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태 교육부터 시작하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모태로부터 3세까지는 반평생 교육이고 4세부터 7세까지는 온평생 교육이라고 합니다. 그후에는 잃어버린 기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기가 모태에서 3개월부터 엄마의 성격(마음)이 심어진다고 말합니다. 3개월부터인지 그전부터인지 확실한 시간은 알 수 없으나 어머니의 성격이 태 속의 아기에게 심어진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어머니가 아기를 가졌을 때 아름답고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아기도 선한 아기가 태어나고 어머니가 거짓되고 음란하였으면 아기도 거짓되고 음란한 마음을 받아 가지고 나와 그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 어머니의 좋지 못한 성격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어머니의 그런 자녀들을 세상에서 흔하게 자주 볼 수가 있습니다. 혹 특별한 경우에 부모는 착한데 착한 부모를 전혀 닮지 아니하고 악한 마음씨를 가지고 태어난 자녀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대개는 부모의 성격의 씨가 자녀에게 나타나는 것이 심는 대로 나고 심는 대로 거두는 진리의 대원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기를 몸에 가진 어머니들은 성경에 나오는 거룩한 어머니들, 모세의 어머니, 사무엘의 어머니, 예수님의 어머니같이 하늘에 속한 거룩한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태 속의 아기를 위하여 늘 하나님께 기도하여 태교육부터 철저히 하여야 합니다.
2. 무조건 순종을 가르치라
어머니가 아기를 낳은 후에는 반드시 모유를 먹일 것이요, 우유를 먹이지 말 것입니다. 우유를 먹이면 몸은 건강하지만 지능면에 있어서 사람(엄마)의 지능을 닮지 못하고 소의 지능을 닮는 아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기에게 젖을 먹일 때에는 기도하며 먹일 것이요, 가정 불화나 남과 다투어 성이 나서 분노한 엄마의 젖을 먹이지 말 것입니다. 그 젖은 아기에게 독이 되므로 안 먹이는 것보다 못하며 아기의 영육간에 손해만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아기가 어느 정도 자라서 컸을 때 무엇이 잘하는 일인지 무엇이 잘못하는 일인지 선악을 분간하지 못할 때에는 무조건 복종하도록 일방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 경배하는 성전에서 아이가 소리치며 왔다 갔다 뛰어다니는 경우 아이가 너무 어리므로 말로 타일러도 듣지 못하는 어린 때에는 문 밖에 데리고 나가서 두어번 궁둥이를 쳐서 데려다가 무릎 꿇고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무조건 복종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장소는 반드시 아이에게 경건성과 경외감을 가르쳐 주어야 나중에 그 아이가 엘리의 아들들과 같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3. 어린아이의 인격을 존중해 주라
아이가 좀더 자라서 4, 5세 이상 10여살이 되는 경우 무슨 잘못을 했거나 꼭 벌을 받아야 할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 부모는 당장 화를 내서 큰소리로 꾸짖지 말 것입니다. 어떠한 큰 잘못을 저질렀을지라도 부모는 평소와 똑같은 조용한 음성으로 아이에게 다가가서 자기가 한 일이 잘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 조용히 묻고 서로 따질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당장 부모가 화가 나서 큰소리로 호통을 치며 매를 친다면 아이는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화난 부모의 얼굴과 매가 무서워서 무조건 잘못했다고 손을 비비며 매를 맞고 나서 자기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해서 매를 맞았는지도 모르고 부모에 대한 공포심과 원망심만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그 아이를 조용히 불러 이웃이나 손님들이 없는 조용한 방으로 데리고 가십시오. 결코 아이들을 이웃이나 손님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주지 말 것입니다. 어린이들이 하나님 앞에 설 때에는 어른과 똑같이 면류관을 하나씩 쓰게 될 동등한 자격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절대로 부모들은 내 자식이라 하여 아이의 인격을 무시하거나 손상치 말 것입니다. 그 아이는 내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친아들과 딸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그들의 인격을 늘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이제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교우들이나 손님들이 없는 조용한 방으로 불러들인 부모는 아이에게 조용하고 침착한 음성으로 “신동이 여기 좀 무릎 꿇고 앉아 있어요.”라고 말한 후 몇십분 동안 부모는 자기 일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동안 아이는 자기의 잘못을 깊이깊이 거듭거듭 반성하고 뉘우치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시간을 준 후에 부모는 아이가 있는 방에 다시 들어와서 조용한 음성으로 따지는 것입니다.
“신동이가 아까 한 일이 잘한 일이어요, 잘못한 일이어요?
“잘못한 일이어요.” 뉘우치는 작은 음성으로 대답합니다.
“얼마나 잘못한 일이지?”
“많이요.”
“그럼 벌을 받아야 할까, 안 받아야 할까?”
“벌을 받아야 ….” (혹은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울먹이면서 대답합니다.
이때에 부모는 하늘 아버지께서 자기를 널리 용서해 주신 것과 같이 잘못을 뉘우치는 이 자녀를 관대히 용서해 줄 것입니다.
“그럼 엄마가 너를 오늘 용서해 줄 테니 다시 그런 짓하면 안 돼요. 응, 약속하지?”
“예.” 금방 얼굴이 환해지면서 대답합니다.
이렇게 꼭 벌받을 일을 엄마가 너그럽게 용서해 주면 아이는 엄마에게 대한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과 사랑을 가지고 따르며 순종하게 됩니다. 그 후부터는 그런 잘못을 범하지 않는 아이가 됩니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에 어떤 아이들은 다시 그런 잘못을 재차 저지르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부모는 고의로 두번째나 잘못을 저질렀다 하여 참지 못하는 화난 얼굴과 큰소리로 아이를 꾸짖거나 매를 쳐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거듭 두번 잘못을 했을지라도 처음 방법과 똑같이 조용하고 침착한 어조로, 평소보다 더 조용한 음성이면 더 좋습니다.
“신동아, 네 방에 가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어요.”라고 명한 후에 첫번째 잘못했을 때 30분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면 이번에는 한 시간 정도 반성할 시간을 줄 것입니다. 그리고 한 시간 후에 부모는 여전히 침착한 표정으로 아이에게 다가가서 묻습니다.
