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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해야할까? 과연 효과는 의문스럽지만, 무엇이든 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당시 대만의 네덜란드인들이 처한 상황이었습니다. 코예트의 부관, 야콥 발렌틴(Jacob Valentun)은 본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정성공 부대의 시선을 자기쪽으로 돌려(즉 스스로 미끼가 되는 위험을 감수하고) 어떻게든 해보기 위해 포병들을 시켜 중국 선박을 향해 발포했습니다. 하지만 피해는 없는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코예트 휘하, 보병 부대 장교인 토마스 페델(Thomas Pedel) 대위가 자신만만해하며, 자신이 240명의 병력을 이끌고 저 중국인들의 상륙을 다른쪽으로 유도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방법이 없었던 코예트는 이 안쓰러운 운명의 씩씩한 전사들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와는 별개로 일단의 병사들이 헥토르 호에 타서 엄청난 숫자의 정성공 함대를 향해 돌진했습니다.
하지만 정성공에게는 그다지 감흥스러울 상황은 아니었고, 그는 60척 가량의 휘하 선박을 동원해서 헥토르 호를 공격하게 했습니다. 커다란 배인 헥터르 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소형이고 함포도 2문 정도였지만, 숫자가 너무 많았습니다. 헥토르 호는 작은 배 수척을 격침시켰으나, 곧 6척이 넘는 소형 선박이 헥토르 호를 포위했습니다.
코예트는 요새의 성루에서 이 광경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곧 엄청난 포격이 서로 벌어지며 포연이 올라 구경자들은 전투의 향방을 알 수가 없었고, 네덜란드인들은 부디 헥토르 호가 승리를 거두고 귀환하길 바랬을테지만, 곧 어마어마한 폭음 소리가 펑, 하고 터졌습니다. 바닷물이 치솟아올랐고, 제란디아 성의 창이 흔들거렸습니다.
연기가 걷히고, 바다에는 헥토르 호도, 포위하던 소형 선박들도 없었습니다. 헥토르 호의 화약고가 폭발하면서 주위를 날려버렸던 것입니다. 피해는 모두에게 공평한것이었으나, 3척의 배 밖에 남지 않은 VOC에게 이것은 더욱 큰 타격이었습니다. 곧 남은 배들을 향해 중국 소형 선박들이 무리를 지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우수한 함포의 힘으로 네덜란드 선박들은 저항을 계속했지만, 정성공의 선박들은 어마어마한 숫자였습니다. 곧 스흐라벤란데 호와 빈크 호의 후미에서 2척의 선박이 갈고리를 걸었습니다. 마리아 호는 이 광경을 보고 공해상으로 빠져나왔습니다. 네덜란드 수병들은 이쪽 배로 건너오려는 중국인들을 막고 상대편의 배에 폭약을 던져 저지했습니다. 그러나 곧 이어 수많은 선박들이 접선을 했고, 배의 사방에서 중국인들이 스흐라벤란데 호에 튀어올라왔습니다.
극단적인 선택이 필요했습니다. 네덜란드인들은 갑판에 배치된 전방 함포를 배에 들어오는 중국인들을 향해 쏘았습니다. 배는 크게 손상되었지만, 중국인 선봉대의 기세를 물리칠 수는 있었습니다. 다시 배를 장악한 네덜란드인들은 쇠사슬을 제거했습니다. 하지만, 정성공의 매서운 공격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그가 선택한것은, 그가 증오해마지 않는 아버지의 전술이었습니다.
네덜란드 인들은 망연자실하면서, 불길을 넘실넘실 뿜어내는 선박들이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박들안에 각종 인화성 물질이 가득할것은 말할것도 없는 일입니다. 선박들은 스흐라벤란데 호에 들러붙었고, 곧 불이 이쪽의 선박까지 옮겨 붙었습니다.
불길은 밧줄을 타고 돛으로 옮겨붙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폭약으로 달라붙으려고 넘실거렸고, 네덜란드인들은 죽을 힘을 다해 불길을 잡으려 필사적으로 달려들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 재앙이 닥치기 직전에 불을 잡는데 성공했습니다. 그 후 스흐라벤란데 호와 빈크 호는 필사적으로 공해상으로 달아났습니다. 정성공은 멀찌감치 거리를 지키면서 그들을 보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다시 본 사람은, 이곳에 있는 사람 중에는 없었습니다. 두척의 배는 대만 북쪽의 네덜란드인 거주지에 도착하여 정성공 부대의 침입을 알렸고, 그 후 나가사키로 피난했던 것입니다.
