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적 회귀 본능 (룻기 1:6-10)
강에서 태어난 물고기는 바다로 나가 자란 뒤에 알을 낳기 위해 다시 자기가 태어난 강으로 되돌아오는데,
그것을 회귀 본능이라고 합니다.
회귀 본능의 대표적인 물고기가 연어입니다.
연어는 강에서 부화되어, 6cm 정도로 자라면 바다로 나갑니다.
3-5년 뒤에 알을 낳기 위해 자기가 났던 강으로 다시 회귀합니다.
보통 연어는 15,000km 이상을 여행하여 강으로 돌아옵니다.
연어는 주로 러시아의 캄차카 반도, 일본 북부 해안으로 돌아오고, 우리나라에는 강원도 양양 남대천과
울산 태화강에도 돌아옵니다.
9-11월 경에 강으로 돌아오고, 알을 낳고, 2-3개월 후에는 알이 부화됩니다.
연어는 돌아오기 위해 아무것도 먹지 않으며, 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연어 떼를 기다리는 곰과 독수리의
공격을 받습니다.
그렇게 사투를 벌여 자기가 났던 강으로 돌아온 연어는 알을 낳고 죽습니다.
연어의 회귀율은 보통 2-3% 정도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1%가 안 된다고 합니다.
연어가 어떻게 자기가 났던 강을 기억하고 회귀하는지는 과학적으로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지구의 자기장을 이용한다는 설과 자기가 났던 강의 냄새를 기억하고 돌아온다는 설이 있습니다.
* 동영상 보기 - 연어의 연어의 여정과 신부의 길
https://www.youtube.com/watch?v=vWJMYIzzwno
많은 철새나 물고기들이 긴 여정을 다니며 회귀합니다.
북극 제비갈매기는 가장 먼 거리를 회귀합니다. (북극 제비갈매기 사진)
몸무게 100g 정도에 불과한 새가 북극과 남극 나이를 오가며, 연간 7만 km 이상을 비행합니다.
지구의 둘레가 평군 4만 km 정도이니, 연간 지구를 두 바퀴 가까이 도는 셈입니다.
(북극 제비갈매기의 여정 사진)
북극 제비갈매기는 몸이 가벼워서 바람을 타고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고 합니다.
수명이 평균 30년이라고 하니, 일생 210만 km 이상을 날아다닙니다.
지구와 달 사이의 평균 거리가 38만 4천 km 이니, 북극 제비갈매기는 일생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를
5번 정도 비행하는 셈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나 물고기, 고래 등에게 회귀 본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나침반이나 내비게이션도 없이, 비행해야 할 때와 방향, 목적지를 정확히 알고 찾습니다.
북극 제비갈매기의 이동 경로는 과학자들이 1.4g 짜리 소형 추적장치를 달아서 파악한 것입니다.
흔히 머리 나쁜 사람을 새대가리라고 비하하지만, 새와 물고기들의 회귀 본능은 정말 놀랍습니다.
사람에게도 회귀 본능 있습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서 12장 7절)
죽기 전에 너의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히브리서 11장 16절)
사람도 하나님을 찾고, 본향 천국을 사모하는 본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회귀 본능(하나님을 찾고, 천국을 사모하는 본능)이 다른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부모를 찾고, 고향을 찾는 마음입니다.
부모를 찾고, 고향을 찾는 본능을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셨습니다.
‘고향의 봄’ 노래 1절을 같이 부릅시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가곡 ‘가고파’의 가사입니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릴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 간들 잊으리요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불효하던 청개구리도 나이 들면 엄마를 그리워합니다.
전에 군대 프로그램에서, 장병들이 “어머니”를 부르며 웁니다.
돌아갈 때가 가까워지면 엄마 생각, 고향 생각이 많이 납니다.
사람에게는 영적 회귀 본능이 있습니다.
이 영적 회귀 본능이 작동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인 룻기의 배경을 1장 1절에 설명합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 즉 사사시대는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정치, 사회, 종교 모든 면에서 혼란한 시기였고, 사람들이 제 마음대로 행하던 때였습니다.
그 땅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란 뜻의 동네인데, 떡집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이 가족들을 이끌고 모압 땅으로 갔습니다.
(지도 : 나오미 가족이 베들레헴에서 모압 땅으로 이주)
엘리멜렉으로서는 부득이한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혼란 사회에 흉년까지 들어서 먹고 살기 어려우니, 모압 땅으로 가서 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압에서 10년 후에 엘리멜렉과 두 아들(말론과 기룐)이 모두 죽었습니다.
남자 셋이 모두 죽고, 여자 셋(나오미, 룻, 오르바)만 남았습니다.
이때 나오미가 결단하였습니다.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6절)
흉년으로 떠났던 고향 베들레헴에 하나님께서 양식을 주셨다 함을 나오미가 들었습니다.
떡집 베들레헴에 다시 양식이 있게 되어, 베들레헴을 회복한 것입니다.
나오미에게 영적 회귀 본능이 작동한 것입니다.
“일어나 돌아오려 하여”
연어의 회귀처럼, 나오미가 돌아오는데 난관이 많았습니다.
남편과 두 아들이 다 죽었습니다.
참담한 형편이었습니다.
속된 말로 쫄딱 망한 것입니다.
나오미와 모압 여자 며느리 두 사람만 남았습니다.
돌아와도 당장 생계 대책이 전혀 없었습니다.
