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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인터넷도 안되고 해서
여행 사진 한장 올리려 해도 어렵고 힘들고
zero님 모처럼 제 글을 모을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셨는데
방학이 너무 길다 싶어서 예전에 썻던 글 하나 올립니다.
경비행기 자격증을 얻고 안산에서 대구까지 장거리 비행을 한 기록 입니다.
'동해의 바다를 본적이 있는가?'
푸르디 푸른 바다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바다도 하늘위의 구름 바다와는 비교 조차 할 수 없다.
하이얀 구름이 끝도 없이 지평선을 이루고 있고
찬란한 햇살을 받아 어린 아이의 예쁜 머리띠 모양으로
가상 지평선 끝의 둘레가 태양의 빛을 받아 반사되는 모습은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는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하늘의 천사가 바라 본 세상이라면 적절한 표현이 될까?
민항기를 탈때면 창쪽에서 좌석이 배정되기를 바라고, 하늘에 올라 구름위의 비행 할때면 자그마한 창문 사이로 비쳐지는
세계에도 경이로움이 가실 줄 모르던 기억들도
오늘 바라본 구름 위 세상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를 잃게 한다.
나는 지난 2001년 10월 5일부터 나래항공에서 비행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받은지 20여일만에 솔로비행에 성공하고 한차례 유지비행도 하였다.
하늘에 대한 꿈과 장거리 비행에 대한 꿈을 실현하고자
얼마 전부터 조금은 무모한 계획을 세웠다.
나자신의 힘만으로는 불가능 했지만 나를 지도해준 유능한 교관님이 있기에 나는 믿었다.
어떠한 상황이 와도 반드시 이겨내리라고....
나의 작은 이 경험이 우리 회원들의 마음에 용기를 주고
새롭게 도전하는 계기를 줄수 있다면 더 없이 만족하겠다.
40대에 도전한 하늘이 이렇게 열리듯
모든 사람들도 도전하는 열정만 있으면 하늘은 열린다고....
2001년 11월21일
유치원에서 시작된 미술 전시회 행사를 점검하고 내가 없는 동안 체크해야할 사항들을 직원들과 협의하였다.
오늘 서울로 향하는 막차는 서대구 터미널에서 오후8시.
다음날 새벽기차를 탄다 하더라도 안산에 도착하면 10시가 넘으니 약속시간을 맞추기는 도저히 불가능 하였다.
결국 오늘 미리 서울로 가서 동생집에서 하루를 묵고 2시간 전철을 타면 오전 9시 약속된 시간에 비행장이 있는 안산에 도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일들을 정리하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고 이내 잠을 청한다.
그러나 당장 내일로 닥쳐오는 비행계획이 눈에 아른거려 좀처럼 잠을 이룰순 없었다.
2001년 11월 22일
새벽 6시. 잠을 깨고 간단한 짐을 정리한 후 날개에 부착할 내가 운영하는 유치원 이름이 새겨진 시트지(길이3미터, 폭1미터 2장)를 손에 들고 집을 나섰다.
그러나 현관문을 여는 순간 집안으로까지 밀고 들어올 듯한 안개를 보았다.
뽀얀 안개가 천지를 덮고 내가 서있는 아파트의 건너편 동 조차 보이질 않았다.
순간 오늘의 비행에 대한 불안감이 교차한다.
일단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전철에 올랐다. 도시를 관통하는 전철은 지하에서만 달리기에
지상의 안개에 대한 정보는 한 동안 알 수 없었다.
전철이 지상으로 올라가는 구간에 갈 즈음이면 안개가 걷히겠지...
그러나 수원 인근에 오면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광경은 너무나 참담하게 했다.
도저히 비행이 불가능 할 듯한 시계. 간혹 라디오 방송으로 들리는 영종도 인천 공항의 민항기 회황과 결항소식,
불안한 마음으로 안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9시경 도착한 비행장, 미리 도착한 김교관님은 "오늘 비행이 힘들 것 같아요.