VOC의 몇 안되는 수군 전력이 완전히 박살날 무렵, 240명의 병력을 이끈 토마스 페델 대위는 제란디아 요새 북쪽 즈음에서 버티며 수천이 넘는 정성공 부대를 막을 준비를 했습니다. 최소한 페델은 자살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가 이 공격에 자원한것은, 막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그는 노란 얼굴의 중국인들을 몹시 같잖게 여겼고, 곽회일의 반란을 진압하면서 자신감도 얻었던 것입니다.
"저자들은 총 소리와 화약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다! 첫 번째 사격으로 몇 명이 쓰러지지 않아도, 그 즉시 저 놈들은 뿔뿔히 흩어져 달아날 것이다!"
여담이지만, 그가 이렇게 중국인들을 공격하는일에 열성적이었던것은, 그의 아들 빌렘이 과거 중국인들과 싸우다가 한 팔을 잃은 탓도 있었습니다.
VOC 병사들은 조준 사격을 위해 중국인들이 사정거리에 들어오게 전진한 다음, 정렬해 있는 그들을 향해 3차례에 걸쳐 소총 사격을 가했습니다. 페델의 계산대로라면 이 시점에서 저 천하고 야만적인 중국인들은 대오가 깨지고 바닷물로 뛰어들어 목숨을 구걸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성공 부대는 과주와 진강, 남경에서 목숨을 건 싸움을 했고, 만주족의 수많은 기병대를 상대로 승리했으며 십만이 넘는 부대로 움직이며 수만 부대의 적과 싸워온 군대였습니다. 선봉을 맡은것은 이름도 높은 철인 부대였던 것입니다. 페델은 그들을 곽회일 반란 당시의 겁 많은 농부들과 동일하게 여겼지만, 철인 부대는 바로 옆에서 동료가 총알에 맡아 죽어가도 꼼짝도 안하고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VOC 소총 부대의 공격이 전혀 인상을 주지 못할 무렵, 철인부대의 뒤에서 정성공의 군사들이 응사에 나섰습니다. 하늘이 어두워질 지경으로 화살의 폭풍우가 몰아쳤습니다.
VOC 소총수들은 반항 한번 못하고 쓰러져갔습니다. 그 사이 그들의 측면으로 다른 정성공 부대가 접근했습니다. 페델은 소총수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독려했지만, 많은 병사들은 겁에 질려 총을 내던지고 달아나는 판국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정성공은 더 기다릴 것도 없이 전병력을 동원해 적을 몰아부쳤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던 소총수들 마저도 철인 부대에 의하여 처참한 모습으로 진압되었습니다. 118명이 전사했고, 페델 대위도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코예트는 참담한 심정으로 일지에 그 날 받은 인상을 기록했습니다.
─ 방패 뒤로 머리를 숙이고 몸을 가린 채 저들은 광포함과 더불어 불굴의 용기로 아군의 진영을 돌파하려고 했다. 마치 목숨 하나를 집에 여분으로 두고 오기라도 한 듯이 총알이 빗발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압박해 들어왔다. 아무 생각도 없는 자들이란 말인가? 자신들의 뒤를 동료들이 따라오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고 그저 미친 개처럼 돌격하기만 할 뿐이었다.
