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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四十二回 周襄王河陽受覲 衞元咺公館對獄
제42회: 주양왕이 화양에서 조회를 하고 위나라 원훤이 공관에서 심문에 답하다.
話說,周襄王二十年,下勞晉文公於踐土,事畢歸周,諸侯亦各辭回本國。衛成公疑歂犬之言,遣人密地打探,見元咺奉叔武入盟,名列載書,不暇致詳,即時回報衛侯。衛侯大怒曰:「叔武果自立矣!」大罵:「元縠背君之賊!自己貪圖富貴,扶立新君,卻又使兒子來窺吾動靜。吾豈容汝父子乎?」元角方欲置辯,衛侯拔劍一揮,頭已墜地。冤哉!元角從人,慌忙逃回,報知其父咺。縠曰:「子之生死,命也!君雖負咺,咺豈可負太叔乎?」司馬瞞謂元咺曰:「君既疑子,子亦當避嫌。何不辭位而去,以明子之心耶?」
한편, 주양왕은 재위 20년에 천토(踐土)에서 진문공의 노고를 위로하고, 회맹이 끝나자 주나라로 돌아갔으며, 제후들도 각각 작별 인사를 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위성공은 천견(歂犬)의 말에 의혹을 품어 사람을 보내, 몰래 탐지하게 하여, 그 사람은 원훤이 숙무를 받들어 회맹하고 이름을 맹서문에 써넣는 것을 보고 자세한 정황을 살펴보지도 않고 즉시 돌아와 위성공에게 보고했다. 위성공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숙무란 놈이 과연 스스로 군주 자리에 섰구나!” 하고, 큰소리로 욕하기를, “원곡(원훤)이라는 놈은 군주를 배신한 역적이다! 자기의 부귀를 탐하여 새 군주를 세우려고 하면서 오히려 그 아들놈을 나에게 보내어 나의 동정을 살피게 했구나. 내가 어찌 너희 부자를 용납할 수 있겠느냐?” 했다. 원각이 막 변명을 하려고 하자, 위성공이 칼을 빼어 한번 휘두르니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원통하구나! 원각의 시종이 황급히 도망쳐서 원각의 아버지 원훤에게 알리니, 원곡(원훤)이 말하기를, “아들이 죽고 사는 것은 운명이다! 주군이 비록 원훤을 버린다고 해서 원훤이 어찌 태숙(위성공)을 버릴 수 있겠는가!” 했다. 사마만(司馬瞞)이 원훤에게 말하기를, “주군께서 이미 그대를 의심하고 있으니, 그대도 마땅히 몸을 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찌하여 관직을 버리고 떠나서 그대의 마음을 밝히지 않으십니까?” 했다.
咺嘆曰:「咺若辭位,誰與太叔共守此國者?夫殺子,私怨也,守國,大事也,以私怨而廢大事,非人臣所以報國之義也。」乃言於叔武,使奉書晉侯,求其復成公之位。此乃是元咺的好處。這事暫且擱過一邊。再說,晉文公受了冊命而回,虎賁弓矢,擺列前後,另是一番氣象。入國之日,一路百姓,扶老攜幼,爭睹威儀,簞食壺漿,共迎師旅。嘆聲嘖嘖,都誇「吾主英雄!」喜色欣欣,盡道「晉家興旺。」正是:「捍艱復纘文侯緒,攘楚重修桓伯勳;十九年前流落客,一朝聲價上青雲。」
원훤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내가 만약 벼슬을 버린다면 누가 주군을 위해 이 나라를 지키겠습니까? 아들을 죽인 것은 사사로운 원한이고 나라를 지키는 것은 큰일입니다. 사사로운 원한 때문에 큰일을 버린다면 이것은 신하된 자로써 나라에 보답해야 하는 도리가 아닐 것입니다.” 했다. 이에 숙무에게 말하여 진문공에게 글을 올려 위성공의 군주 자리를 회복시켜 달라고 했다. 이렇게 원헌은 훌륭한 신하였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잠깐 한쪽에 밀어놓자. 한편, 진문공은 주양왕으로부터 방백으로 책봉을 받고 호위병과 활과 화살을 멘 군사를 앞뒤에 세우고 한껏 기상을 떨쳤다. 귀국하는 날, 길가에는 백성들이 노인을 부축하고 어린애를 이끌고 진문공의 위엄있는 모습을 다투어 구경하려고 도시락과 병을 장만하여 군사들을 함께 마중했다. 백성들이 떠들고 외치는 소리가 모두 “우리 주군은 영웅이야!” 하며, 얼굴에 기쁨과 웃음이 넘쳐흘렀다. 모두가 “진(晉)나라가 흥성할 것이다.”라고 했다. 이야말로, “만난을 헤치고 다시 진나라 문후의 사업을 계승하여, 초나라를 물리치고 제환공의 패업을 다시 일으켰다. 19년 전에는 떠돌아다니던 망명객이, 하루아침에 그 이름을 천하에 떨쳤구나.” 했다.