“너 지난번 엄마랑 뭐라고 약속했지?”
“다시는 안 그러기로요.” 침통한 표정으로 대답합니다.
“그런데 왜 오늘 또 그런 짓 했지?”
“…….”
“오늘은 어떻게 할까, 오늘은 매를 맞아야 되겠지?”
“…….”
“말해 봐. 매를 맞아야 되겠어? 안 맞아야 되겠어?”
“맞아야 …….” 혹은 “한번만 더 용서해 주세요.” 눈물을 떨어뜨리며 작은 소리로 대답합니다.
이때 엄마는 다시 하늘 아버지께서 자기를 거듭 용서해 주신 것과 같이 자기 자녀를 너그럽게 또 용서해 줄 것입니다.
“신동아, 그럼 엄마가 이번에도 용서해 줄 테니 이제는 정말 다시는 그런 짓 말아야 한다.” 얼굴이 환해진 아이가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게 됩니다. 엄마는 계속해서 다짐하여 말합니다.
“그 대신 앞으로 또 그런 잘못을 할 때에는 어떻게 할까?”
“그때에는 벌을 꼭 받아야죠.” 아이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합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그런 짓을 다시는 안 할 테니까.
“그럼 엄마랑 약속하자. 세번째 다시 그런 짓을 할 때에는 매(벌)를 맞기로, 응?”
“예(약속해요).” 아이는 벌받을 각오와 다시는 나쁜 짓 안 할 것을 결심하고 자신있게 대답합니다.
엄마는 아이의 손을 잡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기쁜 얼굴로 같이 일어나 나옵니다. 이제 아이는 처음보다 더 엄마를 진심에서 우러난 존경심과 사랑으로 순종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대개의 아이들은 더 이상 엄마를 실망시켜 드리지 않는 착한 아이가 됩니다.
4. 약속대로 매를 세게 치라
특별한 경우에 두번씩이나 사랑으로 용서해 주고 타일렀는데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세번째나 일부러 반복하여 잘못을 범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아이일 경우 역시 첫번과 두번째와 똑같이 조용한 음성으로 방에 가서 무릎 꿇고 앉아 있도록 할 것입니다. 그 대신 처음보다 3, 4배 정도 더 오래 앉아서 반성하게 한 후에 아이에게 조용히 다가가서 침착하게 말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부모들이 명심해야 할 일은 아이가 세번씩이나 반복된 잘못을 했다 해서 화가 나서 급한 마음으로 손으로 혹은 주먹으로 혹은 발길로 차는 부모들이 있는데 이런 짓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손과 주먹으로 아이들을 때리면 아이들 마음 가운데 마치 복싱 선수가 자기 적에게 맞게 될 때 복수심이 불타서 자기도 보복하기 위하여 달려드는 것과 똑같은 복수심을 부모에게 품게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매를 칠 경우에는 성경에 이르심과 같이 반드시 종아리(회초리)로 칠 것입니다. 그리하면 아이들은 전혀 복수심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번씩 아니라 열번 백번 잘못한 아이라도 절대로 부모가 화난 목소리로 큰소리를 쳐서는 안 됩니다. 평상시와 똑같은 음성이 아니면 평상시보다 더욱 작은 조용하고 침착한 음성으로 아이들과 따져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본심으로 자기 잘못을 진정 시인하게 되고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자기 잘못을 본심으로 알고 깨닫게 됩니다.
이제 세번째 잘못을 범하고 무릎 꿇고 앉아 있는 아이의 방에 찾아가서 조용히 묻습니다.
“신동아, 너 지금 몇번째이지?”
“…….”
“지난번 엄마랑 무어라고 약속했지?”
“…….”
“세번째 잘못했을 때는 어떻게 하기로 했지?”
“…….”
“왜 말이 없지? 말해봐요, 응?”
“벌 받기로 했어요.” 더듬는 작은 소리로 대답합니다.
“엄마는 거짓말하지 않지? 엄마는 약속을 잘 지키지?”
“예.”
“그럼 오늘 약속대로 벌을 받도록 하자. 응?”
이렇게 해서 매를 맞기로 결정을 본 후에는 될 수 있으면 회초리는 자기 손으로 스스로 끊어 가져 오도록 하십시오. 나는 아이들 삼남매 키우면서 별로 매를 많이 치지도 않았지만 혹 매를 칠 경우에 내가 나가서 매를 꺾어다가 아이들을 친 일은 거의 기억이 없습니다. 언제나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 나가서 꺾어 왔습니다. 이제 잘못한 아이가 스스로 매를 꺾어 왔을 때는 매맞을 숫자를 자기 입으로 정하도록 할 것입니다.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를 징계하실 때에도 그리하셨던 것같이 우리도 또한 자녀들 스스로 자기가 맞을 매를 자기 입술로 정하게 할 것입니다. 아이로 하여금 다리를 걷어 올리고 서도록 한 후 조용히 묻습니다.
“몇대 맞을까?”
“한 대만요.” 혹은 “세 대만요.” 아이의 나이에 비해서 매 수가 적을 때는 다시 정하게 합니다. 다섯 대 혹은 열 대로. 이때 부모는 아이의 나이에 따라 자기 입술로 말한 것을 결재를 내립니다. 일단 매 수가 결정이 되면 매를 치는데 대개 어머니들이 자녀에 대한 사랑 때문에 안쓰러워서 슬슬 건드려 매 수를 채우는데 그렇게 하면 아이들 독만 올려놓고 잘못하면 더욱 악해질 수가 있습니다. 일단 매를 칠 경우에는 그 아이의 좋지 못한 습성이 쑥 빠져 없어지도록 세차게 쳐야 합니다. 다리가 부르트고 피가 날 정도로 세게 쳐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아프다고 발을 동동 구를 것입니다. 그래도 매 수를 약속대로 다 채워야 합니다. 그렇게 한 후 다시 무릎을 꿇고 앉으라고 명령한 후 계속 우는 아이에게 “뚝 그쳐라.”고 명령합니다. 만약 안 그치고 계속 울 때에는 회초리로 다리나 머리를 한번만 더 치면 뚝 그칩니다.
