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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곡박씨들의 카페
 
 
 
카페 게시글
근현대사 한일합방을 주도한 조선 사대부 명단 공개
박유승(박노동) 추천 0 조회 110 10.08.15 14:03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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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0.08.16 21:01

    첫댓글 박씨가 4명이네요, 을사오적 중 저 유명한 박제순을 비롯하여 박제빈, 박기양이 일본 귀족으로 훈작을 받았네요. 모두 반남박씨네요. 반남은 조선 중후기 명벌이었지요. 역시 친일에도 명문반열에 올라왔네요. 후에 죽을 때 까지 중추원 부의장으로 영화를 누렸던 박영효도 있고요. 그리고 여기는 없지만 박중양 등등.....

  • 작성자 10.08.15 14:18

    박제빈-박남박씨
    1907년 승녕부의 부총관에 임명되었고 친일 활동에 적극 나섰다. 1909년 안중근에 의해 이토 히로부미가 사살되었을 때 민병석, 김윤식 등과 함께 장례식에 참가하여 조문한 것이 한 예이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후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고,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찬의로도 임명되었다. 1911년에는 경학원 부제학에 임명되었으며, 친일 단체인 대정실업친목회에도 가담했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선정되었다.

  • 작성자 10.08.15 14:18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도 들어 있다.

    박제빈의 작위는 박서양에게 습작되었는데, 박서양의 양자인 박승방이 습작을 거부하고 독립 운동에 나서 광복 당시에는 습작 받은 후손이 없었다.[1]

  • 작성자 10.08.15 14:23

    박기양 -반남박씨 박제억의 아들이나 박제만에게 입적되었고, 1888년 과거에 급제한 뒤 관직에 올랐다.

    대한제국 관리를 지내면서 1904년 일본의 황무지 개척권 요구와 1905년 을사조약 체결을 적극 반대하였다. 특히 을사조약 체결 때는 일본 헌병대에 구금되어 있기도 했으며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여 지냈다.

    그러나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으면서 일제의 통치에 협조했다. 1918년 서화협회 고문, 1921년 친일 유림들이 모인 경학원의 부제학에 임명되었고, 1925년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참의로 임명되었다.

  • 작성자 10.08.15 14:23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선정되었다.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도 들어 있다.

    함경남도 함흥 출신의 부인과의 사이에 3남매를 두었다. 이 가운데 차남이 연극인으로 유명한 박진이다.[1]

  • 작성자 10.08.15 14:44

    우리 시조왕의 얼굴에 똥칠을 한 반납박은 우암 송시열에 대적했던 박세체, 숙종의 인현왕후 폐위를 목숨바쳐 반대했던 최대의 충절 박태보, 실학의 태두 박지원 개화파의 선구자 박규수 등 훌륭한 인물의 산실었는데, 역시 권력의 달콤함에 빠지니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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