둔면 고척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 더덕바위산, 토끼봉, 승적산, 고시락골산은 국립지리원 발행지도나 영진지도에는 나오지 않은 산이다. 해룡산과 양각산, 국수봉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무명봉이나 다름없고 개념도에는 387봉으로 기록되어 있다. 예전에 산 정상 봉우리에 각씨(閣氏)가 살던 곳이라 하며, 우치 마을 저수지 동남쪽에 있는 산봉우리이다. 아마도 지자체에서 정상석을 세우면서 이름을 부여하기도 하고 구전되어 오는 산이름을 발굴하여 붙인 이름인듯 싶다. 더덕바위산, 토끼봉은 앵자지맥상의 산이고 승적산, 고시락골산은 회고개 직전봉에서 분기된 양각산 능선이 도드람산까지 이어지면서 중간에 만든 산이다.
- 정상표지목이 있고 주위 잡목으로 조망은 없다.
중부고속도로와 제2중부고속도로가 나란히 있어 고속도로를 건너기 위해 왼쪽으로 내려간다.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중부고속도로 첫번째 암거를 통과하고 연이어 337지방도로도 지하 암거로 통과한다.
어쩐지 오른쪽 가까이에 봉우리가 가보고 싶더라니...
♤ 305.7m봉/ 삼각점봉
마루금에 올라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지맥은 왼쪽이지만 오른쪽으로 살짝 벗어나 있는 삼각점봉에 다녀온다.
- 알아볼 수 없는 4등삼각점(이천 475/ )이 있다.
♤ 국수봉갈림길/ 삼읍면봉(이천시 신둔면, 광주시 도척면 → 곤지암읍)
지맥은 국수봉갈림길에서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을 만나고 이후 곤지암읍의 경계를 따라 앵자봉까지 긴 구간을 함께한다. 국수봉은 지맥길에서 0.25km 벗어나 있기에 다녀와야 한다. 국수봉갈림길에서 내려서는 65번 철탑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좋다.
♤ 국수봉(國守峰, 423.8m)/ 0.25km 다녀와야 한다.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진우리와 이천시 신둔면 인후리에 접해있는 봉우리이다. 나라를 생각하며 오르내리던 봉우리라 하여 국사봉(國思峰)이라 불렀는데 국수봉이라 표기되어 있다. 일설에 의하면 이 봉우리의 산줄기가 박 넝쿨에 박이 주렁주렁 달린 형세라고 한다.
- 조망은 없고 왼쪽으로 진우리 저수지가 1.5km라고 안내한다.
♤ 광주시(廣州市) 곤지암읍(昆池岩邑)
경기도 광주시 동남부에 있는 읍으로 동쪽으로 여주시 금사면(金沙面), 남쪽으로 이천시 신둔면(新屯面), 북서쪽으로 퇴촌면(退村面)·초월읍(草月邑), 남서쪽으로 도척면(都尺面)에 접한다. 2004년 6월 21일 실촌면에서 실촌읍으로 승격되였으며 2011년 6월 21일 곤지암읍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동쪽에 천덕봉(630m), 남쪽에 정개산(420m), 북쪽에 앵자봉(667m)이 솟아 있으며, 곤지암천이 읍의 중앙을 가로지른다. 곤지암천과 그 지류를 따라 약간의 평야가 전개될 뿐 대부분의 지역이 산지를 이루고 있다. 지역 문화재로 곤지암리에 신립장군묘(경기도 기념물 제59호)와 곤지바위(경기도 문화재자료 제63호)가 있다. 실촌읍에서 개칭한 지명 곤지암읍도 바로 이 곤지바위에서 유래했다. 곤지암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신립(申砬 1546-1592) 장군의 묘소에 얽힌 고양이바위 전설에서 유래하며 암(岩. 바위)곁에 곤(昆. 커다란) 지(池. 연못)가 있다는 뜻이다. 신립장군 묘소는 곤지암읍 곤지암리에 있다.
♤ 6.25 곤지암전투
한국전쟁 중에 중공군의 참여로 후퇴하던 유엔군은 서울로 진출하기 위해 양평이 필요했고, 양평으로 가는 길목인 곤지암을 주요 목표 중 하나로 삼았다. 제7기병연대(연대장: 윌리엄 A. 해리스)가 탈환 임무를 맡았다. 휘하 대대(2대대, 3대대와 그리스대대)가 이천에서 출발하여 현재의 경안동이 위치한 경안리로 진격했다. 1951년 2월 6일에 그리스대대가 곤지암읍내로 진입하여 곤지암리 대석동 인근에 집결하였다. 이곳에 연대 사령부를 세웠는데 해당 위치는 오늘날의 곤지암역 근처이다. 7연대 휘하의 부대들 목표는 대석동 북쪽에 위치한 402고지 근처의 무명고지와 쌍동리 인근의 489고지, 초월면 등이었다. 오늘날의 초월역을 둘러싼 고지들에서 전투가 치러졌고, 2월 10일 13시 무렵에 무명고지를 점령했을 때 중공군 시신 150기가 유기되어 있었다. 이후 후속부대와 국군 부대가 상열미리 인근으로 진출하면서 이 지역의 탈환은 완료되었다.
♤ 인배산(仁倍山, 319.3m)
광주시 곤지암읍 수양리와 이천시 신둔면 인후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개념도에는 인배산이란 표기 대신 344.4m봉으로만 기록되어 있다. 광주시 곤지암읍 수양리와 이천시 신둔면 인후리에는 인배라는 자연마을이 있다. 인배는 이 마을에 배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살았는데, 이 사람들의 마음씨가 매우 어질다고 하여 인배(仁倍)라고 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인배산이라는 지명은 인배마을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 정상에는 판독하기 어려운 3등삼각점(이천 31?/ )이 있다.
♤ 적산(積山, 284.1m)
광주시 곤지암읍 신촌리와 이천시 신둔면 남정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개념도에도 적산이란 표기 대신 284.1m봉으로만 기록되어 있고 적산이란 지명 유래는 알 수 없다. 지자체에서 등산로를 정비하며 임의로 작명한 이름인듯 국립지리원 발행 지도에는 그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 정상에는 이정표와 4등삼각점(이천 476/ 1987재설)이 설치되어 있다.
