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이야기
비 그친 2월 끝자락의 어느 날 길을 가다말고 담벼락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던 시간들이 꽃샘추위가 오면 떠오른다. 가슴을 덥혀주는 햇살의 온기가 좋아 그냥 하늘을 바라보던 소년기의 유일한 휴식시간은 언제나 일요일 늦은 하오였다. 아직은 매서운 바람이 일던 그때 담벼락 아래 보랏빛을 발견하고 탄성을 지르던 그 선연한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서울변두리 달동네 길목에 피어나는 제비꽃은 봄의 상징이 되었고, 봄이면 떠오르는 색이다. 초등학교 5학 년 때까지 살았던 남도 시골의 여름 색도 단연코 보라로 기억되고 있다. 도라지꽃에 개미를 넣고 꽃잎을 닫으면 마법처럼 금시 빨갛게 변화는 도라지 꽃잎들도 신기했다. 과학으로도 쉽게 설명되지 않은 개미가 요술을 부리는 도라지꽃 색의 변화는 지금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보라는 가시광선 과학의 영역에서 보면 파장이 가장 짧아 무지개의 끝점에 자리한 이유다. 인간의 시각으로 보면 극단의 색이면서 초월에 근접한 색이라고 예술가들은 말한다. 색의 대표적인 빨강과 파랑의 중간 두 색을 합쳐야 보라가 되는 퍼플은 여성운동의 색채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관용과 배려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의로운 길을 가다 투옥된 민주투사들의 재판이 열리는 날 서초동 법원 앞은 보라색 물결로 끝없이 이어졌다. 화장기 없는 맨 얼굴로 보라색 저고리를 입고 담담히 법정에 앉아있던 친구의 엄마는 성자 그 모습이었다.
1950년대 프랑스에서 여성참정권인 서프레제트 움직임이 일면서 보라는 여성운동을 상징하는 색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80년대 보라색 멜빵바지를 입고 퍼플을 상징적으로 내세우며 여성운동의 색으로 발표한 영국 에멀린 로렌스는 여성의 자각과 품위를 상징한다고 외쳤다. 그 영향을 받은 것인지 모르지만 80년대 군사독재시절 보라는 자유와 포용을 표방하며 여성운동 아이콘의 색채였다. 관용과 배려로 의로운 자의 편에서 재판을 하던지 아님 떳떳하게 감방으로 되돌아가게 판결하라는 의미로 학생운동의 가족들은 모두다 보라색 옷을 입고 재판정으로 향했다. 봄꽃 중 가장 작은 무리에 속하며 맨 먼저 혹한을 밀어낸 제비꽃의 보라색 그 내면은 이토록 의연함과 자신만의 분명한 색채를 지니고 있다.
회화세계에서 사용하지 않던 보라를 즐겨 쓴 화가로는 클로드 모네를 떠오를 수 있다. 햇살이 사물에 닿는 순간을 관찰하다보니 사물의 그림자는 회색이나 검정이 아닌 보라색임을 밝혀낸 것도 모네라고 한다. 흰색을 모태로 익숙해진 우리에게 보라는 사실 그다지 익숙한 색은 아니다. 서양에서는 보라와 바이올렛을 구분하지만 우리는 하나의 보라로 알고 있다. 보라는 밝은 색을 띠는 반면 바이올렛은 파랑에 더 가깝다. 유럽에서 보라는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색이였지만 비잔틴 제국이 오스만에 의해 함락되면서 황제를 상징하던 색도 진홍색으로 바뀌면서 그 빛을 잃게 되었다. 보라가 대중에게 인기를 얻게 된 계기는 영국의 화학자 헨리 펄킨이 보라의 염색물질을 발견하면서부터다. 펠킨이 보라의 염료를 본격적으로 생산하면서 화학과 예술은 물론 패션산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보라색의 대표적인 예술가를 꼽는다면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보 클림트를 들 수 있다. 그는 보라의 우아함과 신비감에 빠져 많은 작품에 보라를 조합하게 되었다, 서양에서 불던 퍼플의 유행은 다시 영국을 필두로 왕족의 색으로 상징되었고 대중들에게도 널리 사랑받는 색으로 발전하게 된다. 보라의 색은 곧 변화의 색이자 혁신의 이미지로 인식되어 전 세계로 전파되었고 대중음악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지미핸드릭스, 딥퍼플 등 히피문화를 대표하는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자신을 나타내는 색으로 표출하며 그들의 음색에도 보라를 접목하기 시작했다.
씨애틀 스타벅스 본사 근처엔 보라색 가게가 있다. 모든 제품들은 다 보라색 한 색깔뿐이다. 패션에서 가장 소화하기 힘든 색이 보라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의류가 주 아이템인 이 가계에서도 단순한 디자인의 티셔츠나 운동복 잠바, 에코백, 머그 컵 등 소모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서양을 대표하는 봄꽃의 보라는 크로커스가 으뜸일 것이다. 2월 하순쯤 가시덤불이나 덜 녹은 눈 속에 뾰족이 올라오는 꽃들은 어김없이 보라의 크로커스가 맞다. 오묘한 신비감은 제비꽃에 못 미치지만 눈 속에 피어오른 보라와 흰색의 조화는 감탄이다.
