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욥 42:1)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 42: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베헤못과 리워야단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창조주의
뜻을 깨달은 욥은 자신이 그토록 리워야단 같이
전천후로 휘집고 다니고,
왕처럼 군림하고 다스리고 대우받고 가르치고,
손 비빔을 받고, 사람들을 괴롭게 했던 잘못을
깨닫게 된다.
자기가 그동안 어떻게 했기에 사람들이 그토록
원성을 높였으며, 지금 아파 죽을 것 같은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지를 않고 그토록 놀리고 조롱하고
침을 뱉을 정도가 됐는지를 처절하게 깨닫게 된다.
욥이 창조주를 만나는 순간 무슨 잘못을 한 것인지를
정확하게 알게 된다. 이것은 일일이 말로 가르쳐
주지 않아도 원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알게 되는
것이다.
창조주는 정말 광대하시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된다.
사람의 입으로는 할 말이 없어진다. 그동안 창조주에
대해서 아는 척하고 자랑하고 떠들고 했던 것들이
부끄러워진다.
창조주는 못하시는 일이 없으시고 못 이루시는 것이 없으신데,
지금 우리 삶을 보면 전혀 개입하시지 않으시는 것 같다.
그래서 전부 우리 힘대로, 우리 뜻대로, 우리 마음대로,
우리 계획대로 사는 것 같지만 내 생각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이상하다. 누가 꼭 있는 것 같다.
나의 복은 딱 여기까지인 것을 보면.
나는 40년 이상 경력의 기독교인으로서 그 동안에는
기독교에서 가르쳐 준대로, 설교하는대로 거의 100%
흡수했다고 볼 정도였다. 성경공부도 좋아했다.
그렇다고 성경을 100% 다 믿는다고 주장할 수도 없고,
어느 부분은 안 믿는다고 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체크해 보지도 못하고
믿음이 있는 줄 알고 아무 생각 없이 종교생활만
열심히 했다.
하지만 2011년 8월 29일 방언을 받음과 동시에
기드온용사 훈련이라는 것을 가족이 동참한 가운데
평상시 삶을 그대로 살면서 받았다.
그 이후 창조주 신께서 직접 성경을 풀어주시는데
7년 이상이 걸리면서 기독교 기본에서
양파껍질 한꺼풀씩 벗기듯이 벗겨내셨다.
그리고 성경을 100% 믿어지게 하셨다.
나도 이 욥 같은 고백을 할 수 있다.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으시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압니다. 이 세상 돌아가는
모든 상황은 주께서 명하신대로 이십니다"
■(욥 42: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창조주를 경험하지도 못한 제가 신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한 제가 창조주신을 많이 안다고
이론으로만 떠벌였습니다. 그리고 남을 많이
가르쳤습니다. 정말 저는 무지했습니다.
어느날 나에게도 하나님께서 물어보셨다.
"너는 왜 성경공부를 그렇게 하느라고 하니?"
"저도 많이 알고 싶고요 남들도 가르쳐주고
싶어서요" 라고 했더니 하시는 말씀이
"너나 잘해라~" 하셔서 멘붕 온적이 있었다.
교회에서는 성경공부 시키느라고 난린데
나는 나름 우등생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는데
"너나 잘해라"고 하신다.
■(욥 42: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물어보고 주께서 대답하시고 하지 않아도
그냥 저절로 알게 된다.
■(욥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이 여태까지는 창조주에 대해서 공부하고
구전으로 듣고, 선배에게 듣고, 누구에게 가르치면서
귀로만 듣고 알았던 창조주를 이젠 직접 만나게
된 것이다.
직접 보여주시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이 느낌이 무슨 느낌이지 나는 안다.
그냥 느낌으로 다 알게 하신다.
말씀하시는 것처럼 알게 하시는데 들리지 않는
그냥 알게 되는 것이다. 생각을 공유하는 것 같다.
이렇게 창조주신을 직접 만나니 그동안 나에게
"주신이도 주시요 거두시는 이도 주시요" 라는
말을 이론으로 알았던 것을 몸으로 처절하게
느낀 것이다.
진짜 주인이 계셨구나.
