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이야기)
습지의 꿩 열걸음 걷다 한 번 먹이를 쪼고
백걸음 걷다 한 번 물을 마시네
울타리 안에 갇혀 길러지는 걸 바라지 않지
신이 울타리 안에서 비록 왕과 같을지라도
이것이 좋지 않는 일이니까(양생주) (야생과 가축, 정답없네)
(갑골이야기)
장자가 복수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초나라 왕이 두 사람의 사자를 먼저 보내 그에게 말을 전했다
국가 안의 모든 일을 선생에게 맏기고자 합니다
장자는 낚싯대를 쥐고 돌아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초나라에 죽은 지 이미 삼천년이나 된 신령한 거북이 있는데
왕이 이것을 상자에 넣고 비단보로 싸서
묘당안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내가 들었습니다
이 거북이 죽어서 뼈를 남겨 귀하게 되기를 원했을까요
아니면 차라리 살아서 진흙탕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원했을까요 두 사람의 대부는 말했다 차라리
살아서 진흙탕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원했을 테지요
장자가 말했다 그만 돌아가시요 나는 앞으로도
진흙탕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닐 것이오(추수) (현생과 내생, 정답 무)
이 이야기를 인생의 궁극적 정답은 무엇이고,
나는 누구이며, 온전한 참음 무엇인가라는
궁극적인 질문에 답을 찾아 철학은
분별의 쳇바퀴을 끝임없이 돌리므로
문화와 문명을 발전과 발달시키는 철학서 등을 만들고
불교는 싯달타 등이 부처나 불법이 정답이라고
불경 등을 만들고, 유교는 공자 맹자 등이
도덕천의 인이 정답이라고 사서삼경 등을 만들고,
도교는 노자 등이 유무상생의 도가 정답이라고
도덕경 등을 만들고, 기독교는 모세와 바울 등이
야훼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가 정답이라고
성경을 만든 것처럼
장자를 대단한 선생이나 정답으로
이미 결론을 내어놓고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말들로 분별하여
장자를 도구로 스스로 대단한 선생이 되는
무례한 오지랖을 펼치고 있지만
이 이야기의 본질은 동물의 야생과 가축이나
사람의 현생과 내생에 대한 유불리를 세상의
가치 기준을 따라 분별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겨야 하고,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겨야 하는 것이 정답처럼 동물이나 사람의
삶에 대한 여러가지 논리의 이론은 무성하지만
온전한 분별이나 정답이 없다란 넉두리로 바로 알 때
참이 없고 모든 것이 헛된 이 세상에서
세상의 가치 기준을 따라 원인이나 이유나
결과 등의 유불리를 분별하여 연합이나 야합하여
상생이나 공생하려고 정답처럼 철학서나 종교의
경전 등을 만들어 스스로를 속이는 삶이나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수행하는 삶은
바른 정답의 삶이 아닐 뿐 아니라 우리란 이념을
진짜 나로 착각하여 내가 원하는 너로 변화시켜
정복하여 다스리려는 감탄고토의 연기인
무례한 오지랖이 된다
따라서 온전한 지혜는 무분별 지혜이고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기쁨과 평안과 자유가
온전한 조화를 이룬 행복을 소유하여 누리는
사랑으로 혼자서는 불가능하고 또 너와 내가 아닌
스스로 거듭난 온전한 우리만 가능한 것으로
그 실상은 부모나 보호자가 없이 가능한 어린 아이의 삶이나
야훼 하나님 없이 가능한 에덴동산 아담과 하와의 삶으로
결국 스스로 만든 나만의 에덴동산에서만 온전한 행복을
소유하여 누리는 무주상의 삶인 진짜 사랑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