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게임과 영혼의 가르침
나이 육십이 넘으면서부터 무슨 일인지 삶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얼마나 바쁘고 시간이 빨리 가는지 모른다. 아이들이 다 자라고 나면 여유 있게 시간을 쓰게 될 줄로 짐작하고, 하고 싶었던 일들을 뒤로 미룬 채 바쁘게만 살았는데, 정작 쉰이 넘고 예순이 넘어도 시간은 여유가 없고 매일이 바쁘기만 하다.그래서 시간이 나이의 숫자만큼의 속력으로 간다고 하나 보다.
며칠 전 캐나다 데이에도 농장(farm)에 들러 풀을 깎았다. 편도 한 시간 반 거리인지라 큰 차는 세워두고 작은 엘란트라를 타고 갔었다. 그곳에서 늦은 오후에 친구까지 방문하고 돌아오던 길, 도로의 팟홀(Pothole)에 쿵 하고 바퀴가 빠지는 듯싶더니 이내 묵직한 나무토막이 걸린 것처럼 차가 밑바닥을 긁으며 나아갔다. 놀란 마음에 서둘러 고속도로 갓길에 세우고 차 밑을 살펴보았다. 컨트롤 암이 부러져 프레임에서 떨어져 나와 땅에 닿아 있었다. 서두르고 바쁘게만 살다 보니 더 큰 일이 생긴 것이다.
두려움에 마음을 졸이며 견인차를 부르려고 전화를 걸었지만, 마침 밤 10시가 넘은 어두운 시각인 데다 다음 날이 캐나다 데이 공휴일이라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길가로 나와 차를 살펴보다가, 갑자기 반짝이는 수많은 불빛을 발견했다. 마치 춤을 추듯 위아래로 날아다니는 불빛들이었다. 우리는 잠시 걱정을 내려놓고, 놀라움과 신비함에 겨워 이 마술 같은 시간 속에 멍하니 서 있었다.숨을 죽이고 바라보게 되는 그 가녀린 반짝임, 바로 반딧불이였다.
내 마음은 어느새 수십 년 전 여름날의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단숨에 달려갔다.어릴 적 여름밤, 해가 지고 사방이 어둑해질 때쯤 밖으로 나서면 학교 운동장 위로 수도 없이 많은 불빛이 반짝였다. 마치 밤하늘의 별들이 땅으로 내려와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그 뒤를 쫓아 운동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손바닥을 살포시 오므려 그 작은 빛을 가두었을 때 느꼈던 미세한 설렘은 아직도 손끝에 선명히 남아 있다."강가에 다슬기가 많아야 저 예쁜 줄반딧불이 요정들을 오래오래 볼 수 있는 거란다." 어른들은 말씀하시곤 했다. 반딧불이의 애벌레가 깨끗한 물속에서 다슬기를 먹고 자란다는 걸 그때 알았다, 자연이 훼손 되고 다슬기가 점점 사라져 간다며 안타까워하시던 어른들의 말씀은 어린 마음에도 깊은 잔상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조금만 시골길을 걸어 나가도 반딧불이를 만날 수 있었다.
그 후 어른이 되고 도시로 떠난 뒤로는 다시는 반딧불이를 볼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이곳 캐나다 노바스코샤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더구나 차가 두 동강 날 뻔한 아찔한 사고를 당한 이 순간, 천만다행으로 우리는 무사했고 또 반딧불이라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우리가 만일 삶을 이해할 수 있다면 두려움이 올때 얼마나 위로가 될까. . 누군가 말 했다. 삶에는 두 가지 조건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 게임'이고 다른 하나는 '영혼의 일'이라고 했다. 돈을 벌고, 성공을 하고, 명예를 쟁취하며 드라마 속 사건처럼 바쁘게 살아가는 일들은 모두 세상 게임이다. 게임의 규칙은 항상 바뀌지만, 영혼의 일은 변하지 않고 언제나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사랑, 침묵, 자연 같은 것들이 바로 영혼의 일이다. 영혼은 언제나 우리의 희망이지만, 나머지는 모두 게임일 뿐이다.세상 게임에는 최선을 다하고 성공해야 하겠지만, 우리 삶의 게임이 치열 해지고 계속 바뀌는 와중에도 영혼은 언제나 고향처럼 한결같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세상은 참 많이 변했고 흘러간 시간만큼 나도 나이를 먹었지만, 밤하늘을 수놓는 저 별과 반디는 운동장을 뛰놀던 어린 소녀의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미루다 잊히고 점점 사라져가는 것들이 많아지는 세상 속에서, 불현듯 깜짝 선물로 찾아와 모든 사건과 상황을 잠시 뒤로 하고 기억의 등불을 켜 준 반딧불이가 고맙다. 반딧불이는 영혼의 고향 처럼 나에게 너무 바쁘게만 살지 말고, 천천히 누리고 돌아 보고, 느끼며 살아가라고 가만히 속삭여 준다. 다음날 아침에야 우리는 차를 옮겼고 큰 사고로 이어질 뻔 했지만 다행히 살아 있음과 영혼의 고향에 다녀온 여유로 깜짝 사고 이후에도 여전히 행복하다.
첫댓글 바쁘게만 직행하는 일상속에서 불의 사고가 오히려 영혼의고향,아름다운 속삭임을 안겨주는 전화위복이되었네요. 전작가님의 잔잔한 글이 밤하늘 별들이 반딧불로 내려와 춤을 추듯 합니다. 게임과 영혼의 큰 두 길로 바라보신 삶의 수필이 인상적인 감동을 줍니다.
양한석 선생님 댓글 감사 합니다. 수필은 시에 비해 생활 속에서 생각 속에서 나 자신의 이야기를 쓰게 되는 것이라 좀 두렵기는 하지만.산문 분과방에서 선배님들의 글을 읽으며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전선생님글 잘 읽었습니다.노바스코샤는 작년 여름에 여행을 했는데 올때 에어캐나다 파업으로 조금 고생은 했지만 즐겁고 추억이 남는 여행이었습니다. 기회되면 다시 여행해보고 싶은곳입니다.서두에 언급하신 하고싶은일을 미루고 바쁘게만 살다 보니 매일 바쁘다는 말에 마음에 와 닿습니다. 2008년도로 기억되는데요 어느 모임(벤쿠버 기독교실업인 모임)에갔는데 당시 저보다 9살 젊은 캐나다 IT업계에 종사하는 친한 회원이 자긴 49세까지만 일하고 이후엔 하고 싶은일 하며 살거라고 하더군요. 제가 당시 거의 그정도 나이였는데 엄청바쁘게 일할때였습니다.그말듣고 기가 막혔습니다. 얼마전 50대 중후반이되었을 그에게 연락해봤더니 다른 공공기관에서 열심히 하루에 회의3~4개참석하며 더바쁜날을 보내고 있더군요. 그리고 저도 아직은 그렇게 지내고 있구요. 하지만 꿈은 늘 갖고 있습니다. 전선생님도 곧 하고 싶은일 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실수 있을겁니다.
이형만 선생님 노바스코샤에 오셨었군요. 저는 아이들 따라 11년 전에 이사 왔는데 아이들 다 떠나도 여기에 남았답니다. 이제 시도 다시 쓰고 수필도 쓰면서 조금씩 하고 싶었던 일도 하게 되어서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