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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최정주 교수님의 '행복한 그림산책' 막바지, 제임스 티소 (James Tissot 1836~1902)의 작품 로부터 시작된다. 때는 벨 에포크 시대(belle epoque 1880~1914), 식민지로부터 걷어들이는 막대한 부의 축적으로 서유럽은 날로 번영하고 있었다. 오직 환락가 물랭루즈와 호화찬란한 레스토랑 맥심만이 그 시절 가장 인기있는 장소였다. 실상 연주회는 사교장으로 전락했다. 바이올리니스트와 피아니스트는 값비싼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다. 수다와 잡담 그리고 벗슬 스타일 드레스 밑단의 자욱한 먼지가 음악을 뒤덮었다. 그랬다. 사람들은 나날이 거위 가슴 솜털보다 가벼워지고 있었고 진중한 소수의 예술가들은 이러한 대중들의 "가난한 지성"에대해 통탄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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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2세기 전 그날의 살롱 음악회의 재현으로부터 시작된다. 다른점이라면 관객의 진지한 태도라 하겠다.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정말로 음악을 듣고자 한다면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들려주리라."
18세기 모짜르트 그리고 21세기 안동혁 바씨스트님의 신조이다.
"화려한 치장, 눈부신 초, 향수의 향내, 부벼대는 사랑스런 팔, 아름다운 어깨, 온갖 꽃다발들, 마음을 뺏는 로시니의 노래, 치체리의 그림! 나의 마음은 지금 하늘 위를 난다!"
-우제리의 여행기 중에서-
우리 스트라디움이가 돌을 맞았다. 수많은 축하 선물들...그중에 단연 최고의 선물은 첼리스트 이호찬님과 안동혁 바씨스트님의 롯시니의 첼로와 더블베이스를 위한 2중주 연주였다. 로시니의 곡은 기악곡조차도 늘 성악처럼 들린다. 첼로는 더할나위없이 유쾌한 메조소프라노 같았고 엄청난 기교와 템포로 인해 수다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베이스는 그의 야심작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의사 바르톨로 같았다.
유머와 위트, 연회장에 울려퍼지는 흥겨운 디베르티멘토처럼, 파티의 샴페인처럼 즐거운 로시니의 음악. 모름지기 돌잔치에선 활짝 웃는게 미덕이다.
어느순간 연주자에서 큐레이터로 변신한 안동혁 선생님 뒤로 커다란 파이프 오르간이 신성(神聖)이 서린 모습을 드러냈다.
"경악해 있던 청중들은 점차 오르간 연주자의 복음같은 메시지를 이해했다. 아니, 저기 저 위에 있는 사람은 단순히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설교는 냉정하고 유리처럼 투명한 진리였다."
-로버트 슈나이더의 오르가니스트 중에서-
오르간 앞에선 수도승과도 같은 쳄발로조차도 타락해 보인다. 실내악에서 피아니스트와 기타 악기 연주자간의 피아노 소리 시끄러 뚜껑을 덮네 못덮네 하는 공방전조차도 오르간에겐 가소롭기 그지없다. 따라서 신은 당신의 악기로 오르간을 택했다. 오직 오르간 선율만이 지상에서 천상으로 날아오른다. 위대한 비상, 텔레만의 오르간 협주곡, 그것은 밀턴의 실낙원 이전 상태로의 회귀였다.
"비극이 끝나자 그로테스크가 부상한다. 사탄이 떠나자 사제가 왔으니, 파가니니가 닦아 둔 길에서 수사복을 입고 대중의 환호를 즐기게 되는 마에스트로는 다름 아닌 프란츠 리스트였다."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 베르너 풀트 지음-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영원한 이별을 그 누가 알겠는가!"