晉文公臨朝受賀,論功行賞,以狐偃為首功,先軫次之。諸將請曰:「城濮之役,設奇破楚,皆先軫之功,今反以狐偃為首,何也?」文公曰:「城濮之役,軫曰:『必戰楚,毋失敵。』偃曰:『必避楚,毋失信。』夫勝敵者,一時之功也;全信者,萬世之利也。奈何以一時之功,而加萬世之利乎?是以先之。」諸將無不悅服。狐偃又奏:「先臣荀息,死於奚齊卓子之難,忠節可嘉。宜錄其後,以勵臣節。」文公准奏,遂召荀息之子荀林父為大夫。舟之僑正在家中守著妻子,聞晉侯將到,趕至半路相迎。文公命囚之後車。
진문공이 조당에서 축하를 받은 후에 논공행상을 행하여 호언을 으뜸 공으로, 선진을 두 번째 공으로 했다. 여러 장수가 청하기를, “성복의 싸움에서 기이한 계략으로 초군을 격파한 것은 모두 선진의 전공 때문입니다. 오늘 오히려 호언의 공을 으뜸 공으로 치니 어찌 된 연유입니까?” 하니, 진문공이 말하기를, “성복의 싸움에서 선진은 ‘초나라와 싸워서 적을 무찔러야 한다.’라고 했다. 호언은 ‘초나라에 삼사(三舍)를 피하여 신의를 잃으면 안 됩니다.’라고 했다. 무릇 싸움에서 승리를 쟁취하는 일은 한때의 공이지만, 신의를 보전하는 일은 만세에 걸친 이로움이라! 어찌 한때의 공을 만세의 이로움보다 낫다고 하겠는가? 그래서 호언의 공을 앞세운 것이다.”라고 했다. 여러 장수가 즐거운 마음으로 승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언이 다시 아뢰기를, “옛날 순식(荀息)은 해제(奚齊)와 탁자(卓子)의 난에 죽었습니다. 그의 충절이 가상하니, 마땅히 그의 후손들에게 작록을 주어 순식의 충절을 권장해야 합니다.” 하니, 문공이 승인하고 즉시 순식의 아들 순임보를 대부로 삼았다. 주지교가 그때 마침 집에서 처자를 돌보다가 문공이 돌아온다는 소문을 듣고 길에 마중하러 나갔는데, 문공이 명하여 함거에 가두어 뒤따르게 했다.
行賞已畢,使司馬趙衰議罪,當誅。舟之僑自陳妻病求寬,文公曰:「事君者不顧其身,況妻子乎?」喝命斬首示眾。文公此番出軍,第一次斬了顛頡,第二次斬了祁瞞,今日第三次,又斬了舟之僑。這三個都是有名的宿將,違令必誅,全不輕宥。所以三軍畏服,諸將用命。正所謂:「賞罰不明,百事不成;賞罰若明,四方可行。」此文公所以能伯諸侯也。文公與先軫等商議,欲增軍額,以強其國,又不敢上同天子之六軍,乃假名添作「三行」。以荀林父為中行大夫,先蔑屠擊為左右行大夫。前後三軍三行,分明是六軍,但避其名而已。以此兵多將廣,天下莫比其強。
논공행상이 끝나고 사마 조쇠에게 주지교의 죄를 논하게 하니, 참수형에 해당한다고 했다. 주지교가 아내가 병이 난 것을 말하고, 관대한 처분을 호소했으나 진문공이 말하기를, “군주를 모시는 자는 그 몸을 돌아보지 않는데, 하물며 그 처자겠느냐?” 하고, 소리쳐서 참수하여 여러 사람에게 보이라고 명했다. 진문공이 이번 싸움에서 맨 처음 전힐을 참했고, 두 번째로 기만을 참했으며, 오늘 세 번째로 주지교를 참수형에 처했다. 이 세 명은 모두 이름있고 노련한 장수였지만 명령을 어기면 반드시 죽여서 전혀 가볍게 용서하지 않았다. 그래서 삼군이 두려워 복종하고 여러 장수가 명령에 따랐다. 이른바 ‘상벌이 분명하지 않으면 만사를 이룰 수 없고, 상벌이 분명하면 천하도 다스릴 수 있다.’라는 것이다. 이것이 진문공이 제후들을 호령하는 방백이 된 까닭이었다. 진문공은 선진 등과 상의하여 군사의 수를 늘려서 나라를 강하게 하려 했다. 그러나 감히 천자의 6군과 같이 할 수가 없어서 우선 3행(行)이라는 편제를 새로 만들었다. 순임보를 중행대부(中行大夫)로 삼고, 선멸은 좌행대부(左行大夫)로, 도격(屠擊)은 우행대부(右行大夫)로 삼았다. 전후로 삼군과 삼행의 편제는 분명 6군이었으나 단지 그 이름만 피했을 뿐이었다. 이렇게 많은 장수와 군졸을 두었으니 천하에서 그 강함을 견줄 수 없게 되었다.
一日,文公坐朝,正與狐偃等議曹衛之事,近臣奏:「衛國有書到。」文公曰:「此必叔武為兄求寬也。」啟而觀之,書曰:「君侯不泯衛之社稷,許復故君,舉國臣民,咸引領以望高義。惟君侯早圖之!」陳穆公亦有使命至晉,代衛鄭致悔罪自新之意。文公乃各發回書,聽其復歸故國,諭郤步揚不必領兵邀阻。叔武得晉侯寬釋之信,急發車騎如陳,往迎衛侯。陳穆公亦遣人勸駕。公子歂犬謂成公曰:「太叔為君已久,國人歸附,鄰國同盟,此番來迎,不可輕信。」衛侯曰:「寡人亦慮之。」乃遣寧俞先到楚丘,探其實信。
어느 날, 진문공이 조당에 앉아 호언 등과 조(曹)나라와 위(衛)나라의 일을 논하고 있었는데, 근시가 아뢰기를, “위나라에서 국서를 보내왔습니다.” 했다. 진문공이 말하기를, “이것은 틀림없이 숙무가 그의 형을 위해 용서를 구하는 편지일 것이다.” 하고, 열어보니 편지에 이르기를, “군주께서 우리 위나라의 사직을 망하게 하지 않으시고 위성공의 복귀를 허락하셨습니다. 나라의 모든 신하와 백성들이 목을 빼어 군주의 높고 의로운 뜻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직 군주께서 빨리 도모해 주십시오.” 했다. 진목공(陳穆公)도 역시 사절을 진문공에게 보내어 위성공 정(鄭)을 대신하여 그가 죄를 뉘우치고 스스로 새로운 마음을 다짐했다고 전했다. 진문공이 이에 각각 답신을 보내어 위성공의 귀국을 허락하고, 극보양에게 위후의 귀국을 막을 필요가 없다고 알렸다. 숙무가 진문공이 관대히 풀어준다는 편지를 받고 급히 어가를 준비하여 진(陳)나라로 보내 위성공을 모셔 오게 하였다. 진목공(陳穆公)이 또한 사람을 보내어 어가를 타고 귀국하라고 권했다. 공자 천견이 위성공에게 말하기를, “주군의 동생(숙무)이 군주가 된 지 이미 오래여서 나라 사람들이 숙무를 따르고 이웃 나라들과도 동맹을 맺고 있어서 이번에 모셔 간다고 하지만 가볍게 믿을 수 없습니다.” 하니, 위성공이 말하기를, “과인도 역시 그것을 걱정하오.” 했다. 이에 위성공이 영유를 먼저 초구에 보내 확실히 믿을 만한지 알아보게 했다.
