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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는 ‘꾼’의 서사와 글쓰기의 미학
이야기하는 사람
이야기는 누구나 하고 싶어 하고 듣고 싶어 하는 보편적 욕구다. 인간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향유하고 창작하고자 하는 욕구를 지니고 있으며, 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다.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 디지털 시대로 이행함에 따라 그 매체와 형식, 내용은 달라지고 있지만, 이야기에 대한 욕구는 변함이 없다. 글쓰기는 이야기의 한 형식이며 이야기에 대한 인간 욕구의 표현이다.
김광식은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이야기를 밋밋하고 재미없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맛깔스럽고 재미나게 하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독자를 이야기의 광장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어떤 이야기라도 흥미진진하게 인도해가는 ‘이야기꾼’의 기질이다. ‘꾼’은 재미만 아니라 감동도 자아내는 사람이다. 김광식은 자신이 경험한 여러 이야기를 통해 재미도 주고 감동도 준다. 그의 이야기에는 누구에게나 그리운 이름 ‘순이’, 반백이 되도록 우정을 이어온 친구들, 손녀딸, 아내, 아들, 어쩐지 불편한 이름이 되어버린 조선족과 탈북민 등 자신을 둘러싼 작은 이야기에서부터 동포와 역사의 아픔을 함께하고자 하는 큰 이야기까지 두루 망라해 있다.
김광식 이야기의 주된 화소는 인간이다. 상기한 바와 같이 가족과 친구, 이웃들, 조선족과 같은 삶의 현장에서 만난 다양한 인간 군상이 그가 포착한 이야기의 핵심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그리움과 우정과 사랑과 연민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그의 이야기는 세상 사람들에게 보내는 연가처럼 보이기도 한다. 삶에서 건져 올린 낱낱의 이야기를 충실히 재현하고 그것들을 반추해가며, 그때는 몰랐으나 지금은 알게 된, 지나가고 말았으나 다시 그리운 것들을 살뜰히 챙겨보는 것이다.
김광식은 2014년 수필 전문지 에세이스트를 통해 이른바 문단이라는 제도권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그의 글쓰기는 개성이 살아 있으며, 야성 가득한 문채(文彩)로써 인간과 삶을 이야기한다. 이야기 혹은 글쓰기에 대한 그의 전략은 독자를 염두에 둔 흥미로운 전개에 있다. 독자의 관심을 끌어내는 유머러스한 어투와 궁금증을 유발하는 말하기 방식은, 내용의 경중이나 분량의 장단에 상관없이 이야기에 푹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김광식은 수필을 ‘트로트’에 견준다(「대중문화」). 난수표같이 어려운 글, 한 꼭지 읽기도 머리 아픈 글보다. ‘다수의 보통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며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따라 부를 수 있’는 트로트 같은 글이 좋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글은 쉽고 재미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유쾌하게 읽을 수 있다. 어떤 글은 과연! 하고 무릎을 칠 만큼 깊은 울림을 주기도 하고, 어떤 글은 아릿한 서정을 느끼게도 하며, 어떤 글은 삶이란 무엇인가, 심각하게 고민하게도 한다. 물론 읽으면서 계속 웃게 되는 이야기도 있으니, 책장을 펼치는 데 주저하지 않아도 된다.
2. 그 이름 ‘순이’
「순이」1, 「순이」2의 「순이」 연작은 김광식의 아리따운 정서를 밀도 있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저 여남은 살의 과거로 돌아가 그 시절의 풍경을 생생하게 재현할 뿐 아니라 누구라도 간직하고 있음 직한 가슴 뛰는 이야기로 독자를 이끈다. 그것도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 버선, 고무신, 미꾸라지, 구제 우윳가루가 들었던 빈 깡통, 미제 쪼코렛 같은 구시대의 냄새가 물씬 나는 옛날로 말이다. 그곳에는 볼우물이 아주 예쁜, 얄캉얄캉 마른 순이가,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순이’는 첫사랑의 이름이다. 글 어디에도 그런 말은 없지만, 누구라도 그렇다고 인정하는 이름이다. 비슷한 또래 이성을 향해 처음으로 느끼는 낯선 감정, 두근거리기도 하고 설레는 것도 같은 그것을 첫사랑이라고 한다면, ‘순이’는 응당 그에 상응하는 이름이다. 생각해 보라. ‘순이’의 볼우물이 너무 예쁘다고 느낄 때, “너 미꾸라지 잡으러 내에 갈래?”하고 생각지도 않은 말이 툭 튀어나올 때, 그 순간의 느낌을 무엇이라 말할 수 있는가. 형언하기 어렵지만 어쩐지 좋은 것, 은미하게 와닿는 그 느낌은 지금 ‘첫사랑’을 통과하고 있다는 뜻이겠다.
