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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6월 28일 금요일
[(홍)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이레네오 성인은 130년 무렵 소아시아의 스미르나(오늘날 튀르키예의 이즈미르)에서 태어났다. 로마에서 공부한 그는 프랑스 리옹에서 사제품을 받고, 뒤에 그곳의 주교가 되어 특히 프랑스 영지주의 이단들의 오류를 거슬러 가톨릭 신앙을 옹호하는 일에 많은 힘을 쏟았다. 2세기 교회의 중요한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활동한 성인은 영지주의 이단의 오류를 낱낱이 지적한 「이단 논박」이라는 유명한 저서를 남겼다. 성인은 200년 무렵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2년 이레네오 성인을 일치의 학자(Doctor unitatis)라는 칭호와 함께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말씀의 초대
치드키야 임금이 바빌론에 반역을 꾀하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는 예루살렘을 재차 침공하여 예루살렘은 완전히 파괴된다. 치드키야는 체포되어 바빌론으로 끌려가고, 백성도 대부분 유배되었다. 마치 하느님 백성의 끝을 보는 듯하였다. 그러나 남은 가난한 이들은 포도 밭을 가꾸며 농사를 짓게 된다. 이렇게 하여 이들은 하느님께 충실한 백성의 표징이 되었다(제1독서). 산상 설교와 율법의 새로운 해석을 마치신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내려오신다. 나병 환자는 사회생활에서 소외되고 내몰린 사람이다.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를 치유하시어 공동체 안에 들게 하신다(복음).
제1독서
<유다 백성은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갔다(25,21ㄴ).>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25,1-12
1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는 치드키야 통치 제구년 열째 달 초열흘날에,
전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와서 그곳을 향하여 진을 치고
사방으로 공격 축대를 쌓았다.
2 이렇게 도성은 치드키야 임금 제십일년까지 포위당하였다.
3 그달 초아흐렛날, 도성에 기근이 심해지고 나라 백성에게 양식이 떨어졌다.
4 드디어 성벽이 뚫렸다.
그러자 군사들은 모두 칼데아인들이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데도,
밤을 틈타서 임금의 정원 곁에 있는
두 성벽 사이 대문을 통하여 아라바 쪽으로 갔다.
5 칼데아인들의 군대가 임금을 뒤쫓아 예리코의 들판에서 그를 따라잡자,
그의 모든 군대는 그를 버리고 흩어졌다.
6 그들이 임금을 사로잡은 다음, 리블라에 있는 바빌론 임금에게 데리고 올라가니,
바빌론 임금이 그에게 판결을 내렸다.
7 그는 치드키야의 아들들을 그가 보는 가운데 살해하고
치드키야의 두 눈을 멀게 한 뒤,
그를 청동 사슬로 묶어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
8 다섯째 달 초이렛날,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 제십구년에
바빌론 임금의 신하인 느부자르아단 친위대장이 예루살렘에 들어왔다.
9 그는 주님의 집과 왕궁과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태웠다.
이렇게 그는 큰 집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10 또한 친위대장이 이끄는 칼데아인들의 모든 군대는
예루살렘 성벽을 돌아가며 허물었다.
11 느부자르아단 친위대장은 또 도성에 남아 있던 나머지 백성과
바빌론 임금에게 넘어간 자들,
그리고 그 밖의 남은 무리를 끌고 갔다.
12 그러나 친위대장은 그 나라의 가난한 이들을 일부 남겨,
포도밭을 가꾸고 농사를 짓게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4
1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2 그때에 어떤 나병 환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3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그러자 곧 그의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
4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2티모 2,22ㄴ-26)와 복음(요한 17,20-26)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이스라엘의 위대한 점은 주님 말씀에 충실하였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그들은 계속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거슬렀고 주님의 사랑을 저버렸습니다. 그들의 위대함은 자신의 실패를 감추지 않고 드러냈으며, 신앙의 눈으로 실패의 역사를 바라보고 이를 끝까지 기억하며, 그 책임이 온전히 자신에게 있음을 고백하는 데에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유다 왕국이 바빌론에게 멸망한 역사를 들려줍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과 모든 집은 불태워지고, 임금과 남은 백성은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끌려갑니다. 이스라엘은 패배하고 이방인의 포로가 된 이 치욕적인 역사를 낱낱이 기억하며 그 원인을 살펴보았습니다. 자신들이 율법을 따르지 않았고,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어겼다는 것을 인정하며 반성합니다.