寧俞祇得奉命而行。至衛,正值叔武在朝中議政。寧俞入朝,望見叔武設座於殿堂之東,西向而坐。一見寧俞,降坐而迎,敘禮甚恭。寧俞佯問曰:「太叔攝位而不御正,何以示觀瞻耶?」叔武曰:「此正位吾兄所御,吾雖側其傍,尚慄慄不自安,敢居正乎?」寧俞曰:「俞今日方見太叔之心矣。」叔武曰:「吾思兄念切,朝暮懸懸,望大夫早勸君兄還朝,以慰我心也。」俞遂與訂期,約以六月辛未吉日入城。寧俞出朝,採聽人言,但聞得百宮之眾,紛紛議論,言:「故君若復入,未免分別居行二項,行者有功,居者有罪,如何是好?」
영유는 어쩔 수 없이 위성공의 명을 받들어 위나라에 갔다. 그때 마침 숙무가 조정에서 정사를 논의하고 있었다. 영유가 조당에 들어가서 바라보니, 숙무는 조정의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앉아 있었다. 숙무가 영유를 보더니, 자리에서 내려와 맞이하는데, 그 예절이 매우 공손했다. 영유가 짐짓 묻기를, “태숙(군주의 동생)께서 섭정을 하면서 어찌하여 옥좌에 앉아서 우러러보게 하지 않습니까?” 하니, 숙무가 말하기를, “저 옥좌는 형님이 앉을 자리라 제가 비록 그 옆자리에 서 있게 되어도 마음이 불안하여 떨리는데 어찌 감히 그 자리에 정좌하겠습니까?” 했다. 영유가 말하기를, “영유는 오늘 비로소 태숙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하니, 숙무가 말하기를, “내가 형님을 아침저녁으로 간절히 생각하니, 원컨대 대부께서는 빨리 형님께서 환국하도록 권유하여 내 마음을 위로해 주십시오.” 했다. 영유가 즉시 숙무와 날짜를 정하여 유월 신미 일을 길일로 택하여 입성하기로 약속하였다. 영유가 조당에서 나와서 백성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다만 백관들의 의견만이 분분할 뿐이었다. 그들이 말하기를, “옛날의 군주가 만약 다시 환국하면 여기에 남아 있던 사람들과 옛 군주를 따라갔던 사람을 나누어서, 따라간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남아 있던 사람들에게는 죄를 줄 것인데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했다.
寧俞曰:「我奉故君來此傳諭爾眾:『不論行居,有功無罪。』如或不信,當歃血立誓。」眾皆曰:「若能共盟,更有何疑!」俞遂對天設誓曰:「行者衛主,居者守國,若內若外,各宣其力。君臣和協,共保社稷,倘有相欺,明神是殛!」眾皆欣然而散,曰:「寧子不欺吾也。」叔武又遣大夫長牂,專守國門,吩咐:「如有南來人到,不拘早晚,立刻放入。」卻說,寧俞回復衛侯,言:「叔武真心奉迎,並無歹意。」衛侯也自信得過了。怎奈歂犬讒毀在前,恐臨時不合,反獲欺謗之罪,又說衛侯曰:「太叔與寧大夫定約,焉知不預作准備,以加害於君?君不如先期而往,出其不意,可必入也。」衛侯從其言,即時發駕。
영유가 말하기를, “나는 옛 군주의 명을 받들어 여기에 와서 여러분에게 알립니다. 옛 군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따라온 사람이나 머무른 사람을 따지지 않고 공은 있지만 죄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만약에 믿지 못하겠다면 내가 마땅히 피를 입술에 발라 맹세하겠소!” 하니, 여러 사람이 모두 말하기를, “만약 능히 함께 맹세한다는데 다시 무엇을 의심하겠소?” 했다. 영유가 즉시 하늘에 대고 맹세하기를, “따라간 사람들은 주군을 위함이었고, 남은 사람들은 사직을 지키기 위함이었으니, 나라 안에 있었건 밖에 있었건 각기 그 힘을 다하였다. 군주와 신하들이 협력하여 사직을 보전하게 되었다. 만약에 서로 속이는 것이 있다면 천지신명께서 천벌을 내릴 것이다!” 했다. 여러 사람이 모두 기뻐하며, 흩어지면서 말하기를, “영유는 우리를 속이지 않을 것이오.” 했다. 숙무가 다시 대부 장장(長牂)을 보내 위나라의 관문을 지키게 하며 분부하기를, “만일 남쪽에서 오는 사람이 도착하면 아침이건 밤이건 즉시 들여보내시오.” 했다. 한편, 영유가 돌아와서 위성공에게 보고하기를, “숙무가 진심으로 주군을 맞이하고자 하십니다. 아울러 나쁜 생각은 없습니다.” 하니, 위후도 스스로 믿게 되었다. 어찌하랴, 천견은 위후의 앞에서 숙무를 헐뜯다가 까딱 잘못하다가는 도리어 속이고 비방한 죄에 걸려들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위성공에게 말하기를, “태숙과 영유 대부가 입국한 날짜를 약속했는데 미리 준비하여 주군을 해치려고 하지나 않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주군께서 약속한 날짜보다 먼저 가셔서 예상에 없이 나타나면 반드시 입국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위성공이 그 말에 따라 즉시 어가를 출발시켰다.
