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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죽은 뒤의 저 세상은 있는 것인가?
(이 글은 지난 9월24일 경주중·고 2415동기회 모임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들어가며
며칠 전 총무님으로부터 오늘 경주중·고 2415동기회 강의 주제는 ‘웰다잉’과 관련된 내용으로 해 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듣고, 웰다잉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무엇인지 사전을 찾아보니, ‘삶을 정리하고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행위‘라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나는 오늘 시간 관계상 삶을 정리하는 문제는 논외로 하기로 하고 어떻게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이하려면, 먼저 죽음에 대해서 사전지식이 필요할 것 같아서 ‘죽은 뒤 저 세상은 과연 있는 것인가?’란 주제로 몇 말씀드릴까 합니다.
케엘케고올이란 실존주의 철학자가 “이 세상에 확실한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현재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현재 살아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도 부인할 수없는 사실입니다. 그러함에도 사람들은 나와 내 가족의 죽음은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나면 반드시 죽기 마련입니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입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자 한계입니다.
70대 초반 까지만 해도 죽음을 남의 일처럼 예사롭게 보아왔는데, 이제 80고개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고 보니, 죽음이 내일처럼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입니다.
티벳트의 「사자의 서(死者의 書)」에는, “인간아, 너는 너의 의사에 반하여 죽는구나. 죽음이 무엇인지 배울지니라. 그러면 그대는 삶까지도 배우게 될 것이니라.”고 말하며, 생이란 죽음에서 시작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삶을 제대로 알기위해서는 죽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웃 일본에서는 고등학교교과과정에 「죽음학」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죽은 뒤 저 세상은 있는가?
육신의 죽음은 생(生)의 끝인가. 또 다른 생의 연속인가? 저 세상(천당과 지옥)은 정말 있는 것인가? 윤회한다는 것이 사실인가? 우리가 모른다, 모른다 해도 죽은 뒤의 일만큼 모르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죽었다 살아온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사후의 문제)는 결국 형이상학적인 문제로써, 과거에는 철학과 종교에서 다루었으나, 18세기 근대철학의 아버지라 일컫는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사후의 문제는 논증할 수 없는 것’이라 하여 철학에서 제외시켜 버림으로서, 오늘날에는 종교의 영역에서만 다루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세계 4대성인으로 추앙받는 소크라테스, 유교의 공자, 도교의 노자, 기독교, 불교에서는 사후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1)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는 신을 모독하고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명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보면, 소크라테스는 그의 친구 크리톤이 찾아와서 관리들을 매수하여 두었으니 탈옥할 것을 권유하자 “내가 아테네 법을 위반하고 탈옥하게 되면 죽어서 심판받는 저승법[하데스법]을 위반하게 되는 것.”이라며 기꺼이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이란 정신적 자유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있을 때는 정신이 육신이란 감옥에 갖쳐서 살아가야 하지만, 죽음이란 정신적인 해방을 의미하가 때문에,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고, 이미 죽은 사람을 마음대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승을 떠나 저승에 모두 모여 있을 헤시도오스(고대 그리스의 시인)와, 호메로스(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쓴 고대 그리스의 작가)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소크라테스는 어떤 대가라도 치르겠다고 한 것을 보면, 소크라테스는 저승이 있다는 것을 확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공자
공자님은 살아 계실 때, 십대제자의 한 사람인 자로가 공자에게 “우리가 살다가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하고 물으니, 공자께서 대답하기를 “금생의 일도 다 모르는 데, 내생의 일을 어찌 알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유교는 매우 현실적입니다. 과거나 미래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유교의 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교에는 내세관이 없기 때문에 유교를 종교라고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지금까지 늘 논란이 되어 왔습니다.
공자는 내세(來世)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도(道)’를 통한 죽음의 극복은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현세의 삶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올바르게 살지 못하는 것보다 의롭게 죽는 것이 가치 있는 삶으로써, 모름지기 군자(君子; 유교의 이상적 인간상)는 인(仁)과 의(義)를 위해서는 살신성인(殺身成仁: 자기 몸을 희생하여 인을 이룸)하거나 사생취의(捨生取義; 목숨을 버릴지언정 의를 따름)를 하여야 한다고 역설하였습니다.