그래서 다시 계약에 충실하고자 주님의 말씀 자료들을 정리합니다. 그렇게 바빌론 유배 시기에 구약 성경이 정립됩니다. 실패의 역사를 회피하지 않고 신앙의 눈으로 반성한 이스라엘은 주님의 말씀을 다시 정립하게 되었으며, 그 경전으로 이스라엘은 더 충실한 하느님의 백성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하느님께 더 가까워지는 때는, 하느님께 충실하다고 자신하기보다 자신의 잘못을 잘 알고 그것을 돌아보며 주님의 자비를 청할 때입니다. 흠 없이 주님 뜻을 따르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보다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얼마나 죄인인지 절실하게 깨닫는 사람이 더 거룩하고 더 성숙하게 보입니다. 자신의 잘못과 부족함을 합리화하거나 정당화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겸손하게 주님의 자비를 청하면 좋겠습니다.(최정훈 바오로 신부)
그날이 오면 인간의 비참은 사라지고 하느님의 자비와 영광만 남게 될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예수님 시대, 가장 가련하고 불행한 부류의 사람들을 꼽자면, 첫 번째로 꼽을 사람들은 바로 나병환자들이었습니다. 사제로부터 나병 확진을 받는 순간, 그들은 성밖으로 강제 추방 당했습니다.
악성 피부병에 걸린 것만 해도 억울한데, 당시 사람들은 나병을 천형으로 여겼습니다.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에 대해 하느님께서 벌을 주신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벌을 받아 부정을 탄 사람이니만큼 성 밖에 나가서 살아야 했습니다. 길을 걸어가다가 혹시라도 인기척이라도 나면 사람들에게 주의하라는 표시로 이렇게 큰 소리로 두 번 외쳐야 했습니다. “부정한 사람입니다. 부정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 앞으로 한 나병 환자가 다가왔습니다. 사실 그 나병 환자가 예수님 가까이 다가왔다는 그 자체가 위법이었습니다. 당시 율법에 따르면 나병에 걸린 사람은 나병 환자라는 표시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멀쩡한 옷도 찢어 입어야 했습니다.
머리도 풀어 산발을 하고 다녀야 했습니다. 윗수염도 가려야 했습니다. 나병 환자들은 마치 성 밖 토굴 속이나 무덤가에서 마치 들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더이상 내려갈 데가 없는 그였습니다. 인생의 막장 앞에 선 그였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최후의 용기를 내어 예수님 앞으로 달려왔습니다. 모든 법적 장벽과 인간이 정한 규정을 무시하고 인간 세상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더 이상 그의 머릿속에는 율법이고 전통이고 필요 없었습니다. 오로지 예수님의 자비와 권능만을 믿고 달려온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털썩 꿇음으로서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솔직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안에 하느님의 능력이 작용하고 있다고 굳게 믿으며 있는 힘을 다해 이렇게 외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보통 사제들 같았으면 기겁을 하고 도망갔을 것입니다. 좀 나은 사제라면 근엄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겠죠.
“이러면 안 되지. 자네 이거 불법인 거 잘 알지? 이렇게 막무가내로 행동하면 서로가 좋을 일 하나도 없네. 힘들겠지만 꾸준히 약 먹고 치료에 전념하게. 그리고 나중에 병이 진정되면 그때 한번 만나세.”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태도는 정말이지 놀랍습니다. 예수님은 상처와 진물투성이인 그의 몸에 다정하게 손을 얹습니다. 그리고 위엄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건강하고 순결한 예수님과 병들고 불결한 인간이 만납니다. 고상하고 맑은 정신의 예수님과 좌절과 원망뿐인 한 인간이 만납니다. 위엄으로 가득 찬 영광의 예수님과 얼굴을 땅바닥에 대고 엎드린 한 사람이 만납니다.
빛과 어둠의 만납니다. 생명과 죽음이 만납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인간의 비참이 정면으로 마주친 것입니다. 참으로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존재의 만남입니다.
