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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필자가 펴낸 '김영환PD의 자전거 인문학'을 근거로 하여 작성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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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PD의 자전거 인문학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라이딩 32코스저자가 직접 그린 지도 수록!저자는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고, 정리하면서 늘 손으로 지도를 그렸다. 등고선이나 축척이 정확한 지도는 아니지만, 그의 지도에는 자전거로만 갈 수 있는 길과 그 길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과 명승지, 잠시 들러 숨을 고를 수 있는 쉼터가 자리하고 있다. 직선 없이 꼬불꼬불한 자전거 길을 손으로 따라가다 보면, 글에서 느껴지는 자전거 여행의 향취를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또한 실제로 코스를 타려는 자전거 여행자에게는 어떤 지도보다 실용적인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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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씨버선길은 일월산 자락에 이르러 치유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산행객들에게 힐링을 선사한다.
빛을 찾아 가는 길
버스가 봉화군 춘양을 지나 임기에 접어들자 큰 강이 나타났다. 낙동강의 상류다. 산협의 단풍은 강물에 어리고, 가을은 이 산골까지 깊숙이 들어온 것 같다.
그러나 강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야를 비껴가고 큰 산이 앞을 가로막는다. 왼쪽은 해발 1,135미터 장군봉, 오른쪽은 해발 1,219미터 일월산이다. 터널을 빠져 나오니 일월산의 산체가 더 가까이로 다가온다. 꼬불꼬불한 내리막길 옆에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의 환상적인 색감에 버스에 탄 사람들은 ‘와’ 하고 탄성을 지른다.
영양군 일월면 도곡리에서 바라다 본 일월산(해발 1219미터)
영양군은 인근 봉화, 청송과 더불어 영남의 대표적인 두메산골이다. 두메산골 영양은 걸출한 문인을 배출했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 우리나라 최초의 시 전문잡지인 〈시원>을 창간한 시인 오일도, 소설가 이문열, 그리고 전설의 소설가라는 별명이 붙은 강준용 등 수많은 문인이 이 고장 출신이다.
이를 반영하듯 영양군은 ‘문향의 고장’으로도 불린다. 이곳은 청송에서 시작해 영월을 잇는 240킬로미터 둘레길인 외씨버선길이 지나는 길목이다. 외씨버선길은 청송의 김주영 문학관을 지나 영양에서 이문열, 오일도, 조지훈의 고향을 잇고 다시 일월산 치유의 길을 지나 봉화, 영월로 이어진다.
외씨버선길은 청송-영양-봉화-영월로 이어진다. 출처 : 외씨버선길( http://www.beosun.com)
외씨버선길이라는 이름은 영양 출신의 시인 조지훈의 시 「승무」에서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에 나오는 시어 ‘외씨버선’을 차용해 지었다고 한다. 외씨버선은 오이씨(외씨)처럼 볼이 좁고 갸름한 버선이다. 이 길을 연결한 모양이 외씨버선을 닮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외씨버선길은 총 13개 구간으로 되어 있는데 영양 쪽 외씨버선길이 접근성이 가장 떨어진다. 영양에는 철도도 고속도로도 심지어 4차선 국도도 하나 없다. 서울에서 오가는 시외버스도 고작 하루 2번뿐이다.
치유의 길에서 조지훈 시인의 마을까지 60킬로미터 여정
이번 자전거 여행에선 일월산을 넘는 외씨버선길 제7구간인 치유의 길을 지나고, 다시 길게 우회해서 조지훈 시인의 고향인 주실마을을 방문하기로 계획했다. 거리는 대략 60킬로미터 정도다.
라이딩은 버스가 일행을 내려준 용화리 대티마을에서 시작된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제련소 터가 있다. 이곳에는 일월산에서 캐온 금, 은, 동, 아연 등을 선광하고 제련하던 곳인데, 해방 이후에도 소규모로 명맥을 잇다가 1970년대에 폐광됐다고 한다.
그 후 오랫동안 방치돼 있다가 2001년 군청에서 오염토를 밀봉하고 그 자리에 쑥부쟁이, 동자꽃, 범부채, 금낭화 등을 심어 자생화 공원으로 조성했다.
영양군 일월면 용화리에 있는 일월산 폐광터. 주변의 오염토를 밀봉하고 자생화공원으로 조성돼 있다.
