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초반에 2명의 유명한 관상가(觀相家)가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백운학(白雲鶴)과 우종학(禹鍾鶴). 백운학은 종로 보령약국 뒤의 한옥 집에서 살고 있었다.
필자의 형님도 이분에게 관상을 보았고, 역시 적중했다. 우리형제의 미래도 큰 부분은 다 적중했다. 그의 장기는 단기판단보다는 장기판단에서 빛을 발한다. 10년후에 그의 말은 적중되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작은 부분에 관심이 많은데, 생각의 크기 만큼 점괘는 나오는 법이다.
점괘가 나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점괘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5·16 의 핵심리더이며 전 국무총리 였던 JP의 회고다.
“혁명 전 일요일인가 석정선이 찾아왔기에, ‘너 혁명 같이하자’ 그랬더니 ‘난 못 하겠다’고 해. 그래서 ‘알았다. 못 해도 좋으니까 일절 말 내지 마라’ 그랬지. 석정선이 운송사업을 했는데 사고가 자꾸 나서, 나한테 유명한 관상쟁이한테 가보자고 하더군.”
석정선은 JP의 육사 8기 동기생. 그는 김종필과 함께 정군(整軍)운동을 했다. 두 사람 모두 강제 예편당했다. 두 사람은 백운학을 찾아간다. 백운학은 종로5가 제일여관의 안채를 빌려 쓰고 있었다.
“백운학이 누군지 난 몰랐지. 차례가 와서 석정선은 대청마루에 올라가 백운학 앞에 앉았고, 나는 관계없으니까 저쪽 복도에 앉아 있었지. 근데 백운학이 석정선은 안 보고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됩니다!’ 하고 소리를 쳐. 내가 ‘뭐가 되느냐’ 했더니 ‘허~’ 웃는 거라. ‘천하(天下)를 뒤집으려는데 됩니다.’ 그러는 거야.”
천기누설(天機漏泄)이다. JP는 즉각 반응했다. “‘아니 여보, 사람 죽이지 말라’고 딱 잡아뗐어. 그래도 계속 ‘허허’ 하고 웃데.”
백운학의 신통력은 이어진다.
“그러곤 석정선한테 ‘당신, 그거 바퀴 달린 거 팔어. 이번엔 사람 죽여.’ 이러데. 내가 오싹했어. 석정선이 운수업 하는 걸 알았던 거지. … 혁명하고 내가 백운학을 데려다 저녁을 먹였는데…. ‘88세 넘기겠어요.’ 그러드만. 내가 ‘그러면 천수를 다하는 거지’ 하고 웃었던 기억이 나네. 근데 백운학이는 일찍 죽었어.”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