유교에서는 생명과 죽음은 모두 영원한 기(氣)의 취산(聚散)일 뿐으로, 태어나거나 생겨난다는 것은 곧 기(氣)가 한데 엉기는 것이고, 죽는다거나 없어지는 것은 기가 흩어지는 현상으로 생각하였으며, 이를 생사와 같은 이치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삶과 죽음을 기(氣)의 모임과 흩어짐으로 보는 유교에서는 영혼의 불멸에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이 태어난 다는 것은 음양의 정기가 모여 물질을 만들고, 죽는다는 것은 혼(魂)이 올라가고 백(魄)이 내려가 흩어져 변하는 것입니다. 결국 영혼이 불멸하여 천당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사후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유교에서는 사후세계를 인정하지 않았다면 왜 제사를 지내는지 묻자 않을 수 없습니다. 유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혼백이 죽음과 동시에 혼백이 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이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혼백이 사라질 때까지 제사를 지내주는 것이 자식으로서의 도리라고 보았습니다.
그럼 제사는 몇 대까지 지내야 하는가가 문제인데, 조선 초기 양반가문에서는 4대 봉사를 하였고, 일반 평민은 2대 혹은 3대 봉사, 천민은 부모 봉사만 하였는데, 임진왜란 이후 살림살이가 궁핍해진 일부 양반들이 족보를 사고팔아 양반의 숫자가 크게 늘어나, 조선 초기 양반의 숫자가 2%에 불과했던 것이 조선 후기에는 70%를 상회하였고, 이에 따라 3대, 또는 4대 봉제를 지내는 가문이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조부모, 부모까지 2대만 제사를 지내는 가정이 가장 많다고 합니다.
(3) 도교의 장자
도교는 노자ㆍ장자의 도가사상과 민간 종교로서의 도교와 구별이 됩니다. 도가사상은 자연과 인간의 긍정적 조화인 무위자연(無爲自然), 즉 스스로 함이 없이(無爲) 스스로 그러함(自然)을 추구하는 삶, 즉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대자유인이 되는 것이 목표였지만, 도교는 도가사상에다 중국 전래의 신선술ㆍ불교사상ㆍ음양오행설ㆍ참위설[미래예언설] 등을 가미하여 불로장생의 신선이 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도가의 장자는 그의 처가 죽자 두 다리를 뻗고 앉아 동이를 두드리면서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문상을 간 혜자(장자의 친구)가 이를 보고 말하였습니다.
"부인과 함께 살아왔고, 자식을 길렀으며, 함께 늙지 않았는가. 그런 부인이 죽었는데 곡을 안 하는 것은 물론,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까지 부르고 있으니 너무 심하지 않은가?"
이에 장자가 말하였습니다.
"그렇지 않네. 그가 처음 죽었을 때에야 나라고 어찌 슬픈 느낌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가 태어나기 이전을 살펴보니 본시는 삶이 없었던 것이고, 삶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시 형체조차도 없었던 것이었으며, 형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시 기운조차고 없었던 것이었네. 흐리멍텅한 사이에 섞여 있었으나 그것이 변화하여 기운이 있게 되었고, 기운이 변화하여 형체가 있게 되었고, 형체가 변화하여 삶이 있게 되었던 것이네. 지금은 그가 또 변화하여 죽어간 것일세. 이것은 봄, 가을과 겨울, 여름의 사철이 운행하는 것과 같은 변화였던 것이네. 그 사람은 하늘과 땅이란 거대한 방 속에서 편안히 잠들고 있는 것일세. 그런데도 내가 엉엉 하며 그의 죽음을 따라서 곡을 한다면 스스로 운명에 통달하지 못한 일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에 곡을 그쳤던 것이네."