5. 이불을 씌우라
자녀들을 기르다 보면 성격이 각각 다릅니다. 어떤 아이들은 매를 맞고 잘 교정되는 아이도 있으나 어떤 아이는 매를 들면 새파랗게 놀라 기절할 듯 울면서 겁에 질려 손을 싹싹 비비는 아이가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매를 쳐서는 안 됩니다. 그런 아이에게 매를 치면 너무 놀라 병이 되거나 정신 이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매를 치지 않고 놓아두면 장시간 오래오래 울면서 좋지 못한 성질을 부리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이런 아이들을 교정하는 방법 중 하나가 있는데 이불을 씌우는 일입니다.
이불을 씌우기 전에 엄마는 아이에게 미리 말하기를 “너 언제고 울음을 그쳐야 엄마가 이불을 열어 줄거다.” 해 놓고 이불을 씌우는데 아이가 질식하지 않도록 공기가 들어갈 만큼 밑부분을 조금 떠들고는 단단히 이불을 붙잡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더 크게 “와와” 울면서 난리를 부릴 것입니다. 그래도 절대로 열어 주지 말고 엄마는 밖에서 다시 아이가 듣도록 “너 언제고 울음을 그쳐야 엄마가 열어 줄 거다.” 다시 한번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런 성격의 아이들일수록 답답한 것을 더 못 견디는 것입니다. 아이는 속에서 캄캄하고 갑갑해서 죽을 지경이 되면 엄마의 말이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평소부터 엄마는 한번 약속을 하면 꼭 지키는 엄마인 줄 알기 때문에 엄마는 틀림없이 울음을 그쳐야 열어 줄 것을 아는 이 아이는 나오기 위하여 억지로 끙끙대면서 울음을 그치려고 애를 쓸 것입니다. 그때에 엄마는 즉시 이불을 열어 주고는 콧물, 눈물과 땀이 뒤범벅이 된 아이의 궁둥이를 두드려 주면서 “오, 우리 신동이가 울음을 그쳤구나. 아이구 착해라.” 하면서 칭찬해 줍니다. 이런 방법을 두세 번만 쓰면 그 아이의 못된 성격은 깨끗이 고쳐지고 착한 아이가 될 것입니다.
6. 넘치게 싸매어 주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욥 5:18)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배가 되어 일곱날의 빛과 같으리라」(사 30:26).
이불을 씌우고 난 뒤든지 매를 세게 치고 난 뒤든지 일단 징계가 끝난 뒤에는 우리 하늘 아빠께서 우리를 징계하신 후에는 칠배나 넘치게 완전히 싸매 주시며 사랑으로 위로해 주시듯이 우리도 그와 똑같이 징계를 받고난 우리 자녀들에게 넘치는 싸매임과 사랑의 위로를 해야만 합니다. 대개 부모들이 자녀들을 꾸짖거나 매를 친 후에 자녀들은 부모 곁에 가까이 오려 하지 않고 서먹서먹한 마음을 가지고 부모 주위를 빙빙 배회하며 돌게 되는데 이런 결과를 낳게 하는 매와 징계는 완전히 실패한 징계이니 그런 식으로 아이들을 징계하려거든 아예 징계를 하지 말 것입니다. 그런 징계는 아니한 것만 못하여 아이들을 바로잡기는커녕 아이들을 더욱 타락과 위험한 길로 몰아 넣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징계를 받은 아이들은 반드시 징계가 끝나자마자 부모를 더욱 좋아하며 진심에서 우러난 사랑으로 엄마 아빠를 따르는 아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징계는 성공한 징계로서 아이들은 착한 아이가 될 것이고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징계를 받고 난 아이들이 징계를 받기 전보다 부모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좋아서 따르게 될 수 있는가 그것을 이야기하여 보겠습니다. 아까 징벌의 매를 맞고 난 뒤에 다시 아이에게 무릎을 꿇고 앉으라고 한 것은 울음을 그친 아이가 마음의 안정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시간을 몇 분 준 것입니다. 이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조용히 앉아 있는 아이에게 엄마는 다가가서 묻습니다.
“너 엄마가 미워서 죽으라고 매를 쳤는가, 아니면 착한 하늘 왕자(공주)가 되어 하늘에 같이 가자고 사랑해서 매를 쳤는가?”
“하늘 나라에 같이 가자고 사랑해서요.”
“너 엄마가 지금까지 너를 많이 사랑하더냐, 조금만 사랑하더냐?” 아이는 가만히 과거를 돌이켜 생각해 봅니다. 사실 엄마가 굉장히 사랑해 오셨으므로 아이는 양심적으로 대답을 합니다.
“많이많이 사랑했어요.” 이때 엄마는 아이를 덥석 끌어 무릎에 안으면서 “그래, 엄마가 너를 많이많이 사랑한단다. 그런데 왜 이렇게 사랑하는 너를 엄마가 매를 쳐야 한단 말이냐? 엄마는 네가 잘못해서 매를 맞고 난 뒤에 밤에 잘 때에도 너는 잘지라도 엄마는 자지를 못하고 매맞아 부르튼 네 다리를 어루만지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잠을 이루지 못한단다.” 하면서 아까 매맞아 부르튼 다리를 따뜻한 손길로 어루만져 주면서 “이렇게 부르텄으니 얼마나 아팠느냐?”고 쓰다듬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 하늘 아빠께서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사랑)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호 11:8) 하심과 같이 우리도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 마음속 사랑을 숨기지 말고 고백해 주어야 합니다. 대개 부모들이 자녀들을 사랑하면서 자녀들에 대한 사랑으로 마음이 아프면서 본인들에게 고백하지 못하고 숨기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이성간이나 부부간에만 사랑을 고백할 것이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똑같이 사랑을 표시하여야 합니다.
