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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도는 가기 전에는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섬이다. 어디에 있는지, 주문의 뜻이 뭔지도 모르던 곳, “뭘 주문하길래 주문도야”라는 농담 같은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주문도와의 인연이 뜻밖의 이루어졌다. 누군가 먼저 제안했는지, 본인이 말을 먼저 꺼냈는지도 모르겠다. 올 상반기에 드디어 고대하던 교장에 취임한 경주가 섬으로 행사를 추진한다는 말만 듣다가 가을이 되어서야 성사되었고 작년에 이어 전원 참석이란 신화를 이어가게 되었다. 이젠 외부 행사는 자칫 느슨해질 수도 있는 이수회 회원들의 마음을 탄력있게 원래대로 되돌리는 동인이 되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빠지면 눈총 받을 게다.
섬에 대해서는 듣보잡. 별로 알고 들은 게 없다. 고작 섬 같지 않은 섬인 제주도, 강화도, 거제도를 방문해 본 경험밖에 없다. 그 흔한 울릉도, 홍도조차 다녀온 바 없다. 섬 산행을 위해 사량도, 장봉도, 석모도를 다녀온 바는 있지만 이는 산을 가기 위해 섬의 길을 빌린 것뿐이다. 주문도로 가는 날 새벽부터 친구들의 도움으로 외포리 연안여객선 선착장에 도착했고, 행사를 주관하는 주관자인 박교장은 쌀쌀한 날씨에도 승선표를 들고 새벽같이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 주자인 민상이까지 들어오고 선착장에 이동해 보니 매표소 들어가는데 휴일이라 인산인해 벌써 표가 다 팔렸다는 얘기를 듣고 벌써 긴장이 된다.이 배를 놓치면 네 시에나 배를 탈 수 있다고 한다. 박교장의 빠른 판단과 행동으로 표를 구할 수 있었다.
8시 조금 전쯤 선실 이층에 오르니 선실 바닥이 아주 따듯하다. 옛날 온돌방 아랫목에서 궁둥이를 지질 때 그 기분이다. 궁둥짝이 따뜻하면 사람이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벽에 등짝을 대고 보니 어제 못 잔 잠빚 받으로 온 듯 잠귀신이 절로 달라 붙는다. 총무가 준비해 온 ‘소맥’으로 오징어 안주 삼아 출발하기 전부터 음주는 시작이 된다. 우리 야유회 모임은 고속도로 휴게소부터 음주가 시작되던 관행이 있던 타라 아주 자연스럽다. 이미 김밥으로 속을 다져 놓은 터라 술이 술술 잘 넘어갈 기세다. 술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잠으로 이어질 테고..한 시간 반 남짓 가야 한다니 어찌 아랫목만 지킬 턴가 선실 밖으로 나와 본다. 비교적 파도가 잔잔하고 날씨가 점점 좋아진다. 목에 감기는 해풍의 느낌이 그다지 차갑지 않다. 어라 갈매기들이 아직껏 이 배를 줄기차게 따라오고 있다. 석모도 갈 때 봤던 갈매기처럼 손에 쥐고 있던 새우깡도 날래게 뺏어먹던 탐욕스런 놈들은 아닌 것 같다. 요즘 갈매기들은 주식회사 농심 직원이 되었나 새우깡을 아주 밝히던데...얘네들은 무작정 떼지어 따라오는 모습이 동네 들어오는 차를 무작정 따라다니는 시골 동네 어린이들같다.
이러구러 선착장에 도착하니 민박집 주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내 휴대전화가 울리며 쩌렁쩌렁한 군기반장 같은 아줌매 소리가 들리며 “배 앞에 차가 있는데 어디 있냐고 연락도 안 주고 뭐 하냐”라고 쫑코부터 주는 소리다. 뭔 차가 있나 했더니 트럭을 의미하는 거였다. 게다가 운전수가 여자일 거라는 점은 생각을 못 했다. 나는 휴대전화에 번호만 입력해 놨기에...
봉고 트럭을 준비한 땅딸만한 민박집 아줌마 향숙씨와의 첫만남이다. 군 선임하사를 연상케 하는 고약한 인상에 영락없이 남상지른 듯한 모습, 직설적이고 거친 말씨의 주인공이 이제 섬으로 배속된 신병들을 인수하러 나온 것 같이 그 포스가 정말 당당했다. 우리는 그 여인의 모습과 말씨에 순간 감전된 듯 뻘쭘해졌다. 우리 중에는 위관 장교 출신이 두 명이나 있는데도 말이다. 군에서 타던 닷지차 같은 봉고차를 타고 자대로 이동하듯 민박집으로 향하는데 좁은 섬길이 아우토반이나 되듯 막 달린다. 짐칸 옆문짝 위에 엉덩이 걸치고 앉았다가 겁이 나서 슬며시 적재함 바닥으로 내려왔다.
