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기록 (진실된 가계): 이계 공의 아들 항목에 조선 초 남원부사와 전주부윤을 지낸 10세 청백리 양경공 이언(李堰) 공이 직계 친아들로 명확히 등록되어 있습니다. [1, 2, 3, 4, 5]
관직 기록: 고려 말~조선 초에 판사(判事, 정3품 또는 종3품 관직)를 지낸 문관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향 수호: 상주파의 조작된 주장과 달리, 이계 공은 고향인 전라남도 고흥(흥양) 땅에 대대로 세거하며 본향을 지킨 인물입니다. 그의 아들인 이언 공이 중앙 관직에 나가 활약하기 전까지 가문의 고흥 기반을 다진 기둥이었습니다. [1, 2, 3]
배향 공간: 고흥군 풍양면 보천리에 위치한 흥양이씨 문중의 사우 금성사(錦城祠)에 그의 아들 이언 공 등과 함께 위패가 모셔져 후손들의 제향을 받고 있습니다. [1]
존재의 은폐 및 거세: 상주파는 가문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당대 명성이 높던 '9세 대사헌 이은'과 '10세 청백리 이언'을 친부자 관계로 강제 조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언 공의 진짜 친아버지인 '9세 판사 이계공의 자리를 지워버리거나 계보 밖으로 밀어내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1]
정축보의 역사적 가치: 고흥 정축보는 상주파의 이러한 인위적인 계보 횡단과 조작을 따르지 않고, 이계 공이 흥양군 이길의 정당한 손자이자 청백리 이언 공의 유일한 생부(生父)임을 뚜렷하게 보존하고 있습니다.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