매를 맞고 엄마의 품에서 어루만짐을 받으면서 자기를 사랑하므로 하늘에 데려가기 위해서 치기 싫은 매를 쳐야 했던 엄마의 사랑, 매를 친 후에도 자녀가 너무 안쓰러워 잠을 못 이루며 매맞은 다리를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리는 엄마의 사랑을 알게 된 이 자녀는 매맞아 아팠던 다리의 아픔은 오히려 다 잊어버리고 자기 때문에 밤잠을 못 이루며 눈물 흘리는 엄마의 사랑 때문에 죄송하고 고마워서 뜨거운 뉘우침과 고마움의 눈물로 아이는 울먹이게 됩니다. 이때 엄마는 다시 아이를 업자고 하여 아이를 업고서 앞마당을 거닌다든지 동구 밖 길가에까지 업고 갔다 오면서 “신동아, 다시는 매를 맞지 않도록 하자 응?” 하면서 “왜 엄마가 예쁜 너를 때려야 한단 말이냐. 왜 너를 때려야 해, 이렇게 예쁜 너를. 이제부터는 다시 매를 맞지 않도록 하자. 응?” 하면서 엄마의 사랑과 가정의 공의의 한계선을 가르쳐 주면서 흐뭇한 사랑과 넘치는 위로로 아이의 마음을 싸매주고 또 싸매줍니다. 이렇게 한 후에 업었던 아이를 내려 놓으면 엄마한테 아까 매를 맞기 전보다도 매를 맞은 후인 지금에 훨씬 “엄마 엄마” 하면서 엄마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존경심을 가지고 따르면서 순종하게 됩니다. 이러한 매와 징벌은 완전히 성공한 매로서 아이도 좋지 못한 죄악에서 건지고 가정도 행복한 소천국이 됩니다.
7. 부모도 자녀 앞에 사과하라 선의의 거짓말도 말라
부모가 자녀들 앞에서 잘못한 일이 있을 경우 아무리 어린 세 살 난 자녀일지라도 반드시 그 자녀 앞에 부모는 사과하고 용서를 구할 것입니다. 대개 부모들이 자녀들의 잘못은 엄격하게 문책하고 다루면서 자신들의 잘못에 대하여는 슬그머니 넘기는데 이것은 부모의 인격 문제일 뿐만 아니라 자녀들을 훈계할 자격도 없는 실격 부모입니다. 마땅히 부모들은 자녀들 앞에서 열번 잘못한 일이 있으면 열번 꼬박꼬박 사과와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자녀들 보는 앞에서 부부 싸움을 했다던가 가정의 화평을 깨는 큰소리를 쳤다던가 하는 등등의 잘못에 대하여 반드시 자녀들 앞에서 사과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자녀들이 부모의 본을 따라 자기도 잘못을 정직하게 고백할 줄 알게 되고 또 부모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며 또한 가정 안에 공의와 사랑이 입맞추는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그리고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한번 약속한 것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 이행하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무엇을 사 주기로 약속했을 때 부모에게 돈이 없을 경우 이웃에 가서 빌려서라도 사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자녀들이 부모와의 약속을 또한 잘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부모들 특히나 엄마들이 자녀들 앞에서 선의의 거짓말들을 많이 하는데 예를 들어 친구 집에나 시장에나 어디를 갈 때에 아이를 떼어 놓고 가면서 자기는 오후 늦게나 저녁때에 돌아오려면서 아이보고는 말하기를, “엄마 금방 올께. 집에서 조금만 기다려, 응?” 해 놓고 저녁에 다 늦게서야 돌아오는 야속한 엄마, 또 아이들 피부에 헌데가 나서 곪았으므로 따고 짜내야 할 경우 “얘, 짜자. 하나도 안 아파.” 해 놓고 힘껏 아프게 짜내는 야속한 엄마나 아빠, 쓰디쓴 약을 먹일 경우 “얘, 하나도 안 써.” 해 놓고 쓰디쓴 약을 입안 깊숙히 퍼 넣는 부모, 천진(天眞)한 눈동자와 마음을 가진 아이들의 가슴 속에 얼마나 깊고 큰 상처와 충격입니까? 이 티없이 순진한 아이들이 유일하게 믿고 따랐던 부모가 이토록 자기를 속이고 기만한 것을 알고난 천진한 어린 천사들의 마음의 상처는 얼마나 깊고 크겠습니까? 모든 부모들은 깊이 뉘우치고 이제라도 당장 그 자녀들 앞에 과거의 잘못들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부모에게 수없이 속고 속으면서 자라난 순진한 자녀들은 어느새 자기도 모르는 속임과 기만에 능숙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커서는 부모와 이웃을 능숙하게 속이는 자가 될 뿐 아니라 드디어는 사회의 대사기꾼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그 부모들은 그 아들을 보고 “저 놈이 누구를 닮아서 저런 자식이 태어났는지 모르겠다.”고 자식을 원망합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티없는 어린 천사의 천진한 가슴에 젖먹이 때부터 다 크기까지 거짓말과 기만술을 가르쳐 놓은 사람은 누구인데 이제 와서 부모 때문에 형무소에 불쌍하게 갇혀 있는 죄 없는 아들을 비난하는 것입니다.
아, 무서운 부모의 잘못으로 희생당한 자녀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이 책을 읽는 부모들은 어떠한 선의의 거짓말도 하지 말 것이요,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지금 당장 자녀 앞에 사과하여 용서를 구할 것입니다. 거짓말에 무슨 선의가 있고 악의가 있단 말입니까? 거짓말은 어디까지나 거짓말이고 진실은 어디까지나 진실이 아니겠습니까? 시장이나 친구 집에 가서 늦게 저녁 때 돌아올 경우에 기다리는 어린 가슴에 분명히 저녁 때 늦게 돌아오겠다고 약속해 줄 것이요, 헌데가 곪았으면 “얘, 아파도 잠시 아프고 빨리 낫는 것이 오래 두고 앓는 것보다 낫단다. 좀 아파도 참아라.” 할 것이요, 쓴 약을 먹일 경우 “얘, 잠시 써도 오래 병으로 고생하는 것보다 낫단다. 써도 꾹 참고 먹자꾸나.” 이렇게 정직하게 길러서 자녀가 마음 놓고 믿을 수 있는 부모가 되도록 합시다. 자녀들은 부모의 반사경이라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자녀는 부모를 믿고 부모는 자녀를 믿을 수 있는 행복한 가정이 되도록 합시다.