다음주로 연기하면 안되요?" 다른 교관들의 의견도 마찬가지다.
대구를 떠나면서 유치원 아이들에게 약속을 했다.
"여러분들에게 원장님이 조종하는 비행기를 보여줄 거예요.
여러분들의 머리 위에서 멋있게 나르는 비행기를 보면 힘차게 손을 흔들어야 해요"라고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약속했다.
그리고 지역신문사의 기자와 이번 행사에 대한 취재 요청도 한 상태였고 학부모들에게도 지역 주민들에게도 모두 알린 상태였다.
이러한 나의 욕심에 가려 난 교관님의 날씨로 인한 행사연기에 도저히 찬성 할 수 없었다.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고 싶었고 오늘 안되면 행사를 취소하려는 마음까지 먹었다.
이러한 나의 마음을 이해하고 비행기를 점검하며 각 지역의 비행장에 안개상황을 열심히 체크하는 교관님이 고마웠다.
대구까지 초경량 비행기로 날아가는 것은 중간 기착지에서 급유가 필요한 탓에 대전 또는 공주, 온양의 기상상태가 중요했다.
GPS 장비에 해당지역의 정보를 입력하고 기상관제소에 전화를 하여 수시로 기상상태와 안개로 인한 시계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중간 기착지인 온양과 공주에 전화를 하고 그 곳의 상태를 확인하였다.
특히 온양에서 항공업을 운영하시는 분은 지금 안개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아 자신의 교육비행도 모두 취소했다며 오지 말라고 당부까지 한 모양이다.
12시가 넘으면 걷힐 것이라는 안개는 아주 미세하게 호전될 뿐이었다.
조바심을 내는 나를 위해 교관님은 "한번 올라가 보고 결정하죠"라고 비행기를 점검했다.
안개낀 활주로. 지상에선 활주로 건너편 은혜와 진리의 교회가 희미하게 보일 정도의 시계가 확보되었다.
이 정도 보이면 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나의 생각은 어리석었다는 것을 곧 확인할 수 있었다.
하늘 위에서의 안개는 더욱 앞을 분간할 수 없게 하였고 지상에서 바라보는 시야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교육비행을 할 때 안개 비행은 비교도 되지 않고 하얀 수건을 눈앞에 빙 둘러 싼 것 같은 모습.
아주 희미하게 발 아래 도시의 잔영들이 보일 뿐 온통 하얀색의 모습 뿐이었다.
심지어 그렇게 잘 보이던 열병합발전소의 높다란 굴뚝의 기둥은 보이질 않고 꼭대기의 비상등 만이 어슴프레하게 깜박일 뿐,오히려 위험을 느낄 정도였다.
"어때요!" 라는 교관님의 말은 포기를 종용하는 듯한 느낌.
이 정도 상황에서 어떻게 비행을 한단 말인가 라는 생각이 전해지는 듯했다.
그냥 서해안 고속도로로 나가는 길을 따라 가면 안될까요?라는 나의 말은 욕심에 지나질 않고 우리는 서둘러 회항하고 말았다.
지상에서의 몇시간째 더 대기. 안개는 더 나아지는 것 같지 않고 교관들은 그만 포기 하고 다음 기회를 보자고 설득하고 나는 하릴없이 안개낀 활주로만 바라보며 한숨지었다.
시간은 어느듯 오후 4시를 가리키고 대구를 향한다는 가능성은 이미 물 건너 가버린 듯
포기의 수순을 밟고 있었다.
"교관님 그냥 기다리느니 비상착륙 훈련이나 합시다."라고 하고 밖으로 나갔다.
나의 마음은 이젠 틀렸구나 하는 마음이 가득차 버린 것이다.
비행기를 점검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하늘에 올랐다.
멀리 보이는 열병합 발전소가 첫 비행때 보다는 시야에 잘 들어왔다.