동원대는 대학가가 따로 없다. 학내에 버스정류소가 있어 일반인도 드라이브스루로 통과한다. 처음부터 동원대 안으로 들어가 새천년관이 보이는 가드레일 끝지점에서 오른쪽으로 들어서서 가파르게 10여분 오르면 마루금이다. 하지만 조금 더 맥길에 충실하여 도로를 따라 넋고개에 있는 이천의병전적비 뒷능선으로 마루금을 잇기도 한다. 오른쪽 임도를 따르면 범바우약수터를 지나 비득재로 오른다.
♤ 넋고개/ 넓고개(廣峴)/ 육각정/ 이천의병전적비
경기도 광주시의 남동부 실촌읍(현재 곤지암읍) 신촌리에 위치한 고개이다. 조선조 선조때인 1592년 임진왜란 왜군들은 부산에 상륙하여 동래와 문경을 거쳐 파죽지세로 한양으로 향하고 있을 때 선조는 도순변사 신립과 종사관 김여물을 보내 왜군을 막게 하였다. 처음에는 문경새재에서 왜군의 북진을 저지하려 했으나 지세가 너무 험해 말달리고 활쏘기가 불편하다고 생각되어 달래강을 뒤에 두고 충주의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쳤다. 왜적과의 전투가 시작되자 신립장군은 불량배를 비롯한 겨우 수천명으로 병력을 조직하여 왜적에게 대항했으나 조총을 앞세운 왜적에게 당할 길이 없어 대패하였고 신립장군과 김여립은 탄금대에서 달천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였다. 순절한 신립장군의 혼을 모신 상여가 충주에서 서울로 향해 오는데, 상여꾼들이 '어하 어하'하면서 이천의 기침이고개를 넘는데, 상여 안에서 기침소리가 나서 깜짝 놀랐다. 그런데 상주들에게 확인해 보니 신립 장군의 기침 소리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장군님이 원통하게 돌아가셔서 원혼이 기침을 하신다고 믿고 계속 상여를 메고 오는데 신촌리 넉고개에 와서 쉬었다가 다시 상여를 메고 출발하면서부터 기침소리가 멈추었다고 한다. 그 뒤로 신립 장군의 넋이 이 고개에서 사라졌다고 하여 넋고개라고 하였다고 전한다. 또한 고개가 넓다고 하여 넓은 고개가 준말이 되어 넉고개가 되었다고도 전한다.
♤ 비득재(鳩峴)
우리 조상들은 좁아드는 고개의 모양을 짐승의 목에 비유하여 작명한 경우가 많다. 구렁목, 작고개, 쇠목재(牛項), 개목재(狗項), 새목이재, 새재(鳥嶺), 조항(鳥項), 황새목이, 오현(烏峴) 등등등.... 비득재는 그 형상이 흡사 비둘기가 나는 모습을 띤 경우를 말한다.
오른쪽 방향으로 드넓은 이천평야의 들판과 설봉산 도드람산이 잘 내려다 보이고, 가야할 방향엔 수리봉 뒤쪽으로 천덕봉과 원적산이 보입니다.
♤ 정개산(鼎蓋山, 433.4m)/ 소당산
정개산은 경기도 광주시 옛 실촌읍 동남쪽에 위치한 산이다. 봉현리 · 신촌리 · 수양리와 이천시 신둔면, 지석리의 경계이다. 소당산 또는 솥뚜껑산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정개산은 산의 형세가 높고 우뚝하여 흡사 솥뚜껑 같기 때문에 정개산이라 부른다.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동원대학교를 통과하여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지형도에는 3등삼각점(이천 318/ )이 있는 첫번째 봉우리가 정개산으로 나오는데 이정목에는 0.48km 더 가라고 안내한다. 오른쪽 커다란 바위 봉우리 위에 정상석이 세워져 있고 이천 백사면, 신둔면, 그리고 멀리 한남정맥 구봉산관 쌍령산 사이로 독조지맥 건지산도 조망이 되는 등 주변 전망이 좋은 곳이다.
♤ 정개산 6.25전사자 유해발굴 기념지역/ 6.25 썬더볼트작전 전투지
정개산은 1951년 1월 25일~2월 18일까지 국군 6사단과 미 24사단 그리스대대가 문형산~발이산~정개산~천덕봉을 연하여 중공군 38군 예하 112, 113사단과 전투(썬더볼트 작전)를 했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육군 제 55보병사단은 2000년 4월부터 6.25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을 실시 국군 전사자 유해 11구, 전투화, 사진 및 수첩 등 유품 90점을 발굴하여 뒤늦게나마 조국의 품인 국립현충원에 모실 수 있게 되었다. 경기도와 이천시, 수도군단과 제 55보병사단은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내 조국, 내 강토를 물려주고 호국보훈 의식과 애국애족의 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이곳 정개산 입구에 평화의 쉼터를 마련하였다.
♤ 수리봉(547m)/ 골프장갈림길
골프장 갈림봉을 이후에 힘들게 오르는 수리봉인데 변변한 표지석 하나 없는 무명봉이다. 이정목에 골프장갈림길이라고 써있고 정개산 정상 2.12km, 천덕봉 2.5km로 안내하고 있다. 왼쪽 아래로 남촌컨트리클럽이 있다.
440.9m봉을 지나 천덕봉을 오르며 우측 멀리 천덕봉에서 원적산으로 이르는 마루금 능선이 펼쳐 보인다. 원적산 최고봉은 천덕봉인데 더 낮은 원적봉을 원적산 정상이라고 말한다. 천덕봉과 원적봉의 관계설정이 시급하다. 475.4m봉에서 천덕봉 오름이 시작되고 헬기장에서 천덕봉까지는 방화선이다. 천덕봉에서의 뷰는 어디까지 일까. 지나온 곳으로 앵자지맥의 분기점 한남정맥 문수봉까지 선명하다. 검단지맥, 태-백종주, 천마지맥의 예봉산, 주읍지맥의 주읍산, 원덕봉의 왼쪽으로는 여주시와 남한강이 보인다. 해룡지맥의 해룡산, 오갑지맥의 오갑산, 부용지맥, 한강기맥의 용문산 줄기, 백운지맥의 백운산, 영월지맥의 치악산.... 역량껏 배를 불리고 마지막 가야할 방향으로 제2영동고속도로와 앵자봉 우측 굵직한 양자산으로 이별을 준비한다. 정말 엄청난 천덕봉이다.
