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평다슬기수제비식당은 사평에 없다.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는 이제 정거장도 유원지도 아니다.
영대가 조사한 점심은 저녁을 고려해 간단하게 다슬기수제비로 하기로 했단다.
사평다슬기수제비를 네비에 찍고 이동하는데 화순읍 쪽으로 간다.
논란 끝에 알아보니 정말 읍 삼천리 쪽이다.
12시 반 예약을 10분 늦춰 45분 쯤에 도착했는데 도로까지 차가 가득 차 있다.
다행이 예약해 놓은지라 기다리지 않고 자릴 잡는다.
영대가 다슬기매밀전을 하나 더 시키자 내가 막걸리도 시키라 한다.
매밀전 두 조각에 큰 그릇의 다슬기 수제비를 먹고 나오니 배가 부르다.
충호형이 알아 둔 한천의 고시저수지를 찾아간다.
사평중학교 앞을 지나 영외고개를 넘어가기 전에 직진하여 고시저수지를 찾아간다.
재난경보장치는 커다랗게 시각을 알려주는 전광판이 되어 서 있다.
마을 숲이 좋다.
꾸부러진 하천 길을 따라 올라가니 물이 빠진 저수지가 나온다.
저수지 위에 또 저수지가 있다.
물이 고요한 원래의 고시 저수지다.
둑 위에 차를 세우고 미스바연수원과 제칠일안식일교회 호남합회 명패가 붙은
기둥 사이로 들어간다.
외인출입금지라는 말을 봐서인지 종필이는 가기 싫어하는 눈치다.
하긴 그는 지난 화암사길에서 모기에 약한 모습을 보인지라 난 이해하지만.
길을 따라 걷는데 난 뒤쳐저서 피어난 가을 꽃을 본다.
저수지 가에 서 있는 나무들도 본다.
연수원은 운동장도 있고 벽돌집도 있으나 컨테이너 박스도 더러 놓여있다.
옛마을 같기도 한데 이제는 종교단체의 수련눤이 된 모양이다.
쇠스랑처럼 생긴 긴 찍개를 가지고 배낭을 맨 남자들 서넛이 내려오고 있다.
산이름을 물어도 모른댄다. 수확이 괜찮냐고 물으니 없댄다.
메타쉐콰이어 가로수가 굵은 근육을 보이며 늘어 서 있다.
가다가 종필이가 작은 독사를 본다.
내가 사진을 찍으니 뭐 그리 흉한 걸 찍느냐고 한다.
밭에서 일하고 있는 이에게 들어와도 되느냐를 확인하고서야 종필이의 얼굴이 풀린다.
충호형은 이 호젓한 대자연 속에 걷는게 좋다는데 종필이는 얼른 되돌아 가고 싶어한다.
이 산을 넘으면 고향 이양도 나오고 아마 복내 넘어 보성으로 연결될 것이다.
호남정맥의 줄기일까?
임도같은 숲길에서 오줌을 누는데 영대가 '홍식이의 오줌에는 찌든 술내가 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내 오줌은 노랗다. 개의 오줌은 찌린내가 심하다고 충호형이 말하자
종필이는 자기 영역표시라고 한다.
난 그저 웃는다.
종필이가 주로 말하고 충호형은 가끔 묻는다.
난 꽃을 보며 혼자 걷는다.
고요한 저수지에 돌을 던지며 파문이 동그랗게 퍼져나가는 걸 본다.
우리의 아이같은 장난이 지나면 물은 또 조용히 산을 비춘다.
거의 한 시간 반을 돌았다.
차로 돌아오니 차 몇 대가 서 있고 60대 가까이 보이는 장년들이 옛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또 차가 들어온다.
우리는 충호형의 안내를 따라 서재필기념관과 조각공원을 보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