김광식의 「순이」 연작은 김유정의 「동백꽃」, 황순원의 「소나기」와 같이 우리를 ‘처음’으로 돌아가게 한다. 동백꽃 향기처럼 알싸하기도 하고 금방 그쳐버린 소나기처럼 섭섭하기도 한 그것은, 결코 격렬하거나 맵찬 경험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두고두고 우리를 찾아오는 먼 데 손님이다. 아련하고 아득하여 전설처럼 굳어버린 이야기라 할지라도 언제고 되돌아와 지금 여기를 다시 산다. 김광식이 ‘순이’를 이야기하는 시점은 그때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 있지만, 그의 얼굴에는 소년의 홍조가 그대로 떠 있다. ‘순이’도, ‘순이’를 기억하는 마음도 늙지 않았다.
…그런 순이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나게 됐는데, 그곳은 바로 우리 집 마당이었다. 제 엄니를 따라온 순이는 날 보고서도 못 보았다는 듯이 예처럼 제 고무신 코만 쳐다보고 있었다. 순이 엄니가 우리 집 집안일을 맡아 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순이는 일주일에 한 번 반공일날 우리 집으로 와서 제 엄니와 함께 자고 온공일 오후에 제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 엄니가 누나들이 입던 옷과 양말, 신발들을 챙겨 주었지만 순이 차림새는 달라지지 않았다. 하긴 나보다 세 살, 다섯 살 많은 누나들의 옷이었으니 얄캉얄캉 마른 순이 몸에 맞을 리도 없었다.
-「순이」1 부분, 밑줄은 필자
「순이」에는 말들도 늙지 않고 살아 있다. 작가는 그 시대의 풍경을 고스란히 옮겨와 고무신에 치마저고리를 입은 ‘순이’의 차림새와 제 엄마를 찾아 반공일(토요일)날 와서 온공일(일요일)날 돌아가는 사정 등을 재현한다. 작가는 엄마도 아니고 어머니도 아닌 ‘엄니’라는 호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반공일’, ‘온공일’ 같은 어휘도 고쳐 쓰지 않는다. 이 말들이 품고 있는 맛과 향기와 질감을 그대로 드러낸다. ‘엄니’는 엄마 또는 어머니를 이르는 방언이지만 ‘엄니’의 자리에 엄마가 오거나 어머니가 있게 되면 말의 질감은 그만큼 떨어지고 만다. 말에도 생명이 있어서 어떤 말은 영원불변하고, 어떤 말은 한 시절 좋이 살다 스르르 사라진다. 김광식의 ‘엄니’는 영원히 살아 있는 말이다. ‘엄니’라는 이름에는 ‘엄니’라고 불렀을 때만 느낄 수 있는 말의 뉘앙스와 온기와 냄새와 시간이 배어 있다. 엄마(어머니)라는 표준어를 쓰지 않고 촌스럽게(?) 굳이 ‘엄니’를 쓰고 있는 이유다. 그래야 ‘엄니’는 ‘엄니’ 그때 그대로의 ‘엄니’가 되고, ‘엄니’의 시절 또한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순이」에는 또 이런 풍경도 있다. 어느 날 약주 몽땅(!) 드시고 온 아버지에게 못 살겠으니 헤어지자고 소리 지르던 ‘엄니’가 다음 날 아침에는 ‘명태국을 계란까지 풀어 끓여 놓고 보통날보다 더 싹싹하고 밝게 아버지를 대하는’ 것을 보고 너무 의아한 나머지 출근길 아버지를 붙들고 묻는 장면. “아부지! 엄니는 왜 근당가? …어저께는 도망간다더니 아침에는 웃네?” 이런 대목에선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아직 어린 작가의 천진함도 천진함이지만 그보다 말의 질감을 더 실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엄니는 왜 근당가?”라고 하는 말속에는 어제의 ‘엄니’와 오늘 아침의 ‘엄니’가 왜 다른지를 이해할 수 없는 아이의 심리가 볼록하니 튀어나와 있다. 전혀 통제되거나 가공되지 않은 입말 그대로의 언어(사투리)로 품고 있던 의문을 툭 내뱉는 것이다. 짧은 한 소절의 문장이지만 말이 구현되는 구체적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직간접적으로 작가의 심리가 투사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되는 문장이다.
‘엄니는 왜 근당가?’ 흥분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이 질문의 근저에는 자신을 아는 체하지 말라는 ‘순이’의 말을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나(작가)’의 마음이 놓여 있다. 여름방학 때부터 우리집에서 살게 된 ‘순이’는 학교도 ‘나’와 함께 가지 않는 데다(집에서는 안 그러면서) 누가 자기를 놀려도 아는 체 말라고 한다. 왜 그래야 하냐고 묻는 ‘나’에게 ‘너만 놀리지 않음 난 괜찮다’고 한다. 무슨 일인지 눈에 눈물까지 맺히는데, 그건 또 왜 그럴까? 도대체 여자(순이) 마음은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순이’ 말대로 진짜 모른 체할 수도 없고,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 튀어나온 말이 바로 저 문장이다. 그러니까 ‘아부지! 엄니는 왜 근당가?’하고 묻는 이 질문은, ‘순이는 왜 근당가?’ 묻고 싶은 ‘나’의 마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나’는 ‘순이’의 마음이 무엇보다 알고 싶은 것이다.