일월산 숲길 따라 오르는 치유의 길
자생화공원에서 대티 마을 방향으로 2킬로미터 직진하면 원두막 옆으로 난 비포장 길이 있다. 이 길은 예전에 광물이나 벌채한 소나무를 실어 나르던 국도였다고 한다.
폐광 이후 50년 가까이 방치되면서 숲이 우거져 길을 덮고 있다. 이 숲길은 2009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공모전에 ‘치유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출품해 장려상을 받았다.
숲길은 오를수록 분위기가 점차 예사롭지 않다. 쭉쭉 벋은 소나무 사이로 군락을 이룬 생강나무가 잎을 샛노랗게 물들이며 황홀한 색감을 연출한다. 바닥에도 온통 생강나무 낙엽으로 노란색 세상이다.
이른 봄 노랗게 꽃 피우던 동백나무가 가을엔 그 잎을 노랗게 채색했다.
이런 환상적인 분위기는 4킬로미터에 이르는 숲길 내내 이어진다. 라이더들은 오르막인데도 만면에 미소 가득하다. 칠밭목이란 곳에서 길은 일월산 정상 방향과 남회룡 방향으로 나눠진다. 우리는 오른쪽으로 남회룡까지 10여킬로미터의 긴 내리막길을 타게 된다. 낙엽송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쭉 내려가니 오전에 지났던 영양터널이 나왔다.
이제 치유의 길은 여기서 끝난다. 이제 외씨버선길은 봉화군과 영양군 경계 사이로 이어진다. 이 길은 페달을 밟지 않아도 그냥 내려갈 정도의 내리막이다. 곧게 뻗은 낙엽송 군락지는 끝이 없다.
이런 숲길에선 빨리 달릴수록 손해다. 오래 머물러야 숲의 치유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숲에선 “오래 머물러 있으면 암도 고친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것의 과학적 증명은 어렵다 하더라도 숲이 암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점은 의사들도 인정한다.
산악자전거를 오래 탄 사람이라면 내남없이 산림 치유의 효험을 경험했을 것이다. 사실 나는 몇 년째 여러 가지 일로 우울했다. 그 우울증이 깊게 도지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자전거 덕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울하다가도 숲에만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표정이 밝아진다.
그건 라이딩 할 때 사진 찍힌 내 얼굴 표정이 입증한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분출되는 행복의 호르몬 덕택인가? 편안하고, 너그러워진 마음은 분명 라이딩이 내게 주는 특별한 선물이다.
낙엽송 숲길은 남회룡까지 계속 이어진다. 주변은 밭과 촌락도 있지만 대부분이 숲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경치도 오랫동안 스치면 피로가 생기는 법. 몸이 피로를 느낄 때쯤 남회룡 모래밭 마을에 도착했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남회룡 삼거리에서 오른쪽 도로 쪽이다. 모처럼 오르막길이지만 잠깐만 페달을 밟으면 잿마루에 도착한다. 고개는 낙동정맥의 마루금이다. 고개를 내려가면 영양군 수비면 신암리. 영양에서도 가장 깊은 오지다.
남회룡 고개를 지나면 맑은 물길을 따라 신암에서 수하까지 14킬로미터 내리막 길이 이어진다.
별빛이 가장 밝게 빛나는 밤하늘공원
신암 고개에서 14킬로미터를 달려 왕피천 상류지역인 수하리에 도착했다. 우리가 지나온 신암리와 이곳 수하리 일대는 반딧불이 보호구역이자 국제 밤하늘 보호공원으로 지정돼 있다고 한다.
이곳 일대가 인공광원이 별로 없는 까닭에 밤하늘 별빛이 가장 밝게 빛난다고 하는데 2015년 국제밤하늘협회(IDA)는 이 일대를 아시아 최초로 국제 밤하늘 보호공원으로 지정했다.
수하리에서 12킬로미터를 달려 수비면 소재지에 도착했다. 이제 주실 마을까지는 20킬로미터 거리이다. 다행히 수비면 소재지를 지나면 주실 마을 근처까지 15킬로미터는 반변천을 따라 내려가는 완만한 내리막길이다. 주실 마을은 일월면 소재지에서 3킬로미터 거리다.