8. 환난(患難) 날에 자녀들로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가르치라
나는 아이 셋을 기를 때에 세례(침례) 요한이나 예수님의 어릴 때의 환경과 같이 세상과 동리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곳에 햇빛 잘 들어오고 공기 잘 통하고 천연의 배경이 좋은 곳에 예쁘게 새 집을 짓고서 자녀를 길렀습니다. 그곳이 경상도 시골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세상이나 동리의 접촉함이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세상이 어떠한 것인지 도시가 어떤 곳인지 죄가 무엇인지 욕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라났습니다. 어떤 때는 동리 사람들이 우리집 곁을 지나다가 우리 아이들을 보고 “얘들아, 너희들 욕좀 해 봐라.” 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은 맑은 눈동자로 어른들만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기르던 아이들을 데리고 전라남도 고흥 땅, 신자라고는 하나도 없는 개척 교회로 이사갔습니다. 그곳은 동리 한가운데였고 집안에 작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얼마 동안 사는 중에 하루는 우리 큰 남자 아이가 급히 쫓겨서 집안으로 들어 오는 것이 아닌가.
“웬일이니, 상천아?” 놀란 숨소리만 낼 뿐 얼른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상천아, 이런 때 아빠한테 말해 봐. 왜 그래?”
“옆집 정식이가 때리려고 해서 그래요.”
옆집 정식이란 아이는 나이는 저보다 적지 않지만 키는 저보다 오히려 작은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욕이 무엇인지 싸움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라난 상천이가 싸우면서 자라난 정식이를 당하지 못하고 쫓겨 들어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독자 부모님들께서는 이렇게 자기보다 작은 아이들에게 쫓겨 들어온 아들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이구 바보 같으니 밥만 한 그릇씩 먹으면서 그 조그만한 것 하나 못 당하고 쫓겨 들어와? 이 바보야!” 하면서 머리를 쥐어 박겠습니까? 아니면 급히 뛰어나가 순진한 아들을 때리려 쫓아오는 거친 아이들을 향해서 “어떤 놈이 우리 신동이를 때리려 했느냐?” 큰소리로 호통을 치며 아들 편을 들겠습니까? 아닙니다. 두 가지 방법 모두가 자녀를 위한 일이 아닙니다. 처음 방법은 아들을 악하고 독하게 만드는 일이요, 두번째 방법은 아이가 부모를 맹목적으로 의뢰하여 항상 부모만 의지하고 자주 정신, 자립 정신이 없는 아이가 될 수가 있습니다.
나는 그때 이렇게 했습니다. 쫓겨 들어온 아이에게 밝고 친절하게 “아, 그래. 성경 시편 50편 15절에 하나님께서 무어라고 말씀하셨지?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말씀하셨잖아. 이런 때에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거야. 자, 아빠랑 교회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고서 두 부자는 손을 잡고 성전 문을 열고 들어가서 둘이서 무릎을 꿇고 “오, 예수님! 옆집 정식이가 괜히 상천이를 때리려고 쫓아 왔으니 그 아이의 마음을 주장하셔서 녹여 주시고 상천이를 안 때리고 친절히 대하여 주는 좋은 친구가 되게 해주세요. … 아멘.” 하고 옆집 정식이 환난을 위하여 두 부자는 진심에서 우러난 합심 기도를 드리고 꼭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저녁때 상천이가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서 싱글벙글 환한 얼굴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오면서 아버지를 보고 “아빠, 옆집 정식이가 아침에는 나를 때리려고 쫓아오더니 이제 나가니까 곁에 찾아와서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상천아, 우리 친구가 되자.’고 해요.” 하면서 아침에 아빠랑 성전에 가서 합심 기도한 기도가 응답된 것을 알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이들로 하여금 자기 힘으로 감당하지 못할 환난 날에 사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 아이가 커서도 환난 날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귀한 아들이 될 것입니다.
9. 자녀와 가장 좋은 친구가 되라
우리 하늘 아빠께서 아브라함과 에녹과 예수님과 우리와 가장 좋은 친구가 되심과 같이 우리도 우리 자녀들과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얼마나 가까운 친구가 되어야 하느냐 하면 자녀들이 자기 마음속에 있는 비밀을 숨기지 아니하고 다 내 놓고 부모에게 상의하고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부모 자녀간에 마음의 벽이 없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자녀들이 남자 친구, 여자 친구를 사귀는 문제나 이성간에 배우자 사귀는 상대자를 엄마, 아빠한테 일일이 내놓고 상의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엄마, 제가 ⃝⃝⃝를 여자 친구로 사귀고 싶은데 괜찮겠어요?” “아빠, 제가 ⃝⃝⃝를 배우자로 사귀고 싶은데 아빠 생각은 어떠세요?” 이렇게 자기 속의 어떠한 문제라도 숨김없이 부모에게 털어 놓고 상의할 정도로 가까운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부모 몰래 범죄하는 일이나 무슨 사고를 혼자 저지르는 일이 없이 모든 문제를 부모와 같이 미연에 방지하고 함께 손을 잡고 하늘까지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제일 큰 아이가 올해 열일곱살 난 아들인데 키가 아버지 키만하고 나뭇짐도 아버지와 똑같이 지고 다닙니다. 그런데 새로운 남녀 학생들로부터 편지가 오면 아버지에게 꼭 가지고 와서 “아버지, 이런 편지가 왔는데 답장해도 괜찮은지 한번 보셔요.” 상의해 옵니다. 자기에게 온 편지 자기 마음대로 답장하고 또 아빠 몰래 사귈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아빠를 제일 믿고 가까이 상의해 오는 것을 볼 때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이제 아버지가 다 읽어 보고 난 후, “이 아이는 착실한 아이같구나. 서로 아름답게 피차 믿음에 유익되게 사귀어 보렴.” 하면 “예.” 하고 아버지의 의견을 따릅니다. 이 아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지금 열일곱살 되기까지 아빠가 어둔 밤에나 추운 겨울 날에나 새벽 일찍이 언제 어떤 심부름이나 명령을 해도 “싫어요. 못해요. 이따 하지요. 끙.” 하면서 부정하는 소리는 지금까지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무슨 일을 시켜도 “예.” 하고 순종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마음이 변하고 바뀌어질지는 모르나 아직은 부모 말에 가장 순종 잘하는 착한 아이였고 다정한 부자지간이었습니다. 앞으로 저 하늘에 도착하기까지 더욱 가까운 다정한 부자가 되기를 바라면서 또한 우리 하늘 친아빠께서 그렇게 축복과 사랑으로 묶어 주실 것을 믿고 기뻐하는 바입니다.