歂犬請為前驅,除宮備難,衛侯許之。寧俞奏曰:「臣已與國人訂期矣。君若先期而往,國人必疑。」歂犬大喝曰:「俞不欲吾君速入,是何主意?」寧俞乃不敢復諫,祇得奏言:「君駕若即發,臣請先行一程,以曉諭臣民,而安上下之心。」衛侯曰:「卿為國人言之,寡人不過欲早見臣民一面,並無他故。」寧俞去後,歂犬曰:「寧之先行,事可疑也。君行不宜遲矣!」衛侯催促御人,並力而馳。再說,寧俞先到國門,長牂詢知是衛侯之使,即時放入。寧俞曰:「君即至矣。」長牂曰:「前約辛未,今尚戊辰,何速也?子先入城報信,吾當奉迎。」
천견이 앞장서기를 청하여, 궁궐에서 일어날지 모르는 사고에 대비하겠다고 하자 위성공이 허락했다. 영유가 아뢰기를, “신이 이미 나라 사람들과 입국하는 기일을 정했는데, 주군께서 만약 기일보다 먼저 가시면 백성들은 틀림없이 의심할 것입니다.” 하니, 천견이 큰소리로 외치기를, “그대는 주군께서 빨리 환국하기를 바라지 않는가? 주장하는 뜻이 무엇이오?” 하니, 영유는 이에 감히 다시 간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아뢰기를, “주군께서 만약 어가를 즉시 출발시키겠다고 하신다면 신이 얼마쯤 먼저 가서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이 알려서, 아래위 사람들의 마음을 안심시키도록 하겠습니다.” 하니, 위성공이 말하기를, “경은 나라 사람들에게 말하시오. 과인은 한시바삐 신하와 백성의 얼굴을 보고 싶을 뿐이지 다른 까닭은 없다고 하시오.” 했다. 영유가 간 후에 천견이 말하기를, “영유가 먼저 가겠다는 것이 의심스럽습니다. 주군께서는 지체없이 가셔야 합니다.” 하니, 위성공이 마부를 재촉하여 힘을 모아 달리게 했다. 한편, 영유가 먼저 위나라의 관문에 도착하니, 장장(長牂)이 물어보고 위성공의 사자인 줄을 알아 즉시 관문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영유가 말하기를, “주군께서 곧 도착할 것이오.” 하니, 장장이 말하기를, “지난번에 신미 일로 약속하였는데 오늘은 아직 무진 일입니다. 어찌 이렇게 빨리 오십니까? 대부께서는 먼저 성안으로 들어가서 이 소식을 전하십시오. 내가 마땅히 주군을 맞이하겠습니다.” 했다.
寧纔轉身時,歂犬前驅已至,言:「衛侯祇在後面。」長牂急整車從,迎將上去。歂犬先入城去了。時叔武方親督輿隸,掃除宮室,就便在庭中沐髮。聞寧俞報言:「君至。」且驚且喜,倉卒之間,正欲問先期之故,忽聞前驅車馬之聲,認是衛侯已到,心中喜極,髮尚未乾,等不得挽髻,急將一手握髮,疾趨而出,正撞了歂犬。歂犬恐留下叔武,恐其兄弟相逢,敘出前因,遠遠望見叔武到來,遂彎弓搭箭,颼的發去,射個正好。叔武被箭中心窩,望後便倒。寧俞急忙上前扶救,已無及矣。哀哉!元咺聞叔武被殺,吃了一驚,大罵:「無道昏君!枉殺無辜,天理豈能容汝?吾當投訴晉侯,看你坐位可穩?」痛哭了一場,急忙逃奔晉國去了。
영유가 겨우 몸을 돌렸을 때 선발대를 이끌고 천견이 이미 도착하여 말하기를, “주군께서는 바로 뒤에 계신다.” 했다. 장장이 급히 수레와 시종을 정돈하여 위성공을 맞이하러 갔다. 천견이 먼저 성으로 들어갔다. 그때 숙무는 친히 궁인들을 감독하여 궁실을 청소하고 정원에서 머리를 감았다. 영유가 전하기를, “주군이 도착했습니다.” 하자, 숙무는 한편으로는 놀라고 한편으로는 기뻤지만, 갑작스러운 일이라, 무슨 까닭으로 기일을 앞당겨 오게 되었는지 물어보려고 하는데, 문득 앞서 달려오는 거마 소리가 들렸다. 숙무는 위후가 이미 도착하였다고 생각하고, 마음이 너무 기뻐서 머리가 아직 덜 말라서 상투도 틀지 않고, 급히 한 손으로 머리를 쥐고 밖으로 달려 나가 천견과 맞닥뜨렸다. 천견은 숙무를 살려 두어서 형제가 서로 만나 일의 내막이 밝혀질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숙무가 다가오는 것을 멀리서 보고 곧 활에다 화살을 메겨 쉿 하고 쏘았다. 숙무는 명치 끝에 화살을 맞고 바라보다가 곧 쓰러졌다. 영유가 급히 서둘러 숙무를 부축하여 구하려고 했으나 이미 숨이 넘어간 뒤였다. 슬프구나! 숙무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원훤은 깜짝 놀라더니, 큰 소리로 욕하기를, “무도하고 어리석은 군주야!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죽인단 말인가! 하늘이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내가 마땅히 진문공에게 호소하여 네 자리가 편안하겠는지 보리라!” 하고, 한바탕 통곡하더니 급히 진(晉)나라로 달아났다.