천덕봉에서 원적산은 왕복 1.8km입니다. 길은 편하다는데 다녀오기엔 빠듯한 거리네요.
♤ 천덕봉(天德峰, 632.1m)/ 삼시봉(광주시 곤지암읍, 이천시 신둔면 → 여주시 금사면)/ 원적산분기봉
천덕봉은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만선리와 유사리 그리고 이천시 백사면 장동리와 여주시 금사면 주륵리에 걸쳐 있는 봉우리로 이천시에서 제일 높은 산인데, 주봉은 원적산이며 넓은 공터에 정상석이 세개다. 고려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에 머물렀다고 하여 공민왕봉이라고도 한다. 천덕봉의 유래를 보면 공민왕이 650여년 전에 홍 건적(紅巾賊)의 난을 격파하기 위하여 원적산 정상에서 구국기도회(救國祈禱會).천덕회(天德會)를 개최하였던 고사(故事)에서 유래하여 천덕봉이란 지명(地名)이 생겼다. 공민왕은 홍건적 난으로 이곳으로 피신해 와 원적산성을 쌓았다고 한다. 원적산성은 금사면 주륵리와 이천시 백사면 경사리의 경계를 이루는 원적산의 정상부에서 능선을 따라 축조된 고려시대의 산성으로 문헌 기록에는 "공민왕이 축조한 것으로 둘레는 2,400보인데 지금은 폐하였다" 라고 소개하고 있다. 천덕봉은 원적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며 항상 구름과 안개에 싸여 있으며 산속에 신라 선덕여왕 때 혜법선사가 세운 영원사가 있고 계곡에는 산간 오지마을인 곤지암읍 외선리.내선리가 있다. 신둔면 장동리 쪽은 군사훈련장 때문에 입산을 제한하고 있어 산행은 백사면 경사리에서 가능하다. 영원사를 지나 원적봉을 거쳐 정상에 오르는 길은 완만하며 정상에서 천덕봉까지는 육군55사단 공용화기 사격장이 있으므로 능선 안부를 지나 만선리로 하산하게 된다.
- 깨진 2등삼각점(이천 24/ 판독불가)이 있고, 이정표(원적산 1km/ 앵자봉 11.05km/ 유사1리버스종점 4.11km/ 삼합리버스종점 3.37km/ 사태봉산 16.12km/ 동원대학교 7.04km/ 정개산 4.3km)가 서있다.
♤ 원적산(圓寂山, 559.2m)/ 무적산(無寂山)
원적산은 이천시 관내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이천시 백사면의 서북쪽에 있으며 무적산이라고도 한다. 원적산을 거점으로 이천시의 신둔면.백사면과 서로는 광주시 곤지암읍, 동으로는 여주시 금사면의 경계를 이루며 동서로 길게 이어진다. 동쪽 원적봉 기슭에 638년(선덕여왕 7년)에 선덕여왕 때 창건했다는 영원사(靈源寺)와 근래에 건립한 불선사가 있다. 주봉인 천덕봉 기슭에는 율수폭이라는 폭포가 있다. 또한 예로부터 원적산에는 36대에 걸쳐 정승과 장군이 배출된다는 금반형지(金盤形址)가 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고 한다. 이 산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넋고개가 있어 동서간 교통로가 되고 있으며 이천 산수유마을이 가깝다. 원적산은 곳곳에 헬기장이 산재해 있어서 꾼들에게는 비박의 성지로도 불린다.
- 헬기장 초입에 예술품 같은 4각기둥 원적산 정상석이 서있다.
♤ 여주시 금사면(金沙面)
금사면은 여주시 중앙부에 위치한 3동 1읍 8면의 하나로 소재지는 상동이다. 동쪽은 대신면과 남한강을 사이로 접하였으며, 남쪽은 흥천면과 이천군 백사면과 신둔면, 서쪽은 산북면, 광주시 퇴촌면, 곤지암읍, 북쪽은 양평군 강상면, 개군면에 인접하다. 원래 금사면은 삼국시대에 성지매(省知買)로 불리우다 통일신라 660년(무열왕 7)에 술천성으로 개칭하였고, 신라 경덕왕 때에 기천, 천령현(川寧縣)으로 개칭되었다. 그후 조선 예종 원년(1469)에 여주목(驪州牧)에 편입되어 직촌(直村)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금사면으로 개칭되었다. 금사면(金沙面)이 되어 전북(箭北), 용담(龍潭), 백자(伯子), 상호(上虎), 하호(下虎), 상품(上品), 하품(下品), 송현(松峴), 소유(巢由), 장흥(長興), 후동(後洞), 주록(走鹿), 장항(獐項), 도장(道壯), 부곡(釜谷), 궁리(宮里), 이포(梨浦), 외평(外坪), 탄항(灘項), 금사(金沙), 점평(店坪)의 21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이후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흥곡면(興谷面)의 충신동(忠信洞) 일부를 병합하여 17개리로 개편 관할하게 되었으며, 1989년 4월 1일 송현, 상품, 후, 하품, 백자, 용담리를 산북면으로 분리함으로써 현재 법정리 11개리, 행정리 13개리, 자연마을 26마을을 관할하게 되었다. 또한 금사면은 옛부터 금이 많이 나오는 곳으로 유명하였으며 특히 남한강 및 관내 하천에서 사금이 많이 채취되었고 일제 강점기 때 상호·소유리 금광이 유명하여 이에 금사면(金沙面)의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금사면은 법정리 11개, 행정리 13개, 자연마을 26개가 있다.
