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미터의 트라우마(TRAUMA)
캐나다 뮤즈 청소년 교향악단장
밴쿠버 한인 문인협회 회장 박혜정
음악전공자 중 기악과 출신의 대부분은 운동과는 거리가 멀게 지낸다. 연습시간에 쫓기다보면 운동을 할 시간은 당연히 없고, 거기에다 구기 종목을 하다 손이라도 다치면 음악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학에 처음 입학해서 체육 과목을 수강신청 할 때 공(ball)과는 상관없는 것을 하라고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1학년 때 처음으로 해 보는 수강신청일. 멋모르고 친구와 만나 시간표를 멋지게 짜고 오후에 가 보니 “어째 이런 일이!” 체육과목 중 다른 것은 다 정원이 차서 마감이 되었고 배구밖에 남지 않았었다.
뜨거운 태양아래 얼굴이 익도록 토스연습과 경기를 했다. 그러던 중 재수로 들어와 제법 나이가 있었던 같은 학년 언니가 있었는데, 배구를 하다 넘어지는 바람에 손을 다쳐 급기야 한 학기를 쉬는 사태가 발생했다. 교수님에게 혼난 것은 물론이고 졸지에 졸업까지도 같이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런 것을 보고 나니 운동과는 더욱 거리가 멀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을 하고도 숨쉬기 운동밖에는 안하고 지내다 어쩌다 한 번씩 헉헉대며 청계산을 오른 적도 있고, 누군가가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설악산 울산바위를 오른 적은 있었지만, 자연이 너무 좋아 자발적으로 공원을 찾기는 캐나다 이민을 와서였다. 처음으로 간 곳은 코모레이크 공원이었다. 그런데 한 바퀴를 도는 것이 1Km이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체력장 시험을 볼 때 제일 마지막 테스트가 ‘800미터 오래달리기’이었다. 마라톤이나 뛰는 듯 비장한 각오를 하고 모든 아이들이 테스트에 임했다. 너무 힘들어서 결승선을 들어 올 때는 초죽음이 되어서 들어왔다. 그래서 800미터는 나에게는 제일 길고, 힘든 거리라고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공원 주위가 1000m나 되니 절대 한 번에 걷는 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반 바퀴를 걷고 쉬었다. 자주 걷다보니 쉬지 않고 한 바퀴를 돌 수 있게 되었고, 3바퀴까지도 걸을 수 있었다. 그러니 3km는 걸을 수 있게 된 셈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운동의 필요성이 느껴지면서 일주일에 2번씩은 공원을 걸었다. 거의 1시간정도의 평지로 된 코스인 로키 포인트, 먼디 파크, 린 벨리의 라이스레이크, 그러다 우기가 되면 꾀가 나서 뜸하게 되었다. 그럴 때는 에어로빅도 했다. 그러던 중 밴쿠버 여성회에서 월요일 아침 10시에 먼디 파크를 걷는데 같이 가겠느냐고 친구가 제안을 했다. ‘먼디파크 라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고, 동네이고, 걷던 곳이고, 짧게 걸으면 40분이 걸리고 주위를 빙 돌면 1시간이다. 그래서 ‘오케이’ 라고 했다.
고 대장님의 인솔로 걷기 시작하는데 1시간이면 될 줄 알았던 것이 이길 저길, 요리 조리 걷다보니 생각지도 않게 2시간을 걸었다. 그 날 걸은 거리가 8Km, 만보였다. ‘아니 내가 그렇게 많이 걸을 수 있다니...’ 다음 주는 ‘벨카라 공원’ 을 걷는다고 했다. “거긴 어떤데요?” “여기보다 조금만 힘들어요.” ‘오케이, 그럼 도전!’