민박집은 허름하지만 괜찮은 것 같았다.첫 점심식사가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리고 머물렀던 네 끼 식사가 화려하지 않았지만 섬 일반 가정에서 먹는 가정식으로 그곳에서 나는 자연산 산물로 이루어진 반찬들이고, 아줌마 음식 솜씨가 꽤 괜찮은 편이다. 순무김치, 쩨깐한 개장 무침, 강화도 콩나물, 깻잎 조림, 노박 김치, 상합국, 등 그래서 그런지 난 아구처럼 먹다 보니 몸무게가 장난 아니게 늘어 요즘 런닝머신을 더욱 고생시키고 있다.밥 먹고 상합으로 유명하다는 해수욕장 갯벌로 나갔다. 향숙씨는 어떻게 잡는지 설명도 안 한다. 정말 “향숙이는 이쁘다”(살인의 추억) 도구나 내어 줄 뿐이다. 야전에 나가서 알아서 배우라는 거다. 태워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판이다.
그래서 축구장 수십 배 크기만한 갯벌로 나간다. 꾀돌이 양주 말대로 일단 우리보다 먼저 잡는 일행에게 접근해서 지켜본 뒤에 캐자라는 말대로 그리로 갔더니 거기도 초보다. 대충 파 보면 된다고 하길래 처음에는 맨땅을 막 파 봤지만 별무소득 힘만 무지하게 든다. 이러다 저 바구니를 언제 다 채우나 할 때 갯벌을 흐르는 물줄기를 지나다가 발뒷꿈치에 닿는 느낌이 온다. 거기를 파봤더니 상합이 나온다. 한 놈 찾으니 그 주변에 떼로 모여 사는지 도토리 줍듯이 우수수 줍는다. 도시에서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기쁨이 차고 넘친다. 발이 진흙벌 속에 깊이 빠져 뒤뚱거리면서도 재밌다. 연안부두에서 회 깨나 잡수신 인천 사는 구데리안도 이런 경험은 없었는지 너무 좋아한다. 정말 ‘체험 삶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두세 명씩 흩어져서 정신 없이 조개를 줍다보니 바구니 하나가 가득찼다. 끝없는 희열에 계속 전진해서 더 캐고 싶었지만 과유불급 그만 철수하라는 신호로 해수욕장으로 돌아간다. 사람들에겐 원시시대부터 간직하던 사냥 본능이 살아 있는 모양이다. 뭘 잡고 캐는 게 이리도 즐거울 줄이야! 원시인들도 자신들보다 큰 짐승들을 잡는 재미가 정말 즐거웠을 것 같다.
너무 일찍 끝나 예쁜 향숙씨를 부르지 않을 수 없어 용기를 내어 전화를 했더니 온다 만다 확답이 없다. 박교장에게 다시 전화하게 해서 민박에 돌아갔더니 애써 잡은 상합은 다 쓸 수 없다고 한다.어쩌랴 잡을 때 즐거움만 생각하고 아쉽지만 포기해야 했다.향숙씨가 우리가 애써 잡은 것 도로 우리한테 팔아먹은 건 아니겠지. 오면서 상합을 사왔는데 왜 자꾸 우리가 잡은 거 다시 돈 내고 사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의심암귀’라는 말이 있듯이 의심이 생기면 귀신(鬼神)이 생긴다는데 좋게 생각하자.
조개 잡이가 너무 일찍 끝나 우리 모두 섬을 마실 가듯 한 바퀴 돌기로 했다. 뒷장술해수욕장 길을 따라 대빈창 해수욕장을 향해 바닷길을 걷는다. 너른 수평선을 바라보며 너들길 같은 돌길을 따라 가니 강화둘레길 표시가 있다 여기도 둘레길을 조성한 모양이다. 해수욕장 뒤에 세운 방죽 때문인지 모래사장의 폭도 좁아졌고 모래에 거친 잔 자갈들이 많이 깔려 해수욕장의 역할을 못할 것 같다. 방풍림으로 조성한 송림 속에 텐트가 두 동 보인다.아주 한적한 해수욕장, 텐트 하나에 이만원 받는다는 플랭카드만 눈에 띈다.해수욕장의 시설은 낡고 보잘 것 없다. 이제 슬슬 걷다보니 또 술 생각이 나길래 주민에게 주점이 있는지를 물어보니, 없다고 한다. 주민 말씀이 ‘못 살 동네’란다. 선착장에 오니까 늙고 힘겨운 할아버지가 주인인 듯한 다 쓰러져 가는 구멍가게 하나 있는데 팔기 싫은 물건을 억지로 팔 듯 아주 귀찮아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섬 사람들은 다 귀찮니스트인가? 예쁜 향숙씨나 그 할아버지나 주문도 스타일이 “모두 다 귀찮아”라는 듯 하다.
