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의 추상성과 삶의 구체성
“성경 전체와 사유”로 이끄는 교리
우리는 왜 교리를 공부할까요? BC. 3세기경에 활동한 그리스의 수학자인 유클리드의 기하학(Euclidean geometry)은 그 내용에 있어서 당대의 다른 지역의 수학과 비교하여 아주 새로운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동양의 수학도 이차방정식의 해까지 구하는 수준까지 나갔다고 하지 않습니까?
유클리드의 기하학이 뛰어난 점은 그 사유 방식에 있습니다. 직관에 의하여 명백한 참이라고 받아들인 공리에 근거하여 정의를 만들고, 그 정의에 의거하여 정리(명제)들을 만들며 전개하는 논리 체계는 수학을 실생활의 필요를 채워주는 차원을 넘어서서, 그 자체로 옳은 것을 추구하는 학문이 되게 하였습니다. 동양에서도 논과 밭의 면적을 정확히 측정하여 세금을 부과하는 실용적 필요 때문에 수학이 발달하였지만, 유클리드의 기하학과 달리 동양의 수학에는 “증명”이란 사유 체계가 미약하였습니다.
공리와 정의와 정리라는 논리 체계는 더 깊은 원인이 무엇인지 추구하게 했고, 논리가 더 단단한 내적 적합성을 갖게 했습니다. 그 결과 서양의 수학방식은 단순히 면적의 정확한 측정을 넘어서서 미적분학의 발견과 적용에까지 이르렀고, 물리와 화학과 생물에도 상호 영향을 미처 원소와 핵과 세포처럼 보다 깊은 원리를 발견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동서양에 존재하는 학문과 산업과 정치의 발전 차이는 여러 요소들로 말미암겠지만, 경험적인 필요를 넘어서서 원리를 생각하려는 사유 방식은 중요한 요인입니다.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아” 입구에 있는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곳에 들어오지 말라”는 표현은, 기하학과 철학 간에 사유 방식이 유사함을 나타냅니다. 수학은 신과 대화하는 학문이라고 한 데카르트는 미적분학을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합리론의 뛰어난 철학자이기도 합니다.
저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나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과 같은 교리를 접할 때마다 수학의 냄새를 느끼곤 합니다. 성경 전체의 내용을 주제별로 정리한 교리는 수학처럼 압축된 단어들로 절제되어 표현됩니다. 그래서 사용된 단어들의 뜻과 개념이 무엇인지 미리 알고 있지 않으면, 교리는 성경을 많이 알고 있어도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리고 교리는 앞에 나온 교리를 전제하여 그 내용이 펼쳐지므로, 앞에 나온 교리를 알아야 하고, 교리 상호 간의 관계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교리에 사용된 단어들의 개념과 교리 간의 관계에 대한 기초적 이해가 쌓이면 그때부터 교리는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여 성경 전체를 더 깊게 이해하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다양한 영역을 성경적 관점으로 해석하게 합니다. 많은 수학 포기자들이 수학의 추상성을 인하여 그 안에 담긴 의미와 논리 전개의 질서와 단아함을 모르고 또 실생활에 구체적으로 적용하지 못하듯,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교리가 갖는 다소 추상적 표현을 인하여 안타깝게도 그 안에 담긴 성경 해석의 풍성함과 삶에 대한 구체적 적용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이 전체에 걸쳐서 말하는 먼 원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종교개혁의 의미와 개혁신학의 가치는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할 때 성경의 내용과 궁금한 내용을 치열하게 숙고하기보다 가까운 원인과 결과로 대강 정리하고 싶은 유혹이 있는데 이를 거부하고, 힘들더라도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속성에 따라 이해함으로써 먼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성경 표현과 내용에 내적 적합성을 갖추게 한 데에 있습니다.
이렇게 먼 원인이 전제된 각 교리들을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새겨진 만물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삶에 적용하는 것이 교리 공부의 가치와 묘미입니다. 추상적인 교리를 구체적인 삶을 통해 이해하고 누리는 것입니다.
교리를 잘 설교하거나 강의하려는 교역자는
먼저 교리 자체를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둘째로는 그 교리를 추상적 논리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구절들을 통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로는 그 교리를 우리의 삶과 역사와 자연 등을 통하여 구체성 있게 표현해야 합니다.
그러면 교리 설교와 강의는 차가운 이성으로 딱딱하게 논리를 전개해가는 것이 아니라, 성경과 삶을 보다 깊이 이해하되, 쉽고 재미있고 따스하게 이해하는 것이 됩니다.
예를 들면, 수학은 원을 “한 점에서 일정한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이라고 정의합니다. 이 정의를 이해하려면 “점, 거리, 집합”에 대한 사전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한참 공부하는 중고생들이나 수학 전공자는 이 정의를 이해할지 모르지만, 일반인은 상당수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먼저 원의 중심과 반지름이 그려진 원을 실제로 보여주고, 그 다음에는 컴퍼스의 두 다리로 원을 그리는 과정을 실제로 보여주면, 원의 정의를 많은 사람이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교리도 수학의 정의와 정리처럼 꼭 필요한 단어들로만 서술되어 있는데, 이에 대한 설명을 추상과 논리로 지속하면, 이에 익숙하지 않은 대부분의 성도들은 어려워하기 마련입니다. 이때 추상적인 교리를 성경의 분명한 구절과 구체적인 삶으로 설명한다면 성도들은 교리를 보다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딱딱한 내용으로 차갑게 논리를 전개하시지 않고, 밭에 감추인 보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는 섭리에 대해서는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와 다 세시는 머리카락을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7장만 살펴보아도 예수님은 “세상의 소금과 빛, 등불,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라,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라, 티와 들보,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느냐?,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등과 같이 우리의 생활에서 경험하는 바들을 들어 쉽고, 각인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하실 수 있는 것은 성경 전체를 깊게 아시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새겨진 만물을 정확히 아시기 때문입니다. 교리를 깊이 이해하고 통찰 있게 전달하려는 자는 성경 자체와 삶 자체에 대한 이해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교리를 듣는 자들로 구체성을 통하여 더 깊은 추상성으로 나가도록 이끌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사유하는 만큼 인생을 살고 가정을 꾸립니다. 20년, 30년이 지난 후 우리가 얼마만큼 직장과 가정생활을 잘 했는지는 사유의 폭과 깊이에 달려있습니다. 목회도 하나님의 말씀과 만물에 따라 사유한 만큼 나아갑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눈앞의 현상에 현혹되지 않고, 더 깊은 원리를 탐구하기 위해 신자는 사유하고 사유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만큼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곳곳에서 찾아 발견할 수 있고 누릴 수 있습니다.
가까운 원인에 머무는 신학과 목회는 실생활의 필요를 즉각적으로 채울 수는 있겠지만, 기독교를 진리의 차원에서 대증적 요법으로 전락시키기 쉽습니다. 그런 대증적 요법의 기독교는 사회로부터 존경과 권위를 잃기 쉽고, 실용학문으로 대우받기 쉽습니다.
신자들은 신앙생활을 할수록 사유할 줄 알아야 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지 근본 원인을 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사유를 함에 있어 성경 전체의 내용이 요약된 교리는 큰 도움이 됩니다. 우리에게 사유하는 방식과 깊이를 보여주고, 구체적 삶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우리를 자극합니다. 사유하는 자일수록 교리를 깊이 이해하고, 삶에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찾아 발견하는 자일수록 교리를 구체적으로 풍성하게 이해합니다.
정요석 목사(세움교회)/합신, 백석신대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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