사투리 혹은 시대성을 담은 어휘들로 작품의 질감이 풍성해졌다면, 잦은 대화체의 사용도 그 일환이라 할 수 있다. 김광식은 「순이」뿐 아니라 다른 글들에서도 인물들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삽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부러 다듬거나 꾸미려는 흔적 없이 울퉁불퉁 있는 그대로를 구사함으로써 말의 질감을 더욱 살려주고 있다. 행갈이를 하지 않은 채 연속되는 문장들은 거친 표면 그대로 혹은 날것이 주는 야성의 맛 그대로 삶의 현장을 구체화한다. 정제되고 길들여진 것보다 투박하고 거칠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더 인간적이라는 인식은 여기서도 가능하다. 그러나 여백이 없는 문장은 자칫 피로감을 줄 수 있으며, 다듬지 않음으로 인하여 원질을 드러내는 데는 장애가 될 수도 있다. 다행인 것은 김광식의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힘이다. 그의 이야기들은 거친 듯 섬세한 듯, 방만한 듯 어지러운 듯하면서도,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을 놓치지 않는다.
다시 「순이」에게로 돌아와, ‘순이’와의 이별 장면을 보자. 한집에 살던 순이네가 떠난다는 말에 작가는 며칠을 심하게 앓는다. 딱히 그 때문이라 하기는 어렵지만 어쨌건 몹시 아팠는데, ‘누가 내 이마를 만지는 것 같아 실눈을 살짝 떠보니 진짜 순이가 이마의 땀을 닦아주고 있’는 거다.
“…멍충이! 맨날 아프기만 하고”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애먼 흉을 보더니, 왜 또 눈물은 흘리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멍충이란 말이 날 욕하는 말은 아니라는 것을 이참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수건으로 제 눈물을 훔치더니 그 수건을 내 손에 쥐여 주고 방을 나갔다.
…내가 다시 잠이 들었다가 점심 무렵에야 며칠 만에 방 밖으로 나갔더니 뭔가 집이 텅 빈 것 같았다. 잠시 어지러워 툇마루에 앉았는데 마당에 비질하고 있던 점순이 누나가 “너 인자 괜찮냐? 근디 어쩌꺼나, 순이네가 아침나절에 가부렀어야….
아, 순이가 갔구나.”
-「순이」2 부분
열에 달뜬 이마를 닦아주던 ‘순이’가 떠났다. 맨날 아프기만 한다고 ‘멍충이’라 타박하던 ‘순이’지만, 그 말이 ‘나를 욕하는 말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게 해주고, 그리고 ‘내’ 이마의 땀을 닦고 ‘제’ 눈물을 닦던 손수건(처음으로 수를 놓아 만든, 순이가 가장 아끼던)을 내 손에 쥐여 주고서 말이다. 떠난 줄도 몰랐다가 나중에야 듣게 된 순이네의 소식에 아직도 기운을 다 차리지 못한 ‘나’는 ‘아, 순이가 갔구나.’ 잠결인 듯 짧은 한마디를 내놓을 뿐이다.
어른들은 그 속에 무엇이 지나갔는지 전혀 알지 못하겠지만 여남은 살 무렵의 이 사태는 저마다의 가슴에 사랑의 기원으로 새겨진다. 설사 깊은 상실감으로 몸살을 앓을지라도 ‘처음’ 맞이한 그 사태는 언제나 아리땁게 기억된다. 세월이 흘러 백발이 되어도 ‘펼칠 때마다’ 향기가 나는, 그 이름은 ‘순이’다.