걸어서 돌아오다 학교에 들렀다. 초중고가 함께 있는 언덕 밑 아담한 곳에 본관,별관, 식당 등 부속건물, 제법 큰 운동장과 축사, 테니스장, 족구장, 숙소 두 동을 갖춘 학교다. 경주가 근무하던 시절의 건물이 그대로 있다. 내부는 리모델링을 해서인지 도시의 학교보다 깨끗하고 시설도 웬만한 도서관에 온 듯 세련된 느낌이 드는 곳이다. 학생들의 시간표를 보니 9,10교시까지 되어 있다. 밤을 잊고 공부하는 시골 학생들의 모습이 떠오른다.물어볼 사람도 없어 학교를 둘러 보고 돌아왔다.
저녁 식사 후에 너무 졸려서 난 먼저 취침을 했다. 거실에서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 햇다. 새벽에 깨 보니 거실 쪽에서는 땅크가 굴러가는 듯 코고는 소리가 요란하다. 잠을 깨울까봐 오줌을 참다 새벽에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는데 여러 친구들이 창문을 열어놓고도 땅크소리를 울리며 힘차게 자고 있다.야 먼저 잠든 게 천만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침에 떠나는 친구들이 서둘러 떠나고 난 아침에 나와 살꾸지를 찾아 산책을 했다. 하늘에는 학익진을 이루고 바닷가를 비행하는 철새의 모습과 누런 구름처럼 익어가는 곡식들을 보니 정말 결실의 계절이 우리 곁에 와 있음을 실감한다. 이젠 더 이상 늦여름임을 고집할 수 없구나.
苦忘亂抽書(고망난추서) 잊음 많아 이 책 저 책 뽑아 놓고서
散漫還復整(산만환복정) 흩어진 걸 도로 다 정리하자니,
曜靈忽西頹(요령홀소퇴) 해가 문득 서으로 기울어지고,
江光搖林影(강광요림영) 가람엔 숲 그림자 흔들리누나.
扶嚂下中庭(부공하중정) 막대 짚고 뜨락으로 내려를 가서
嬌首望雲嶺(교수망운령) 고개 들고 구름재를 바라다보니,
漠漠炊烟生(막막취연생) 아득아득 밥 짓는 연기가 일고,
蕭蕭原野冷(소소원야랭) 으스스 산과 벌은 싸늘하구나.
田家近秋穫(전가근추확) 농삿집 가을걷이 가까워지니,
喜色動臼井(희색동구정) 방앗간 우물터에 기쁜 빛 돌아.
鴉還天機熟(아환천기숙) 갈가마귀 날아드니 절기 익었고,
鷺立風標屉(로입풍표동) 해오라비 우뚝 서니 모습 훤칠해.
我生獨何爲(아생독하위) 내 인생은 홀로 무엇을 하는지
宿願久相梗(숙원구상경) 숙원이 오래도록 풀리질 않네.
無人語此懷(무인어차회) 이 회포를 뉘에게 이야기할 거나.
搖琴彈夜靜(요금탄야정) 거문고만 둥둥 탄다. 고요한 밤에,-이황, 만보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결실의 계절을 맞아 뭔가를 수확한 듯 득의의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이황 선생의 탄식처럼 ‘내 인생은 홀로 무엇을 하는지’ 답답하다.이제는 무언가 거두어들일 때인데...박교장이 부럽네.