시화호 갯벌의 활주로 쪽을 향해 갈려는 나의 조종간을 왼쪽으로 틀며 교관님은 갑자기 도로를 따라 서해안 고속도로 쪽으로 가자하신다.
시계가 조금 확보가 되니 계획의 실행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대구로 가는 길은 이미 불가능 하지만 온양까지 가서 1박하고 거기서 기상 상황을 본 후 대구로 가면 합리적이라는 것이었다.
하늘 위에서 나의 맘은 뛸 듯이 기뻣다.
그러나 온양으로 향하는 길은 장난이 아니었다. 아직도 시계가 깨끗하질 않고 도로를 따라 가는 길
주위의 산은 높다란 고압 철탑들이 즐비하게 들어서있다.
왠 산들에 고압선이 이렇게 많아 우리의 산들이 이렇게 병들어 신음하는 구나 싶었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한참을 날아가면서 어느듯 직선의 도로가 오른쪽으로 급하게 돌아 누운 곳에 다 달았다.
GPS를 통해 바라본 방향은 도로 쪽이 아닌 산을 넘어야 했다.
온양을 향한 길이 이젠 도로와 눈에 의지하지 않고 항법 장비를 이용해 앞으로만 나아가야 했다.
산을 넘어서자 또 다른 산이 나타나고 길은 좁은 국도밖엔 보이질 않았다.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 도로들, 하늘에는 이정표도 없고 나는 앞이라고 생각하는 방향만을 바라보며 나아가고 실제의 방향은 알 수 없는 막연한 두려움이 일었다. 항법장비가 있기는 했지만 무조건 그것에만 의존하기엔 확신이 가질 않는 상황이었다.
다시 산들이 이어지고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수 없는 상황만 계속되었다.
산들의 행진이 이어지기가 거듭되다가 갑자기 눈앞에 커다란 호수가 보여진다. 그것은 바다였다.
삽교방조제 길다랗게 늘어진 방조제의 수평선이 보이고 바다는 끝없이 넓은 벌판을 연상케 한다.
20년도 넘은 세월을 거슬러 1979년 고3때로 기억된다.
우리나라 경제를 불타 오르게 했던 박정희 전대통령의 마지막 역작, 그는 이곳에서 준공테이프를 끊은 후 궁정동의 총성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새삼 그때의 이야기들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앞으로 나아가자 이제는 갯벌의 행진이 시작된다.
안산의 시화호에서 바라보는 갯벌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끝없이 펼쳐지는 벌판,
바다물이 지나간 흔적들만 보이고 시커멓게 늘어진 갯벌은 생명이 숨쉬는 듯 흐린 안개 속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갯벌의 행진은 계속되었다. 어느듯 안개속에서 다시 방조제가 보여진다. 아산방조제였다.
넓디 넓은 바다와 갯벌의 행진은 계속되고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앞만 보며 날아간다.
갑자기 교관님이 오른쪽을 가리키며 "서해대교 보이죠"라고 한다. 안개 속에서도 아스라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현수교, 서해대교였다.
다리의 상판들은 보이질 않았지만 상판을 받치고 있는 두 개의 커다란 교각은 H 자 모습으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어느듯 바다는 끝이 나고 다시 산이 나타난다. 하늘을 날면서 산이 나타날땐 길도 알수 없고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게 만든다. 교관님은 "여기에서 강이 보여야 하는데..."
라고 혼잣말을 하신다. 아! 그도 이곳엔 한번 밖에 와보지 않았고 지금은 안개 비행상황 불안감은 더욱 깊어만 간다.
마음을 졸이며 비행해 나가면서 다시 한 개의 산을 넘었다
"아! 여기다"
교관님이 소리쳤다. 그도 막연한 방향을 향해 날아가면서도 나처럼 마음을 졸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처럼 많은 비행 경험을 가진 교관님도 이런 상황에선 긴장을 늦추지 않는구나 싶었다.
나의 비행에 대한 욕심이 이처럼 어려움을 자초하게 하니 내심 더욱 미안한 감이 들었다.