■(욥 42: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 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 하나이다"
내가 아무리 이 땅에서 권세가 크고 잘 배우고
잘났다고 해도 창조주 앞에서면 그렇게 초라할
수가 없고 비참할 수가 없다.
지금 내가 잘난 척 하면서 곧잘 하던 일도
당장 내려놓고 싶어진다.
우리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사는 것이 주께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느낌을 주셔서 그렇지 만약
우리의 모습대로 느끼도록 하신다면 우리는
잠깐이라도 살 수가 없다.
바보 같고, 멍청이 같고, 부족하고, 창피하고,
모자란 것 투성이기 때문에 함부로 누구 앞에
리더자로 설 수가 없다.
창조주께서는 그렇게 하려면 당장 그만두라고
하시는 것은 아니시다. 창조주 앞에 서면 자동으로
그렇게 느끼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이다.
이 느낌은 왕이든, 세계 대통령이든, 세계 갑부이든,
무슨 박사든 교수든 판사든 의사든 대기업 사장이든,
영성의 대가인 주의 종이든, 신학박사든 신학교 교수든,
대형교회 주의 종이든, 성경을 많이 알고 있는 교인이든,
하나님을 잘 믿고 예배를 잘 드렸든, 예물을 많이 드렸든,
봉사를 잘했든, 찬양을 잘했든, 기도를 많이 했든,
새벽예배를 평생에 한 번도 안 빠지고 드렸든,
구제와 선행을 제일 많이 했든, 제일 착하고 바르고
정직하게 살았든 상관없다.
창조주 앞에 서면 그냥 죽은 듯이 된다.
창조주 앞에서 잘난 척을 할 수가 없다.
창조주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셔도
내 몸이 스스로 처절하게 깨닫는다.
욥이 얼마나 이 땅에서 큰 존재이었나.
하지만 창조주 앞에 서있으니
자기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고,
자기가 여태까지 했던 모든 자랑스러운 일들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처절하게 느낀 것이다.
내가 성가연습을 시키는 중에 이런 것을 느꼈는데
정말 울다시피 하면서 했다.
하나님은 나의 옆에 간이 책상을 놓고 그냥 의자에
앉아계셨다. 이 모습을 나는 느낌으로 아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하니? 라면서 뭐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그냥 입다물고 앉아계시지만 나는 그냥 처절하게
느껴버린다. 나 자신에 대해.
당장 지휘를 때려쳐야 할 거 같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하나님의 모습을 느끼지 않으니까
그냥 전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살게 된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고 있다. 모두들 그렇게 산다.
■(욥 42:7)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창조주께서 엘리바스에게 대표로 말씀하신다.
너와 너희들이 창조주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욥 같지 않았다고.
주께서는 사람을 정죄하셔도, 사람은 사람끼리
정죄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그 환자 앞에서 그 사람의 죄를 찾아주려고
발버둥을 쳐도 그 사람은 모른다.
왜냐하면 그 죄 값으로 징계를 하신 창조주께서
그 징계가 끝날 때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라서 그렇다.
사람이 깨닫게 해주는 것으로 착각해서 아무리
강단에서 소리 지르고 설교를 해도 교인들은 모른다.
우리의 할 일은 위로해주고, 칭찬해주고,
격려해주고, 도와주고, 일으켜주고,
손을 잡아주는 역할이 있을 뿐이다.
설교를 듣고 깨달았을지라도 창조주의 때가 됐기
때문이지 목회자가 설교를 잘해서가 아니다.
그 설교를 사용하셨을 뿐이다.
엘리바스나 빌닷이나 소발 어르신이 말한 것이
틀린 것이 없다.
아주 적나라하게 욥의 죄목을 다 밝혀주었다.
그래도 욥은 절대적으로 깨닫지를 못한다.
내가 그 환자 앞에서 의로운 척하고, 나는 죄가 없어서
지금 이렇게 멀쩡한 것 같이 이야기를 해도,
나도 나중에 창조주께서 정죄하실 때는
그 때 그 사람처럼 나도 죽을 맛으로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남이 와서 똑 같이 나에게 정죄성 발언을
할 것인데, 누구든 그러지 말라는 것이다.
■(욥 42:8)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이들도 창조주를 정확하게 영성으로 만나보고 안 것이 아니라
많이 듣고 배우고 연구하고 알고 있었던 것이다.