3. 동포의 삶과 디아스포라
인간은 이동하는 존재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저곳에서 이곳으로의 이동을 통해 삶을 영위해 나간다. 이동은 인간의 본능적인 행위이며 생존의 방편이기도 하다.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열악한 환경을 벗어나기 위해, 또는 변화와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도 이동은 불가피한 일이다. 이러한 사정은 정착을 전제로 하는 농경사회에서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도시화 및 산업화를 거쳐 세계화 시대의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더욱 가속화된 현상이다. 그 결과 새로운 디아스포라(diaspora)들이 생겨나고 동시에 그와 연관된 문제들이 속속 대두되는 상황이다. 디아스포라는 본래 ‘이산(離散)’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이자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이산 유대인과 그 공동체를 가리키는 용어였다. 그러나 전쟁과 식민지화로 고국을 등져야 했던 난민이나 이민자들이 생겨나면서는 그들을 지칭하는 말로, 학업이나 직업, 결혼, 여행 등 세계화 시대의 오늘에 와서는 삶의 유동성과 장소의 혼종성을 가리키는 훨씬 광범위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김광식은 199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이쪽과 저쪽을 부단히 왕래하는 삶을 살았다. 사업상의 이유로 혹은 자녀의 교육 문제 등과 얽혀 그의 삶의 공간은 한국과 중국 양쪽에 걸쳐 있었다. 코로나19로 발이 묶이면서 다시 한국에 정착하게 되었지만, 20여 년 넘게 이른바 디아스포라로 살아온 셈이다. 그 과정에서 김광식은 남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그의 작품에는 그러한 사정이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거니와, 이는 중국에서건 한국에서건 소수자 혹은 이방인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삶의 조건과 그 너머의 현실들을 적극적으로 취재한 결과들이다. 「조선족 마을 방문기」는 ‘이산가족’, ‘아, 한 많은 두만강아!’, ‘세 나라 국경 변의 조선족 마을’이라는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된 취재기이고, 「목단강변 이화네」는 공사 현장에서 사고로 숨진 조선족 인부의 가족을 찾고 그 사후처리에 관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자그마치 원고지 130여 매로 이루어진 장편 보고서다. ‘일로순풍’, ‘개관사정’, ‘임중도원’, ‘애별리고’ 등 네 글자 짜임의 소제목들은 이야기의 내용 및 방향을 제시해주는 동시에 글의 구조를 탄탄히 받쳐줌으로써 글의 완결성을 돕고 있다. 「조선족으로 살아가기」는 한 조선족의 삶을 통해 그들의 정체성 문제를 다룬 것으로, 역시 활발한 취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김광식의 중국 내 조선족과의 접촉은 한국과 중국을 수시로 왕래하는 삶의 여건에서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해준 것으로 보인다. 말도 통하고 현지 사정도 잘 알 것으로 판단됨에 따라 양쪽 모두에게 긴요한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김광식의 의식 속엔 ‘조선족’ 역시 다 같이 한 민족이고 한 동포이며 한 핏줄이라는 것이 강하게 박혀 있다. 한족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나머지 55개의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진 중국은, 중국 국적의 우리 겨레(한민족)를 ‘조선족’이라 칭한다. 이는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의 설립과 함께 중국 내 소수민족을 민족 단위로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한 정책적 필요에 따른 것이었지만, ‘조선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기까지의 내력을 살피자면 결코 편한 것은 아니다.
조선족의 역사적 기원은 17~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거듭되는 흉년과 자연재해로 인한 농민들의 소작지 상실과 권력층의 부패로 인한 사회적 혼란은 다른 곳으로의 이주 현상을 불러왔다. 1860년대 이후 한반도에서 만주로 이주하는 조선인이 크게 늘었고, 특히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등 동북아시아 정세가 격변할 때마다 대규모의 이주가 있었다. 이들은 연변주와 길림성을 비롯한 동북 3성에 주로 거주하며 공동체를 이루어 민족의 고유한 전통을 지켜나가고 있다. 그러나 중국 사회의 변화와 함께 이들 또한 타 지역으로의 이주 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그 가운데 엄청난 ‘한국 붐’이 일어나면서 급속히 달라지는 추세다. 1982년 중국정부가 공식적으로 조선족의 한국 친척 방문을 허용하고,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가 열리면서 고향방문, 노동이주, 유학 등을 목적 삼아 한국으로의 이동은 더욱 활발해졌다. 그 결과 조선족 사회의 의식 및 문화, 경제, 가정생활, 가족 구조 등 전 영역에 걸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의 소용돌이를 김광식은 몸소 체험하고 기록함으로써 조선족 디아스포라의 구체적 실상을 파헤친다. 조선족은 중국인이라는 국가 정체성과 한민족이라는 문화 정체성, 즉 이중의 정체성을 지닌 디아스포라로, 작가 자신과도 절대 무관한 존재가 아님을 항변하는 것이다. 자신도 고국을 떠나 낯선 땅을 떠도는(?) 형편이고 보면 피차 같은 처지라는 동병상련의 의식도 배제할 수 없다. 단지 사업상의 필요 혹은 표면적인 관계에 그쳤다면 이처럼 수고로운 보고서는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조선족 디아스포라에 대한 김광식의 글쓰기는 르포르타주(reportage)와 같은 일종의 보고문의 성격을 띤다. 실제 조선족 마을을 방문해 그들과 함께했던 일이나, ‘돈벌이 출국(코리안 드림)’으로 인한 가족 해체의 현장을 몸소 체험하게 된 일, 좌충우돌 삶의 격투기 같은 한 조선족 여성의 삶 등에 대하여 작가는 단편적인 보고가 아니라 자신의 식견 및 여러 에피소드를 포함해 종합적인 보고문으로 완성해 놓는다. 