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꼬마리
김사랑
비행기운이 하얗게 길게 선이 그려져 있다. 이런 날이면 멀리가 있는 그가 그리워전화를 했다. 그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기타를 치고 있었다며 영상으로 폰을 전환한다. 가끔 들려주던 ‘아랑훼즈(Aranjuez)’를 세워둔 폰이 쓰러지면서 통화가 끝이 나곤 했다. 그러던 그가 잠시 왔다. 그리고 떠나려 했다. 그러나 떠난 기억은 또 하나의 기억을 자꾸만 끌어내고 있었다. 그가 오랜만에 닻을 내린 나룻배처럼 저만치서 고른 이를 드러내고 어리광부린 듯한 눈빛을 내보이며 차를 마시고 있다.
그는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대기업에 다녔다. 그러나 대기업의 구조상 빠른 진급은 빠른 은퇴를 의미한다. 은퇴 전에 가 보지 않은 길을 가고 싶다 했다. 멀리 날아가서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 보겠다고 했다.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떠난다고 할 때 그의 생각을 존중하였고 잡지 못했다. 찬란했던 과거를 묻어 버린 채 낯선 곳에서의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과, 생소한 곳에서 다름을 인정하며 겪어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단하게 애를 써야 하는 것인지, 그러나 그가 가려는 길이 설렘으로 가득 찼다는 확신을 믿었다.
옷을 갈아입던 그녀가 “앗 따가워” 하며 치마 단을 들춰보다 말고 “어머나 시골에서 도꼬마리씨앗이 따라 왔네,”라고 말하며 떼어내어 휴지통에 버리려다가 씨앗을 주방 한 쪽에 올려두었다. 고향 묵밭에서 옷깃에 딸려왔다는 이유만으로 버리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이 씨앗의 치맛자락을 움켜쥔 꿍꿍이를 읽어내어 대충 땅에 묻어주었다. 씨앗은 흙을 밀어 올려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그런데 계절이 바뀌어 꽃이 피고 열매를 달자 종(種)이 다른 식물들의 아우성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이상하게 생겼다고 난리였다. 그럴만도 했다. 열매가 가시로 되어있으니 모두들 수군댔다. 열매 전체가 흉기로 되어있다며 불어오는 바람결에도 조심하라는 소리가 들렸다. 함께 어울린다는 것이 이렇게도 어려운 것인 줄 몰랐다.
시골에서는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흔들리고 찬비가 내리면 비를 맞으며 키를 쑥쑥 키우면 되었다. 외모에 대한 지적은 없었다. 시골의 밤하늘에는 별도 많았고 꿈도 많았기에 이곳에 뿌리내리고도 잘 살 줄 알았다.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음에도 자기 몸에 닿을까봐 가지를 오므려 닿지 않으려 하고 주위에서 눈길조차 거둔지 오래였다.
시골에서는 흔하다. 온통 날카로운 가시라서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랬던 그녀가 단지 고향에서 딸려왔다는 이유 하나로 묻어주고 가끔 들어다 봤을까? 그녀는, 멀리 있는 그가 도꼬마리 열매처럼 외로웠을 거란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정착을 하며 뿌리를 내리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부호와 문장을 만들고 또 지웠을까, 이제는 그 나라 시민권을 취득하였고 여유가 생겨서 현재 발목까지 차오르는 만족한 생활이라 했다.
그러나 그녀는 늘 그가 그립고 보고 싶은 욕망이 가슴에 그득했다. 자주 영상통화를 하면 된다지만, 그 마음 깊이를 어찌 화면에 다 담아낼 수 있을까. 그와의 통화에는 음성조차 떨림에 주의하여야 한다. 혹여 그 가슴에 체기라도 남겨질까봐, 겨우 뿌리내린 외진 땅, 단단해져 가는 보금자리에 흔들리는 실금이라도 만들까 봐 조심스럽다. 그리움이 짙어서 돌림노래처럼 될 때쯤이면 그도 향수병에 절어서 날아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도꼬마리랑 흡사 닮아있지 않은가.
도꼬마리는 외래종이다. 오래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토착화가 된 식물이다. 열매가 여물지 않았을 때는 덜 사납다. 물기가 마르면 갈고리나 고슴도치처럼 열매가 온통가시다. 한약 재료로써는 많은 효용가치가 있다한다.
그가 탑승구를 향해서 걸어갔다. 그의 등을 바라보고 있다. 시야에서 사라지면 그 순간부터 허기증이 생겼다. 얼마나 세월을 보내야 허기증이 생기지 않을까? 헤어짐은 만남의 시작이지만 매번 몌별은 힘들다.
이메일 choyoundang@hanmail.net
수필과비평등단
인간과문학 동시당선
현대문학사조 시 등단
한국문인협회회원
수필과비평동부 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