막상 걸어보니 오르락내리락 하며 걸었다. 누가 “거긴 아마 지팡이가 있으면 편할 거예요” 라고 팁을 주셨다. 저번에 사 놓은 지팡이가 있었는데 평지에서 양손에 들고 걷다 보니 어찌나 팔이 아팠던지, 한 동안 쓰지 않고 있던 것이 생각났다. 그것을 들고 걷다 보니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지 않아도 갈 수 있었다. 정상(?) 부분의 경치는 어찌나 멋진지. 요트가 떠 있는 버라드 인넷(Burrard Inlet)이 보였다. 거기서 여유 있게 사진도 한 장 찰칵 찍고. 그곳의 거리는 11.5km이었다. ‘우와! 내가 10km를 더 걷다니!’ 나 자신에게 놀라웠고 자신감이 조금은 더 생기는 것 같았다.
2번째 다시 먼디 파크를 걸었을 때는 경치까지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고 대장님이 자연의 소리는 교향악단이 내는 소리와 같다고 하시면서 들어보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의 그 큰 소리와 자연의 물소리, 새소리가 어떻게 같을까?’ 그래서 자세히 여쭈어보니 음량의 세기가 아니고 파장이 8.3마이크로웨이브로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클래식이 우리의 마음을 편안히 해주는 것이라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전에 “운동을 끝내고 갈 때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편안해지면서 땀이 식어서 좋아요” 라고 강샘이 말한 것이 생각났다.
먼디 파크를 걷자고 제안했던 친구가 금요산악회에서 하는 것인데 금요일 오전에 버나비 마운틴도 걷자고 했다. 일단 ‘산악회’라는 단어만 들어도 나와는 거리가 먼 것 같아 망설여왔다. 게다가 금요일은 오케스트라 연습이 있기 때문에 몸을 사리는 요일이고, 또 내가 헉헉대다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줄까봐 걱정도 되었다. 옆에 계시던 고 대장님이 “내가 길도 다 알고 뒤에서 천천히 갈 테니 걱정 말고 가 봐요” 라고 하셨다. 도와주시는 분이 계실 때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초보자는 잘 안되면 장비 탓을 하게 되니, 일단 필요한 것부터 갖추기로 했다. 그래서 방수 등산 바지, 땀이 잘 방출되는 티셔츠, 운동화 대신 등산화까지 갖추고 ‘준비 완료’. 금요일을 기다렸다. 비탈이 심한 곳에서는 한 걸음에 한 번 숨을 쉬며 헉헉대며 산을 올라갔다. 집에 돌아와 역시나 힘들어 타이레놀을 하나 먹고 오케스트라 연습을 하러 갔다. 1박2일 끙끙댔다. 그래도 번젠레이크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 갔다가 3,4일정도 끙끙댔던 것을 생각하면.
금요산악회에 매주 다니시는 분이 “다섯 번만 오면 아마 계속 안 오고는 못 배길걸?”이라고 하셔서 5번을 목표로 삼고 2번째 갔다. 이번에는 고 대장님이 요령을 가르쳐주셨다. “숨을 쉴 때는 두 걸음에 한 번씩 숨을 길게 쉬어 봐요” 그렇게 하니 훨씬 나앗다. 또 지팡이로 짚으며 끙끙거리며 올라가니 “이럴 때는 발을 지그재그로 걸으며 올라가면 쉬워요.” 그렇게 해보니 지팡이 없이도 사뿐히 올라가진다. “중요한 팁을 또 가르쳐 주세요”라고 했더니 “평지 길을 내려갈 때는 경보하는 것처럼 걸으면 나중에 다리가 당기거나 아프지 않아요.” 가르쳐주신 대로 한 덕분에 그 날은 타이레놀의 도움 없이도 멀쩡했다.
캐나다에 와서 조금씩 운동을 한 결과 800m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2주정도의 운동으로 이젠 10km는 가볍게(?) 걸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내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거리와 시간은 10km, 2시간30분 정도. 이젠 꾸준히 걸어서 쉬운(?) 산악회도 따라가 보고, 한 번도 신어 보지 못한 스노우슈즈를 내년 겨울에는 신고 낮은 눈 산이라도 가보고 싶다.
첫댓글 저는 시분과에 벤쿠버 문협회원입니다. 박회장님의 수필을 2014년에는 감명깊게 읽어 왔습니다마는 이후에는 글을 올리지
아니하셔서 무슨사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은 서울에 체류하고있습니다. 여름에는 벤쿠버 들어갈 예정입니다 .이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