그 결과는 마치 갓 태어난 아기 피부처럼 보송보송하고 깨끗한 피부입니다. 언젠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자비하신 하느님의 얼굴과 대면할 때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 순간은 참으로 축복된 순간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면서 지은 모든 죄와 허물, 어둠과 상처는 하느님 자비의 얼굴과 마주치는 순간 화로 위에 던져진 눈송이처럼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인간의 비참은 사라지고 하느님의 자비와 영광만 남게 될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1998년 제기동 본당의 보좌신부로 있을 때입니다. 중고등부 학생들과 칠갑산 청소년 수련장으로 여름 캠프를 갔습니다. 둘째 날에 본당 신부님께서 사목위원들과 캠프장으로 방문 왔습니다. 먼 길인데도 더위를 무릅쓰고 왔습니다. 사목위원들은 학생들을 위해서 간식을 준비해 왔고, 본당 신부님은 필요한 데 쓰라면서 격려금을 주셨습니다. 신부님은 아이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보시고, 바로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1시간 정도 머물기 위해서 왕복 8시간을 걸려서 왔습니다. 신부님에게 왕복 8시간 걸리는 거리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본당의 어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신부님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2024년 댈러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의 학생들이 부주임 신부님의 인솔 하에 오스틴에 있는 피정의 집으로 여름 캠프를 갔습니다. 저도 사목위원들과 함께 왕복 8시간이 걸리는 피정의 집으로 격려차 방문했습니다. 아이들은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예전에 본당 신부님이 그랬던 것처럼 격려금을 주고, 1시간가량 머물다가 돌아왔습니다. 다행히 적당히 구름이 낀 날이어서 운전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한 가지 해프닝이 있었는데 제가 선글라스 케이스를 가져간다는 것이 서두르는 바람에 면도기 케이스를 가져갔습니다. 선글라스를 쓰려고 케이스를 열었는데 면도기가 나와서 조금 당황했습니다.
왕복 8시간을 길 위에 있으면서 ‘길’에 대해서 잠시 생각했습니다. 길은 ‘길들이다.’라는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길이 원래 있던 것이 아니라, 걷다 보니 길이 되는 거라고 합니다. 대관령도 미시령도 새로운 길이 나면서 옛길은 차량 통행이 적어지고, 그러다 보니 길이 잊혀지는 걸 보았습니다. 산보할 때도 그렇습니다. 매일 같은 길을 걷다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니 덜 피곤하고, 덜 피곤하니 산보가 즐겁습니다. 인류는 살아오면서 가축을 길들였습니다. ‘개, 양, 소, 말, 낙타, 닭, 고양이, 돼지’는 인류가 길들여서 같이 지내는 가축입니다. 신발도 처음에는 발에 익숙하지 않지만 자꾸 신으면 길이 들어서 편하게 신을 수 있습니다. 사제복도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자꾸 입으면 사제복이 편하게 느껴집니다. 사람들은 편하고, 기능이 좋은 것을 선택하지만 때로는 조금 불편해도 익숙한 것을 선택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면 서로 닮는다고 합니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잘 키운 부부는 닮은 모습이 많습니다. 그만큼 서로에게 맞추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선한 눈빛이 비슷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말투가 비슷하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 비슷합니다. 제가 본당 신부님께서 격려 방문한 것을 배웠듯이, 부주임 신부님도 언젠가 그렇게 하리라 생각합니다. 따뜻한 마음은 서로 통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나병환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나병환자들이 많았습니다. 어떤 나병환자는 자포자기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였습니다. 일그러진 자신의 모습만 보았습니다. 나병 때문에 영혼까지 병들고 말았습니다. 어떤 나병환자는 받아들였습니다. 자신이 나병환자가 된 것은 부모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온 나병환자는 스스로 비관하지 않았습니다. 부모의 죄나 자신의 죄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병환자는 자신이 그렇게 된 것은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병환자는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의 갈망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나병환자는 이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외모는 깨끗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몸도 건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외모와 건강만으로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깨끗하고 건강해야 합니다. 우리는 남의 눈에 있는 작은 허물을 보면서 어쩌면 우리의 내면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부로 외면하는 때도 있습니다.
신앙은 어쩌면 하느님의 사랑에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은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에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은 먼저 신앙의 길을 걸었던 성인, 성녀들의 삶에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에 길들여졌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함께 하시지 않지만, 길들여진 제자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주님을 찾아가서 자신의 갈망을 이야기했던 나병환자처럼 우리들 또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혼을 치유해 주시도록 주님께 청하면 좋겠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참기도>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태 8,2)
나조차
어찌 할 수 없는
나이오니
나에게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당신께서
내게서
하고자 하신 바를
이루소서
오늘의 성인
성 이레네오(Irenaeus)
신분 : 교부, 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 리옹(Lyon)
활동연도 : 130/140?-202년경
같은이름 : 이레나이우스, 이레네우스
성 이레네우스(또는 이레네오)는 소아시아의 스미르나(Smyrna, 오늘날 터키의 이즈미르, Izmir) 출신으로 스승인 폴리카르푸스(Polycarpus, 2월 23일) 주교를 통해 사도적 정통성을 이어받았다. 그의 출생 연도에 대해 논란이 많지만 130-140년 사이로 추정된다. 그는 로마(Roma)에 와서 오랫동안 머물렀으며, 이때 성 유스티누스(Justinus, 6월 1일)가 세운 교리 학교에서 공부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언제 무슨 이유로 프랑스의 리옹으로 가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투르(Tours)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11월 17일)에 의하면 성 폴리카르푸스가 그를 프랑스 지방의 선교사로 파견하였다고 한다.
