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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머리에
사람이 정말 바꿔야 할 것은 미래가 아니라 자신의 과거다. 사람은 여태까지 살아온 자기 과거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오늘 먹은 나의 마음이 내 인생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가 바뀐다. (5쪽)
오늘 나의 마음이 바뀌면 나의 행동이 바뀌고,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바뀐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명제는 주역점의 기본 원리를 이루는 것이기도 한데, 이렇게 해서 사람은 과거를 포함한 자신의 인생 전체를 바꿀 수 있다. 이렇게 할 때 사람의 인생이 완성되며, 이것이 오십 대의 사명이다. (6쪽)
가치 있는 일은 절대적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이십 대와 삼사십 대를 거친 오십에게는 그동안 축적한 인생이 있다. 그러므로 오십에 이른 이는 이제 자기 인생을 조망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긴다. 자신의 기질을 넘어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는 이제 운에 휩쓸리지 않으며 그 고삐를 틀어쥐고 살 수 있다. (6-7쪽)
* 과거에서 깨달음을 얻어라, 과거를 깨달음의 양식으로 삼으라. (박희택)
주역은 '주나라의 역'이라는 뜻이다. 원래의 역경은 주나라가 아닌 은(殷)나라(기원전 1600년경~기원전 1046년경)의 점인(占人)들이 정립했다. 그러다가 은나라를 멸하고 들어선 주나라가 자신들의 이름을 붙여 주역이라 명명했기에 오늘날 주역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것뿐이다. (8쪽)
팔자는 바꿀 수 있고 바꿔 내야 하는 것이다. 우선 팔자는 내 삶의 출발점이자 재료로 주어진 소중한 나의 자산이다. 그러다가 삶이 후반생에 이르면 이 팔자를 바꿔서 넘어서야 한다. 이렇게 해서 팔자를 넘어설 때 나의 삶이 완결되는 것이며, 그때라야 기쁘게 눈감을 수 있는 것이다. (11쪽)
제2장 불변은 만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_오십의 성찰
제5절 오늘 먹은 나의 마음이 과거와 미래를 모두 바꾼다_중심
장(章)을 머금어야 정(貞)할 수 있으리라.
含章可貞. (제2괘 중지곤괘 3효사 ; 141쪽)
건괘는 양의 흐름을 상징하기 때문에 인생의 전반기를 관장하며, 곤괘는 음의 흐름을 상징하기 때문에 인생의 후반기를 관장하는 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곤괘의 여러 효사에는 사람의 후반생을 위한 금쪽같은 조언이 담겨 있다. (142쪽)
건괘 - 전반기 - 외형의 성장 - 물질세계 - 생(生)의 단계 - 봄[生]과 여름[長]
전환기 - 건의 길이 절정에 이른 후 곤의 길로 넘어감 - 오십대
곤괘 - 후반기 - 내면의 성장 - 정신세계 - 성(成)의 단계 - 가을[收]과 겨울[藏]. (142쪽 그림11)
서리를 밟고 굳은 얼음이 어는 때도 이르리라.
履霜 堅氷至. (제2괘 중지곤괘 1효사 ; 143쪽)
* '얼음이 어느 때도 이르리라'의 긍정적 의미는 168쪽에 있음. (박희택)
인생의 가을날로 접어든 오십대는 (...) 지금 서리를 밟고 있으니 앞으로 굳은 얼음이 어는 때도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알지 못하고 과잉의 단계로 가고 만 결과가 항룡(亢龍, 건의 길에서 과잉의 단계인 6단계, 142쪽)의 추락인 것이다. 이러한 항룡의 추락이 오십대에 흔한 첫 번째 실패 유형이라면, 두 번째 실패 유형은 '그냥 이대로 살지 뭐'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자족하는 태도라 착각할 수 있지만 어디 인생이 그리 만만하던가. 인생은 '그냥 이대로 살지 뭐' 같은 안이한 태도를 용납하지 않는다. (143쪽)
장(章)의 원형적 의미는 '타인과 구별되는 그 사람만의 일생의 핵심을 짧게 밝힌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부터 '문장(文章), 구별, 표지, 밝히다, 나타내다, 드러내다' 등의 여러 뜻이 파생된 것이다. 표지란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 남과 다른 자신만의 특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가문의 문장(紋章)에 장(章)이 들어간 경우가 이와 같은 뜻을 반영한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역경이 말하는 취지는 '사람이 이와 같은 장(章)을 입에 머금고 있어야 후반생을 흔들림 없이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말이다. 입에 머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본능적으로 즉시 입에서 튀어나올 정도로 각인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장(章)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정립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힘든 상황이 닥쳤을 때도 본능적으로 입에 머금을 수 있는 것이다. (...) 장(章)이란 결국 '나의 인생을 무엇이라 규정할 것인가'의 문제다. 역경은 인생의 전환기에 놓인 오십에게 이를 스스로 규정하라고 촉구하는 것이다. (145-146쪽)
우리가 80년을 건강하게 산다고 가정하면 약 3만 일을 사는 셈인데, 우리 직관이 다루기엔 제법 큰 수입니다. (...) 먼 옛날의 나와, 지금 여기의 나와, 먼 훗날의 나라는 세 명의 완벽히 낯선 사람들을 이런 날들이 엉성하게 이어 주고 있습니다. (...)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 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허준이 교수의 서울대 졸업식 축사 ; 148쪽)