강줄기를 따라 상류로 비행해 갔다. 강을 따라 가는 길은 더욱 아늑하게 느껴져 왔다.
굽이굽이 펼쳐지는 아름다움들이 눈앞을 가득 메우고 오늘 비행의 마지막을 알리고 있었다.
강 자락을 계속 타고 올라가던 중 다리가 나오고 강변 옆에 펼쳐진 넓은 둔치를 이용해서 만든 활주로가 보여졌다. 드리프터 1대와 이름을 알 수 없는 날엽한 초경기 1대가 눈에 보였다.
A항공 이라는 간판이 보이고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부드럽게 착륙하였다.
이내 달려온 A항공 사장님 "미친짓"이라고 실컷 나무라신다.
같이 온양의 맛난 쇠고기를 먹으며 하루의 피로를 달랬다.
2001년 11월 23일
오전 9시 비행장에 도착하니 A항공 사장님은 벌써 와있다. 안개상황은 더욱 좋지 않고
공주쪽으로 가려면 온양시를 둘러싼 설화산을 넘어야 하는데 시계는 산의 형체도 알 수 없고 도시의 아파트만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다행히 머리위로 파란 하늘이 언듯 언듯 보여지나
눈앞에는 안개의 행진만이 계속 될뿐이었다.
"이럴땐 그냥 최고 높이까지 올라가서 비행하는거야. 만약 상황이 안좋으면 그냥 내려와 회항해." 그 말뜻은 높이 올라간다고 하늘이 다 보인다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끝없이 올라가도 안개를 뚫지 못할 경우도 있다는 말이었다.
머리위의 파란 하늘만 믿고 우리는 비행기를 다시 점검했다.
그리고 만일의 사태를 위해 조종석 가운데에 보조 연료를 싣고 끈으로 묶었다.
연료 부족으로 위급한 상황을 맞는다면 몸을 밖으로 내어서라도 연료를 주입할 생각이었다.
좁디 좁은 조종석에 20리터 짜리 연료통 하나가 가운데 들어오니 각각 한쪽 팔이 부자연스러워 졌다.
조종석에도 연료통이 들어오니 경비행기로 태평양을 횡단한 청년 이주하가 생각났다. 그의 심정도 나와 같을 것이다.
만일의 사태를 위해 준비하는 마음, 조종석에서의 불편은 문제가 되질 않았다.
이윽고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A항공 사장님을 뒤로 하고 우리는 하늘로 올랐다.
점점 작아지는 지면의 구조물들 강줄기도 작아 보이고 도로도 점점 가느다랗게 보여지다가 이윽고 아무것도 보이질 않게 되었다.
비행기는 상승하고 있고 기체는 약간의 각도를 유지하면서 파워는 6000, 속도는 40마일, 고도는 2000피트를 넘고 있다.
교육 비행때는 1000피트를 넘은적이 없는데 높이에 대한 감이 오질 않는다.
실속에 가까운 속도로 상승하면서 전후좌우로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 상황,
보이는 것이라곤 앞에 있는 엔진 뿐이다.
끊임없이 기름이 공급되는 연료관, 콸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는 시냇물 마냥 쉬지않고 쉬지않고 엔진을 통해 연기로 사라져갔다.
흘러들어가는 기름의 양이 얼마나 많게 느껴지는지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 상황에서 연료만 이렇게 축낸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나의 상상은 더욱 불안한 마음쪽으로만 달려간다.
우리 둘다 긴장된 시간을 보내는 동안 한참을 날아올라 고도는 어느듯 3000피트를 넘어섰다.
아직도 눈앞의 시야는 보이질 않고 긴장은 연속이다.
누군가 이럴 때 안개 속에서 전투기와 만났다는데 우리의 상황이 그렇게 되면 어쩌냐.... (그냥 땅으로 가는 거지 뭐!)