살꾸지 가는 길을 끝내 못찾고 바닷가 너들길을 따라 아무리 걸어도 끝이 안 보인다. 썰물때라 들었는데 슬슬 물이 다가오는 것 같아 가다가 겁이 나서 되돌아오니 어제 향숙씨가 잠깐 데려다 준 부두가 생길 곳이다. 아침을 먹고 섬 이벤트 2탄 망둥어 낚시를 나갔다. 학교 근처 바다에서 낚시를 하는데 초보를 알아보는지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박교장과 나는 한 마리씩 잡았다. 작은 망둥어지만 잡는 순간은 마치 감전된 것 같이 지르르하는 신호가 왔다.이게 낚시꾼들이 말하는 손맛임을 실감했다. 하지만 물이 점점 들어온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철수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대나무 낚시를 해 봤다. 좀 더 하고 싶었지만 기다리는 일행곁으로 갔다.거기서 돌아와서는 따스한 햇살을 벗삼아 낮잠을 한 판 때리고 나니 점심을 먹을 때다. 현지 학교의 교장 일행이 향숙씨 식당을 방문해서 식사를 하신단다. 주문도에선 꽤 알아주는 식당인 모양이다. 식사 후 박교장과 그 교장 간의 수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그분들을 다시 돌아가는 배편에서 볼 수 있었다. 우리처럼 이곳에 취임한 지 얼마 안 되는 친구를 방문한 듯하다.
돌아가는 배편에서도 또 한 잔 하고 보니 이번에는 금방 강화도에 닿은 느낌이다. 강화도에서 초지대교를 거쳐 한강신도시 일산대교를 통해 대화역에서 헤어졌다. 섬 여행의 여유와 한가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던 좋은 기회였다. 박교장의 오늘이 있게 한 섬, 주문도, 그곳으로의 여행은 특히 박교장에게는 감회가 남다를 것이었을 게다. 조그만 섬에서 애환을 함께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그때는 주문도가 자신의 전체이자 세계였을 텐데, 이제는 그때와 달리 아주 조그맣게 보여지는 섬과 마을과 학교와 길들을 보며 느낀 소감이 어떠했을까? 누군가 새로운 시작을 할 때나 삶의 전환점이 필요할 때 꼭 들러보고 싶은 곳이 있을지 모르겠다.박교장에겐 주문도가 그런 곳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주문도는 우리에게도 새로운 인연의 대상이 되었다. 이젠 텔레비전에서 조개 줍는 모습을 보면 주문도가 생각날 것이다.누군가 섬을 여행한다고 할 때 권할 만한 대상이 되었다.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주문도가 육지라면 강화에서 39킬로미터이므로 무박으로 열 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섬이다. 하지만 내겐 꿈 꾸는 먼 공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개인 비용을 아낌없이 써 가면서 차편부터 먹고 자는 모든 것까지 일체를 준비하여 친구들을 기쁘게 해 준 박교장에게 특히 모두 고마운 마음을 느꼈을 것이다.아울러 박교장을 도와 이런 뜻깊은 행사를 잘 준비한 황회장, 곽총무의 노고도 빼놓을 수 없다. 달리는 말에는 채찍을 가하라는 말이 있듯이 이번 기회에 다시 불타오르는 우리 모임을 더 활성화하기 위해 해외 여행까지 과감하게 추진하여 입안한 회장단의 추진력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첫댓글 역시 황방 글솜씨는 대단혀~ 즐거운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구만,. 다음 만날때까지 모두들 강건하시길..행사를 주관하신 박 교장과 ,임원진,감사해요^o^
무슨 과분한 말씀이여, 기억 나는 대로 주워섬긴 거지. 박사장도 즐거웠지, 여러 헌신적인 친구들 덕분에 일박이일 활동이 잘 되고 있네.
여물어 가는 들녁의 곡식들 처럼 한층 어른 스러워진 친구들을 바라보며 1박2일 누귀코혀몸도 마음도 다 즐겁고 편안했습니다
통큰 보시를 해준 경주친구, 준비함에 소홀함이 없는 집행부 기꺼이 동참해서 100프로 참석한 친구들 모두 모두 고맙습니다
늘 여행 후기로 멋지게 장식하는 황방님에게도 박수를 보냅니다
상견례는 잘 치렀나 모르겟네.예비 사돈 만나는 중요한 일정이 있는데도 기꺼이 시간을 낸 민상이도 정말 대단혔어.치악산에서 보자구.
역시 글은 국문학도 출신인 황셈이 제격이구려~어찌도 이렇듯 세세한 감정의 느낌을 기술하는지 한편의 풍경화를 연상케
하는 빼어난 글솜씨!!! 멋진 글 자주 올려 주세여~어쩨던 친구들과의 주문도 여행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머리속에 기억
되고 반추될 것 같군~
곽총무의 총무 실력이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네.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담에도 좋은 계획으로 힘있게 추진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