독자 가족님들께서는 우리 가정보다도 더욱 부모 자녀간에 좋은 친구로서 행복된 가정들이 되기를 기도하는 바입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 원수 마귀가 우리 가정을 침노치 못하고 우리 가정들은 사단의 거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센 가정들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자녀들은 부모의 어떠한 명령에도 첫마디 “예” 하고 진심에서 우러나서 순종하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고 부모들은 자녀들의 가장 좋은 친구로서 도와주는 사랑이 넘치는 소천국이 되어야 합니다.
한번은 우리 아이 삼남매를 데리고 충청도 큰댁에 놀러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전라도에 살 때인데 아이들은 모두 열살 안팎이었습니다. 큰집에 가서 삼남매가 놀면서 아빠가 무슨 말 한마디만 하면 마치 군대가 상관의 명령에 움직이듯 복종하니까 부모님과 큰 형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얘야, 아이들을 너무 잡아서 키우면 못쓰느니라. 그 애들이 커서는 남들 앞에서 기가 꺾여 말도 못하게 되는 법이야. 너무 잡아서 키우지 말아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마 부모 형님들께서는 내가 얼마나 집에서 아이들을 매와 방망이를 많이 휘둘러서 키웠기에 저렇게 군대식으로 복종할까 매우 염려하셨던 것입니다. 나는 혼자 속으로 웃고 돌아왔습니다. 그후 몇년이 지난 뒤에 어머님께서 전라도 우리집에 한번 다니러 오셨습니다. 오셔서 보니 우리 아이들 셋이 큰 아이는 아빠 오른팔에 매달리고 작은 아이 둘은 왼쪽 팔에 매달려서 “아빠 돌려 주세요.” 하면 아빠는 어린이 놀이터가 되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아빠 등허리로 어깨 위로 정신없이 매달리는 것을 마루에 걸터 앉으신 어머님께서 다 보시고는 보다 못하셔서 “얘들아, 애비 죽는다. 애비 좀 살려라.” 손자보다 아들이 더 귀중한 할머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이때에야 비로소 어머님께서 우리 가정이 폭군 정치가 아니요, 하늘 정치 가정이란 것을 아시게 되셨고 나는 방망이로가 아니요, 사랑으로 정치하는 가장임이 드러나 오해를 벗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정한 친구로 놀다가도 일단 부모님의 명령이 떨어지면 첫마디에 즉시 순종하는 사랑과 공의와 행복이 같이 깃드는 천국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하늘 아빠께서 우리들에게 소원하시는 것이 우리 모든 가정들이 소천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그 소천국들은 하늘 천국으로 옮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10. 자녀들과 책과 노동
하나님의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사람들이 쓴 책은 어떤 것을 막론하고 우리 자녀들이 읽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기독교 안에 사역자 가정이나 신자들 가정마다 가 보면 거의 모두들 세계 문학 전집들을 비치해 놓고 아이들에게 꿈을 키워주는 책이라고 하여 읽도록 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모릅니다. 칼을 휘두르는 무협 소설이나 음란한 소설이나 추잡한 주간 잡지들을 소주와 독주들로 비유한다면 소위 고상하다는 세계 문학 전집 같은 종류의 책들은 포도주나 맥주와 같이 순한 술이 되는 것입니다. 이 문학 전집들이 처음에 읽을 때에는 꽤 고상한 듯 하지만 결국 이 책들은 우리 자녀들을 참되고 거룩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신령한 맛을 점점 잃어버리도록 만들어서 결국 우리 자녀들로 하여금 성경을 외면하게 만들고 그 대신 세계 문학 전집에만 몰두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로는 더 강한 내용의 소설들 곧 음란한 소설과 추잡한 잡지들을 찾아서 읽게 하고 그 다음에는 그것을 마음과 행동으로 옮기게 하여 영영 타락의 길로 이끌어 우리 자녀들을 영원히 멸망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경계해야 할 책은 우리 자녀들을 타락과 멸망으로 이끌기 위하여 고상한 탈을 쓰고 나오는 세계 문학 전집인데 이를 단호히 배척해야 합니다. 사단은 자기의 지배를 받는 자들의 머리를 총동원하여 그럴듯한 100% 거짓말을 지어내게 하여 고상하다는 이름을 붙여 순진한 우리 자녀들로 하여금 그 거짓말들을 믿게 하고 도취되게 하여 그대로 흉내내게 하는 것입니다. 그 문학 전집이란 책들은 다 진실이 아닌 내용들로서 다 저자들이 지어낸 100% 거짓말들입니다. 거짓을 먹은 마음에 무슨 참된 열매가 맺힐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참되고 거짓이 없는 진리의 말씀을 먹어야 참된 마음의 열매 곧 성령의 열매가 달려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 가정 안에 들어온 이 거짓 책들을 모두 내다 버려서 우리 가정을 사단의 유혹에서 굳게 지키도록 합시다.