그는 177년 리옹 교회의 특사로 교황 성 엘레우테루스(Eleutherus, 5월 26일)를 방문하여 몬타누스주의 문제에 대해 상의하고 리옹 지방의 순교자들에 대해 보고하였다. 그가 로마에 체류하는 동안 리옹의 주교 포티누스(Photinus, 6월 2일)가 순교하였으며, 리옹에 돌아온 즉시 그는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는 리옹 지역의 복음 선포에 열정적이었고, 프랑스 지방의 영지주의자와 피나는 싸움을 전개하였다. 이때 그가 쓴 저서가 “이단 논박”(Adversus Haereses)이다.
그는 이단 사상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면서 동시에 초기 교회의 정통 신앙을 확립하였다.
성 이레네우스는 ‘가톨릭 교회의 수호자’라고 불릴 정도로 2세기 신학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났으며, 특히 영지주의 계통의 이단들에 대항하여 정통 교리를 수호한 대표적인 교부이다.
그의 저서에는 사도들의 전승이 그대로 담겨 있으며 또 교황 수위권의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투르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에 의하면 그는 202년경에 순교하였다고 한다.
성녀 빈첸시아 제로사(Vincentia Gerosa)
활동년도 : 1784-1847년
신분 : 설립자
지역
같은 이름 :
성녀 바르톨로메아 카피타니오(Bartholomea Capitanio, 7월 26일)가 ‘로베레의 애덕회’를 세울 때 성녀 빈첸시아 제로사의 정열적인 도움을 받았다. 성녀 빈첸시아는 1823-1824년 사이에 성녀 바르톨로메아와 친분을 맺고서 젊은이들에 대한 교육과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들은 성 빈첸시오 데 바오로의 애덕회 규칙을 따랐지만, 정부 측이 새로운 수도회 설립을 반대함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큰 성공을 거두었다.
성녀 빈첸시아는 하느님의 참 정신을 가진 성녀로 불리었다. 그 결과 이 위대한 설립자는 새 수도원을 끊임없이 세워나갔다. 그녀는 자신을 비천한 피조물로 간주했으며, 십자가상의 주님의 권능과 안배를 늘 기도했다. 이 때문에 그녀는 이런 말을 남겼다. “십자가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십자가를 아는 사람은 더 배울 것이 없다.” 그녀는 1926년 5월 30일 복자품에 올랐고, 1950년 5월 18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요한 사우스워스(John Southworth)
활동년도 : +1654년
신분 : 신부, 순교자
지역 : 영국(UK)
같은 이름 : 요안네스, 요한네스,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영국 잉글랜드(England) 랭커셔(Lancashire)의 사우스워스 출신인 성 요한(Joannes)은 프로테스탄트 분위기 속에서도 다행히 가톨릭 신앙을 알게 되어, 1613년에 프랑스 랭스(Reims)의 두에 대학으로 가서 21세의 나이로 사제직을 준비하였다. 사제가 된 후 약 5년 동안은 베네딕토 회원이 되려고 노력하였으나 자신의 선교사적 이상 때문에 교구사제로 머물고 말았다.
1619년 12월 13일 그는 영국 선교단의 일원으로 영국으로 건너갔다가 1623년에 돌아와서 두에(Douai)와 브뤼셀(Brussel)에서 베네딕토 수녀회의 지도신부로 활약하였다. 그 후 또다시 고향 땅에 선교하고 싶은 열망을 이기지 못해 영국으로 건너가서 1627년까지 활약하다가 랭커셔 성에 갇혔고, 62세의 일기로 순교하였다. 에스파냐 대사의 주선으로 그의 유해는 두에의 영국 대학 성당에 안장되었다. 그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Wales)의 40명의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