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병의 한방치료 (koami 2014-3)
요새 많은 한류가 생겨났는데, 질병 중에서도 해외로 진출한 국산 병명이 있다. 그 병명이 바로 ‘화병(火病)’인데, 사실 예전에 서양의학에서는 화병을 정식병명으로 사용하지 않았었다. 말 그대로 풀이하면 사람 몸에 불이 나는 병이니, 화병이라는 병명이 맞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워낙 임상적으로 많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보니, 드디어 서양의학에서도 인정이 되게 되었다. 그 예로 1996년도에 미국 정신과 협회에서는 화병을 ‘문화관련 증후군’의 하나로 등록하게 되었는데, 영어로도 ‘Fire- disease’가 아니라 화병 발음 그대로 ‘h,w.a, - b,y,u,n,g’이라고 불러서, 아예 고유명사화 되었다.
물론 서양의학에서는 한의학에서 이용되는 화(火)나 열(熱)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임상적으로 치료가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서양의학에서는 물질적인 변화나 구조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만 치료의 대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화병과 같이 기능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아예 무시하거나 치료방법이 뾰족하게 제시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체온을 내린다고 해서 화병이 치료되는 것도 아니며, 화병을 앓고 있다 하더라도 실제 체온은 올라가 있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해열제 등의 치료법은 아무 의미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화병으로 죽을 수도 있다
유명한 소설 <삼국지>를 보면, 화병에 관한 에피소드가 하나 나온다. 위나라 조조의 백만대군이 쳐들어왔을 때, 촉나라의 제갈공명과 오나라의 주유가 힘을 합쳐 맞서 싸운 전쟁이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적벽대전이다. 역사가 말해주듯이 적벽대전은 오나라의 승리로 끝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부터 발생했다. 수많은 군사를 희생해가면서 죽도록 싸운 나라는 오나라였는데, 어이없게도 촉나라의 제갈공명이 계략을 써서 냉큼 형주의 성들을 점령해버렸다. 오나라의 입장으로서는 분통이 터질 일이었다. 그런데 제갈공명은 시시비비를 따지러 온 주유에게 오히려 화를 돋우며 조롱했는데, 이렇게 놀림을 당한 주유는 화를 참지 못하고 그만 피를 토하면서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만약 이 일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화병으로 피를 토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저알 사람이 화병으로 죽을 수도 있는 것일까?
일전에 아주머니 환자 분이 한분 찾아 오셨었는데, 이분은 특이하게 피를 토하는 증상 때문에 필자의 한의원에 찾아왔었다. 물론 처음부터 한의원에 온 것은 아니었는데, 피를 토할 때 마다 양방 병원에 가서 식도와 기관지 등 모든 검사를 다 해봤지만, 항상 정상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의사 선생님이 슬며시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으라고 권했다고 한다. 그래서 씩씩대며 필자에게 찾아온 것이었다. 일단 언제 처음으로 피를 토했냐고 물어보았더니, 곰곰이 생각하다가 어느 날 부부싸움을 심하게 하면서 왈칵 피를 토했었다고 기억을 되살렸다. 더군다나 다시 생각해보니, 평소에는 괜찮은데, 부부싸움하면서 극도로 화가 치밀어 오를 때마다, 항상 피를 토했다고 했다. 화병으로 인해 피를 토한 전형적인 케이스였던 것이다. 물론 화를 가라앉히고 안정시켜주는 한약 처방을 복용하고 난 다음에는, 전처럼 다시 피를 토하는 증상은 없어졌다고 한다. 소설 속의 얘기가 마냥 지어낸 얘기가 아니라, 실제 상황에서도 있을 수 있다는 얘기인 것이다.
화병의 원인은 스트레스
그렇다면 이러한 화병의 원인은 무엇일까? 짐작하는 대로 대부분의 화병 원인은 스트레스 과잉이다. 다시 말해 정신적 피로가 너무 과하게 누적되었기 때문인데, 이 스트레스에 대해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보통 화나고 슬프고 억울하고 기분 나쁜 감정들만 스트레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사실은 이 밖의 모든 감정들이 다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스트레스를 칠정(七情), 즉 일곱 가지 감정 상태로 풀이하는데, 기쁘고 화나고 걱정하고 생각하고 슬프고 무섭고 놀라는 감정 모두를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치료목적으로 환자의 감정 상태와 다른 감정을 일으키게 해서 치료를 하는 방법도 있다. 일례로 <동의보감>에도 매일 화만 내는 부인을 상대로 웃음요법을 적용해 치료하는 케이스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어떠한 것이든 작용이 있다면, 그만큼 반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너무 심하게 한참 동안 웃다보면 기운이 빠지고 몸이 힘들어지는데, 심지어 통증까지도 생기는 것을 경험해 본 적 있을 것이다. 또 다음날 소풍간다고 들떠서 잠을 이루지 못한 경험도 해보았을 것이다. 즉 좋은 감정 상태라 하더라도, 인체에 해를 줄 수도 있다는 뜻이 되겠다.
특히 “저는 스트레스 같은 거 받지 않으려고 항상 노력하기 때문에, 그런 거 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 말 자체가 이미 스트레스를 어마어마하게 받고 있다고 실토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스트레스 안 받으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꿈을 많이 꾸거나 악몽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꿈은 의지대로 꾸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꿔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화병은 울화병
일반적으로 화병은 화(火)와 열(熱)에 의한 증상이기 때문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안면홍조라든지, 두통 어지럼증 등의 증상이 생기며, 입이 마르고 갈증이 나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 등이 나타난다. 입술과 입안에 구내염이 생기기도 하고 땀이 비 오듯 흐르거나 얼굴에 피부 트러블이 생기기도 한다. 심한 경우에는 주유처럼 피를 토하기도 하며 코피가 터지거나 눈에 실핏줄이 터지기도 한다. 가장 안 좋은 경우는 역시 뇌에 있는 혈관이 터지는 경우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뇌출혈이 있기 전에 화를 내거나 흥분하는 장면이 꼭 나온다. 이는 화병이 심해지면 중풍이 올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가슴이 답답하거나 명치끝에 딱딱한 덩어리 등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렇게 가슴에 증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심화(心火) 즉 마음에 화가 생긴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화병이 더 문제가 되는 이유는, 화병의 증상이 여기에서 머물지 않고 더 큰 병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병도 다양해서, 각종 신경성 위장병이나 고혈압 당뇨 중풍과 같은 성인병까지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화병이야말로 만병의 근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한 병이 되기 전에 미리미리 해소를 하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화병은, 다른 말로 울화(鬱火)병이라고 얘기한다. 즉 쌓이고 쌓여서 누적된 화병이라는 뜻이다. 보통 스트레스 한번 받았다고 화병이 생기지는 않는다. 오랜 시간에 걸쳐 화가 쌓이게 되면 화병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늘 알아본 바와 같이, 화병은 방치했을 때 심각한 질병이 되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그러므로 화병의 증상이 느껴지게 되면, 빨리 가까운 한의원에 찾아가서 전문적인 진단과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심하지 않은 경우에는 침으로 가볍게 순환을 시켜주기도 하지만, 근육이 경직되어 척추 변위까지 일어난 경우에는 추나와 같은 척추교정을 해줘야만 정상으로 돌아온다. 또한 가벼운 경우에는 화를 가라앉히는 처방만 사용해도 되지만, 시간이 오래 경과되어 진액이 부족해진 경우에는 음혈(陰血)과 같은 진액을 보충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호르몬이 부족한 경우에는 그 또한 치료해야만 한다. 그러니 화병의 조짐이 보이면, 바로 전문가를 찾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