♤ 소시랑봉(554.8m)/ 삼면봉(광주시 곤지암읍, 여주시 금사면 → 산북면)/ 두번째 헬기장
지맥의 왼쪽은 그대로 광주시 곤지암읍이고 지맥의 오른쪽이 여주시 금사면에서 산북면으로 바뀌는 삼읍면봉이다. 오른쪽으로 주록리 3.1km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다. 지맥은 삼합리버스정류장 방향으로 직좌틀한다. 내려서는 길이 가파르고 낙엽이 무릎까지 쌓여 빙판길처럼 미끄럽다. 가파른 경사지를 왼전히 내려서면 만나는 이정표에서 왼쪽으로 가는 선명한 삼합리버스정류장쪽 길이 아니라 희미한 오른쪽 삼합리고개 쪽으로 내려서야 한다.
♤ 해월 최시형 묘소
최시형(1827년~1898년)은 조선의 종교 사상가이자 동학의 2대 교주이다. 호는 해월(海月), 경상북도 경주 출신으로 최제우와 동향(同鄕) 사람이다. 1864년, 1대 교주 최제우가 조정에 체포되어 사형을 받자, 그 후임으로 동학 2대 교주가 되어 신도들을 이끌었다. 1894년 전북 고부의 접주 전봉준이 주도한 동학농민운동 계획에 처음엔 반대하였으나 전봉준,손병희 등이 계속해서 크게 간청하고 그 밑의 따르는 무리들이 날이 갈수록 들불처럼 번지자 동참하고 지지를 표하며 활동하였다. 이듬해 전봉준이 체포되어 사형을 받자, 충남 논산에서 남접군과 합세하여 관군 / 일본 혼성군과 공주에서 교전을 벌였으나 참패하고, 전북 장수 전투에서도 참패하자 몸을 숨겼다. 1898년 강원도 원주에 머물던 중 반역 죄목으로 체포되어 사형당한다. 혹시 죽음 뒤에도 고비원주(高飛遠走)?! 현 단성사극장 뒤인 육군법원에서 좌도난정율이라는 죄명으로 사형집행 후 3일(당시 법제도는 사형을 집행한 후 3일만에야 내다 묻거나 가족에게 인도.선생72세), 광희문 밖 신당동 쯤에 가묘, 송파나루 건너 송파에 2년, 그리고 현재 묘소에 1900년 3월 12일 이장에 이른다. 그의 묘는 경기도 여주군 산북면 주록리 ‘안산’골짜기 원적산 능선에 있다.
♤ 여주시 산북면(山北面)
여주시 서북부에 있는 면으로 산북면은 원래 금사면에 속해 있다가 1970년 12월 16일 여주군 조례 제187호에 의하여 금사면에 산북 출장소를 두어 송현, 상품, 후리, 하품, 백자, 용담의 6개리를 관할하였는데, 1989년 4월 1일 여주군 조례 제1160호에 의하여 산북면으로 승격되었고, 2013년 9월 23일 하품리가 명품리, 주어리로 마을 명칭이 변경되어 현재는 상품리, 송현리, 후리, 명품리, 주어리, 백자리, 용담리 등 7개의 법정리로 되어 있다. 상품리에 면소재지가 위치하며 지역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쪽에 면의 최고봉인 해발 712m인 양자산이 있다. 면의 중심부를 용담천이 흘러 동쪽의 남한강으로 합류한다. 문화재로는 서희장군 묘와 사찰터로 주어서지가 있으며 해여림식물원이 위치하고 있다.
마루금이 광주원주고속도로/ 제2영동고속도로와 주변 개발로 어수선하다. 농장으로 내려서서 농장 진입로를 따라 광주-원주고속도로의 송현1교를 아래로 지나고 제2영동고속도로 고속도로 바로 밑에서 계단을 올라 곧바로 지맥 등성이로 길이 없는 길로 마루금에 복귀하니 배하사님의 거북산 코팅지가 보인다.
♤ 삽합리고개/ 국정개고개
광주-원주고속도로를 지나 삼합리고개로 내려선다. 지음리(地音里, 징골), 야포동(冶浦洞, 풀무께), 국정포동(國井浦洞, 국정개) 3곳이 부군면 통폐합 때 합쳐져 삼합리란 이름이 붙었다. 세 마을을 합쳐서 삼합이다. 삼합리고개는 경기도 곤지암읍 삼합리에서 여주시 산북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예전에는 국정포(國井浦) 또는 국정개고개라고 불렸으며 지금은 삼합리에 있는 고개라해서 삼합리고개라 부르며 버스정류장 명칭도 삼합리고개라 되어있다. 곤지암에서 여주시 산북면과 이포를 잇는 8번 국도가 넘으며 국정개의 지명유래를 보면 고려말기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 이곳으로 왔을 때 이곳의 샘물을 식수로 삼았다고 해서 국정(國井) 또는 국정포(國井浦)라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병사들이 병기를 만들던 곳엔 야포란 이름이 붙고, 불경을 외우던 곳엔 지음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하니 천덕봉은 삼합리와 연관이 깊어보인다.
- 사유지 주택이 마루금에 얹혀있어 주택 울타리를 따라 공장 마당으로 내려서야 한다.
♤ 원대울산(353.9m)
글자가 심하게 마모된 4등삼각점(이천 431/ )이 있는 292.3m봉을 지나고, 삼합리고개와 남이고개 사이의 최고봉이다. 좌틀하여 내려선다.