시간은 본질이 아닌 것들, 변덕스러운 우연, 사건, 사실들을 다 흩어 버리고 진선미만을 남긴다. 진선미의 순간에 해당하는 소중한 몇몇 날들에 대한 기억이 나를 지탱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를 뒤늦게 깨닫는 사람들이 있고, 죽음의 수간에 이르도록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149쪽)
사람이 죽음의 순간에 이르면 지난 평생 동안의 일이 빠르게 눈앞에서 돌아간다. 이른바 '필름이 돌아가는' 것이다, 이때서야 비로소 자신이 평생에 걸쳐 헛것만을 바라보고 헛살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사람이 공포에 질리는 것이다. 사람이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평생을 헛살았다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 이를 바로잡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149쪽)
원효대사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가르침은 익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구절을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정도로 해석하는 것은 부족하다.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일체의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가 된다. 일체의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는 말은 우리 마음이 이 세상을 실제로 지어내고 지탱한다는 말이다. 그에 따라 원효대사는 지옥계, 아귀계, 축생계, 인간계 등이 실제로 이 땅 위에 존재한다고 가르쳤다. (150-151쪽)
원효대사의 가르침은 20세기의 아인슈타인에 이르러서야 실재임이 입증되었다. 아인슈타인이 정립한 우주의 상대성 원리는 '이것에 의해 저것이 있게 되고, 저것에 의해 이것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일본인 최초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유카와 히데키로부터 이와 똑같은 가르침이 불교에 있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다. 이에 놀란 아인슈타인이 불교 교리를 배웠고, 이후 "현대의 과학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종교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불교라고 말하고 싶다"라는 말을 남겼다. (151-152쪽)
* 유카와 히데키( 湯川秀樹, 1907~1981)는 교토대 물리학부 출신으로 교토대 교수가 되었으며, 1949년 중간자(전자보다 무겁고 양성자보다 가벼운 존재) 이론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음. (박희택)
그런데 저 상대성 원리는 불교 이전에 역학에 있는 대대의 원리다. 음에 의해 양이 있게 되고, 양에 의해 음이 있게 된다, 어둠에 의해 밝음이 있게 되고, 밝음에 의해 어둠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대대는 무엇일까? 서로 대립하면서 동시에 서로 의존하는 것, 이것에 의해 저것이 있게 되고, 저것에 의해 이것이 있게 되는 것, 그것은 나의 마음이다. 이 세상과 나의 마음이 서로 대대인 것이다. 나의 마음에 의해 이 세상이 있게 되고, 이 세상에 의해 나의 마음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나의 마음에 의해 지어지는 것이다. 인간 정신은 사실을 자신의 마음에 따라 바꾸어 내서 이 세상을 짓는다. 귀장이 바로 이것이다. (152쪽)
* '대대'의 한자 표기는 '對待'이며, '귀장'의 한자 표기는 '歸藏'임. 귀장에 관해서는 이 책 128쪽을 참조할 것. (박희택)
사실을 하늘의 뜻에 합당하게 바꾸어 낸 것이 하늘의 몸에 돌려져 영원히 남는 것이다. '성성존존'을 이룬 귀장에 의해 인간계가 지탱되는 것이며, 천상계를 향해 조금씩 자라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지상 세계를 축생계가 아닌 인간계가 주도한다는 것은 군자의 노력이 쇠퇴하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152-153쪽)
* '성성존존'의 한자 표기는 '成性存存'이며, 주역 계사상전 제5장에 나오는 구절임(이 책 129쪽 참조). (박희택)
사실이란 것이 얼마나 가변적이며 약한가? 사실은 사람의 마음이 지탱하지 않는 한 수시로 모습을 바꾸며, 조금만 지나도 흩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과거를 포함한 자신의 인생 전체를 바꿀 수 있다. 이것이 인생의 비밀이며 놀라운 기적이다. 만물 중에 사람이 가장 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축생은 이러한 기적을 일으키지 못하며, 정신 세계를 지닌 사람만이 이룰 수 있는 것이다. (...) 인간 정신의 힘은 과거를 바꾸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에게 일어나는 변덕스러운 우연에 휘둘리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사건을 모두 굴복시킨다. 그리고 자신에게 부여된 하늘의 뜻을 이루고자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의 일이다. (153-154쪽)
변덕을 관통해 내는 것을 일러 사람의 일이라 한다.