髯翁有詩云:「堅心守國為君兄,弓矢無情害有情。不是衛侯多忌忮,前驅安敢擅加兵?」卻說,成公至城下,見長牂來迎,叩其來意。長牂述叔武吩咐之語,早來早入,晚來晚入。衛侯嘆曰:「吾弟果無他意也!」比及入城,只見寧俞帶淚而來,言:「叔武喜主公之至,不等沐完,握髮出迎,誰知枉被前驅所殺,使臣失信於國人,臣該萬死!」衛侯面有慚色,答曰:「寡人已知夷叔之冤矣!卿勿復言。」趨車入朝,百官尚未知覺,一路迎謁,先後不齊。寧俞引衛侯視叔武之屍,兩目睜開如生。
염옹(髥翁)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굳은 마음으로 나라를 지켜 형을 위했건만, 무정한 화살은 유정한 동생을 죽였구나! 그러나 위성공이 의심하고 시기하지 않았다면, 어찌 먼저 달려간 천견이 제멋대로 활을 쐈겠는가?” 했다. 한편, 위성공이 도성 아래에 이르러 장장의 영접을 받고 미리 나오게 된 까닭을 물었다. 장장은 숙무가 군주께서 일찍 오면 일찍 오는 대로 늦게 오면 늦게 오는 대로 모시라는 분부의 말을 전했다. 위성공이 한탄하며 말하기를, “내 동생이 과연 다른 뜻이 없구나!” 하고, 이에 입성하여 보니, 영유가 눈물을 흘리며 와서 말하기를, “숙무가 주군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여, 머리칼이 다 마르지를 기다리지 않고 머리칼을 쥐고 영접하러 나오다가 뜻밖에 선발대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소신 영유가 이로 인하여 나라 사람들에게 신의를 잃었으니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했다. 위성공이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을 띠며 대답하기를, “과인은 이미 숙무가 원통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소! 경은 다시 말하지 마시오.” 하고, 수레를 몰아 조당으로 들어갔다. 백관이 아직 알지 못하여 한 길로 맞아 배알하며 앞뒤가 가지런하지 않았다. 영유가 위성공을 이끌고 숙무의 시신을 보게 하니, 숙무는 두 눈을 뜨고 있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衛侯枕其頭於膝上,不覺失聲大哭,以手撫之曰:「夷叔,夷叔!我因爾歸,爾為我死!哀哉痛哉!」祇見屍目閃爍有光,漸漸而瞑。寧俞曰:「不殺前驅,何以謝太叔之靈?」衛侯即命拘之。時歂犬謀欲逃遁,被寧俞遣人擒至。歂犬曰:「臣殺太叔,亦為君也!」衛侯大怒曰:「汝謗毀吾弟,擅殺無辜,今又歸罪於寡人。」命左右將歂犬斬首號令。吩咐以君禮厚葬叔武。國人初時,聞叔武被殺,議論哄然,及聞誅歂犬,葬叔武,群心始定。
위성공이 그의 무릎에 숙무의 머리를 베게 하고 부지불식간에 말없이 통곡하며,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하기를, “숙무야, 숙무야! 내가 너로 인해 돌아왔는데 너는 나를 위해 죽었구나! 슬프고 애달프다!” 했다. 숙무의 두 눈에서 빛이 반짝하더니 점점 눈이 감겼다. 영유가 말하기를, “먼저 온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어떻게 숙무의 영혼을 위로하겠습니까?” 했다. 위성공이 즉시 천견을 잡아오라고 명했다. 그때 천견은 달아나려고 하다가, 영유가 보낸 사람에게 잡혀 왔다. 천견이 말하기를, “신이 숙무를 죽인 것은 주군을 위한 것입니다.” 하니, 위성공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너는 내 동생을 비방하고 멋대로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서는 지금 또 그 죄를 나에게 돌리는구나!” 하고, 좌우에 명하여 천견을 참수하라고 호령했다. 그리고 숙무를 군주의 예로 후하게 장사하라고 분부했다. 나라 사람들은 처음에 숙무가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의론이 분분했으나, 천견을 주살하고 숙무의 장례를 치러주었다는 소식을 듣고 인심이 비로소 안정되었다.
話分兩頭。再說,衛大夫元咺,逃奔晉國,見了晉文公,伏地大哭,訴說衛侯疑忌叔武,故遣前驅射殺之事。說了又哭,哭了又說。說得晉文公發惱起來,把幾句好話,安慰了元咺,留在館驛。因大集群君臣問曰:「寡人賴諸卿之力,一戰勝楚。踐土之會,天子下勞,諸侯景從。伯業之盛,竊比齊桓。奈秦人不赴約,許人不會朝,鄭雖受盟,尚懷疑貳之心,衛方復國,擅殺受盟之弟。若不再申約誓,嚴行誅討,諸侯雖合必離,諸卿計將安出?」先軫進曰:「徵會討貳,伯主之職。臣請厲兵秣馬,以待君命。」
이야기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한편, 위나라 대부 원훤은 진(晉)나라로 도망쳐 와서 진문공을 뵙고 땅에 엎드려 통곡한 다음, 위성공이 숙무를 의심하고 시기하여 먼저 사람을 보내 숙무를 활로 쏘아 죽였다고 호소했다. 영유는 말하고는 곡을 하고 곡을 하고는 말을 하여 진문공을 설득하여 마음이 움직이게 했다. 진문공이 몇 마디 좋은 말로 원훤을 위로하고 역관에 머무르게 했다. 진문공이 여러 신하를 불러 모아 묻기를, “과인이 여러 경들의 도움을 받아 한 번 싸워 초나라를 이겼소. 또 천토에서 회맹하고 천자께서 위로하여 제후들이 그림자처럼 따르게 되었소. 패업의 성대함이 잠시 제환공에 비길 만하게 되었으나, 진(秦)나라 군주는 회맹에 참석하지 않았고, 허나라도 불복하고 있으며 정나라는 비록 회맹에 참석했으나 아직도 의심하여 두 마음을 품고 있고, 위나라는 바야흐로 귀국하여 멋대로 회맹에 참석한 동생을 죽였소. 만약 다시 서약을 해서 엄하게 처벌하지 않는다면 제후들이 비록 합쳐도 반드시 헤어질 것이니 여러 경들은 장차 어떤 계책을 써야 하겠소?” 하니, 선진이 나와 말하기를, “회맹을 열어 두 마음을 가진 나라를 토벌함은 방백이 해야 할 일입니다. 청컨대, 신은 무기를 갈고 말을 먹여 군주의 명령을 기다리겠습니다.” 했다.