날이 저물기도 전에 항구는 정성공 부대에게 완전히 접수되었고, 제란디아 요새와 프로빈샤 요새는 각기 포위되어 서로 전혀 지원을 보낼 수 없는 판이었습니다. 코예트는 부하 몇명을 작은 배로 팽호 열도에 보내 땔깜과 물자를 구해 오게 했지만, 그 마저도 정성공 부대에 발각되어 13명의 병사들이 붙잡혀 왔습니다. 그들은 배에 실려져 대만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배에 타고 있는 상태에서, 13명은 탈출 계획을 세웠습니다. 쉬운 일은 아닐테지만, 그대로 있다간은 대만에서 무자비한 고문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던 것입니다. 배에 중국인들은 30명 남짓에 지나지 않았고, 대다수는 그저 갑판에 누워서 잠만 잘 뿐이었습니다. 13명은 제란디아 요새가 눈에 보이는 순간, 중국인들을 모조리 제압하고 요새 쪽으로 접근하기로 계획을 짰습니다. 그런데, 13명의 중의 한명인 프랑스 용병이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에티엔이라는 인물이었는데, 그는 이 탈출 계획이 현실성이 없다고 보았고 오히려 계획을 중국인들에게 밀고하고 맙니다.
12명은 꽁꽁 묶여 정성공 앞에 끌려왔습니다. 정성공은 이 네덜란드 인들이 울면서 목숨을 살려달라고 빌지 않자, 격분하여 그들의 코와 귀와 손을 베라고 명령했고, 처참한 모습이 된 그들은 몸통과 목을 오랏줄에 매달린 채로 제란디아 요새로 보내졌습니다. 그나마 제란디아 요새는 바다로 둘러쌓여 있고 식량도 비축해두고 있어서 상황이 괜찮았습니다. 문제는 프로빈샤 요새였습니다.
프로빈샤 요새 안은 피난해온 민간인들로 인해 북적거렸고, 식량 사정은 매우 열악했습니다. 요새 안의 우물은 무너져 내렸고, 얼마 되지 않은 병력으로 감시를 지속하느라 병사들은 수면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화약의 경우는 절망적이었는데, 비축분이 단 한번의 수비용 정도 밖에 남지 않았던 것입니다. 코르넬리스 로제빈켈(Cornelis Rosewinckel)이라는 간부가 화약을 빼돌려 시암에 팔아 치웠다는 소문이 돌아 비난의 목소리가 열었지만,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로제빈켈은 정성공 부대의 첫번째 공격에 이미 전사했던 것입니다.
제란디아 요새에서 코예트는 평의회를 소집했습니다. 그리고 프로빈샤 요새의 구원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고, 정성공과의 협상 쪽에 의견이 기울었습니다. 두 명의 특사가 선택되었는데, 그들에게 내려진 임무는 '프로빈샤 요새의 상태를 주요 안건' 으로 다루고, 절대로 VOC가 매우 열세에 처해있다는 인상을 정성공에게 주지 않도록 하는, 까다로운 요구가 내려졌습니다. 이 시점에서 네덜란드인는 '이제 선교 활동은 끝이 났다' 고 탄식하며 대만의 지배자가 정성공이 될것이라 판단을 내리긴 했지만, 정성공이 제란디아 요새를 유지시켜 자신들의 무역 거점을 남기게 해줄 것이라는 희망은 가지고 있엇던 것입니다.
특사들은 몇 명의 호위 무관과 짐꾼들을 대동하고 제란디아 요새 밖으로 나와 남쪽으로 길게 뻗힌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2킬로미터 남짓 걸어 그들은 정성공 부대에 접근했습니다.
프로빈샤 요새의 포위는 사실 그렇게 엄중하게 진행되고 있진 않았습니다. 정성공은 요새의 항복은 어차피 코 앞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성가신 일을 벌이기 보단 12,000명의 병력만 남겨두고 나머지 부대는 섬의 각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 파견시켰습니다. 대만 전역에서 원주민들은 정성공 부대에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특사들은 정성공의 부대를 지나면서, 철인 부대를 발견하고 신경이 예민해졌습니다. 보통 병사들은 갑옷이랄것도 없는 옷에 화살 하나만 덩그러히 가지고 있는 수준이었지만, 게중에서도 고도로 훈련된 정예병들도 있었고 이상한 갑옷에 거대한 칼로 무장한 철인 부대는 공포심을 줄만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가장 놀라운건 철인 부대가 아니었습니다. 특사들은 정성공의 흑인 경호대를 보고는 결국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어린 시절 부터 정성공과 함께한 흑인 경호대는(정지룡이 데리던 부대는 정지룡이 북경으로 압송된 후 만주족에 고용되기도 합니다) 2개 부대가 있었는데, 10년이 넘게 중국 본토에서 싸우며 전투에는 이골이 난 정예였고 부대내에서도 특권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정예 소총수 중에는 아프리카 흑인 외에도 인디언들도 보였으며, 이 흑인 부대의 신참들 가운데서는 과거 VOC 밑에서 노예로 부림당하는 흑인들도 보였습니다. 정성공의 밑에서 그들은 채찍질에서 자유를 보장받고, 대신에 전투원으로 종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정성공은 특사 앞에 바로 나타나진 않았습니다. 막사로 안내된 그들은 곧 정성공이 올거라는 말만 들으며 한참동안 앉아있었는데, 정성공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완전군장을 한 수백명의 용사들이 대단한 규율을 과시하며 그들을 스쳐지나갔고, 특사 일행을 호위하던 무관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입을 열었습니다.