通變之謂事. (계사상전 제5장 ; 154쪽)
천명이란 무엇인가? 여러 가지로 대답할 수 있는데 그중 하나는 자기에게 일어난 변덕스러운 우연을 모두 관통해 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늘의 뜻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 후반생은 정신 세계를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후반생 동안 정신의 힘으로 과거(전반생)의 사실들을 합당하게 바꾸어 내야 한다. 전반생을 사는 동안 자신에게 닥쳤던 온갖 변덕스러운 우연을 관통하여 의미를 부여해 내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마다 사람은 비로소 자기 과거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흘러가 버린 과거를, 자기의 인생을 바꾸어 내는 데에 삶의 의미가 있다. (154쪽)
좌충우돌하며 치열하게 살아온 전반생만으로는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여 멋진 작품으로 완성해야 하는 것이다. 의미를 부여하기 전까지 나의 과거는 가변적인 것이다. 비참한 과거였는가, 나를 단련시키는 과정이었는가? 무의미한 과거였는가, 유의미한 과정이었는가? 전반생이 어느 쪽이었는지 '지금의 나'가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반생을 통해 그 결정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의 삶이 완성된다. 결국 오늘 먹은 나의 마음이 오늘은 물론 과거와 미래를 모두 바꾼다. 나의 마음은 그토록 놀라운 것이다. 이것이 인간 정신의 힘이다. (155쪽)
* 역경의 '의미 부여'는 개인심리학의 아들러나 로고테라피의 프랭클과 연결지을 수 있음. (박희택)
나의 육체는 이 세상에 나의 영혼과 정신을 새겨 넣는 조각칼이다. 나의 육체가 있어서 나의 소임을 다할 수 있으니, 육체 역시 나의 소중한 일부다. 자신에게 주어진 조각칼로 이 세상에 무엇이라 새길지 선명하게 정립한 것이 나의 장이다. 사람의 나이 오십은 장을 정립하고 나서 부지런히 세상에 새겨 나갈 소중한 시기다. (156쪽)
제6절 과거와 타인에서 벗어나 나의 길을 나아가야 할 때_성찰
자루를 틀어 묶어 허물도 없고 명예도 없이 하라.
括囊 无咎 无譽. (제2괘 중지곤괘 4효사 ; 158쪽)
점인들 사이에 금에 대한 풀이가 일치하지 않을 경우, 은나라 왕(점인들의 우두머리)이 직접 나서서 의견이 분분한 풀이를 한 가지로 뜻으로 확정짓는 것을 의미한다. '자루를 틀어 묶는다'는 것은 이런 의미이며, 이처럼 왕이 나서서 자루를 틀어 묶을 경우 더 이상 금의 풀이에 대한 다른 의견은 용납되지 않는다. (159-160쪽)
나의 인생을 무엇이라 규정할 것인지에 대해 결단을 내렸다면 이제는 더 이상 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일절 귀를 기울이지 말라는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좌고우면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밀고 나가라는 것이다. 단, 이때 '허물이 없어야 한다.' '허물이 없다'는 말에 대해 역경은 다음과 같은 풀이를 제시한다. (160쪽)
허물이 없다는 것은 자신의 과오를 잘 보수했다는 말이다.