-독일 낭만주의 시인 프라일리그라트-
마담 상드가 쇼팽을 알기 전, 그니까 시인 뮈세의 공식적 연인이면서 동시에 그녀의 자녀 모리스(아들)와 솔랑주(딸)의 가정교사 말피유의 비공식적 연인일 때의 일이다. 요즘들어 그녀는 뮈세의 냉소적 허세도 말피유의 의처증에도 질려 있었다. 본디 교활한 그녀는 그들을 적절히 따돌렸고, 그날밤 베프 프란츠 리스트의 연주를 들으러 그와 동거중인 다구백작부인의 살롱으로 향했다. 연주 한 시간 전인데도 살롱은 벌써부터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극성팬들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그들 대부분은 99.9%가 젊은 여성들이었는데 리스트는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오빠부대를 이끌고 다니는 탑 아이돌이었다. 마담 상드가 혼잡 속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친구를 알아본 마리 다구는 부채를 높이 치켜들며 손짓했다. 마담 상드에게 마리 다구는 속삭인다.
"저들을 봐.....나와 그이와의 관계에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저 가식덩어리들을 보라고!!"
"무시해...그들은 너를 부러워하는거야...두고보라고!! 그와 너의 사랑의 도피 그리고 동거는 가장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로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테니까..."
상드가 허영심 많은 친구를 달랬다.
조상(彫像)같이 흠없는 얼굴, 탐스런 금발의 단발머리를 휘날리면서 희대의 돈주앙이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으며 성큼성큼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에라르 피아노에 앉았다. 여인들은 일제히 오페라 글라스를 꺼냈다. 오늘은 어떤 스타일의 크라바트일까? 일단 그가 치장하면 그것이 뭐든 이튿날엔 사교계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 된다!! 그는 무려 365개의 크라바트를 협찬받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는 최신 패션계의 화신이었다. 그러면 이제 연주를 시작했을까? 아직 아니다. 하인이 뜨뜻미지근한 물이 담긴 양동이를 내온다. 그는 벨벳같은 예술가의 두 손을 씻는다. 이 모든 행위는 일종의 종교적 경건의식처럼 순차적으로 이뤄진다. 이윽고 악마적 연주가 그녀들의 순결을 오염시키고 자극한다. 마치 열병에 걸린 집단 히스테리 현상처럼 그녀들은 픽픽 그 앞에 쓰러진다.
"여자란 동물을 조심하여라!" 이것이 그의 아버지의 유언이었다. 하루는 여인의 품 안에서 하루는 신의 품 안에서 ...요컨데 그의 삶은 애욕과 경건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그 자체였다.
리스트의 사랑의 꿈. 만 37세, 필자의 생각으로는 남자는 이때가 가장 멋있지 않나 싶다. 이태리 출신의 쥬세페 알바네즈(Giuseppe Albanese)가 연주하는 피아노 아래에 나는 전신을 누인다. 그는 연주하고 나는 듣고 있다.....
발라키레프, 무소르그스키, 보로딘, 림스키코르샤코프, 큐이, 이른바 러시아 5인조는 비겁하게도 차이코프스키를 왕따시켰다. 이유인즉슨 그의 음악은, 특히 그의 멜로디는 러시아적이지 않고 지나치게 세련되서 너무 서구적이라는 것. 하기야....서유럽 음악에 대한 무한한 동경은 귀차니즘의 대가, 선배 글린카에서 후배 차이코프스키에게로 전수되었으니까...흡사 메리메, 공쿠르와 교제를 나누며 세련된 서구 문학을 러시아에 퍼뜨린 투르게네프가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쳤듯이....
하지만 그역시 그만의 방식으로 조국 러시아를 사랑했다본다. 세르비아와 터키와의 전쟁에서 슬라브 동맹국으로 개입하게 된 러시아가 부상병들의 사기진작을 위해서 그에게 작품을 의뢰했을 때 밤잠 설쳐가며 단 5일만에 걸작을 완성하지 않았던가!
'하여간 그 천재적인 멜로디 솜씨하고는!!'
유구한 서양음악사에서 멜로디 전개의 대가 두명을 꼽자면 모짜르트와 차이코프스키를 선택할 것이다. 사실 차이코프스키는 평생토록 모짜르트의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선율을 사랑했고 닮고싶어했고 마침내 그리 되었다.
