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다훈三多訓
1955년에 교사가 되었는데, 학교가 도지정 국어과연구 학교였다. 6·25를 겪은 뒤라 미국이 보내주는 옥분과 전지분유로 아이들 주린 배를 채워야 했으니 교육환경이나 학력은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학교장은 연구공개 때 교육성과를 가시적으로 보여 주려고 했다. 아이들 두뇌를 열어 보일 수는 없으니, 글짓기 실적을 보이는 데 착안을 했다. 학교장은 나에게 글짓기 행사에서 입상자를 많이 내라고 했다. 글짓기는 국어 교육의꽃이니 가장 좋은 가시적인 실적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나는 수업 지정반에다가 문예부까지 맡았고, 글짓기상을 받아오면 상장을 액자에 넣어 교장실 복도 벽에 내걸었다. 문제는 고학년에도 문맹자가 있는 형편에 아이들 실력이 문제였다. 그래서 몇 가지 비상수단을 쓰기로 했는데 그중 하나가 구양수의 삼다훈(三多訓)을 차용하기로 한 것이다. 구양수(歐陽)는 당 · 송 8대가의 한 사람의로 어려서부터 글을 좋아해서 세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와 호북의 숙부구양엽의 집으로 갔는데 살기가 어려워 모래판에 막대로 글씨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23살에 진사시험에 장원을 하고 황실도서관 사서가 되었다. 그의 문장은 간결하고 선명했는데 성격도 문장처럼 선명하여 잘못된 제도나 정책은 서슴없이 비판하다가 황실도서관에서 2년 만에 좌천되었다. 그 후 계속 밀려서 안미성의 서주 지사가 되었다. 그는 그곳 풍경에 빠져 정자 취옹정을 짓고 술을 즐기며 취옹정기記)」라는 수필을 썼다. 이 글은 중국 문학상 가장 빼어난 작품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다. 그러자 낙양의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글을 잘 쓸 수 있는 비법을 물었다. 그때마다 세 가지를 명심하라고 일러 보냈는데,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라는 삼다훈(三多)이 그것이다. 내가 이 삼다훈을 시 쓰기 지도에 차용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급한 공문이 있어 아이들에게 시 쓰기 자습을 주었다. 늦게 쓰는 분단은 청소를 시키겠다는 엄포까지 놓고 나왔는데 금방 떠들어서 나는 복도에서 발길을 멈추고 몰래 교실로 귀를 기울였다. "참 별일이야. 시 쓰기로 경쟁을 시키다니. 차라리 청소를 하는 게 좋겠다." "선생님이 시는 사랑의 노래라고 했잖아, 누가 사랑 좀 내놓아 봐라." 다시 들어가서 야단을 칠까 하는데, 3분단 분단장의 소리가 들렸다. "우리 분단은 잘 쓴 시를 본받아 쓰자. 누가 아는 시 낭송해 봐라." "모두 알고 있는 강소천 선생님의 닭 있잖아. 그 시를 내가 낭송해 볼게." 국어책에 있는 동시 「닭을 낭송하는 지연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또 한 모금 입에 물고/구름 한 번 쳐다보고,
"그걸 본받아 쓰면 표절이잖아. 선생님은 족집게라 금방 아실 거야."제목과 내용을 다르게 쓰는데 무슨 걱정이야? 빨리 쓰기나 해.“
책을 낭송한 지연이가 금방 다 썼다고 했다. 아이들이
젖 한 모금 빨아먹고/ 엄마 얼굴 쳐다보고 또 한 모금 빨아먹고
“아, 정말 멋진 시다. 닭보다 더 재미있다. 그런데 제목이 뭐냐?? 제목은 하기야 젖 먹는 아기를 물 마시는 닭의 모습으로 생각을 한 거야."
나는 교무실로 가서 급히 공문 처리를 하고 교실로 갔다. 다쓴 분단은 발표를 하라니까 3분단의 예나가 일어섰다. 제목 글 점심시간'이라고 했다.
밥 한 숟갈 입에 넣고/ 김치 한 쪽 집어먹고//
또 한 숟갈 입에 넣고/ 김치 한 개 집어 먹고//
나는 웃음이 나오는 것을 애써 참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네 머리에서 나온 사랑 노래냐? 밥 더 먹어라. 또 다른 사람“ "저요 제목은 '참새' 입니다. 우리 집 울타리의 수다쟁이 참세요.”미화가 침을 꼴깍 삼키더니 목소리를 가다듬어 낭송을 했다.
이쪽으로 날아와서 조잘조잘 수다 떨고/
저쪽으로 날아가지/ 책 콩알대고,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박수를 쳤지만 나는
그것도 시라고 썼냐? 시가 무슨 말장난인 줄 아느냐?""청소는 3분단이다. 다른 분단은 시 쓰기를 숙제로 한다."아이들을 보내고 나오는데 지연이가 책상을 옮기며 중얼거렸다.책상 한 개 옮겨 놓고 비로 싹싹 쓸어내고 다시 한 개 옮겨 놓고 물걸레로 빡빡 닦고.이 지도 사례는 경험을 좀 과장해서 그 무렵 서울에서 있은 전국글짓기지도교사 연수회에서 발표를 했고, 그 학교가 있는 고장을 '동시의마을'로 만든 방편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그런데 며칠 후 전화가 왔다. 교육평론가들이 교육은 창의력을 길러야 하는데 그런 모방은 좋지 않다고 한다는 것이다. 이어서 반론도 있었다.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신랄한 지성과 비판정신이 강했던 프랑스의 볼테르(Voltaire)는 '독창력이란 사려 깊은 모방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참된 모방은 가장 완전한 독창이다'라고 한 지론을 내세우며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모방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라고했다. 실제로 우리의 의식주 양식도 조상들이 살아온 방식의 모방이고,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을 그대로 익혀 쓰는 것도 모방이니 그것도 좋지않다고 할 것이냐고 했다. 교육의 창의력만을 주창하는 사람은 자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