조지훈 시인의 고향, 주실 마을
주실 마을 입구에는 아름다운 숲이 드넓게 자리 잡고 있다. 낙엽이 깔린 숲 한복판에 조지훈 시인의 시비가 있다. 「빛을 찾아가는 길」이라는 제목의 시가 새겨져 있다.
사슴이랑 이리 함께 산길을 가며
바위틈에 어리우는 물을 마시면
살아있는 즐거움의 저 언덕에서
아련히 풀피리도 들려오누나
…
돌부리 가시밭에 다친 발길이
아물어 꽃잎에 스치는 날은
푸나무에 열리는 과일을 따며
춤과 노래도 가꾸어 보자
빛을 찾아가는 길의 나의 노래는
슬픈 구름 걷어가는 바람이 되리라
싸움과 설움, 고행 슬픔의 구름을 걷고 언덕 너머 어딘가에 있을 저 희망과 진리, 빛의 세계를 찾아가려는 소망을 노래한 시다. 그 의도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시는 아름다운 숲 속을 찾는 문화탐방객의 마음을 정화하며 여행으로 지친 심신을 위로해준다.
길 건너 숲에는 또 하나의 시비가 서 있다. 지훈 시인의 형님인 조동진의 시비다. 지훈의 고모인 조애영 여사도 시조시인이라고 하니 주실은 분명 문향의 고장이다.
주실마을 전경
주실 마을은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박사만도 40명이 넘는다고 할 정도다. 조 조봉기(미국 메릴랜드주립대), 고 조동걸(국민대), 고 조운해(강북삼성병원), 고 조대봉(영남대), 고 조형석(카이스트), 조동일(서울대), 조동원(성균관대), 조동택(경북대), 조동성(인하대), 조동운(대구대), 조진기(경남대), 조석환(평택대), 조석팔(성결대) 조균석(이화여대) 등 수많은 교수, 박사들이 이 마을 출신이다.
300여 년 역사를 지켜온 주실 사람들은 또 하나의 자랑이 있다. 삼불차(三不借) 즉, ‘재물, 사람, 문장은 남에게 빌리지 않는다’는 것. 다른 사람에게서 재물을 빌리지 말고, 자식이 없다고 남의 아들을 빌리지 말고, 남에게 글도 빌리지 말라는 선대로부터 이어온 정신이라고 한다. 지조 있는 선비의 덕목이다.
지훈 문학관과 지훈 생가 등 고택이 즐비한 마을을 한 바퀴도 채 돌지도 못했는데 해가 넘어가고 있다. 이른 새벽부터 빠듯한 일정으로 몸은 피곤해도 시의 감성을 한가득 채웠으니 마음이 살 찐듯하다.
시인 조지훈은 주실마을이 배출한 걸출한 문인이다.
먼 훗날 내 마음이 허허로워질 때 추억으로 숙성될 오늘의 기억을 꺼내보자. 그런 이유로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행복한 기억은 마르지 않는 저수지의 물처럼 언제나 내 곁에 남아 가련한 내 삶을 살찌울 것이다.
갈 길이 먼 일행 모두가 서둘러 서울로 떠난 뒤, 나에게는 다른 여정이 있다. 주실마을에서 5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나의 고향 마을로 향하는 길이다. 금마래골을 지나, 아름다운 가곡의 문양마을, 앞마을, 뒷마을에 이어 송장바위 돌아서 도곡리 입구에 들어서면 한 일(一)자 모양을 한 일월산 일자봉이 넓은 가슴으로 나를 반긴다.
어디에 머물러 있든 언제나 내 마음 속에 존재하는 내 고향 도곡리 구도실. 동구 밖 마을 숲에 다다르니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야! 기분 좋다. 고향에 다 왔다!
도곡리 마을숲
일월산 자락 외씨버선길 (단위 km)
일월산 자생화 공원(폐광터) - (치유의 길) - 7 - 칠발목 - 10 - 남회룡 모래밭 - 10 - 신암리 - 14 - 수하리 - 12 - 수비면 - 14 - 일월면 - 3 - 주실마을(주곡리) - 5 – 도곡리숲
[출처] 영양 일월산 외씨버선길 - 나의 노래는 슬픔을 걷어가는 바람이 되리라 (자출사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 | 작성자 김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