임도인 舊 남이고개를 지나 도로인 新 남이고개에 도착하면, 왼쪽 건업리 쪽으로 50m 내려서면 앵자봉 들머리가 있습니다. 물론 막산으로 직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남이(南怡)고개
여주군 신북면 상품리에서 광주군 곤지암읍 건업리로 넘나드는 고개로 98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옛날 남이장군(南怡將軍)이 어렸을 때 이곳에서 군사훈련을 하는데 백마를 타고 이 고개에서 활을 당기여 후리에 있는 고양이바위를 향해 쏘고 백마를 타고 달려가 보면 화살보다 말이 먼저 다달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또 남이장군이 도둑을 잡기 위하여 이 고개에 주둔한 일이 있다하여 남이고개란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남이장군은 조선시대의 무신(武臣)으로 본관은 의령(宜零)이며 의산군 휘의 아들이다. 태종의 외손(外孫)으로 좌의정 권단의 4녀와 결혼, 1457년 17세로 무과(武科)에 장원하여 세조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으며 1467년 이시애(李施愛)가 북관(北關)에서 난을 일으키자 우대장(右大將)으로 이를 토벌 적개공신(敵愾功臣) 1등에 오르고 의산군(宜山君)에 봉해졌다. 이어 서북변(西北邊) 건주위(建州衛)를 정벌하고 27세의 나이로 병조판서에 올랐고 1468년 예종이 즉위한 지 얼마 안되어 대궐 안에 숙직하던 어느날 밤 혜성(彗星)이 나타난 것을 보고 묵은 것을 없애고 새것이 깔릴 징조라고 말했다. 이에 평소에 그의 승진을 질투하던 유자광(柳子光)이 이것을 엿듣고 역모를 꾸민다고 모함하여 강순(康純) 등과 함께 주살(誅殺)되었다.
- 남이고개에서는 철망이 설치되어 있어 지맥길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고개 직전 우측에 있는 구도로를 통해 들머리에 접근하여야 한다.
커다란 도로가 얽혀있고, 유통지대인지 공장지대 건물이 잔뜩 들어서서 옛날 가옥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 광주시 곤지암읍 건업리(建業里)
만선리의 북쪽에 위치한다. 게네비란 이름으로도 불렸다. 옛날에 여주 금사면에 살던 장수가 전쟁에 나갔다가 패하고 기어서 왔는데, 기어서 왔다고 게네비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15세기에 어느 밀양 박씨 장수 하나가 낙향해 이곳에다 마을을 만들고 건업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상건업과 하건업 마을 2곳이 있었다. 현재도 밀양 박씨의 집성촌이 있다.
♤ 여주시 신북면 상품리(上品理) 갈림길
상품리 지명에 대한 유래는 옛날 3정승(원정승, 서정승, 이정승)이 살았다고 하여 품실로 불리다가 행정구역 개편 때 윗부락은 후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상품리로, 아랫부락은 하품리로 정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자작봉(581.8m)
소망수양관 단지쪽으로 출입을 금한다는 큼직한 안내판과 작명의 동기를 알 수 없는 번듯한 자작봉 정상석이 서있는데 정상석에 기재된 해발고도가 맞지 않는다. 왼쪽으로 건업리가 내려다 보이고 건너편으로 지나온 천덕봉과 정개산의 마루금이 선명하다. 이정목이 앵자봉까지 1.49km를 가리키고 있다.
서쪽 아래로 이스트밸리CC가 내려다 보이고 북쪽으로 양자산과 그 뒤 용문산라인이 조망됩니다.
♤ 앵자봉((鶯子峰, 670.2m)/ 삼시읍면봉(광주시 곤지암읍, 여주시 산북면 → 광주시 퇴촌면)/ 목조데크
앵자봉의 앵(鶯)은 꽤꼬리 앵자, 꾀꼬리가 알을 품고 있는 산세라 하여 꾀꼬리봉으로 불리다가 한자로 표기할 때 앵자봉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옛날에는 각시봉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웃한 양자산을 신랑산으로 보고 두 산을 부부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부가 함께 오르면 부부금실이 좋아진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앵자봉은 능선에서 양자산과 관산으로 연결된다. 앵자봉은 천진암성지로 천주교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산이다. 앵자봉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천주교가 전파되기 시작되었고, 지금은 앵자봉 일원이 천주교 성역 순례길로 지정되어 있다. 앵자봉은 높은 산은 아니지만 초기에 천주교인들이 숨어 살았을 만큼 산 속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심산유곡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받는 산이다.
- 관산과 무갑산은 앵자봉에서 서쪽으로 분기해 나가는 단맥에 해당한다.
♤ 광주시 퇴촌면(退村面)
경기도 광주시 북동부에 있는 면으로 북쪽으로 남종면(南終面), 서쪽으로 남한산성면, 남쪽으로 곤지암읍·초월읍(草月邑), 동쪽으로 양평군 강하면(江下面)에 접한다. 서북단의 도마리(道馬里)와 무수리(無愁里)는 한강 지류를 사이에 끼고 떨어져 있다. 해협산(海峽山, 531m)·앵자산(鶯子山, 667m)·관산(冠山, 602m) 등의 높은 산들이 솟아 있어, 작은 지류가 한강에 합류하는 북서부의 광동리(光東里) 일대를 제외하고는 소규모의 천수답과 약간의 밭이 산재한다. 문화재로는 조영무묘(趙英茂墓), 최항선생묘(崔恒先生墓:경기기념물 33), 최항 신도비, 도마리 요지(道馬里窯址) 등이 있다. 조선시대 광주부 퇴촌면 일대이다. 조선시대 개국공신 한산군(漢山君) 조영무(趙英茂)가 노약하여 정계를 은퇴하면서 광주의 동쪽 마을인 광동리로 와서 말년을 보냈는데, 그의 퇴촌(退村)이라는 호가 면 이름이 되었다고 전한다. 『중정남한지』에는 고려 말에 왕씨와 백씨 성을 가진 두 사람의 상서가 조정에서 물러나 이곳에서 살았는데, 지붕을 맞대고 이웃되어 살구나무를 수백 그루 심었다고 하여 상서동(尙書洞) 또는 행방(杏坊)이라고도 불렀다는 기록이 나온다.
♤ 우산봉(672m)
앵자봉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헬기장이 세개나 있다. 첫번째 헬기장이다.
♤ 퇴촌면 우산리(牛山里)
양자산 이름은 들판에 버드나무가 즐비하다는 뜻인 양평과 무관하지 않은데 이 산은 양평에서 남한강 건너로 항상 버드나무와 함께 보였기 때문이다. 양자산은 소처럼 생겼다고 소산이라고도 하는데, 앵자봉 북서쪽 골짜기 일원은 소미라 불리기도 하였는데 소와 뫼(산)의 합성어다. 소뫼가 소미로 불리다가 한문으로 우산리로 바뀐 것이다. 우산리에는 앵자봉과 관산, 소리산, 천진암 등이 위치해 있다.
