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회 쇳물백일장 심사총평>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되는 아름다운 변화
유 진 (시인. 수필가)
쇳물백일장의 나이가 33세로 장년기에 들었다. (주)POSCO가 후원하고 (사)한국문협 포항지부의 주관으로 치러지는 쇳물백일장은 지역민들의 문학적 소양을 배양하고, 문재(文才)를 발굴하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코로나19 사태를 맞고 있다. 올해로 창립 52주년을 맞는 (주)POSCO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현장개최가 불가능한 상태여서 부득이하게 온라인으로 대체해야했다.
공공생활의 단절과 공백 중에 20일이라는 공모기간이 주어지고, 현장개최가 아니라 온라인 접수의 편이성 때문인지 예년에 비해 참여도가 훨씬 높았다. 특히 타 지역의 참가자들이 많았고, 전국공모전의 면모를 갖추게 되어 홍보효과까지 얻게 되었다.
글이란 자신의 삶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마음속에 많은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글쓰기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표현방법 때문이다. 특히 운문에는 비유, 수사와 상징들을 이미지(image)화 하지 못하면 詩의 맛과 여운이 없다.
시제를 주고 3시간 이내로 글을 짓게 하는 현장백일장에서는 그런 몇 가지 기본요소들에 대해 아쉬움이 있었던 반면, 이번 온라인백일장은 퇴고시간이 충분해서인지 전반적으로 작품수준이 높았다. 또한 참가자 수가 1018명으로 늘어난 만큼 작품분량이 많아 진행절차상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여느 백일장보다 성공적인 행사를 치렀다는 것에 쾌재를 불렀다.
운문과 산문 공통으로 출제된 시제는 ‘초등부- 등교 · 공원 / 중등부- 장미 · 선생님 / 고등부- 길 · 거리두기 / 대학, 일반부- 약속 · 섬(島)’이었다.
심사의 일관성을 기하기 위해 초, 중, 고, 대학 일반으로 나누고, 시와 수필 부문으로 나누어 따로 심사를 했다. 특정한 심사규정이나 배점기준을 두지는 않았지만 운문이든 산문이든 모든 글에는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조건이 있다.
첫째 : 솔직한 자기 삶이 드러나는가. 둘째 : 읽을 때 그림이 환하게 그려지는가. 셋째 :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 있는가. 넷째 : 자연과 생명에 대한 사랑이 깔려 있는가. 다섯째 : 세상을 보는 눈이 새로운가. 여섯째 : 머리로만 그럴듯하게 지어내지 않았는가.
등이다.
기성문인들을 배제시킨 백일장에서 기본적 조건을 충족시키는 작품을 기대하거나, 눈이 번쩍 띄는 참신성이나 독창성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기본적 요건에 근접한 고만고만한 수준의 작품에서 우열을 가려내는 일 또한 쉽지 않다. 혹여 낙선작으로 분류되어 미래의 문재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잘 살펴야하기 때문이다.
제33회 쇳물백일장에서는 김지영님의 「섬」이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부문별 장원, 차상, 차하, 참방까지 수상작들이 있지만, 지면관계상 대상 및 장원 수상작에 대해서만 언급하기로 한다.
먼저, 전체 참가작품 중 가장 우수작으로 뽑힌 김지영님의 「섬」의 시적대상은 아버지였다. 외로움의 상징인 섬과 부성(父性)의 이미지를 동일선상에 놓았다. 대대로 살아온 바닷가마을에서의 아버지에게 바다는 물이랑 위에 돌탑으로 쌓는 인고의 세월이었다. 섬과 근접한 소재들을 적절한 비유와 수사로 엮으며, 가장(家長)으로써의 모든 아버지들의 책임과 희생을 대변하고 있다. 또한 생의 뱃길을 밝혀주는 등불로 부성(父性)을 승화시키고, 공경으로 글을 마무리하면서 완성도를 높였다.