"평범함과 부르주아에 대한 그의 증오는 뛰어난 서정성을 지닌 독설로 넘쳐흘렀으며, 대가들에 대한 종교와 같은 태도는 그를 거의 대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플로베르의 감정교육 1편 중에서-
'미하엘 플레트네프의 지휘라고? 그 러시아의 명피아니스트 플레트네프? 그가 언제 지휘가로 데뷔했지?'
따지고보면 우리시대 명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다니엘 바렌보임, 그리고 정명훈씨도 출발은 명피아니스트였다.
하긴 바그너의 반지 4부작의 그 복잡다단한 오케스트레이션 파트도 피아노 한대만으로도 거뜬히 연주할 수 있다지 않은가!
완전악기 피아노 그리고 지휘......
"못된 자매 연주자에대한 애피소드 하나 들려드릴게요. 한번은 막스 브루흐가 그들에게 피아노 2중주 연주를 부탁했는데, 제법 잘 연주하더란 말입니다. 착한 브루흐는 그녀들에게 2대의 피아노 콘체르토를 위한 곡을 헌정했어요. 그런데 그들이 작곡가의 창작물을 멋대로 고쳐 연주하고는 판권 등록까지 하는둥 저작권을 침해했지요. 그의 불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지요. 말년, 그러니까 1차대전 중에 그는 생계를 위해 서양음악사상 보기드문 수작인 바이올린 협주곡 1번 원본을 그들 자매에게 헐값에 넘깁니다. 그녀들은 그 작품으로 부자가 되지요."
문자 그대로 환상곡이었다. 작곡가는 초연 전까지 바다 건너 스코틀랜드에 가지 못했다. 다년간 유럽 전역의 민요 수집 및 연구와 예술적 상상력만으로 그는 그곳에 다녀왔을 뿐이다.
망망대해 위로 높이 솟은 중세풍의 우울한 절벽, 드넓은 평원, 아름다운 레베카를 위기에서 구하는 기사 아이반호....
한숨과 눈물많은 감상적 10대 소녀처럼 그는 월터스콧의 작품을 읽곤 했다.
그러는 동안에 니콜로 베네데티의 섬세한 손끝에서 스코틀랜드의 야생적 대자연과 신비로운 전설 그리고 민요가 움트고 있었다.
4층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서 조촐한 케이크 커팅식이 있었다. 살인적 스케줄에도 지난 1년간 매주 목요일마다 음감회를 꾸려오시느라 힘드셨을 안동혁 선생님과 사모님 주위로 모여들었다. 멀찍이 바라보니 우리 모두는 클래식 음악 안에 한가족나 다름없었다.
내가 7월에 스트라디움에 왔고 지금이 10월이니까 얼추 4개월 다 되간다. 4개월 밖에 안된거야?! 그런데 이미 스트라디움은 내게 제2의 집처럼 포근하고 안락하다. 객식구가 시나브로 집안 식구가 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대부터 안동김씨 세력에의해 좌지우지 되던 철종대까지 472년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미리밝혔듯이 난 음악 전공자도 아니요. 일개 클래식 애호가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난 스트라디움의 가족 구성원이며 사랑하는 스트라디움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
7월 처음 방문부터 오늘밤에 이르기까지 비록 보잘것 없는 글솜씨랄지라도 매 음감회, 매 미술과 음악 강좌마다 기록을 남기고 있다. 난 내 소소한 기록들에대해 결코 큰 기대를 걸진 않는다. 다만 그 행위로 스트라디움에 조그마한 보탬이라도 된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같은날 2시 최정주 교수님의 행복한 그림 산책은 낼 이어서 계속됩니다. ^^
첫댓글 지독(?)하게 명징한 공연후기에 감탄만이 나오네요. 잘 읽었습니다. 다음모임때도 가보고 싶지만~ 목요일은 늦게까지 일해야 해서~ 우우~
감사합니다♥우리 또 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