전달하고자 하는 줄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곁가지도 풍성히 드리워 이야기의 맛을 더해준다. 우리의 판소리에서 느낄 수 있는 끝없이 유장한 흐름이 김광식 이야기의 특장점이기도 하다. 강의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말의 높낮이나 리듬도 없고, 간헐적인 조크도 없고, 일정한 기계음만 반복된다면 수강생들은 시나브로 졸음의 늪에 빠져들고 말 것이다. 하물며 문자로서만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은 오죽하겠는가. 문제는 이야기를 이루는 요소가 인물 사건 배경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이끌어줄 화자(서술자)의 입심도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야기는 문자의 힘을 빌리긴 하지만 실은 말하는 사람, 즉 작가의 입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조선족의 삶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우선 언어가 통하는 데다 한민족이라는 문화적 동질감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더 근원적으로 작용한 것은 동포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다. 작가에게 조선족은 중국 국적의 외국 사람이 아니라 낯설면서도 친밀한 타자화된 우리 겨레, 곧 자신이다. 떠나온 자의 비애 혹은 삶의 신산함을 자신도 알고 있는 까닭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그 멀고 위험한 길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부러 찾아가는(「조선족 마을 방문기」) 일은 없었을 것이며, 「목단강변 이화네」의 그 복잡한 사후처리 문제도 맡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족 디아스포라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풍문을 전하는 것이 아니고 단편적인 이야기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찾아가고, 묻고, 살피는 적극적인 행보를 통해 그들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실상을 그려낸다. 개방(한중수교조약) 이후 연변 지역에 역병처럼 퍼진 돈벌이 출국은 고아 아닌 고아들의 탄생과 그로 인한 아이들의 탈선, 가족의 붕괴로 이어지면서 이산가족 양산 등의 새로운 문제를 야기했다. 물론 경제 사정을 비롯해 좀 더 나은 여건을 갖추게 된 경우가 없지 않지만, 사정은 그보다 더 나쁜 쪽으로 기우는 일이 허다했다. 작가가 방문한 조선족 마을의 ‘그’도 그렇지만, 「목단강변 이화네」의 사정은 더욱 험악하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으로 돈벌이 간 이화네 아빠가 공사 현장에서 사고로 숨진 가운데, 사망자의 신원 파악에서부터 보험금 처리 문제, 어린 이화의 양육 문제 등 산적한 문제가 한두 가지 아닌 거다. 당시 위해에 머물고 있던 작가는 한국에 있는 선배로부터 다급한 국제전화 한 통을 받게 되는데, 바로 그 일들의 처리 문제였다.
김광식은 조선족 디아스포라의 삶 그리고 한국인과 조선족 간의 불신 문제를 담론화하기도 한다(「조선족으로 살아가기」). 명문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도 여전히 떠도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가난한 조선족, 그들의 일년치 봉급에 해당하는 돈을 하룻밤 유흥비로 써버리거나 대단한 사람처럼 행세하며 공수표를 날리는 한국인. 그들 사이에 불신과 증오가 끼어든다. 고국(가족)이라고 찾아갔으나 반가움은 잠깐이고 은근하고 노골적인 냉대에 마음조차 얼어붙게 되고, 어렵게 구한 일자리에서도 차별받기 일쑤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다. 한국 방문을 위해 낸 빚과 다녀오면 부자가 될 거라고 믿고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가 없다. 이래저래 양쪽에선 서로를 비방하는 목소리가 커지게 되고 관계는 더욱 악화된다. 급기야는 ‘한국 분이나 한국 사람은 없고 한국 놈’만 남게 되고, ‘뙤놈보다 더한 조선족 빨갱이’라는 말이 나돈다.
한중 수교 이후 갑작스럽게 일어난 조선족과의 갈등은 지금은 많이 진정된 편이기도 하고, 중국 내 조선족 사회 또한 계속된 변화를 맞고 있지만, 편견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다. 중국은 한족의 나라이고 조선족은 소수민족인 이방일 뿐이며 한국도 조선족에겐 타국이나 마찬가지인 현실에서 조선족은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나라, 우리 사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나에게 주어진 작은 책임은 무엇일까?’ 김광식의 질문은 자신에게는 물론 독자에게도 향해 있다.
4. 유머로 이야기하는 삶의 비결
「변의 사변」을 비롯해 「어(漁)떤 그리움」, 「더위 때문에」, 「나의 가엾은 대상포진」, 「오도송」 등의 작품에는 김광식표 유머가 깔려 있다. 「변의 사변」은 배탈로 인한 긴박한 상황을 묘사한 글이고, 「어(漁)떤 그리움」은 낚싯바늘이 하필 눈을 찌른 이야기다. 「더위 때문에」는 아내와 각방을 쓰게 된 이유를, 「나의 가엾은 대상포진」은 대상포진으로 인한 가출사건을, 「오도송」은 활연대오, 크게 깨달은 경험을 적고 있거니와 이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재미있다는 것이다.
재미와 웃음은 이야기의 본질이기도 하지만 유머의 본질이기도 하다. 유머란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다. 우리는 난처하고 불편한 상황을 웃음으로 넘기기도 하고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유머를 즐긴다. 유대인들은 2차 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를 경험하면서도 유머를 즐겼다고 한다. 프랭클(Victor Frankl)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의하면 죽음을 앞둔 유대인들을 붙잡아 주었던 것은 다름 아닌 유머였다고 하니, 유머에는 분명히 ‘살리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분위기를 살리고 목숨을 살리고 삶의 그 뭔가를 살리는 것이 유머가 아니겠는가.