이윽고 고도가 4000피트를 가리킬 즈음 안개가 갑자기 엷어 지기 시작하더니
물속에서 고기가 튀어 오르듯 구름위로 솟구쳐 올랐다.
하늘이다.
파란 하늘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구름 바다위로 우리는 두둥실 떠오른 것이었다.
" 동해의 바다를 본 적이 있가?
푸르디 푸른 바다.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바다도 하늘 위의 구름바다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하이얀 구름이 끝도 없이 지평선을 이루고 있고 찬란한 햇살을 받아 어린아이의 예쁜 머리띠 모양으로
가상 지평선 끝의 둘레가 태양의 빛을 받아 반사되는 모습은 어느 곳에서도 본적이 없는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하늘의 천사가 바라본 세상'이라면 적당한 표현이 될까?
민항기를 탈 때면 창쪽에서 좌석이 배정되기를 바라고 하늘에 올라 구름 위를 비행할 때면 자그마한 창문 사이로 비쳐지는 세계에도 경이로움이 가실 줄 모르던 기억들도
오늘 바라본 구름 위 세상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를 잃게 했다."
구름 위의 세상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자그마한 창문으로만 바라보던 민항기에서의 구름바다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탁 트인 시야
온통 하얕고 끝없이 끝없이 펼쳐진 구름바다는 내가 지금 어디로 향하던 더 이상의 원이 없도록 만드는 세상이 다가왔다.
넓디 넓은 하늘에서 김 교관님과 나 단둘이서 바라보는 세상,
하늘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든 비행기가 결항되는 상황에서 올라온 하늘이라 우리들만이 소유하고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GPS 장비에 의존하여 대전방향을 지시하며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갔다.
하얀 구름바다를 한없이 날아갔다 싶을 무렵 저 멀리에 섬 하나가 눈에 띈다.
구름의 끝 뾰족히 솟아 있는 외로운 작은 섬하나 온 세상이 하얀 가운데 단 하나 까만 육지가 눈에 띈 것이다.
교관님은 추풍령이라 한다.
추풍령 ! 목적지까지 가는 여정 가운데 3분의 2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이제 겨우 온양에서 떠올랐는지 얼마인가 벌써 추풍령이 보이다니, 자동차를 이용하여 육지로 달린다면
육안으로 추풍령을 본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지 않는가,
나는 믿어지지 않았다. 속으로 "아닐거야 대전 근처의 계룡산쯤이면 몰라 추풍령이라니" 라고 되뇌이며 비행기는 계속 앞으로만 날아갔다.
어느듯 구름이 잠시 엷게 보이는 곳이 있어 아래를 쳐다 보았다.
끝없는 깊고 넓은 바다를 항해하다가 바다의 바닥이 보이는 장소에 왔다는 느낌,
그때 나는 눈에 익은 탑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상에 흐린 안개 사이로 보이는 빛나는 구조물 그것은 한빛탑이었다.
몇 년전 아이들과 함께 가보았던 대전 엑스포공원의 한빛탑, 그리고 탑 주위로 보이는 공원들과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우리는 어느새 대전 상공을 날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 오전 비행이 가능한지를 전화로 물어왔던 준수님이 생각났다. 이번 비행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대전의 기상 사항까지도 체크해 주던 그가 있는 땅 대전 !
우리는 도시의 중앙을 관통하며 지나가고 있었다.
언젠가 준수님과 해안선을 따라 국토를 완주하려던 생각들이 가슴속에서 꿈틀거림이 느껴졌다.
구름바다에서 대전상공은 거대한 호수를 이룬 것처럼 약간 흐릿하게 원을 그리고 있어서 시가지의 모습이 눈에 잘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멀리 보이던 추풍령이란 섬은 시야에서 조금 앞당겨져 있을 뿐 아직도 멀리 있고 내가 생각한 계룡산은 대전 옆에 있으니 나의 생각이 틀린 것을 금방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진정 저기 멀리 보이는 산이 추풍령이란 말인가....
