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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판 "칭찬합시다", 근데 그게 잘 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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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안타까운 것은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같은 마음 따뜻한 영화들, 혹은 그렇게 가장한 작품들은 대개 미국의 정치와 할리우드가 보수와 전통으로 회귀하려는 시점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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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살짜리 꼬마 트레버(할리 조엘 오스먼트)의 입버릇은 "The world is just shit(세상은 엿 같아)"다. 어린아이조차 "엿 같다"고 보는 지금의 세상. 이 영화는 바로 그런 세상을 어떻게 하면 살 만한 곳으로 만들 것인가를 탐색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렇다면 과연 세상에 사랑이 넘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이 가르쳐준다. "pay it back(도로 갚아)"이 아니라 "pay it forward(나 대신 다른 사람에게 갚아)"인 것이다.
영화가 시작하고 한동안은 나쁘지 않다. 세상을 "엿같이" 볼 수밖에 없는 아이의 상황이 그려지는 것까지는 그런대로 드라마가 잘 꾸며지고 있는 것이다. 화상으로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진(분장이 좀더 사실적이어야 했지만) 사회과목 선생 시모넷(케빈 스페이시)의 유창한 어휘 능력도 재미있고, 밤낮 가리지 않고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려 노력하지만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꼬마의 엄마 맥킨니(헬렌 헌트)의 고생담도 그럴 듯해 보인다. 게다가 영화 초반부에 이루어지는 시모넷과 맥킨니의 만남은 상처받고 외로운 사람들끼리의 마음 따뜻한 로맨스를 예상케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이야기는 트레버가 "페이 잇 포워드"를 시작하면서 그리고 그 운동이 라스베이거스를 거쳐 LA까지 번져나가고 거기에 운동의 진원지를 찾는 기자의 시각까지 본격적으로 개입되면서부터, 얘기는 갑자기 어디로 갈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 지나치게 교훈적으로 갔다 싶으면 시모넷과 맥킨니의 안타까운 로맨스로 장면을 전환하고 또 러브 스토리가 지나쳤다 싶으면 트레버가 시작한 사랑의 릴레이 진행과정으로 이야기가 선회하는 것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거창한 운동이라는 것도 남녀간의 로맨스나 모자간의 사랑 같은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실천행위와 동전의 앞뒷면처럼 연결돼 있다는 얘기를 그리려 했지만 영화는 그 동전의 양면을 동시에 보여주지 못하고 만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할리 조엘 오스먼트의 눈부신 연기는 정말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갑자기 "내 눈에는 유령이 보여요"라는 대사가 튀어나올까봐 관객들은 조마조마하다. 게다가 감독은 그에게 갑작스런 비극을 설정함으로써 이 어린 주인공이 가까스로 맞춰놓은 "사랑 릴레이"의 가능성을 허망하게 무너뜨리고 말았다.
정말로 안타까운 것은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같은 마음 따뜻한 영화들, 혹은 그렇게 가장한 작품들은 대개 미국의 정치와 할리우드가 보수와 전통으로 회귀하려는 시점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랑 우선주의는 그 언제라도 반박할 수 없는 귀중한 가치지만 NMD(국가미사일방어체제)를 꿈꾸는 부시 공화당 정부가 자신들의 공격적인 통치 이데올로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데는 그만일 수 있다. 돌이켜보면 이 영화를 만든 미미 레더는 데뷔작 <피스메이커>에서 두번째 작품 <딥 임팩트>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군사주의나 강한 행정부(지구의 멸망 위기 앞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는)를 은근히 과시해왔다. 80년대 초 레이건 행정부 때는 레오 버스카글리아라는 학자가 생태학적인 스킨십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아무리 좋은 뜻, 좋은 가치라고 해도 그것이 어떤 세상을 위해,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결과적으로 "칭찬합시다" 프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혹세무민"이 되기 십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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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2.07 / 오동진 기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