작고 눈에 잘 띄지 않은 섬세한 것들이 위대하고 원대한 꿈을 실천하고 있음을 우리는 잊고 산다. 우선 보여 지는 화려함과 거대함에 찬사를 보내고 관심을 보낸다, 강렬한 빨강 원색보단 중간 그 중용의 색채를 지닌 꽃들은 대부분 작고 연약하다. 가장 혹독한 절기를 이겨내고 맨 먼저 희망의 봄 메시지를 보내는 것 또한 보라색들이다. 보라는 관용과 배려, 혁신의 상징이지만 성찰을 통해 다시 꿈을 갖게 하는 색채이기도 하다.
끝
첫댓글 <보라 이야기>
'도라지꽃에 개미를 넣고 꽃잎을 닫으면 금방 보라색꽃이 빨강색으로 변한다'는 이야기는 난생 처음 듣네요.
도라지를 심는 농장에라도 찾아가서 꼭 해보고싶네요.
보라색은 여자들도 소화해내기 힘든 색이지요. 피부가 까만 사람이 보라색옷을 입으면 아주 촌티가 나기도 하고
빈티가 나기도 하는 색, 그러나 피부가 하얗고 세련된 사람에게는 우아해 보이기까지 하지요. 그래서 보라색은
미인의 색이랍니다.
저는 카나다에 와서 눈속에 핀 크로커스를 처음 보고 정말 신기했어요. 저 작은 생명이 그 무거운 눈덩이를 밀치고
꽃을 피어내다니 경이롭기까지 했습니다.
'보라색이 관용과 배려, 혁신의 상징, 성찰을 통해 다시 꿈을 갖게하는 색채'라는 것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
반갑습니다.
지금도 궁금하고 신기한 것은
개미가 도라지 꽃에 들어가 움직이면 움직이는 데마다 빨갛게 색이 변하는 것이
참으로 신기합니다. 어떤 작용인지 궁금합니다. 지금도.
미인의 색
보라
율리아나가 보라를 좋아해 정원 모두 보라 꽃을 심곤 했습니다.
미인은 아니니 옷은 사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합니다.
글 관심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어떤 이유로 개미를 도라지 꽃에 넣으면 색이 변하는지요.
과학에서 실험한 결과는 이렇습니다.
'분홍색으로 색깔이 변한 이유는 개미가 위협을 느끼면서 내뿜는 포름산이 도라지 꽃에 있는
안토시아닌 색소와 만나면서 변색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 실험으로 밝혀진 것이라고 합니다.
덕분에 저도 이제서야
이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서정성은 소년기 때부터 일찍 시작이 되었구나 싶어요.
비를 피한 처마 밑에서 들으시던 음악에 대해서도 읽었던 기억이 나요.
보라색이 지닌 크나큰 의미, 모네와 클림트 그리고 이름만 익숙한 지미 핸드릭스, 딥 퍼플까지... 선생님의 상식과 지식의 양에 놀랍니다.
크로커스 보라,노랑, 하얀색 같이 모여 있으면 정말 이쁘죠. 특히 노랑색은 제가 좋아하는 프리지어를 닮아서 한참 쳐다봅니다.
저는 읽다 보니 보라색 할미꽃 생각도 나네요. (제가 할미라 그런가봐요 ㅎㅎ)
두 분 선생님 댓글 대화도 미소를 짓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
모든 사물과 글을 고운 시선으로 봐 주시니
좋게 이해되실 줄 믿습니다.
삶을 돌아보면 외 줄을 타듯 늘 긴장된 순간들 속에서도 기억에 남아 있는
아련한 추억들이 삶의 자산으로 축적되는 거 같습니다.
글에 관심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명 선생님, 윤미숙 선생님,
저는 정말 믿기 어려웠는데 (도라지와 개미 건 ) 그런 화힉작용이 있었네요.
이제 제가 마술사라며 허풍(?)을 떨며 으시대야겠어요. 앞으로 도라지꽃이 있는 집에 갈 때는 개미를 잡아서 병에 담아 가려고요.
언젠가 문협에서도 해볼테니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가만히 계세요.
고향에 가서 동생들을 놀려주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신이 나네요. ㅎㅎㅎ
혹 저만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니겠죠? .
정말 현수기 누님도 놀랄 것입니다.
저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어떤 실험이나 돌발적인 행동을 하기로 유명했답니다. 초등 1학년 때
새알을 나무에서 꺼내 부화를 시킨다고 이불 속에 넣어두고 지켜보기도 했구요.
도라지 꽃에
개미를 넣으면 개미가 지나간 자리에 연분홍으로 색이 금시 바뀌는 것을 보시면
정말 신비한 마술을 보는 느낌일 것입니다.
현수기 누님의 마술쇼 무대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자명은 우리 아들처럼 개구쟁이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