♤ 655m봉/ 삼시군봉(광주시 퇴촌면, 여주시 산북면 → 양평군 강하면)/ 헬기장
앵자봉 이후 만나는 세번째 헬기장으로 양자산갈림봉이다. 지맥의 왼쪽은 계속해서 광주시 퇴촌면이지만 지맥의 오른쪽이 여주시 산북면에서 양평군 강하면으로 시계이자 면계를 바꾸는 지점이다.
♤ 한남앵자 양자단맥이란?
한남 앵자지맥의 주봉 앵자봉에서 북동으로 뻗어 내리다가 이 곳 갈림길에서 분기하여 앵자봉보다 더 높은 양자산(710m)을 들추고 백병산을 거쳐 양평군 강하면 전수리로 뻗은 산줄기를 한남앵자양자단맥 이라고 부른다.
♤ 양평군 강하면(江下面)
경기도 양평군 남서부에 있는 면이다. 강하면은 양평군의 서부관문, 군사 경계지역으로 남한강과 인접하여 자연경관이 수려한 지역이다. 동쪽으로 강상면(江上面), 북쪽으로 양서면(楊西面)·옥천면(玉泉面), 남쪽과 서쪽으로 광주시에 접한다. 주요 산은 양자산(楊子山, 710m)·영자봉(榮子峰, 667m)·백병봉(百屛峰, 424m)이다. 남·동·서 3면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남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2개의 작은 지류가 좁고 긴 곡저(谷底) 평야를 이룬다. 1767년(영조23) 양근군 남중면이라 하였고, 상심리, 운포리 등 13개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3월 1일 강하면이라 개칭하고 13개리를 운심리 등 6개리로 개편하였다. 강하면은 원래 양근군 남쪽 3개면(남시,남종)의 중간에 있다 하여 남중면이라 칭하였다가 양근군이 양평군으로 되면서 군 소재지에서 강건너 아래쪽에 있다 하여 강하면이라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양자산(楊子山, 710.2m)/ 각시산
양자산은 여주시 산북면과 양평군 강하면, 강상면 사이에 솟아 있는 육산이다. 한강의 남쪽(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부드러운 능선이 사방으로 뻗어, 어디로 오르던지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다. 산높이에 비해 산세가 꽤 험준해보이는 것은 이 도로쪽 능선의 호방한 형세에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양자산은 각시봉 밑의 전망이 일품이고, 704.8 봉에서 남쪽으로 뻗은 능선길이 좋고 정상은 진달래가 많다. 곤지암에서 가면 남이고개라는 고개가 나온다. 하품리는 이 고개에서 조금 내려가면 된다. 양자산으로 가려면 이 도로로 들어서서 산북면 하품리 안두렁이 마을로 와야 한다. 앵자봉은 양자산에서 4km 가까이 떨어져 있다. 안다랭이에서 올라가자면 영명사라는 조그마한 절이 있는데 여기서 왼쪽으로 난 길이 양자산으로 가는 길이다.
♤ 천진암갈림길/ 천진암(天眞庵)
지맥길에서 천진암으로 내려가는 등로는 모두 폐쇠되어 있다. 천진암(天眞菴)은 원래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 앵자봉 아래에 있는 사찰로, 1779년을 전후하여 폐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 천진암에서 한국 초기 가톨릭교 신자였던 이벽ㆍ권철신 등이 최초로 가톨릭 교리를 강론하고, 나아가 신앙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로부터 천진암은 한국천주교회의 발상과 관련된 중요한 사적지로 주목받게 되었다. 1770년대 이벽ㆍ이승훈ㆍ정약전ㆍ정약종ㆍ정약용 등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젊은 선비들은 이곳에서 자발적으로 모여 학문연구와 강학활동을 전개했다. 1770년부터 1784년까지 약 15년간 독서와 강학활동에서, 광암 이벽의 지도아래 태양력 계산법과 기하원본, 천문, 지리, 양명학, 천학(天學), 수학 등을 배웠으며, 그 결과 천주교를 학문적인 대상만이 아니라 종교적인 신앙의 차원으로 승화시키고 발전시켰다. 양반과 상민의 사회 계급타파 운동과 일부일처제 등을 실천하면서 종교단체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연유에서 천진암은 유교의 젊은 선비들이 불교의 암자에서 천주교 교리를 연구하고 실천하며 천주교회를 세운 곳, 즉 한국천주교 발상지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 게다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선교사 없이 자발적으로 이러한 신앙생활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받을 만한 역사의 현장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천진암은 한국천주교 발상지뿐 아니라, 이벽ㆍ정약용ㆍ이승훈 등 당시 개혁적인 젊은 선비들의 역사와 사상, 그리고 신앙과 대자연을 사랑하고 음미하는 내용으로 가득찬 문학적 성취의 산실로서도 주목된다. 특히 정약용은 이곳을 자주 찾아와서 많은 시를 지었는데, 15세 때부터 1827년 65세 때까지 50년간이나 이곳을 찾아 자신의 심정이 진솔하게 묻어나는 시를 읊었다. 이들 작품에서 정약용은 천진암과 그 주변 산천 및 야생동물, 자연현상에 대한 내용 뿐 아니라, 이벽의 사상과 그에 대한 애정, 나아가 자신의 사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들을 문학적으로 아름답게 승화시켰다. 1984년 한국천주교회 창시 200주년을 맞아 유적지들에 대한 대대적인 성역화사업이 추진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천주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비, 순례대성당, 강학당, 갈멜 수도원, 가톨릭 신학연구소 등이 세워져 있다.