다시 우리는 구름바다를 헤치며 날아간다. 대전이라는 호수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다시 두터운 구름이 천지를 덮고 있다.
서서히 다가오는 섬의 모양 그것은 거대한 산맥을 형성하고 백두대간의 허리를 떠받치고 있는 모습,
소백산에서 덕유산까지 이어지는 산맥의 한가운데를 담당하고있는 추풍령 고개였다.
너무나도 당당하고 장엄한 모습에 넋을 잃고 쳐다본 산들, 지리산의 정상에서 바라본 산들의
모습과도 비교되지 않는 장엄함 그 자체였다.
수없이 둘러싸인 산과 계곡 골짜기로 스물 스물 얹혀져 있는 구름의 모양들 어떤 동양화로도 표현할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점점 섬들은 장엄한 산들의 행진으로 다가오고, 가슴은 숨이 멎을 듯 벅차오르는 감동을 어찌할 수 없을 만큼 뛰었다.
추풍령은 거대하게 앞을 가로막고 있어 돌아갈 수 없었다. 정면으로 넘어가야만 했다.
산을 가로지르는 경부고속도로 조차 터널을 뚫지도 옆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해발 1000미터나 되는 산을 넘어서 건설된 것처럼 추풍령은 자신을 돌아 비켜 지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산으로 산으로 둘러 쌓인곳 우리도 산을 정면으로 넘어갔다.
고도를 다시 높이며 산의 정상부분을 지나갔다. 그때 보여지는 광경 바로 추풍령 휴게소와 고속도로 건설 기념탑이 보였다.
안산으로 향할 때 쉬어가던 휴게소 나는 지금 그곳의 하늘을 지배하며 지나가고 있다.
산을 넘어 설 즈음 신기한 모습이 보여진다. 안산에서부터 온양 그리고 추풍령을 넘어서는 지금까지 발아래 가득 차있던 구름과 안개의 바다가 끝이 난 것이다.
결국 구름바다는 4000피트의 두께로 안산부터 추풍령까지 온 하늘을 덮고 있었으나 추풍령을 중심으로한 백두대간을 넘지 못하고 이곳 산허리에 걸쳐져 있었던 것이다.
추풍령을 넘어서 시야는 점점 맑아왔다. 푸른 하늘의 행진은 계속되고 아래로 보이는 시야는 아주 깨꿋하게 보여진다. GPS 장비를 통해서 본 목적지 대구까지의 시간은 30분 정도
시계를 보니 12시를 막 넘기고 있다.
아이들과의 약속은 오후 1시 서둘러 날아가면 약속을 지킬 수 있다. 연료상태를 체크한 결과 대구 월배 비상 활주로까지는 충분히 갈 수 있었으나 칠곡으로 바로 날아가서 행사비행을 하기엔 무리였다.
결국 인근에 비상착륙을 하고 중간 급유를 해야만 했다.
조종석에 싣고간 보조연료, 출발할 때 X-AIR의 두 조종석 사이, 좁은 공간에 묶어 두었었다.
날아오는 동안 한쪽 팔의 조종이 불편하게 했던 그것을 이제 비워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착륙할만한 곳을 찾으며 아래로 보니 눈에 익은 건물들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아는 도로,
그곳은 나의 고향 땅 김천이었다. 멀리 김천역이 보이고
고속도로변 옆으로 김천대학과 공설운동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너무나도 반가운 곳, 그곳의 지형지물은 어릴 때부터 봐온 곳이라 충분히 눈에 익은 곳이었다.
비행기가 내릴 만한 곳을 찾으니 고속도로변 옆으로 고속철도 공사장이 보였다.
말썽 많던 고속철도 지금 우리는 한창 철로가 놓일 콘크리드 구조물 위로 날고 있었다.
구조물과 구조물 사이의 아직 공사가 진행되지 않은 비포장 도로가 보인다. 이 구간도 얼마 있지 않아 콘크리트로 덮어질 땅,
곧게 이어진 도로는 충분히 활주를 하고 남을 만큼 길고 평탄해 보였다.