너희들이 잘 못한 것에 대해 수소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가지고 욥에게 가서 욥이 너희들을 대신하여 번제를 드리게 하라.
회개의 제물을 받으시겠다는 것이다.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데 내가 그 기도를 기쁘게 받을 것이다.
너희들의 말은 우매했지만 그 우매함을 너희들에게 갚지 않겠노라.
그런데 나는 그동안 신앙생활 하면서 창조주신은 왜 그렇게
동물들을 잡아 죽이라고 하셨을까? 그렇게 짐승 태우는 냄새가
창조주께 향기가 될까? 했다.
아니었다. 성경을 읽어보니 창조주께서 그 동물을 죽이고
제단에 바칠 것 바치고 태우고 삶고 하면서 고기는
사람들을 먹으라고 하신 것이었다.
제사장도 먹고 성전을 섬기던 자들도 먹고 그 제물을 갖고 온
가족들도 먹으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즐거워 하라고 하신다.
이 때도 엘리바스, 빌닷, 소발 어르신이 합쳐서 수소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창조주께 바치라고 하셨는데, 일단 창조주께
제사를 드리고 나면 그 짐승을 가지고 동네 잔치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것을 먹고 즐거워 하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신명기 27:6~7)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에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
■(욥 42:9)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창조주께서 욥의 회개를 기쁘게 받으셨다.
욥과 이 세 사람에게 동시에 말씀하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기드온용사 훈련이라는 것을 창조주께 직접 받아보니
나에게만 창조주의 명령이 들리는데 가족은 그냥 나를 100%
믿고 따라오게 하셨다.
나중에 그 훈련의 관계를 끝내시니
이제 가족은 원래 대로 돌아갔다.
나만 하나님의 음성을 느낌으로 들으면서 산다.
그렇게 욥하고 논쟁을 했던 사람들이 동시에 창조주의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제물을 드리라는 명령에 순종한다.
■(욥 42: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
욥이 감사기도를 드렸다.
이론으로만 알고 있었던, 그 이론을 가르치고
주장했던 욥이 창조주의 존재를 바로 깨닫고
창조주를 직접 만나고 나니 철저한 회개를
하게 되고 그의 환난에서 건짐을 받는다.
그리고 과거보다 훨씬 더 제대로 살게 되니
전보다 갑절의 복을 받게 된다.
■(욥 42:11)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이들이 다 와서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주었더라"
욥이 죽을 줄 알고 그동안 마음에 상처들을 입은
형제 친척들이 멀리하고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창조주께 치유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모였다. 즐거운 파티를 연 것이다. 뒤풀이.
이렇게 파티를 연 것도 욥의 마음이 온화하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동안 욥이 얼마나 아팠는지,
얼마나 서러웠었는지, 얼마나 두려웠었는지를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렇게 혼나기도 했지만 주께서 깨닫게 해주시면서
그동안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처절하게 회개하고
알게 된 욥은 성격이 유해졌다.
가족이나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도 갖게 됐다.
그런 마음으로 과거를 이야기를 하니 그동안 슬퍼하지도 않고
위로하지도 않았던 지인들이 이제는 같이 슬퍼하며 위로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재물들 중 하나씩 선물해줬다.
욥이 회개하기 전, 개과천선 하기전에는 그렇게 밉고 싫어서
상대를 안했지만 이제 사람이 선하게 변하니 그동안 욥의
아픔과 고생에 대해 슬퍼하며 위로해준다.
우리도 누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면 입원비에 보태고 맛있는
것이라도 사 먹으라고 봉투를 주는데 이런 마음인 것 같다.
빨리 쾌차하고 다시 부자가 되라는 마음으로.
■(욥 42:12)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징계 후에 욥은 그 전보다 갑절의 부자가 되었다.
얼마나 부자인 것인지 모르겠다.
현재돈으로 소 값만 대략 60억원이 됐다.
■(욥 42:13)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욥이 징계 후에 전과 같이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나았다.
부부금슬도 다시 좋아졌다.
■(욥 42:14)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 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 하였으니"
이제는 욥의 딸들 이름이 기록이 됐다. 이름이 불리었다.
우리나라도 옛날에는 딸은 거의 이름이 없었다.