웃음을 유발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김광식의 글에서는 우선 작품 전반에 스며 있는 해학적인 태도를 들 수 있다. 해학은 인간에 대한 긍정의 시선에서 나오는 만큼 그의 작품이 뿜어내는 특유의 활력은 해학성의 다른 이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김광식이 입심 좋게 써내려간 일련의 글들에는 그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되곤 하는데, 거기에는 부정적으로 혹은 삐딱하게 볼 수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이를 긍정하는 태도가 역력하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 웃음이 놓인다.
「변의 사변」은 배탈이 나서 한 시간여의 거리를 거의 초죽음 상태로 견디다가(그것도 달리는 버스 안에서!), 마침내 해우의 쾌감을 맞이했다는 이야기다. 배탈이 난 데는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며 느긋하게 다음 차를 타고자 했건만 순식간에 계획을 바꿔버린 자신의 조급함 때문이고, 그 때문에 허겁지겁 ‘쓰레기통에서 주운 빈 생수병에 지하수를 넣어 얼려 파는’, 위생과는 거리가 먼 길거리표 속임 수(水)를 마셨기 때문이다.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이 급작스러운 사태는 늘 버스간이나 화장실도 없는 척박한 곳에서(만) 일어난다(그렇지 않으면 이야기가 될 수 없다). 도무지 해결할 방법이 없는 고난과 시련의 시간 속에서 필사의 힘으로 참고 또 참는 동안, 어찌어찌 시간은 흘러서 마침내 ‘思無邪의 경지’에 임하게 되는, 참 다행한 이야기인데, 이야기의 끝은 여기가 아니다.
이야기가 여기서 그쳤다면 「변의 사변」은 배탈로 일어난 한 사실의 기록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겪게 되는 일이니, 이 글을 읽는 독자도 웃음 반 눈물 반 엉거주춤 동참했을 것이다. 긴급함을 넘어 참담한 지경까지 이른 한 인간의 고통이 비단 그의 고통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나, 모두가 겪을 수 있는 고통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며, 은근히 연민의 감정까지 더해졌을 것이다. 배설의 현장은 또 어떤가. 화장실 문이 있건 없건, 쪼그려식(式)이건 무엇이건 필생의 목표 하나는 달성했으니, 그곳에서 느끼는 것은 카타르시스다(카타르시스(katharsis)란 원래 배설, 정화를 이르는 그리스어에서 출발했다)! 그것을 작가는 사무사(思無邪)의 경지로 한 차원 더 끌어올려 놓는다. 공자(孔子)는 생각에 사특함이 없는 순정한 경지를 일컬어 사무사라 하였거늘, 고난의 몸을 푸는 쾌변(快便)의 그 순간이 곧 사무사의 경지인 것이다.
이 작품에 방점을 찍게 하는 것은 마지막 문장이다. 밝고 개운하고 희망찬 마음으로 화장실을 나섰으나 또 문제가 기다리고 있는 상황. 빨리 나오라 화장실 바닥을 탁탁 치던 아까의 그 청소부 노인, 그가 이번엔 트렁크(작가의 모든 것이 들어 있는)를 가리킨다. 또 ‘뭔가’를 요구하는 제스처임이 분명하다. 화장실에 있을 때 이미 막 뜯은 담배를 갑째로 줘버린 상황에 남은 담배가 더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삶의 비결을 듣기 위해서는 정말 담배 한 보루의 비책은 필요할 것 같다.”
사족이긴 하지만 담배가 정말로 삶의 비책이 된 때도 있었다. 오늘날 담배는 공공의 적이자 혐오의 대상으로 추락하고 말았지만, 지난 수 세기 동안 인류가 즐긴 가장 대표적인 기호품이었다. 손님을 접대할 때 차나 술 대신 쓰이기도 했고, 누군가에게 인사치레나 부탁을 해야 할 경우에도 제일 요긴한 물건이 담배였다. 그뿐 아니라 담배는 심리 치유의 역할도 했다. 세상살이 하 답답할 때, 터져나오는 울분을 주체하기 곤란할 때, 격한 싸움 뒤 끝이면 늘 담배가 있었다. 담배 하나(한 개비건 한 갑이건 한 보루건)면 삶의 윤활유가 될 수도 있었고, 안 되는 일도 되게 할 수도 있었다(「불상 이야기」, 「목단강변 이화네」, 「어(漁)떤 그리움」 등의 작품에 쓰인 담배의 역할도 이와 같다). 하지만 담배는 자꾸 변방으로 밀려나고 시류 또한 급변하고 있으니 삶의 비책을 마련하는 일은 언제나 쉬운 일이 아니다.
각설하고, 앞뒤 잴 것 없이 그저 웃고 싶다면 「어(漁)떤 그리움」을 읽어보라. 여기에는 부득이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낚싯바늘처럼 걸려 있다.