시의 특성이 함축과 절제미에 있기는 하지만 성숙도를 높이려면 비의(秘義)가 필요하다. 특히 참가자가 많았던 일반부 운문작품들 중에는 서정성을 고집하는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시도로 이중구조와 변용으로 접근한 작품들도 눈에 띄어, 앞으로 지역의 문학적 소양이 한걸음 더 발전하리라는 기대를 가지게 했다.
대상에 이어 일반부 장원은 한동욱님의 「약속」이다. 유년에서 중년까지를 압축하고 미래를 여백으로 남겨두는 구성으로, 자신과의 약속에 대한 고백적 이야기다. 유년의 약속을 왼쪽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언제나 꺼내볼 수 있고 쓸 수 있는 따끈한 그림책이라고 한 설정이 좋았다. 그러나 행간활용이 아쉽다. 한 작품 안에서 일생을 나열하는 구성은 자칫 문맥의 흐름이 부자연스럽거나 구체성이 떨어져 참신성을 획득하기 어렵다.
일반부 산문에는 이재명님의 「약속」을 장원으로 뽑았다. 세계적인 연주가가 되겠다는 아들의 꿈을 위해 기꺼이 소를 팔았던 아버지와 지키지 못한 약속을 자책하는 아들의 진심어린 감동이 읽혀져서 좋았다.
고등부 운문 장원에는 정여민의 「길」이, 고등부 산문의 장원은 이시영의「길」이 선정되었다. 정여민의 시에서 「길」은 응급환자로 병원에 실려 간 엄마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내용으로 표현들이 힘차고 주제가 선명하다. 이시영의수필에서의 「길」은 자신의 꿈과 진로선택에 대한 고백적 글이다. 길의 유무는 방향성의 인지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 과정을 차분하고 당당하게 표현하고 있다. 사유가 폭넓고 자신감 넘치는 글솜씨를 보여준다.
증등부 운문에는 정준원의 「장미」가 장원으로, 중등부 산문에는 박효민의 「장미」가 장원으로 선정 되었다. 정준원의 운문 「장미」는 자신은 왕따라는 고백으로 시작된다. 예쁜 외모에 뾰족한 성격을 반성하면서 스스로 왕따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뭉클한 감동을 준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문장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박효민의 산문에서 「장미」는 우선 소재가 신선하고, 착상도 좋았고, 문장도 간결해서 좋았다. 인동 ‘장’씨에 아름다울 ‘미’ 외할아버지가 지었다는 엄마의 이름에서부터 일상에서의 관계까지 탄탄한 구성력과 자연스럽게 부드러운 화법으로 풀어나가는 문장력이 예사롭지 않다.
마지막으로 초등부 운문 장원에는 손태훈의 「등교」가, 초등부 산문에는 이채영의 「등교」 가 장원을 차지했다. 손태훈의 운문과 이채영의 산문은 공통적인 내용이다. 둘다 코로나19로 빚어진 피해의 단상을 단면적으로 보여준다. 학년이 바뀌고 신학기가 지났지만 친구들을 만나기는커녕 담임 선생님의 얼굴도 모른 채 지내야하는 답답한 심정을 잘 표현했다. 빠른 시일 내에 모든 생활이 예전처럼 정상적인 리듬을 같게 되기를 바란다는 호소력을 지닌 작품이다.
그래서 참여도와 수준이 높은 백일장일수록 우수작을 뽑는 일에 동참한 심사위원들이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작품의 모양새나 생각은 각기 다르지만 쓰고자 하는 뜻은 다르지 않다. 착하고 아름답게 살고자 하는 길이 사람의 길이 곧 문학의 길이기 때문이다.
문학이란 깨달음을 주는 학문이다. 가치 있는 삶과 옳고 바른 정신을 새로운 시각과 표현으로 상상 또는 대리경험을 통해 일깨워준다. 문학이 발달해야 세상이 밝아진다. 문학이 있는 한 우리들의 사회는 아름답게 변화시키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2020년에 33세가 된 쇳물백일장은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해가 거듭할수록 더 높은 수준의 작품이 쏟아지기를 기원하며 총평을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