아무렇게나 부르는 것이 이름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여미마' '긋시아' '게렌합북' 이란 이름으로 불리었다.
사랑을 담은 이름인 것이다.
■(욥 42:15) "모든 땅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그들의 오라비들처럼
기업을 주었더라"
욥은 징계 후에 먼저처럼 10명의 자녀들을 낳았는데
이번에는 딸이 그 지역에서 가장 예뻤다고 한다.
자녀들을 사랑으로 키우면 자신감도 있고
성격도 밝고 명랑하고 잘 웃는다.
그렇게 큰 아이들은 모습도 아름답다.
먼저는 창조주께 고사지내기에 급급했던 욥이
이제는 자녀들과도 잘 지낸 것이다.
유산 상속도 아들이나 딸이나 같이 주었다.
■(욥 42:16) "그 후에 욥이 백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았고"
욥은 그 징계가 끝 난 후에 140년을 살며
손자 4대를 보았다.
■(욥 42:17)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
주께서 사람에게 주신 생명 년 수가 있는데 누구는 짧고
누구는 긴 것인지, 누구나 똑 같은 것인지, 누구는 잘 살아서
오래 살고, 누구는 잘 못 살아서 일찍 죽고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창조주께서는 너무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 하신다(전도서 7:17).
욥은 기한이 차도록 산 것이다.
더이상 아프지도 않고 고난도 없었고
그냥 평안하게 살다 평안하게 죽었다.
.......................................................................
(계시록 7:14)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계시록 7: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요한계시록에서 '14만4천명'이 나온다.
이 숫자를 가지고 이단이나 삼단에서는 자기네
교회나 자기네 단체에 와야 이 숫자에 들어간다고
헛소리하는데 이 14만4천의 의미를 안다면
그런 소리 못한다. 입을 다물자.
그 환난에서 나온 자들이 다시는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않고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정도의
복을 받을 정도면 '개과천선' 정도해야 한다.
'욥'이 큰 환난을 지나고 개과천선 후 선한 사람이 되고
복을 두 배로 받고 장수도 한다. 욥 정도의 삶이다.
욥은 실질적으로 육체가 죽을만큼 혼난 상태이지만,
동화속 스크루지 할아버지는 자기의 '죄의법세계'를
체험하고 나서 개과천선하게 된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욥이 스크루지 보다 악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욥이 원래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창조주께서 누구를 높이실 때는 '의로운 자'를
선택하셔서 높은 자리에 앉히시는데,
욥이 그렇게 창조주께 선택 받아서 그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그 높은 자리에 있는 자신이 어느 날,
일이 안되고, 질병에 시달리고, 환난이 닥친 것
같은 때는 자신을 돌아보라고 하신다.
아무리 창조주께서 선택하셔서 높은 자리에
세우셨어도 교만하면 땅에 곤두박질쳐 버리신다.
사도바울도 처음 왕으로 택함받았을 때는 남들보다
머리가 하나 더 있을 정도로 키도 크고 준수했었다.
그리고 말을 안들어 버림 받았다.
내 행실이 나빴는지, 내가 교만했는지,
쓸데없는 권력을 휘둘렀는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알았으면 가져가시는 것도
알고 조신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창조주께서 욥이 정녕 나빴다면 그냥 징계하시지도 않으시고
죽여 버리셨을텐데 그래도 징계를 내리시고 근신하도록 하시고
기다리셨다가 다시 살려주셨다는 것은 그래도 욥을 다시
살려주실 가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창조주께서는 주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라고 하시는구나
그래도 너를 죽여버리지 않으시고
살려주시려고 하시는 것이니까.
내가 좀 높아지고, 내가 좀 갖게 되고,
내가 좀 알게 되면 주위에서 나를 칭찬해주고
따르고, 위해주고, 받들어주고, 손을 비비고
하게 된다.
그럴 때 나는 빨리 정신을 차려야 한다.
"아! 이러다가 나에게 재앙이 닥친다"는 것을.
내가 곧 교만해질 것이니까.
교만해지면 악행이라는 것이 달라붙는다.
내가 위로 올라가는 만큼
'교만'과 '거만'이 옵션이 붙어간다.
자꾸 발로 차서 떨어뜨려 버려야 한다.
(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