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2113E1355587480B22)
천축고선생댁(天竺古先生宅)
일요법회후 신도님들과 추사 김정희(金正喜)고택을 다녀왔다. 화암사 주지스님께 차한잔 달라고 미리 부탁을 드리고 화암사를 먼저 참배하였다. 법당은 새로지은 듯 작지만 산뜻했고 흰옷을 입고 있는 약사전의 약사여래불은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온화하고 친근한 인상이었다. 주지스님은 사찰근처에 폐기물공장과 축사가 들어서 냄새가 독하게 났었는데 다행히 폐기물 공장이 이사 가서 살기가 좀 나아졌다고 말했다. 천축고선생댁(天竺古先生宅)은 추사고택에서 멀지 않은 화암사 대웅전 뒤편 바위에 새겨져 있는 글씨다. 인도에서 사셨던 옛 스승님의 집이라는 뜻의 이 글씨는 보자마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글귀는 사찰이 어떤 곳인지를 단박에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김정희가 보고 생각한 부처님이 더 친근하고 가깝게 다가왔다. 화암사 주지스님과 차담(茶啖)을 나눈 방은 원래 김정희 가문의 원찰이었던 화엄사의 인법당이었다. 인법당이지만 속가의 양반집 같은 구조를 가진 그 집은 마루와 난간을 가지고 있어 여름에 벗들과 정담을 나누기에 안성맞춤일 듯 싶다. 주지 동준스님의 화암사에 대한 설명은 물흐르듯이 흘러서 9년간이나 예산복지관장으로 재직하는 이야기까지 흘러갔다. 준비한 차와 수박과 인절미가 다 떨어지자 이야기는 끝 났다. 화암사에서 출발하여 용산이라는 산을 타고 이십분이면 추시고택에 도착한다고 하였지만 우리는 차를 타고 이동하였다. 김정희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서예가, 금석학자, 고증학자, 화가, 실학자이자 불교에 심취했던 거사이다. 김정희가 태어나고 자랐다는 추사고택의 안채는 고즈넉하고 안온하여 한동안 나그네의 발길을 잡아두었다. 넓은 대청마루에서 때로는 술과 때로는 차로 웃고 떠들며 담론을 이어갔을 김정희를 생각해 보았다. 타고난 천재라고 불리는 그 이지만 나는 어쩐지 아담한 기와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소년 김정희가 부러웠다. 그의 재능은 타고난게 아니라 만들어 진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그의 스승이 북학파의 박제가라는 사실을 알고서는 더욱 그 생각이 굳어져갔다. 고택 옆에 있는 추사기념관에는 김정희의 일생이 몇 개의 유리안에 든 소품으로 만들어져 전시되고 있었다. 부처님의 일생을 8가지 그림으로 보여주는 ‘팔상성도’처럼 눈으로 볼 수 있게 보여주는 방식은 언제나 쉽고 빠른 이해를 돕는다. 언젠가 경허기념관에도 경허스님의 일생을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주고 추사보다도 빼어난 경허의 서예작품도 전시하고 싶다. 아쉬운 점은 김정희가 초의스님을 30세에 만나 40년간 교류하고 청년기부터 불교에 심취하고 말년에 봉은사에 잠깐 출가 했다는 사실과 차를 좋아한 다인으로서의 면모가 설명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작업은 화암사나 불교계가 맡아서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불교신자가 없고 불자들이 절에 자주 오지 않는다고 하소연만 할 것이 아니라 추사와 같은 훌륭한 인물을 모범적인 재가신도로 재조명하고 의미부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또한 차를 좋아하는 다인들에게 다인으로서의 추사를 소개한다면 일반인들에게 불교를 알리는 좋은 방편이 될 것이다. 사찰에서는 탐방객들에게 따듯한 차 한잔 마시고 갈 수 있게 배려를 한다면 화암사는 문화포교로서 최상의 장소가 되지 않을까 한다. ‘천축고선생’이라는 문장이 추사의 수백가지 호중에 하나로 잘못 소개되고 있는 것도 바로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첫댓글 글씨도 예쁘고
문구도 재미있군요^^
천축고선생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