장자의 자연관, 인생관이 명확하게 나타나는 우화입니다. 당연히 장자가 자기 처가 죽었다고 기뻐했던 것은 아니고, 삶과 죽음이 본시 자연의 일부분이자 순환의 일부분이니 누군가가 우리 곁을 떠나간다 한들 슬퍼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4) 기독교
기독교에서는 인간을 신의 피조물로 보았습니다.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까지도 신이 만들었다고 보았기 때문에, 사람이 죽어서 하늘나라에 갈 때에도 남자는 남자의 육체, 여자는 여자의 육체, 그리고 유아로서 죽은 사람은 성인의 육체를 가지고 승천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천당에 가기도 하고 지옥에 떨어지기도 하지만, 이때에 그렇게 가는 것은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도 따라서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천당에 갈 수 있는가? 그 선결조건은 철저한 믿음, 무조건적인 믿음입니다. 그럼 기독교에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믿어야 하고, 예수님이 구세주(救世主) 임을 믿어야 하고, 성령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하여 태어난 것을 믿어야 하고, 예수님이 죽은 지 3일 만에 다시 부활하신 것과 하늘로 승천하신 것, 그리고 이 세상에 다시 심판하러 오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을 믿으면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고, 이걸 믿지 못하면 기독교인이 못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입장이 다르고, 개신교 내에서도 사뭇 다릅니다. 가톨릭에서는 전통적으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함께 선행을 실천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런데 루터는 “인간은 선행에 의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신앙〕으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였고, 칼뱅은“인간의 구제 여부는 전지전능한 신의 자의에 의하여 미리 예정되어 있다.”는 예정설(豫定說)을 내세웠습니다. 16세기 초 교황의 면죄부 판매에 대한 반발을 계기로 벌어진 이 논쟁은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가 갈라서며 종교 전쟁의 불씨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칼뱅이 예정설을 내세운 이유는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무조건 천당에 간다면, 이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를 주장하는 기독교의 교리와 모순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컨대 수능350점을 받으면 서울대학교에서는 그 학생을 불합격시키고 싶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도 어쩔 도리가 없이 그 사람을 천당에 보내 주어야 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기 때문에, 칼뱅은 천당에 가고 못 가고는 오직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으며, 그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다는 예정설을 내세웠던 것입니다.
신의 존재 문제에 대해서 중세 때, 『신학대전』을 쓴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기독교 신학을 결합해 신앙과 이성을 조화시키려고 했으나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하고 팬을 꺾어 버렸고, 이후에도 많은 신학자들이 갖은 방법과 비유를 들어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으나 확실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였습니다. 근대에 들어와 근세철학의 아버지라 일컫는 임마누엘 칸트는 『순수이성 비판』에서 신의 존재문제는 ‘논증불능(論證不能)’이라 하여 철학에서 아예 제외시켜 버렸습니다.
19세기 말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Nietzsche, 1844~1900)는 “신은 죽었다.”고 말 하여 수천 년 동안 신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고 있던 서구인들에게 충격을 던져 주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본래부터 없었던 신을 있는 것으로 잘 못 알고 믿어 오다가 뒤늦게 없다는 사실을 알아 낸 것뿐인데, 마치 신을 죽이고 살리고 하는 듯한 그런 말은 사실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죽었다.”는 말은 그 전에는 살아 있었음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부활」 「전쟁과 평화」 「안나 까레리나」 등, 걸작을 많이 남긴 세계적 대문호 톨스토이는 한 때 기독교에 심취하여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악마는 유혹하지만 신은 참고 견딘다」등, 복음적인 내용의 문학작품을 많이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만년에는 기독교 신앙에 회의를 느끼고 진리의 길을 찾아 집을 나섰다가 어느 시골 조그만 역사에서 객사하고 말았는데,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두며 남긴 말은 ‘나는 진리를 사랑한다…많이…’였다고 합니한다. 이 말 속에 그가 얼마나 참된 진리를 갈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남긴 명언 중에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신을 믿는 사람이다. 그 다음 행복한 사람은 신이 있는 지 없는 지,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다. 가장 불행한 사람은 신이 있는 지 없는 지 따지는 사람이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신을 믿으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톨스토이 자신은 더 이상 신을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5) 불교
불교에서는 죽음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불교에서는 삶과 죽음을 불일불이(不一不異)-같은 것도 아니며, 또한 다른 것도 아니다-라고 봅니다. 즉 생사일여(生死一如)-삶이 있기 때문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과 죽음을 하나다-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마음과 육신은 같은 것은 아니지만 또한 다른 것도 아니며, 마음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 육신이기는 하지만, 그 육신에는 생노병사(生老病死)가 있기 때문에, 그 육신으로써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을 경우에 마음은 그 육신을 떠나는데, 이것이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우리가 집을 짓고 살다가 그 집이 허물어져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을 때, 새 집을 지어 이사를 가는 것처럼 마음이 육신이라는 집에 살다가 그 육신이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되었을 때 그 육신을 떠나는 것이 죽음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떠나가는 마음은 육체로부터 해방되어 완전한 자유를 되찾아 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육신이 생전에 지은 업(業)의 전부를 고스란히 지닌 채 자신의 업에 맞는 새로운 몸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불교의 윤회설입니다.