그 다음 세계 문학 전집 이상으로 배척해야 할 책들이 있는데 그것은 오늘날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는 타락한 기독교계의 종교 서적들입니다. 이 바벨론의 독주들을 참된 종교 서적인 줄 알고 함부로 사서 읽는다면 가장 무서운 오류에 빠져 허황한 광신의 불속에 빠져들 수가 있으니 특별히 거짓된 종교 서적들을 우리 자녀들이 읽지 않도록 배척하고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 TV는 우리 자녀들뿐만 아니라 전가족을 온전히 멸망으로 몰아 넣는 악마의 오른팔입니다. TV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할 시간만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끼리 부부나 부모 자식간에 사랑의 대화도 나누지 못하게 이간시켜 놓고 자기만 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소천국이 되어야 할 가정들이 무서운 불화의 가정들만 되게 되어 각종 더러운 감화로 품성은 더러워지고 정신은 혼란에 빠집니다. 그러나 헤어날래야 헤어날 기회를 주지 않고 매일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일생 동안 끌고 다니다가 결국은 죽입니다. 우리는 이 잔인한 원수에게 더 이상 끌려 다니지 말고 불쌍한 우리 가족들을 힘센 악마의 오른팔에서 떨쳐 구원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필름이나 책 외로는 일분 일초라도 한눈을 팔지 맙시다.
그리고 자녀들을 집에서 기를 때에 유익한 책이라 해서 책만 보고 앉아 있게 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육신의 노동을 겸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보도록 가르쳐야 아이의 육체와 정신과 품성이 균형지게 자라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귀엽다고 해서 맹목적으로 놀리므로 게으른 자녀로 만들지 말 것입니다. 아무리 나이가 어릴지라도 그 어린 아이의 입장에 맞도록 무슨 일이든지 시켜서 자기 일에 충실하고 부지런한 아이가 되도록 키워야 합니다. 엄마, 아빠를 따라 밭에 나가서 어린 아이는 밭을 한 고랑을 매게 하고 조금 큰 아이는 세 고랑, 좀 더 큰 아이는 다섯 고랑 혹은 열 고랑, 자기 힘 미치는 정도로 재미를 붙여 하도록 합니다. 또 아빠를 따라 나무도 하고 엄마를 따라 부엌일도 잘할 수 있도록 자기 일에 성실하고 충실한 자녀들로 키울 것입니다.
어떤 가정에 가면 엄마는 허리가 아파서 어쩔 줄 모르고 애써 열심히 일하시는데 커다란 딸은 방에서 빈둥거리고 잡지책만 뒤적거리고 앉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커다란 딸이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고 또 남의 집에서 자고 다니는 것이 보통입니다. 또 어떤 가정은 아버지는 논밭에 나가서 땀 흘려 일하시는데 아들은 기타나 치면서 왔다갔다 하며 놀기만 하고 용돈만 달라고 투덜거립니다. 이 얼마나 잘못된 가정들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일에 성실한 청소년들을 시대마다 부르셔서 거룩하고 영광된 큰 일을 맡기셨습니다. 사무엘, 엘리야, 엘리사, 요셉, 다윗, 어린 예수님을 보십시오. 이 모든 사람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님 말씀 순종 잘하고 부모님을 따라 집안일을 성실히 하였던 어린이들이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자랄 때 집안에서 게으름이나 피우고 빈둥거리고 무책임하게 놀기만 좋아하는 성실치 못한 소년들이었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큰 일을 맡기실 수가 있으셨겠습니까? 그럴 수가 없습니다. 만약 그런 청소년들에게 큰 일을 맡기신다면 그들은 큰 일도 또한 자기 가정에서와 같이 무책임하게 불성실하게 그르치는 자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녀들이 이 시대에 하나님 앞에 귀한 부르심을 받게 하기 위하여서는 가정에서 게으르게 놀리지 말고 예수님의 어릴 때와 같이 열심히 일을 하며 자라게 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귀한 일에 부르실 뿐 아니라 하늘 집으로 아주 데려가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하늘 아빠께서 보시기에 예쁜 자녀로 우리 자녀들을 기르도록 합시다.
11. 부모 곁을 떠나 타락한 자녀들을 위하여
지금까지는 어린 자녀들을 기르고 교육시키는 법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이제부터는 부모들이 참된 자녀 교육을 알기 전에 이미 자녀들이 장성하여 부모 곁을 떠나 하나님 품을 떠나 버린 자녀들을 위하여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마치려 합니다. 이미 다 커 버린 자녀들에 대하여는 부모가 어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데려다가 종아리를 칠 수도 없는 노릇이요, 명령해도 듣지 않는 것이요,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마 19:26)으시니 하늘 아버지께 갈 수밖에 없습니다.
「밤 초경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 각 길머리에서 주려 혼미한 네 어린 자녀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애 2:19).
“사단은 그대가 마취되어 마음을 놓고 잠자는 동안 자녀들에게 하나님과 같은 그대의 권리를 장악한다.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 주의 교훈으로 그들(자녀)을 양육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사단이 그대들 앞에서 권리를 행사하여 그들을 둘러 단단히 묶어 놓는다. 그래도 그대는 계속 잠을 잔다”(CDF:283).
부모들은 만물이 고요히 잠자는 「밤 초경에 일어나」 부모와 하나님 품을 떠나버린 불쌍한 자녀들의 생명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자녀를 위한 소원을 쏟아 놓아야 합니다. 악한 도시의 「각 길머리에서」 사단에게 끌려 악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영혼이 「주려 혼미」한 불쌍한 「어린 자녀의 생명을 위하여 주」 하나님 사랑의 아버지를 「향하여」 간절한 소원의 「손을 들」(애 2:19)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사랑 많으신 아버지는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 37:4, 5)어 주시리라.