狐偃曰:「不然。伯主所以行乎諸侯者,莫不挾天子之威。今天子下勞,而君之覲禮未修,我實有缺,何以服人?為君計,莫若以朝王為名,號召諸侯,視其不至者,以天子之命臨之。朝王,大禮也。討慢王之罪,大名也。行大禮而舉大名,又大業也。君其圖之!」趙衰曰:「子犯之言甚善。然以臣愚見,恐入朝之舉,未必遂也。」文公曰:「何為不遂?」趙衰曰:「朝覲之禮,不行久矣。以晉之強,五合六聚,以臨京師,所過之地,誰不震驚?臣懼天子之疑君而謝君也。謝而不受,君之威褻矣。莫若致王於溫,而率諸侯以見之。君臣無猜,其便一也。諸侯不勞,其便二也。溫有叔帶之新宮,不煩造作,其便三也。」
호언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방백이 제후들을 부리려면 천자의 위엄을 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 천자께서 위로하셨으나 주군께서는 아직 천자께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실로 결례를 했는데 어떻게 제후들을 복종시킬 수 있겠습니까? 주군을 위해서 계책을 말씀드린다면 천자를 뵈러 간다는 명분으로 제후들을 소집하시고, 오지 않는 제후들이 있다면 그때에는 천자의 명으로써 토벌하십시오. 천자를 뵈는 일은 커다란 예이고, 천자에게 게을리한 죄를 토벌하는 일은 큰 명분입니다. 큰 예를 행하고 큰 명분을 세우는 것이 또한 큰 업적입니다. 주군께서 그 일을 도모하십시오.” 했다. 조쇠가 말하기를, “자범(호언)의 말은 아주 좋습니다. 그러나 저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주공께서 입조하는 일은 틀림없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했다. 진문공이 말하기를, “어찌하여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까?” 하니, 조쇠가 말하기를, “제후들이 왕을 뵙는 의식은 오랫동안 행해지지 않았습니다. 강한 진(晉)나라가 모든 제후를 취합하여 왕성으로 몰려간다면 가는 도중에 지나는 곳마다 누군들 놀라고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신은 천자가 주군을 의심하여 주군을 사절할까 두렵습니다. 천자가 사절하여 뵙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주군의 위엄은 떨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천자를 온(溫) 땅에 오시게 한 후에 주군께서는 제후들을 이끌고 가서 뵈십시오. 군신 간에 서로 의심할 필요가 없으니 그 편함이 하나요, 제후들이 수고롭지 않으니 그 편함이 둘입니다. 그리고 온(溫)에는 옛날 태숙(太叔) 대(帶)가 지은 궁궐이 있으니 왕궁을 짓는 번거로움이 없어 그 편함이 셋입니다.” 했다.
文公曰:「王可致乎?」趙衰曰:「王喜於親晉,而樂於受朝,何為不可?臣請為君使於周,而商入朝之事,度天子之計,亦必出此。」文公大悅,乃命趙衰如周,謁見周襄王,稽首再拜,奏言:「寡君重耳,感天王下勞錫命之恩,欲率諸侯至京師,修朝覲之禮,伏乞聖鑒!」襄王嘿然。命趙衰就使館安歇。即召王子虎計議,言:「晉侯擁眾入朝,其心不測,何以辭之?」子虎對曰:「臣請面見晉使而探其意,可辭則辭。」子虎辭了襄王,到館驛見了趙衰,敘起入朝之事。
진문공이 말하기를, “천자께서 온으로 오실까요?” 하니, 조쇠가 말하기를, “왕께서는 진(晉)나라와 친하게 지내는 것을 기뻐하시고 즐거운 마음으로 제후들의 조례(朝禮)를 받으실 것입니다. 어찌 불가하겠습니까? 신이 청하옵건대 주군을 위하여 주나라에 사자로 가서 조례의 일을 상의하고 천자의 뜻을 살펴 반드시 천자께서 온 땅으로 오시도록 하겠습니다.” 했다. 진문공이 크게 기뻐하여 즉시 조쇠를 주나라에 보냈다. 조쇠가 주양왕을 알현하고 머리를 조아려 두 번 절하고 아뢰기를, “저희 진(晉)나라 군주이신 중이(重耳)가 천자께서 위로하고 방백으로 책봉한 은혜에 감격하여 제후들을 거느리고 왕성에 들어와 조례를 행하고자 하십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했다. 주양왕이 대답하지 않고, 조쇠에게 물러가 역관에 쉬라고 명한 후에 즉시 왕자호를 불러들여 의논하여 말하기를, “진문공이 여러 제후를 거느리고 왕성에 와서 조례를 행하겠다는데 그 마음을 알 수가 없으니 어떻게 사양할까?” 하니, 왕자호가 대답하기를, “신이 진(晉)나라의 사절을 한번 만나 그 뜻을 살펴보고 사양할 만하면 사양하겠습니다.” 했다. 왕자호가 주양왕의 면전에 물러 나와 역관에 가서 조쇠를 만나 조례의 일에 대해 말을 꺼냈다.