♤ 해공 신익희 (海公 申翼熙) 생가/ 광주시 초월읍 서하리
해공 신익희는 한국의 정치가·독립운동가로 상하이[上海] 임시정부수립 후 내무차장·외무차장 등을 지내며 상해 임시정부가 독립국가로서의 초석을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서하리에서 나고 자랐으며, 선생은 195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 선거유세 중 호남선 열차안에서 뇌일혈로 사망,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토마루 서하리 농촌마을은 한강과 동서를 가로지르는 경안천 유역을 끼고 있어 천진암·경안천 생태습지공원·팔당호를 비롯하여 푸르고 붉음이 교차하는 수려한 자연경관을 볼 수 있는 청정지역이다. 초월읍 서하리(西霞里)는 이 마을 옆으로 경안천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며 또 물줄기로 인하여 안개가 자주 낀다고 하여 서하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사마루(四馬樓)는 고려 말에 충신 4명이 말을 타고 이 곁을 지나다가 잠시 마을을 돌아보니 그 형태가 마치 누각(樓閣) 같았다 하여 이 마을을 사마루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393.7m봉/ 삼리봉(양평군 강하면 동오리,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 → 관음리)/ 삼각점봉
광주시와 양평군의 경계로 지맥의 오른쪽은 강하면 동오리이고, 지맥의 왼쪽이 우산리에서 관음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삼각점은 파손되어 식별이 불가하다.
서레야님 같은 분이 또 계시는건지 누군가 산 아래 퇴촌면 관음리에서 이름을 따와 관음봉이라 작명한듯 합니다. 잠시후 북대봉에서 관음산 가는 길이 따로 있건마는....
♤ 관음봉(501.3m)/ 시군면계 → 퇴촌면 내안으로 진입
광주시 퇴촌면과 양평군 강하면을 따르던 지맥길이 북대봉 직전, 식별이 어려운 삼각점이 있는 501.3m봉에서 면계를 벗어나 퇴촌면으로 진입한다. 이후 염치고개를 지나 해협산에 오르며 114번 송전철탑에서 다시 광주시 퇴촌면과 남종면의 면계에 닿는다.
♤ 하정공 류관(夏亭公 柳寬) 묘역/ 양평군 강하면 동오리
하정공 류관(1346~1433)은 방촌 황희정승, 고불 맹사성과 함께 선초 3대청백리이다. 서울특별시 하정(夏亭) 청백리상 운영에 관한 조례안이 2009년 7월 10일(금) 서울특별시의회 본회의에서 가결되어 청렴한 공무원을 발굴, 시상함으로써 청백리정신을 고양하고 공직사회 반부패 문화 정착 및 대시민 청렴공감대를 형성하는 등 청백리 시상제도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여 매년 하정청백리상을 수여하고 있다. 그의 유적은 동대문구 창신동 우산각과 하정로, 우산각공원, 청계천 비우당교 등으로 남아 있으며, 류관묘역은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동오리 유좌(酉坐)에 경기지방문화재 제62호로 보존하고 있다.
♤ 북대봉(北大峰, 480?m)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관음리와 영동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관음산으로 이어지는 삼거리봉에 해당하며 정상에는 휴게용 장의자 두개와 이정표, 그리고 오른쪽 염치고개로 내려가는 곳에는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 정상석은 없고 긴의자가 2개 설치되어 있다. 이정표에 북대봉이라고 표시가 되어 있다.
♤ 307.8m봉
염치고개에 내려서기 전의 마지막 봉우리로 광주시 퇴촌면 퇴촌식물원이 있는 도수리와 조선 중기 영의정 신흠 묘역이 있는 영동리 사이에 있는 무명봉이다. 염치고개까지 20분 소요된다.
전에는 영동리약수터 이동 매점에서 라면도 끓여주고 파전에 막걸리를 팔았던 시절도 있었다네요.
♤ 염치(鹽峙)고개/ 영동리고개/ 약수터
염치고개는 광주시 퇴촌면 도수리에서 영동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88번 국도가 넘어가는 곳이다. 예전에 서해지방에서 생산된 소금이 영서지방으로 운반될 때 넘는 고개라 해서 붙혀진 이름으로 고개 정상에는 유명한 영동리 약수터가 있다. 다른 말로는 영동리(嶺東里) 고개라고도 하며 퇴촌면 도수리에서 영동리로 넘어가는 큰 고개를 말한다. 지명은 조선조 초기에 광주목사(廣州牧師)가 이곳을 지나다가 동쪽 큰 고개 밑에 자리잡은 마을이라고 했다해서 영동리라고 한다.
- 버스정류장은 퇴촌 방향으로 10여분 내려가야 하지만 길건너편 안전지대에서 손을 들면 버스가 세워준다.
앵자지맥 2구간도 기대해 주세요~~^^
첫댓글 아이고..한번 집을 나가더니, 들가지도 못하고..계속 방황을 하시네요..
밤중에는 날씨도 추은데.. 잠은 잘 주무시고 먹능거는 잘 잡수시는지...
고가다리 또는 다리밑, 아니면 큰 하수도 파이프 속에서 주무시면 좋고..
식당앞에 기다리다 짬빵통이라도 뒤져서 굶지 말고 잡수셔요.
앵자지맥 한바리 고생 하시었습니다.
조위원장님!
기침하셨습니까?
글찮아도 원인이 추운 날씨에 비박을 한 탓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든든한 겨울 옷으로 준비하는건데 바람막이 원드스토퍼를 가져간 것도 패착이었구요.
반팔로 시종 운행하였으니 제가 팔팔한 20대 청춘도 아니고, 50 중반인데 거기서 뭔가 잘못 된거 같습니다.^^
몸살을 된통 얻어걸린게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약을 먹고 따뜻한 잠자리가 되었다면 나았을텐데요.
다음엔 의욕을 좀 줄이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번의 비박으로 앵자의 깊은 맛을 만끽하셨군요.
그런데,
퐁라라님의 비박산행기를 읽고나면,
왠지 짜안하면서도 부러움이 일어납니다.
비박은 산과 대화하는 천금 같은 시간일 텐데,
매번 힘들었다, 추웠다 하시니, 준비 부족도 습관인가 싶고....
그래도,
시간, 의지, 형편 등등, 여러가지 이유로
비박의 기회를 갖지 못하는 많은 산사람들은 부러울 뿐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비박을 생각했다면
정개산 고스락에 자리잡고서 하룻밤 뿅 갔을 것 같습니다.
삼합리 고개 이후 꽤 힘든 산행을 하셨습니다.