그런데 불교를 믿는 궁극젂 목적은 윤회고에서 벗어나 영원한 자유와 안락을 얻는데 있습니다. 불교 역사상 생사에 자재(自在)한 분들이 수 없이 많이 있지만 몇분을 소개하자면, 중국 선종의 3조 승찬대사는 법회를 마치고 방에서 쉬다가 떠날 때가 됐음을 알고 바깥으로 나서 뜰을 거닐다가 나뭇가지를 잡은 채 임종했습니다. 경통은 스스로 장작더미에 올라앉자 불을 붙이고 소신(燒身)공양을 했습니다. 당나라 등은봉 선사는 어느 날 제자에게 “내가 앉아서 돌아가신 스님은 많이 보았다. 서서 돌아가신 스님도 있더냐?”하고 물었습니다. 제자가 “서서 돌아가신 스님도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그러면 거꾸로 서서 돌아가신 스님도 있더냐?”하고 되물었습니다. 제자가 “그런 스님은 아직 못 보았습니다.”하고 대답하자 “그르면 나는 거꾸로 서서 입적해야겠다.”라고 하면서 물구나무서기 한 채로 입적했습니다.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스님은 법상에 올라가 백문백답(百聞百答)을 하시고 난 뒤, “나 그만 갈란다."고 하시며 열반하셨습니다. 일제 강점기 왜색불교를 막아내고 선풍(禪風)을 크게 드날렸던 만공스님은 입적할 당시 저녁밥을 맛있게 들고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독백하기를 ”이 사람 만공! 자네와 나는 70년 동안 동고동락 해왔지만 오늘이 마지막일세. 그동안 수고했네.“하고는 요를 펴고 누워서 열반에 들었다고 하며, 2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성철스님은 화장을 하니 오색찬란한 사리가 130여과가 나왔다고 하며, 몇 해 전에는 백양사 방장 서옹스님이 가부좌한 채 열반에 든 모습이 메스콤을 통해 공개되어, 세인들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게 하였습니다.
죽음이 범인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공포와 괴로움이 되고 있으나 대각국사 의천스님 같이 생사를 초월한 경지에서는 아무런 거리낌이 되지 못합니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 죽음을 만나더라도 밤이 잠이 들듯 아주 태연하게 죽을 수 있습니다.
끝맺음을 하며
지금까지 죽은 뒤 저 세상은 있는지 알아보았는데, 그 결과 종교마다 가르침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떤 가르침이 진리인지 그 판단은 여러분들의 몫으로 돌리기로 하고,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종교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습니다. 특히 서구의 중세에는 인간의 삶의 모든 부분이 종교에 의해 결정되다시피 하였습니다. 그때는 도덕ㆍ윤리뿐만 아니라, 인간 개인의 심리ㆍ사회적 관습ㆍ전통ㆍ또는 정치ㆍ경제현상까지도, 종교를 전제로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종교는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종교를 찾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종교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종교만이 채워 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우리가 반드시 묻게 되는 궁극적인 물음에 대해 오직 종교만이 적극적인 해답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사회학의 창시자 영국의 스펜스는 "사람은 삶이 두려워서 사회를 만들고 죽음이 두려워서 종교를 만들었다"고 했으며, 심리학자 프로이드는 " 신앙은 두려움과 대면해야 하는 상화에서 개인을 보호해 준다."고 했고, 칼 융 역시 "두려운 상황에서 의지할 만한 정신적 방패를 마련하라."고 했습니다. 결국 종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자기인식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적 기재 역할을 합니다.
끝으로 한 말씀만 더 드리고 마무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나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이 인 듯하고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죽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지는 것
부운자체본무실(浮雲自體本無實)-뜬 구름 자체는 본래 자체가 실이 없나니
생사거래역여연(生死去來亦如然)-죽고사는 것도 역시 이와 같도다.
이 시는 서산대사의 해탈 시의 일부입니다. 서산대사는 삶과 죽음을 한조각 구룸이 일어나고 사라짐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무엇에 연연하고 무엇에 집착할 것입니까? 이제 모두 다 내려놓고 물처럼 바람처럼 살아갑시다, 때로는 흘러가는 힌 구름도 바라보고 새소리, 바람소리도 들어가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