우리는 착륙을 위한 장주비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우리의 고도가 4000피트에 있으니 급강하를 해도 착륙을 위한 고도에는 무리가 따랐다.
결국 두바퀴 선회비행을 하며 고도를 침하시키고 착륙에 들어갔다.
시야에 점점 가까이 들어서는 비포장 도로는 가지런한 노면을 유지하고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기나긴 미완성의 철로를 지나 정대하기도 쉬웠고 사람도 없는 노면의 상태도 양호하였다.
이윽고 비행기는 차분하게 지면에 닿았고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비행기는 연료를 충분히 먹고 우리는 긴 시간의 긴장감을 달래며 몸속의 연료를 버렸다.
착륙후 공사장 인부들이 트럭을 타고 지나가며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저마다 생전 처음보는 신기한 물건과 이상한 사람들을 보았다. 마치 동물원 우리 안에 있는 무엇처럼....
비포장 도로에서 이륙을 위한 정대를 하고 파워를 올렸다. 이젠 바로 대구의 강북지역 칠곡을 향하여 날아가게 된 것이다.
맑게 개인 하늘아래 김천상공을 지나고 순식간에 커다란 산이 눈앞을 가로 막았다.
구미를 끼고 있는 금오산이었다.
거대한 벌판사이에 홀로 우뚝 솟은 해발 1000여미터의 산, 젊은 시절 즐겨 찾던 산의 정상이 눈에 들어오고 우리는 산의 우측 옆으로 비껴 날아갔다.
아래로 보이는 고속도로는 왼쪽으로 비껴 건설되어 있었는데 상당히 먼거리를 돌아가게 되어있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처럼 직선으로 갈 수 있다면 물류비용을 엄청 줄일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미를 지나자 금방 다가오는 거대한 건축 구조물과 넓은 도로 그리고 많은 차량들이 모여있는 상공을 날게 되었다.
구미와 대구를 잇는 이곳은 시골인데 왠 거대도시 하며 아래를 살펴보니
지붕에 적십자 마크가 선명하고 거대하게 보여진다. 부대였다.
그것은 왜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부대였던 것이다.
시계비행을 하므로 그곳이 어디인지 확실치 않은 상태였으니 우리는 부대상공인지 모르고 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부대의 끝 지점을 날고있는 상태라 방향을 전환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왜관이라는 시골의 작은 도시에서 부대를 빼면 너무나도 초라한 도시였다. 도시의 중심부를 장악하고 넓게 사용하고 있는 부대지역과 변두리에 오밀조밀 복잡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 사람들의 모습이 우울하게 느껴졌다.
가끔 이곳 도로를 지나갈 때 부대의 담장이 어설프게 되어있어 큰 관심이 없었다.
내나라 내 땅이 이렇게 유린되고 있다는 사실을 목도하니 약한 나라의 설움으로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다시 눈앞에 눈에 익은 강이 보여지고 도로도 보여졌다.
금호IC 였다.
목표로 한 칠곡지역은 고속도로변 산의 왼쪽에 자리잡은 아파트지역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너무도 빠르고 가깝게 목적지가 다가왔다.
금방 보여지는 칠곡IC를 뒤로하고 나는 큰 아이가 다니는 학교상공을 날게 되었다.
지금쯤 열심히 수업에 임하고 있을 녀석, "아빠는 지금 네 머리위
를 날아가고 있단다."
그 모습을 보여 주고 싶은 욕심이 컷지만 유치원 아이들이 기다리는 상공으로 향해야만 했다.
오후 2시면 집으로 하원시켜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급했다.
아파트 숲을 지나 칠곡을 관통하는 팔거천을 따라 올라갔다.
유치원 앞을 지나는 거동교, 다리의 난간에는 우리의 아이들이 그린 그림들이 전시 ( 우리 유치원의 거리 미술전시회 행사 )되고 있었고 사람들이 비행기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다시 비행기는 아이들과 약속되어 있는 농촌진흥원 옆의 넓은 벌판으로 향했다.