이렇게 하여 사단이 데려다가 단단히 묶어 가지고 끌고 다니는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전능하신 우리 아버지의 능력 많으신 손을 빌려 건져 구원해 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아버지의 손이 우리 자녀들을 온전히 건져내시기까지 우리의 줄기찬 기도를 결코 중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우주 안에 하나님을 손들어 항복케 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손 번쩍 들어 항복시킬 자가 있는데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온전히 순종하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인 성경을 왼손에 펴 들고 오른 손가락으로는 그 약속한 말씀을 지적하면서 “아빠, 여기 아빠께서 약속하셨지요. 「구하라 주실 것이요 구하는 이마다」 주시겠다고 아빠께서 약속하셨지요. 그러니 아빠 제가 구하옵나니 저와 아빠를 떠나서 사단에게 끌려 다니면서 영혼이 주려 혼미하여 꺼져가는 저 어린 자식의 생명을 제게 돌려 주시옵소서!”라고 기도 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사 힘이 세신 분이시지만 당신을 예쁘게 순종하고 당신의 약속을 들고 나와 “아빠께서 여기 약속하셨지요?” 하면서 따지고 품속으로 달려드는 예쁜 자녀들에게는 꼼짝 못하시고 두손 번쩍 들어 항복하시고 “내가 했다. 했다.” 하시면서 그 자녀의 요구대로 소원대로 당신의 약속하신 바를 넘치게 이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악할지라도 우리 자녀들에게 한번 약속한 것은 꼼짝 못하고 이행하는데 하물며 영원히 정직하시며 입술에 거짓이 없으신 의로우신 사랑의 하늘 아버지께서 어찌 자기 입술로 하신 약속을 이행치 않으실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 23:19).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 폐하거나 더하거나 못하」(갈 3:15)거늘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어찌 그 입으로 약속하신 바를 실행치 아니하시겠느냐.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
성 어거스틴 어머니가 천하에 둘도 없는 탕아가 되어 버린 아들 어거스틴의 영혼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왼손에 성경을 들고 오른 손가락으로는 하늘 아버지의 약속을 지적하면서 임종시까지 눈물의 간구를 드렸던 것입니다. 인자하신 하늘 아버지께서는 순종 잘하는 예쁜 딸은 비록 죽었지만 그 딸의 평생에 한 기도는 잊지 않고 고이 간직해 두셨다가 30년이 지난 뒤에 어거스틴을 건져 주셨을 뿐 아니라 세상에 보기 드문 귀한 성자로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이제 사랑하는 딸이 부활의 아침에 성자가 된 아들을 만나 포옹할 때 자기 소원을 넘치게 이루어 주신 사랑하는 하늘 아버지께 얼마나 감사와 찬양이 넘치겠습니까?
우리도 어거스틴의 어머니같이 예쁘게 순종하면서 우리 아빠의 약속을 들고 잃어버린 우리 자녀들의 생명을 다시 찾아 안기 위하여 우리 하늘 아빠께 속히 나아갑시다. 그리고 어거스틴의 어머니같이 줄기차게 간구합시다. 혹 우리의 간구대로 우리의 생각대로 우리 자녀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 아버지의 가장 좋은 응답이요 섭리임을 믿고 결코 불평하지 말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같이 간절히 간구한 후에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반드시 기도를 합시다.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는 어느 때는 우리 소원대로 들어주시지만 어느 때에는 우리 소원대로 들어주지 않는 것이 그분께서 보시기에 가장 좋은 응답인 때가 종종 있으니 우리의 생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해서 결코 불평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사 55:8, 9). 우리가 하늘에 가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보고 질문하시기를 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하여 사람을 많이 구원했느냐고 묻지 아니하시고 “내가 네게 맡긴 내 어린양이 어디 있느냐?”고 우리에게 물으시는 것입니다. 노아가 120년간 전도 기간 동안 한 사람도 구원하지 못하는 무능한 사역자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의인」으로 칭찬하신 것은 그가 그 배역한 세상 가운데서 자기에게 맡겨 주신 자녀들의 생명을 잘 지켰던 까닭입니다. 우리도 노아와 같이 이 배역한 세대에 우리 자녀들을 잘 지켰다가 우리 예수님과 아버지께서 물으시는 날에 “내게 맡겨 주신 아버지의 자녀가 여기 있나이다.” 하며 주저하지 않고 내놓는 우리 부모들이 되도록 합시다.
이런 말(자녀 교육)을 하는 명호라고 해서 명호가 자녀 교육에 완전히 성공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현재 자녀 교육에 성공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자녀 교육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늘에 올라가서 내 자녀들이 내 곁에 따라왔을 때에 비로소 나는 자녀 교육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이란 언제 어떻게 빗나가게 될지 또 언제 어떻게 어거스틴같이 돌아와 귀한 자녀가 될지 모르는 장담도, 실망도 할 수 없는 사업이 이 자녀 교육 사업입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하신 방법대로 최선을 다해봐서 안 될 때에는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못하고 나태하여 찾을 수 있는 자녀들을 우리의 잘못과 실수로 잃어버렸다면 우리의 책임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극히 짧은 시간밖에 없는 절호의 이 기회에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대로 최선껏 힘을 다해서 우리 자녀들을 구원해 보도록 합시다. 그래도 안 될 때에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늘 아빠께서도 자녀 교육에 실패하셔서 이 땅의 당신의 자녀들을 거의 다 잃어버리신 분이십니다. 하물며 우리가 어떻게 100% 성공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최선껏 힘을 다하여 우리 사랑하는 자녀들을 노아와 같이 온전히 다 구원하도록 노력합시다. 그래서 온 가족들이 하나도 누락자가 없이 그대로 승천하는 이 시대의 노아의 가정들이 되기를 두손 모아 기도하는 바입니다.
할렐루야! 우리에게 가장 좋은 자녀 교육 방법을 가르쳐 주신 우리 아버지께 영광, 할렐루야!
기도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 이 못난 부모의 잘못으로 아버지께서 맡겨 주신 귀한 자녀들을 어릴 때부터 잘못 교육시킴으로 인하여 귀한 자녀들을 다 잃어버렸나이다. 이 크나큰 죄를 용서해 주시고 이제 뒤늦게서야 뉘우치고 울부짖는 이 딸(소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어거스틴 어미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던 것과 같이 저의 기도를 응답하여 주사 제 잘못으로 오늘도 죽어가는 제 자식의 생명을 건져 주옵소서 이것이 저의 간절하고 유일한 소원이옵나이다.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께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정말 좋네요
세상은 자녀교육이 제대로 안되서 망해가는 이때에 가장 중요한 이슈이기에 모든 사람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수업이겠죠.
이런 교육이 공교육에서 이루어지면 참 좋을것 같아요. 추천합니다.
자녀교육 참 어려운데..잘 보고갑니다..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