글을 읽으려면 우선 「어(漁)떤 그리움」이라고 쓰는 것이 어법상 맞는지 아닌지는 따지지 말자. 그보다 물속을 향해 던진 낚싯바늘이 어떻게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날아갈 수가 있으며, 그것도 애꿎은 사람의 눈을 정조준할 수 있는지, 그것을 말해보자. 그게 가능한가? 물론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그럴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이건 확률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도무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정말로 일어나고 말았다는 것, 그것이 문제니까.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속담이 있다. 속담이야말로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삶의 진리일 터이니, 낚싯바늘이라고 꼭 물고기만 꿰란 법은 없는 것이다.
「어(漁)떤 그리움」은 낚시하다 정말로 낚싯바늘에 눈이 꿰어 하마터면 실명할 뻔한 이야기다. ‘눈동자와는 전혀 무관하게 기술적으로(?) 눈꺼풀만’ 꿰여서 다행이지 눈동자까지 꿰뚫어버렸다면 어쩔 뻔했나. 하지만 웃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이없고 황당하고 심각하기까지 한 상황인데도 웃지 않을 수 없고, 죽어가는 사람처럼 신음하던 사람이 ‘그녀’들을 향해서는 마초 같은 미소를 보내는 것에 웃지 않을 수 없으며, 그를 치료하는 의료진의 웃음을 따라 다시 한번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웃음이란 대단히 기이한 감정의 표현이어서 기쁘고 즐거울 때만 웃는 것이 아니라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도 웃고, 말이나 행동이 우스꽝스러울 때도 웃고, 동문서답할 때도 웃고, 실망스러워도 웃고, 놀라도 웃는다. 뭔가 예상과는 다른 일이 일어났을 때 혹은 뭔가 어긋남이 있을 때(쇼펜하우어는 그것을 ‘직관과 개념의 불일치’라고 표현한다), 그로부터 웃음이 유발된다는 것이다. 무엇을 예상 밖 혹은 어긋남이라고 생각하는가(무엇을 유머로 볼 것인가)는 각자의 경험, 문화, 지역, 시대, 교육의 정도, 사회적 계급 등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웃음이 한 감정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 복합적인 감정으로부터 생긴다는 것은 어디서나 같은 결론일 듯하다.
「오도송」, 「더위 때문에」, 「나의 가엾은 대상포진」, 이 세 이야기는 모두 ‘아내’로 귀결되는 작품이다. 「오도송」은 불가 스님들의 깨달음의 노래를 ‘오도송’이라 한다는 것을 빌려 자신에게서도 ‘오도송’이 터져 나오던 순간을 고백한 글이다. 한낱 범부(凡夫)인 주제에 그런 큰 제목을 붙인 것은 자신도 그에 버금가는 순간이 있었다는 뜻이다. 작가는 ‘정말 중요한 깨달음 후 절로 나온 한 마디였으니 결례를 무릅쓰고’ 이야기를 시작해보겠다는 선언 아닌 선언을 앞세우고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결연한 의지를 앞세운 이야기꾼의 말씀은 단박에 독자를 사로잡고 관심을 집중케 한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
작가의 이야기는 덤덤하게 흘러간다. 군대에서 척추 추간판탈출증 일명 디스크 수술을 받고 의병 전역을 한 이야기에서부터 30여 년이 가까워서야 보훈 대상자 심사 신청을 하게 된 일, 대상자로 선정되어 보상금도 받게 되고 심지어 무료진료와 치료를 받는 특전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일. 그래서 자신도 MRI라는 정밀도 검사를 하게 된 일 등이다. 그런데 도대체 그 일들이 ‘오도송’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오도송’과는 별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이야기에 독자의 마음에는 더욱 호기심이 일어난다. 작가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짐짓 딴청을 피우는지, 이야기는 계속된다. 하나 힌트가 있다면 장면장면에 꼭 ‘아내’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
MRI촬영을 위해 둥근 관속 같은 검사대에 들어간 작가는, 가슴에 손을 얹고 요란한 기계음을 들으면서 수십 분 동안을 오직 가만히 있어야만 한다. 그런 중에 지금 여기가 진짜 관속이라면? 하는 생각이 들고, 죽음의 순간을 떠올리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문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절실하게 목숨 내놓고 누구를, 무엇을 사모해본 적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없다. 그것이 억울하다. 그럼 이제부터라도 그런 삶을 살아야 할 텐데 ‘그 답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더욱 억울하다.’
…이제까지 절실하게 목숨 내놓고 누구를, 무엇을 사모해본 적이 없는 삶이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가! 그런 사람들의 생사입판(生死立判)의 치열(熾烈)한 삶이 부러워서라도 아직은 죽을 수 없었다. 그럼 이제부터 나는 뭘 찾아서 그렇게 열정적이며 뜨거운 삶을 살 것인가? 한참을 생각해도 그 답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더욱 억울하였다.
-「오도송」 부분
김광식은 그 답을 찾았을까 못 찾았을까? 김광식의 ‘오도송’은 무엇이었을까? 답은 그대가 찾아보시기 바란다. 답도 답이지만 이야기를 전개하는 작가의 솜씨가 새삼 놀라운 작품이다. 이야기란 이런 것이다, 혹은 깨달음이란 이런 것이다, 라는 것을 ‘나’라는 한 범부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처럼 생생하게 들려주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일 것이다.