바둑판처럼 구역이 잘 정돈된 진흥원의 농지들 사이로 2차선 도로 넓이의 시멘트 포장 농로가 보였다.
대구를 떠나기 전 착륙할 만한 장소로 미리 정한 곳 아이들은 한 블록 떨어진 정자 옆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오란 유치원 차량에서 내려 기다리던 녀석들 위로 우리가 나타나자 금방 알아챘다.
손을 높이 흔들며 춤을 추는 녀석과 조금이라도 하늘에 가까이 닿을 듯 몸을 솟구치는 아이도 보이고
크게 원장님이라며 소리치는 모습이 귀에 들리는 듯 했다.
순간 눈에 눈물이 살짝 고이며 콧등이 시큰해져 왔다.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던 아이들, 어제가 약속한 날이라 하루를 어기게 되었지만 오늘 지키게 된 것이 너무도 고마웠다.
아이들은 어제 집에서 밤을 새우며 "원장님 비행기가 왜 안 오실까" 라며 부모님들을 제법 애태웠다는 이야기를 뒤에 들었다.
그처럼 아이들과 약속은 중요하고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깊어짐을 느낀다.
아이들에게 비행기를 보여주고 만져볼 수 있는 체험의 기회를 주기 위해 농로 위로 장주비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생각보다 짧은 거리의 도로와 시작되는 점에 건설중인 15층 정도 높이의 아파트 옆으로 돌아 정대에 들어가야 했다.
( 안산의 원곡동 주택가 쪽으로 활주로 정대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고 연상하면 됨 )
쉽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답사할 땐 자동차로 했으니 사람 키 높이의 작은 나무를 주의 깊게 보질 않아
나뭇가지가 날개에 닿을 우려도 있었다.
두어 차례의 장주 비행으로 현장을 확인하고 이윽고 착륙에 들어갔다.
아이들은 한 블럭 넘어 거리에 있으니 안전했고 농로로 진입하는 차량이 지나갔슴을 확인하고 착륙했다.
이곳은 보통 교관들이라면 해낼 수 없는 불가능한 곳이었다.
그러나 김 교관님은 해냈다. 그도 역시 나처럼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착륙한 비행기를 도로 옆 공터로 이동시켜 안전을 확인한 후 아이들을 불렀다.
순간 먼거리를 한달음에 달려오는 아이들 "원장님"을 외치며 그들은 나에게 안겨왔다.
수많은 아이들이 나의 품에 안겨오고 교사들도 신기한 듯 비행기를 보며 이리저리 만져 보았다.
생전 처음 보는 비행기에 모두들 넋을 잃고 있었고 아이들은 너무도 신나 했다.
그들은 이제 비행에 대한 꿈을 간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 유치원 원장님이 조종한 비행기보다 더 크고 거대한 우주선을 조종하며 하늘과 우주를 정복해 나갈 것이다.
아이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우리는 다시 이륙준비를 하였다. 아이들을 다시 안전한 장소로 대피시키고
도로의 첫 지점으로 택싱해 나갔다. 다행히 차는 없었고 키 높은 나무가 걱정이 되었지만
우리는 무난하게 이륙해 내었다. 그리고 다시 아이들이 모여있는 정자위로 수차례 선회비행을 했다.
아이들은 멀어질 듯 다가오는 비행기를 신기한 듯 손을 흔들며 높이 뛰어 오르고 그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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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지막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코 끝이 찡해 왔습니다.
사실 경비행기로 악기상을 뚫고 비행한다는건 목숨을 담보하는 건데.....
아마도 젊었을 때이고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켜는 마음 때문에 강행을 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평생 남을 좋은 추억을 남겼으니 다행 입니다.
교관님이 누군지 몰라도 참 훌륭하신 분 입니다.
그 분 께도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