子虎曰:「晉侯倡率諸侯,尊獎天子,舉累朝廢墜之曠典,誠王室之大幸也!但列國鱗集,行李充塞,車徒眾盛,士民目未經見,妄加猜度,訛言易起,或相譏訕,反負晉侯一片忠愛之意,不如已之。」趙衰曰:「寡君思見天子,實出至誠。下臣行日,已傳檄各國,相會於溫邑取齊。若廢而不舉,是以王事為戲也。下臣不敢復命。」子虎曰:「然則奈何?」趙衰曰:「下臣有策於此,但不敢言耳。」子虎曰:「子餘有何良策?敢不如命!」趙衰曰:「古者,天子有時巡之典,省方觀民。況溫亦畿內故地也。天子若以巡狩為名,駕臨河陽,寡君因率諸侯以展覲。上不失王室尊嚴之體,下不負寡君忠敬之誠。未知可否?」
왕자호가 말하기를, “진문공이 제후들을 이끌고 천자를 받들고자 오랫동안 폐지했던 조례를 거행하고자 하시는 일은 진실로 왕실의 큰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단지 열국들이 많이 모이면 짐을 실은 마차와 행렬로 길이 막히고, 수레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선비와 백성들이 망령되게 추측하여 그릇된 말이 쉽게 일어나, 혹 서로 비방하거나 조소하여, 도리어 진문공의 충성하는 본뜻과 어긋나는 결과가 되고 말 것입니다.” 했다. 조쇠가 말하기를, “저희 군주께서 천자를 뵙고자 하는 생각은 진실로 지극한 충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제가 나라를 떠날 때 이미 각국의 제후들에게 격문을 보내어 온읍에 모이라고 했습니다. 만약에 조례를 폐하여 거행하지 않는다면 왕실의 일이 우습게 될 것입니다. 소신은 감히 돌아가 복명할 말이 없습니다.” 했다. 왕자호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어찌해야 합니까?” 하니, 조쇠가 말하기를, “소신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지만, 그러나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했다. 왕자호가 말하기를, “자여(조쇠)에게 어떤 좋은 계책이 있소? 어째서 말을 할 수가 없소?” 하니, 조쇠가 말하기를, “옛날부터 천자께서는 때때로 순수(巡狩)하신 전례가 있습니다. 지방을 살펴보고 백성들을 관찰했습니다. 하물며 온(溫)은 천자의 직할지인 기내의 옛땅입니다. 천자께서 만약 순수(巡狩)를 명분으로 하양(河陽)의 온읍에 오신다면 저희 군주께서도 제후들을 인솔하여 조례를 올릴 수 있습니다. 위로는 왕실의 존엄한 예를 잃지 않으며, 아래로는 저희 주군의 충성과 존경의 마음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했다.
子虎曰:「子餘之策,誠為兩便。虎即當轉達天子。」子虎入朝,述其語於襄王。襄王大喜。約於冬十月之吉,駕幸河陽。趙衰回復晉侯。晉文公以朝王之舉,播告諸侯,俱約冬十月朔,於溫地取齊。至期,齊昭公潘,宋成公王臣,魯僖公申,蔡莊公甲午,秦穆公任好,鄭文公捷,陸續俱到。秦穆公言:「前此踐土之會,因憚路遠後期,是以不果。今番願從諸侯之後。」晉文公稱謝。時陳穆公款新卒,子共公朔新立,畏晉之威,墨衰而至。邾莒小國,無不畢集。衛侯鄭自知有罪,意不欲往。寧俞諫曰:「若不往,是益罪也,晉討必至矣。」成公乃行。寧俞與鍼莊子士榮,三人相從。
왕자호가 말하기를, “자여(조쇠)의 계책은 진실로 양쪽을 위해서 좋습니다. 내가 돌아가 마땅히 천자께 말씀드리겠습니다.” 했다. 왕자호가 조정에 들어가 주양왕에게 그 말을 전했다. 주양왕이 크게 기뻐하여 그해 겨울 시월 중 길일을 택하여 하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조쇠가 돌아와 진문공에게 복명했다. 진문공이 천자에게 조례를 행한다고 제후들에게 알리고, 모두 이번 겨울 시월 초하루에 온(溫) 땅에 모이라고 했다. 그날이 되자 제소공(齊昭公) 반(潘), 송성공(宋成公) 왕신(王臣), 노희공(魯僖公) 신(申), 채장공(蔡庄公) 갑오(甲午), 진목공(秦穆公) 임호(任好), 정문공(鄭文公) 첩(捷) 등이 속속 도착하였다. 진목공이 말하기를, “지난번 천토의 회맹 때는 길이 멀어 기한에 늦을까 하여 참석하지 못하고, 이번에는 제후들의 뒤를 따라왔습니다.” 하니, 진문공이 감사했다. 그때 진(陳)나라는 목공(穆公) 관(款)이 죽고 세자 공공(共公) 삭(朔)이 새로 군주가 되었는데, 진(晉)나라의 위세가 두려워서 검은 상복을 입고 참석했다. 주(邾)나라와 거(莒)나라는 소국이라 참가할 수밖에 없었다. 위성공(衛成公) 정(鄭)은 스스로 죄가 있음을 알고 회맹에 참석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영유가 간하기를, “주군께서 만약에 참석하지 않으신다면 죄가 더욱 무거워져 진(晉)나라가 반드시 토벌할 것입니다.” 하니, 위성공은 이에 길을 떠났다. 영유(寧兪)와 침장자(鍼庄子) 및 사영(士榮) 세 사람이 따라갔다.