그 힘들어함은 산에게 바치는 퐁라라님의 열정이니,
산신령님이 다른 이보다 더 큰 만족감을 주시지 않았을가 싶네요.
아, 퐁라라님만의 특별한 스타일 산행,
힘찬 응원을 보냅니다. 행복한 즐감이었습니다.
범산선배님! 금봉산 옆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컨디션이 좋아 날개가 달린듯 가볍습니다.^^
어제 앵자지맥 마무리 잘 짓고 올라왔습니다.^^
다 돌고나니 하루 산행으로도 만족도가 괜찮았습니다.
동계용 텐트와 침낭을 가져가면 따뜻하게 자겠지만 장거리는 무게와의 싸움이라...
배낭이 무게우면 제가 원한 만큼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어떤 조합이 나을지 고민하게 된답니다.
조금 떨더라도 가벼운게 낫다는 쪽이 우세하네요.^^
앵자지맥 완주 축하축하 드립니다
역시 소총이 아닌 한방에 대포를 쏘시는 군요
혼자 비박도 하시고 구연 설명에 갔다온것 같은 기분 입니다
홀산시 늘 안산 즐산 관리 잘하시기를 빕니다
포스팅 잘하고 갑니다
우리는 3구간으로 해서 종주 계획 입니다
그때 풍라라님 흔적을 느끼며 알바 없이 마무리 하겠습니다^)^
와룡산선배님!
아직 앵자지맥을 하지 않으셨군요.
제가 먼저 하게되어 선배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한남정맥을 하며 검단지맥 분기점에 오를 때 6.25전사자 유해발굴지를 지났던 기억이 나네요.
거기에 썬더볼트작전이 언급되어 있었습니다.
1.4후퇴 이후 중공군에 밀리다 인천상륙작전을 기화로 재반격작전에 나서며
현재의 한남정맥, 앵자지맥에 걸쳐있는 전선을 한강변까지 밀어올리기 위해 여러 작전이 전개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앵자지맥을 하며 한국전쟁을 떠올리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듯 합니다.
그러나 양자산 앵자산 무갑산 등등의 광주 이천, 여주, 성남 모두 전투를 치르지 않은 봉우리가 없을 지경입니다.
그러던 중 더덕바위산이란 곳에서 전단지 형태의 벽보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누군가 한국전쟁의 전투전적지가 그냥 잊혀지가는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더덕바위산에 6.25전투전적지 안내판이라도 세워야 하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앵자지맥 수고 많으셨습니다. 퐁라라님^^
문수봉에서 비박 하시고 정개산 정상석 바로지나
조망 아주 좋은곳에서 또 하루를 유하셨네요.
좋지 않은 컨디션에도 염치고개 까지 진행하시고
멋진 마무리를 위해서 쪼매 남겨 두셨는데 그 쪼매가
엄청나네요 ㅎㅎ
배미실 고개 지나면서 도로를 이용하라고 권하고 싶네요.
저도 거기 가시밭길 들어갔다가 영혼이 탈탈 털렸습니다.
주간에 들어섰으면 좀 괜찮았을라나요? ㅋ
군부대 지나면서도 쌩쇼를 하고 영혼가출 시켰구요 ㅋㅋ
군부대 지긋지긋 합니다.
우회길을 좀 만들어 두든가 하지 그렇지도 않으면서
접근금지 시키고 도당췌 어찌 지나 가라고..
무거운 비박 장비 매고 대중교통으로 한바리 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
앵자지맥 마무리 하심을 축하드립니다.
2부 앵자지맥 매도지? 는 천천히 ^^
다류대장님!
어제그제 준희선생님에게 앵자에 든다는 얘기는 전해 들었습니다.^^
마치고 올라오신 모양이군요. 조만간 멋진 후기 기대합니다.
군부대에서 초병의 제지를 받은 모양이네요.
저도 군인에게 장교가 나와 인솔도 해주는 모양인데 어떻게 해야 그게 가능하냐고 물어보니
뚜렷한 기준은 없는 모양입니다.
나이 지긋한 분들이 단체로 지날 경우 즉석에서 장교의 판단으로 인솔이 이뤄지는 식이고요.
대부분은 울타리에서 이탈하라고, 불응하면 경찰을 불러 고발조치를 하겠다며 경고를 날리더군요.
지맥이 먼저고 군부대가 나중에 생겼는데 굴러온 돌이 박힌 둘을 빼내는 식입니다.
그렇다고 분단국가에서 군부대를 없앨 방법도 없으니.울며 겨자먹기로 쉽게가는 길을 어렵게 돌아가네요.
저는 아무래도 문수봉 비박에 감기 몸살이 들었지 않나 싶었습니다.
둘쨋날에 또 비박을 했으니 몸이 나아질 일이 없었네요.
그래도 죽지 않을 정도는 되니 간신히 염치고개까진 갔는데...
사실은 한방에 끝낼려고 했었습니다.
앵자지맥을 한방에 끝내기가 서운했나봅니다. 한번의 인연을 더 쌓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퐁라라운영자님
역시 멋지세요!
만 하루 걸려 65km 장도의 산하와 함께 하셨네요.
비박도 뒤숭숭하게 보내고, 한남의 대장주격인 앵자지맥의 인연은 이어지셨습니다.
저와 영축지맥하던 순간들을 떠올려 주셨네요. ㅎ
산은 항상 머물러 반겨주니 무리않고 쉬엄쉬엄 가세요.
힘든 역정을 마무리하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넵, 방장님!
앵자 1구간은 너무 힘들었구요.
외곽순환고속도로 건설현장을 지나 국수봉 오르는데도 힘들게 올라섰습니다.
1구간을 마친 다음 날에도 손과 엉덩이 그리고 치통의 여진이 있었구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염치고개까지 간게 대견하기만 하답니다.
간절기라 겨울 침낭을 넣어가기도 애매하고, 바람이 불어 감기몸살에 딱 걸린듯 했습니다.
한남의 대장주라고요. 역시나 이름값을 하고요.
독주지맥을 마저 한다면 인근 지리가 더 밝아질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