나오미가 며느리 룻과 돌아왔을 때, 룻이 밭에 나가 곡식을 주워 와서 끼니를 해결하였습니다.
그렇게 돌아올 때 이웃의 시선이 어떻겠습니까.
나오미가 돌아올 때의 모습을 1장 19-21절이 말씀합니다.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나오미란 이름은 기쁨, 희락이란 뜻이고, 마라는 괴로움이란 뜻입니다.
나오미(기쁨, 희락)로 갔다가, 마라(괴로움)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베들레헴 온 성읍이 나오미와 룻의 이야기로 입방아를 찧어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웃의 시선과 입방아가 무서워 숨고 도망합니다.
내 인생이 나오미(기쁨, 희락)에서 마라(괴로움)가 되었을 때 돌아와야 합니다.
내 인생이 마라가 되었을 그때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회귀 본능이 작동하는 때입니다.
“일어나 … 돌아오려 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하나님의 은혜의 품이 열렸습니다.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올 때, 다시 나오미로 회복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연어, 고래, 북극 제비갈매기, 기러기… 등이 회귀 본능으로 자기가 난 곳, 살 곳으로 돌아가듯이,
성도는 영적 회귀 본능으로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께 돌아올 때 하나님이 맞아 주십니다.
나오미가 하나님께로,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모압 땅에서 불쌍하게 살다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 고향으로 돌아올 때 은혜의 손길 아래 놀라운 일들이 펼쳐졌습니다.
야곱의 가족들이 세겜에서 큰 위기를 만났을 때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하면서 돌아왔습니다.
요셉은 총리가 되어, 가정과 천하를 구원하였으나, 후손들에게 자기 해골을 메고 가나안으로
올라가라고 유언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기 때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가 되었을 때 예루살렘을 그리며, 그 방향으로 예배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사모하였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시편 84편 1-4절)
우리가 주일에 교회에 모여 예배드리고, 다시 세상을 나갔다가, 주일이 되면 다시 교회로 돌아옵니다.
예배와 일상의 영적 회귀입니다.
주일성수는 예배와 교회로의 회귀입니다.
아침에 출근하고 학교 간다고 집을 나갔다가, 저녁이면 돌아옵니다.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을 가출이라고 합니다.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은 처량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집을 나간 둘째 아들 이야기가 있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달라 하여 먼 타국에 갔다가, 모든 것을 잃은 후에 아버지께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누가복음 15장 17-19절)
그러나 이렇게 돌아온 아들을 기다렸다가, 달려와서 안고 맞은 아버지의 답입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누가복음 15장 24절)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 돌아오지 않았다면 고생하다가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교회에서 예배드리지 못하고, 교회를 떠나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교회에 모이지는 못해도,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고자 하는 회귀 본능이 작동하고 있습니까?
교회에 모이지 못하는 날이 있지만, 모일 수 있을 때 교회로, 예배로 회귀할 수 있습니까?
그날을 사모합니까?
많은 교회들이 코로나 사태 와중에 교인들의 출석이 줄었다고 합니다.
온라인 예배, 가정예배를 드리다가 교회에서 예배드릴 수 있어도 돌아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거친 바다를 헤엄치는 연어와 같고, 망망한 하늘을 나는 북극 제비갈매기와 같습니다.
때가 되면 회귀 본능을 따라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연어도 돌아오고, 북극 제비갈매기도 돌아오고, 제비도 돌아오고, 성도는 하나님께로, 교회로 돌아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적 회귀 본능을 주셨습니다.
어린 시절을 교회에서 보낸 사람들에게는 그때의 추억을 그리워합니다.
교회를 떠났다가 교회의 십자가를 보고, 새벽 종소리 때문에, 주일에 성경책을 들고 교회 가는 성도들의
모습에서, 식당에서 식사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고 돌아오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교회의 십자가도 꺼지고, 새벽 종소리는 사라졌고, 주일에 성경책 들고 교회 가는 성도들도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요즘 자녀들에게는 교회에 대한 추억이 없습니다.
훗날 자녀들이 성장했을 때 교회와 예배로 회귀할지 걱정입니다.
청소년 시기가 되면 교회를 떠나고 돌아오지 않는 않습니다.
연어처럼 하나님께로, 교회로, 예배로 회귀하는 비율이 갈수록 떨어집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 교회 와서 작정 기도를 하고, 철야 금식기도도 하였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이 희귀합니다.
어려움이 왔을 때 다시 하나님 품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나오미(기쁨, 희락)가 모압 땅(세상)에서 마라(괴로움)가 되었을 때 고향으로, 떡집 베들레헴으로,
하나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올 때 다시 나오미(기쁨, 희락)가 되었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본향 천국을 사모하는 영적 회귀 본능이 생생해야 합니다.
어려움과 실패를 당할 때 우리를 기다리시고, 맞아 주시고, 안아 주시는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영적 회귀 본능이 작동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회귀 본능을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맞아 주십니다.
나오미의 영적 회귀 본능처럼, 모든 것을 떨치고 일어나 하나님께 돌아오는 성도들이 됩시다.
지금 모압 땅의 나오미와 같습니까?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다시 나오미로, 다윗의 조상을 품에 안는 복된 모습으로 바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영적 회귀 본능이 있습니다.
성도는 영원한 본향, 천국을 찾는 영적 회귀 본능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그리워하며, 천국을 사모하며, 교회와 예배를 찾는 영적 연어들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