「나의 가엾은 대상포진」 역시 아내가 등장한다. 아내는 대상포진에 걸린 ‘나’를 하루 이틀은 극진히 대하더니 점점 귀찮아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섭섭한 마음에 ‘일주일 복용할 약과 대상포진이 죽는 병은 아니라는 처방을 받아들고’ 친구가 사는 시골로 가출(?)을 해버린다. ‘잘 먹으면 낫는 병이라더라’는 친구와 더불어 고기에 술에 한 상 거나하게 받아들고 있는데, 여관방 문이 노크도 없이 왈칵 열리면서 아내가 들이닥친다. “거기서 스톱! 이거시 시방 뭔 시츄에이션들이여?” 아내의 등장으로 위로 한 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채 ‘나의 가엾은 대상포진’은 ‘그렇게 물 건너가버렸다.’는 이야기.
「더위 때문에」는 제목 그대로 더위 때문에 아내와 각방을 쓰게 된 이야기다. 더위가 물러난 지 한참이 지나 아침저녁 오싹한 기운이 돌고 있는데도 합방할 기회를 놓친 채 장기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아내를 섭섭하게 했던 일, 버럭버럭 화를 냈던 일을 이야기하며 반성모드로 돌아와 있지만, 엊그제 또 일을 저질렀으니 장차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엄살 같은 이야기.
이 세 편의 이야기는 바탕에 깔린 웃음과 함께 삶의 행복을 말하는 작가의 진정이 담겨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아내를 향한 사랑이다. ‘오도송’이라 붙일 만큼 크고 깊은 사랑이며, 끝없이 관심받고 싶은 사랑이며, 언제나 함께하고 싶은 사랑이다. 사랑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항상 지금 여기 그대 곁에 함께 있다. 그나저나, 사랑 고백을 이처럼 근사하게 하는 남편을 두셨으니, 그녀는 참 좋으시겠다.
5. 글쓰기의 미학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드’를 기억할 것이다.
세헤라자드, 아시다시피 그녀는 이야기를 잘했다. 뛰어난 검술이나 사람을 유혹할 만한 특별한 기술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통해 잔혹한 폭군 샤리아르의 마음을 변화시킨 탁월한 이야기꾼이었다. 워낙 알려진 이야기이긴 하지만 다시 들어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옛 페르시아의 왕 샤리아르는 자신의 왕비가 부정한 일을 저질렀음을 알고 분노가 치밀어 왕비를 비롯한 배신자들을 모두 처단했다. 뭇 여성들까지 죄다 혐오하여 날마다 새로운 처녀와 동침했다가 다음날이면 죽이는 일을 반복하는데, 어느 날 한 대신의 딸 세헤라자드가 왕과의 혼인을 자청한다. 그녀는 첫날부터 매일 밤 왕에게 이야기 하나씩을 들려주는데, 그녀는 이야기의 끝을 맺지 않은 채 매번 다음날 들려주겠다고 약속한다. 이야기는 몹시 흥미로웠고 그 끝이 궁금한 왕은 하루하루 그녀의 처형을 미루다가 결국 단념하기에 이른다.
그녀가 가진 무기는 단 하나, ‘이야기’뿐이었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 덕분에 그녀도, 다른 여인들도 목숨을 구할 수 있었고, 왕의 인생도 구원을 얻게 되었다. 샤리아르가 그녀를 죽이지 않게 된 것은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다르게 바라보게 됐기 때문이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를 끌어내는 특별한 힘이 있었던 것이다.
글쓰기 역시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글쓰기는 이야기의 한 형식이며, 이야기에 대한 인간 욕구의 표현이자 삶의 표현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삶 속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것을 재현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과 경험은 조각나고 무정형하고 무질서한 상태로 혼재하기 마련이다. 글쓰기는 그러한 혼돈의 상태에 대하여 질서와 체계를 부여함으로써 자칫 의미 없이 묻혀 버릴 이야기들을 다시 보게 해준다. 우리는 글을 씀으로써 삶의 이야기를 형상화하고 그 과정을 통해 재미와 감동을 맛볼 뿐 아니라 성장의 기쁨을 얻어내기도 하는 것이다.
김광식은 글쓰기를 통하여 자신과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의 이야기는 판소리 사설처럼 흥미롭고 유장하고 재미있다. 이야기의 맛을 낼 줄 하는 ‘꾼’의 솜씨다. 순이와 친구들과 아내와 아들,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주변인들의 이야기가 글쓰기를 통해서 다시금 재현되고 조명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어떤 작가는 글쓰기를 ‘부지런한 사랑’이라고 했다. 글쓰기를 함으로써 나와 내 이웃을 더 부지런히 살피게 되고, 더 부지런히 사랑하게 됐노라 한다. 작가 김광식의 글쓰기가 더욱 부지런한 사랑으로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