"저들은 소수의 병력일 뿐이오."
곧이어 정성공 부대의 부관이 오더니, 특사 일행을 데리고 다른 막사로 이동했습니다. 이동하던 길에 특사 일행은 중무장을 한 병사들이 매서운 기세로 지나가는것을 보았고, 호위 무관은 또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외곽 진지에 있는 마을로 중국인들을 정착시키기 위해 파견되는 모양이군."
하지만, 특사 일행은 그 두번째 부대의 병사 중에, 분명히 첫번째 부대의 진군에 끼어있었던 사람들이 있다는것을 눈치챘습니다. 뻔한 속임수를 겪고 나서야 그들은 마침내 정성공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세심있게 차림을 한것이 분명한 정성공이 잘 빗겨진 머리에 치장을 한채 앉아 있었고, 관복을 입은 책사들과 장수들의 그의 옆에 도열해 있었습니다. 특사들은 모자를 벗고 예를 취하고는, 정성공을 "전하" 라고 부리며 코예트의 서한을 전달했습니다. 서한은 죽은 페델 대위의 아들이 중국어로 번역한 것이었습니다.
서한에서 코예트는 정성공을 "연평왕"으로 부르면서, 서로의 상황이 달라 만나본적이 없음을 애석해하며, 정성공이 함대를 이끌고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우의를 나누기에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과거 정씨 가문과 네덜란드 인들이 힘을 합쳤던 사례를 줄줄히 열거했습니다. 하지만 정성공은 서한을 다 읽고는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나로서는 네덜란드 인들이 다른 "인디언" 들을 대하는 것 이상으로 나를 대한적이 없는것으로 아네만은. 그리고 경험으로 떠올리자면 이 자들의 약속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동안에만 유지가 되더군. 네덜란드 인들은 나에게 설명을 요구할 어떤 권리도 없네. 나는 만주족과 전투 중에 있고, 그래서 대만을 손에 넣을 필요가 있네."
그리고 네덜란드 인들이 떠날것을 요구했습니다.
"너희 네덜란드인들은 오만불손하며 몰상식한 자들이다. 너희는 지금 내가 베풀고 있는 자비도 하찮게 여기고 있지 않은가. 내가 듣기로 너희 요새에 있는 자들은 한 줌 밖에 안된다고 하던데, 그럼에도 오만하게시리 내가 이끄는 강대한 군대를 상대하려고 하니, 너희는 스스로 최악의 처벌을 받겠다고 자청하는 것이 아니냐. 너희는 이를 견디겠다고 고집하는데, 왜 현명하게 처신하려고 하지 않는가. 너희는 패배를 맛보고 나서야 너희의 힘은 내가 가진 힘의 1,000분의 1도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더냐."
"이번에 너희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너희가 지금껏 경이적인 작품을 만들어냈다며 그토록 자랑해 마지 않던 너희의 철선들이 나의 정크선에 맞서다 어찌 되었는지 말이다. 하나(헥토르 호)는 어떻게 불에 타고…… 연기 속으로 사라져 버렸는지, 또 나머지 것들은 똑같은 꼴을 당할 뻔하다가 어떻게 간신히 바다 멀리 도망치게 되었는지 말이다."