无咎者 善補過也. (계사상전 제3장 ; 160쪽)
과오를 고치기 위한 후속적인 노력을 충실히 함으로써 그 과오가 사람들의 기억에 계속 불명예로 남게 되지는 않는 경우를 말한다. (...) 과거의 사실들을 바꾸어 내라는 의미가 된다. 앞글에서 사람이 나이 오십에 자신의 장을 정립했다면 이후 과거(전반생)의 사실들을 장에 합당하도록 바꾸어 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의 장을 통해 전반생에 겪었던 모든 변덕스러운 우연을 관통해 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차분하게 성찰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성찰의 과정을 통해 지나온 삶에서 어떤 과오가 발견된다면 이를 잘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그 과오가 허물로 계속 남지 않는 것이다. (161쪽)
* '모든 변덕스러운 우연'은 '통제되지 않는 기질에 의한 급발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임. (박희택)
성찰과 치유의 과정 앞에 '자루를 틀어 묶어라'는 조언이 선행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이는 성찰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말에 좌우되는 성찰이 아니라, 내가 주체가 되는 성찰이어야 함을 뜻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3단계에서 정립한 자신의 장을 성찰의 기초로 삼을 것이고, 다른 사람의 인생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돌아봐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면 될 것이다. (161-162쪽)
다음으로, '명예도 없이 해야 한다.' 우선 명예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명예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명예도 없이 하라'는 것은 어떤 명예를 얻기 위해 타인의 시신에 구애되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 내 인생의 보람이 아닌 타인의 것을 위해 소중한 나의 시간과 기운을 낭비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162쪽)
* 지금까지의 논의는 <함장 - 괄낭 - 통변 - 무구 - 무예>로 전개되었음. (박희택 ; 162쪽 종합서술 참조)
* '누구에게도 헌신하지 마라'는 로버트 그린의 명제(권력의 법칙 27)가 연상됨. (박희택)
사람은 유한한 존재이므로 스스로 한계를 둘러칠 필요가 있다. 무한은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 스스로 한계를 둘러칠 때라야 자기 존재가 분명해진다. 나는 무엇 하러 여기 왔는지가 분명해지는 것이다. 이때라야 사람은 강해질 수 있다. 이때라야 사람은 확신을 가질 수 있고 치밀해질 수 있다. 그 결과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 인생의 가을날에 접어든 오십이라면 더 말할 것이 없다. 자기 인생에서 무언가 결실을 거두려면 반드시 '자루를 틀어 묶어야 한다.' (163쪽)
나의 우주를 완성하기 위해 장을 머금어야 하고 자루를 틀어 묶어야 하는 것이다. 장을 머금음으로써 나의 우주가 돌아가는 중심축을 세우는 것이고, 자루를 틀어 묶음으로써 중심축을 튼튼히 굳히는 것이다. 이 때 '명예'라는 형태의 유혹이 방해의 올가미로 나타난다. (...) 나이가 오십이라면 이제는 자기의 천명을 이루는 노력 외에 타인에게 시간을 내주는 것은 곤란하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그러므로 오십은 스스로 자루를 틀어 묶어 자기 천명[章]의 경계를 둘러쳐야 하고, 경계 밖의 일은 하늘에 맡겨야 한다. (...) 역경에 '명예도 없이 하라'는 것은 '명예가 없어도 된다'는 말로, 하늘이 오십에 허용한 '면제'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면제가 허용되는 이유는 천명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은 천명에 대해 "사람에게 명(命)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라는 적절한 언급을 남겼다. (165쪽)
황색 치마를 입은 상이로다. 으뜸으로 길하리라.
黃裳 元吉. (제2괘 중지곤괘 5효사 ; 166쪽)
고대에 황색 치마는 황제만이 입을 수 있는 옷이다. 그러므로 '황색 치마를 입은 상'이라는 말은 군자가 곤의 도를 4단계까지 충실히 따를 경우 그 절정인 5단계에 이르면 자기 우주의 왕이 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 나의 우주(인생)를 완성하는 것이 바로 나의 천명이다. (...) 사람이 곤의 도를 달성하여 5단계 왕의 자리에 올랐을 때 비로소 '으뜸으로 길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앞서 건의 길 5단계에서는 이와 같은 말이 없었다. 이는 외형 성장의 절정인비룡으로 인생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곤의 길을 통해 내면의 가치를 완성해야 함을 뜻한다. 역경의 근본 과제인 '성성존존'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166-167쪽)
곤의 도 1단계에서라면 앞으로 굳은 얼음이 어는 때도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경계의 의미였다. 하지만 이제 곤의 도가 4단계와 5단계에 이르면 굳은 얼음이 얼게 해야 하는 때가 된다. 자루를 틀어 묶는 것이 바로 굳은 얼음이 얼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오십에 이르면 장을 중심으로 자신의 내면을 스스로 단단하게 굳혀야 한다. 그래야 오십의 소임을 다할 수 있다. (168쪽)
* <함장 - 괄낭 - 통변 - 무구 - 무예>하였기에 <원길>함. (박희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