"뭍에서는 페델 대위란 자가 변변치 못한 자만심에 취해 있다가 그 자 만큼이나 어리석은 부하들과 함께 나의 군사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들이 나의 용맹한 전사들을 보자마자 무기를 내던지고 목을 길게 빼든 채 오로지 선처만을 기다리던 광경을 너희는 보았다. 이 정도면 내 부하들에게 저항 한 번 제대로 못하는 너희의 무력함이 여실히 입증되고도 남지 않느냐!"
"원한다면 보다 확실한 증거를 얼마든지 들려줄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너희가 제대로 알아듣기를 미루며 나의 말을 거부하고 파멸을 자초한다면, 나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즉각 너희의 요새를 쓸어버리라는 명을 내릴 것이다. 나의 민첩한 병사들은 (프로빈샤 요새를) 공격하고 점령하여 돌멩이 하나 남김없이 모조리 없애버릴 것이다. 내가 마음먹고 군사를 일으킨다면 천지라도 움직일 수 있으며, 내가 가는 곳마다 승리는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러니 나의 경고에 유념하여 문제가 잘 풀리도록 하라."
사실상 협박이었습니다. 그리고 철선 운운하는 부분은 전형적인 과장으로서, 물론 당시 네덜란드 선박들은 목선이었습니다. 정성공은 그 전에도, 그 후로도 저런 과장법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특사들은 1622년 명 왕조가 칙령을 통해 대만을 네덜란드에 할양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건 거짓말이건 간에, 정성공은 법적인 문제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고 그저 다음날 아침 8시까지 모든 네덜란드 인들이 모두 대만과 정성공의 눈 앞에서 사라질 것을 명령했습니다. 자신의 요청을 받아들인다면 네덜란드 인들은 요새 위로 오라녜공 빌렘의 기를 내걸면 되고, 만약 협조할 의사가 전혀 없다면 붉은 핏빛 기를 내거라고 말입니다.
특사들은 정성공에게 간청을 했지만,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실망만을 안은채 돌아와야 했습니다. 돌아오기전 허가에 따라 그들은 프로빈샤 요새에 들어가 현지의 사정을 들어보았는데, 주민들은 요새의 보유 화약이 형편없으며 식수는 여드레를 버티기도 힘들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일행이 들고 온 소식에 제란디아 요새의 네덜란드 인들은 당황해하며 어찌 할 줄을 몰랐습니다. 단지 코예트만이 침착을 유지했는데, 평의회의 동료들에게는 울화를 참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판 데르 란의 주장에 동조하며 코예트 자신이 있지도 않을 침공에 대비한답시고 재정을 낭비하고 있다고 비난하던 자들이, 이제는 고국과 수만리 떨어진 이곳에서 적군에 포위된 채로 있었던 것입니다. 코예트는 일지에 기록했습니다.
"그곳에 그들이 앉아 있었다. 철없는 표정으로 머리만 긁적거리면서 말이다."
밤을 새는 토론끝에, 제란디아 요새는 일종의 기적을 바라며 붉은 핏빛 기를 내걸었습니다. 모두가 두려워했지만, '잔혹한 침략자' 정성공에 대항하는것을 일종의 도덕적인 승리와 의무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정성공은 제란디아 요새의 결정을 확인했지만, 이와는 별개로 협상 대표를 구성하여 프로빈샤 요새로 보냈습니다.
협상 대표라곤 하지만, 그들이 프로빈샤 요새에 전한것은 지극히 간단한 선택이었습니다.
"즉각 투항하여 목숨을 살리던지, 아니면 요새 내 모든 생명의 죽음을 각오하던지, 선택하라."
프로빈샤 요새를 지키던 야콥 발렌틴은, 모두를 살리기 위해서 요새를 정성공에게 내주었습니다. 이제 남은것은 제란디아 요새 뿐이었습
첫댓글 정성공이 언급한 인디언은 아메리카 원주민인가요? 아니면 인도인들인가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정황상 아메리카 원주민 같네요. 네덜란드 서인도회사가 뉴암스테르담에 자리를 잡고 있던 시점이고, 아직 영국에 넘어가기도 전이니까
정성공은 아프리카 흑인들과 인디언들과의 접촉으로 백인들에게 반감을 가졌던 건가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1000만
재미있기는 이 글이 훨씬 재미있는데 여기는 댓글 안달리고 한국쇼군햏 글에만 잔뜩 달리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