比至溫邑,文公不許相見,以兵守之。惟許人終於負固,不奉晉命。總計晉、齊、宋、魯、蔡、秦、鄭、陳、邾、莒,共是十國,先於溫地敘會。不一日,周襄王駕到,晉文公率眾諸侯迎至新宮駐蹕。上前起居,再拜稽首。次日五鼓,十路諸侯,冠裳佩玉,整整齊齊,舞蹈揚塵,鏘鏘濟濟。方物有貢,各伸地主之儀;就位惟恭,爭睹天顏之喜。這一朝,比踐土更加嚴肅。有詩為證:「衣冠濟濟集河陽,爭睹雲車降上方。虎拜朝天鳴素節,龍顏垂地沐恩光。酆宮勝事空前代,郟鄏虛名慨下堂。雖則致王非正典,託言巡狩亦何妨?」
위성공 일행이 온읍에 도착하니 진문공이 접견을 거부하고, 군사를 보내 위성공 일행을 (감금하여) 지켰다. 오직 허나라 만이 끝내 험한 지세를 의지하여 진(晉)나라의 명에 따르지 않았다. 온읍에 도착한 제후들을 모두 합치면, 진(晉), 제(齊), 송(宋), 노(魯), 채(蔡), 진(秦), 정(鄭), 진(陳), 주(邾), 거(莒) 등으로 열 나라였는데, 먼저 온(溫) 땅에 모여 서로 인사하고 이야기했다. 하루가 지나기 전에 주양왕의 어가가 도착하자 진문공이 여러 제후를 인솔하고 주양왕을 영접하여 왕궁으로 모셨다. 왕이 옥좌에 앉자 제후들이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다음날 오경(새벽 4시경)에 열 나라의 제후들이 관과 예복에 패옥을 차고 엄숙하게 옥소리를 내며 가지런히 춤을 추고 먼지를 일으켰다. 제후들은 방물을 바치며 각각 주나라의 땅을 나누어 다스리는 신하로서 예의를 다하고, 제자리에 나아가 공손하게 천자의 즐거운 안색을 쳐다보았다. 그날의 조례는 천토(踐土)에 비하여 더욱 엄숙했다. 시가 있어 증명하기를, “화려한 의관의 제후들이 하양 땅에 모여, 다투어 천자의 행차를 우러러 영접했네. 범 같은 진문공은 천자께 문안드려 충성을 떨치고, 천자는 왕림하시어 그들에게 영광을 베푸셨도다. 풍(酆)의 왕성은 주나라의 위엄이 전례 없이 드높았으나, 낙양의 궁궐은 허명만 남아 쇠약하니 개탄스럽다. 비록 왕을 모셔왔으나 올바른 전례가 아니니, 순수(巡狩)를 핑계로 했으나 어찌 무방하겠는가?” 했다.
朝禮既畢,晉文公將衛叔武冤情,訴於襄王,遂請王子虎同決其獄。襄王許之。文公邀子虎至於公館,賓主敘坐。使人以王命呼衛侯。衛侯囚服而至。衛大夫元咺亦到。子虎曰:「君臣不便對理,可以代之。」乃停衛侯於廡下。寧俞侍衛侯之側,寸步不離。鍼莊子代衛侯,與元咺對理;士榮攝治獄之官,質正其事。元咺口如懸河,將衛侯自出奔襄牛起首,如何囑咐太叔守國,以後如何先殺元角,次殺太叔,備細鋪敘出來。鍼莊子曰:「此皆歂犬讒譖之言,以致衛君誤聽,不全繇衛君之事。」
조례가 이미 끝나자 진문공은 위나라 숙무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주양왕에게 호소하고 왕자호도 함께 그 일에 대해 판결을 내려달라고 청했다. 주양왕이 허락했다. 진문공이 공관으로 왕자호를 초청하여 손님과 주인의 자리에 앉았다. 사람을 시켜 왕명으로 위성공을 불러오게 하였다. 위성공이 죄수복을 입고 끌려왔다. 위나라 대부 원훤도 역시 도착했다. 왕자호가 말하기를, “군주와 신하가 서로 대질하면 불편할 테니 위성공을 대신하여 나올 사람이 있으면 대신해도 되오!” 하고, 이에 위성공을 공관의 낭하에서 기다리게 했다. 영유는 위성공의 곁에서 호위하며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침장자가 위성공을 대신하여 원훤과 대질하고, 사영이 옥사를 다루는 관리를 맡아 그 일에 대한 시비를 가리게 됐다. (재판이 시작되자) 원훤의 말은 마치 물이 흐르는 듯하여 막힘이 없었다. 처음 위성공이 초구성에서 탈출하여 양우로 피신할 때로부터 시작하여 어떻게 숙무에게 나라를 지키라고 부탁하였으며, 이후 어떻게 원각을 먼저 죽였으며, 다음에 태숙(숙무)을 죽인 일을 자세하고 빈틈없이 서술했다. 침장자가 말하기를, “그 일은 모두 천견의 참소하는 말을 주공이 잘못 받아들여 그렇게 되었으니 전적으로 주공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했다.
元咺曰:「歂犬初與咺言,要擁立太叔。咺若從之,君豈得復入?只為咺仰體太叔愛兄之心,所以拒歂犬之請,不意彼反肆離間。衛君若無猜忌太叔之意,歂犬之譖,何由而入?咺遣兒子角,往從吾君,正是自明心跡,本是一團美意,乃無辜被殺。就他殺吾子角之心,便是殺太叔之心了。」士榮折之曰:「汝挾殺子之怨,非為太叔也。」元咺曰:「咺常言:『殺子私怨,守國大事。』咺雖不肖,不敢以私怨而廢大事。當日太叔作書致晉,求復其兄,此書稿出於咺手。若咺挾怨,豈肯如此?只道吾君一時之誤,還指望他悔心之萌,不意又累太叔受此大枉。」士榮又曰:「太叔無篡位之情,吾君亦已諒之。誤遭歂犬之手,非出君意。」
원훤이 말하기를, “천견이 처음에 나를 찾아와서 숙무를 옹립하자고 했습니다. 내가 만약 그 말을 쫓았다면 주공이 어떻게 복위할 수 있었겠습니까? 단지 나는 숙무가 형을 사랑하는 마음을 존경하여 천견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천견이 도리어 이간질하였습니다. 주공이 만약 숙무의 마음을 의심하지 않았다면 천견의 참소를 어찌 들었겠습니까? 내가 아들 원각을 보내 주공을 모시라고 한 일은 나의 마음에 사심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밝힌 것입니다. 본시 아름다운 뜻이었는데 죄도 없이 죽였습니다. 그가 제 아들 원각을 죽인 마음이 바로 태숙(숙무)를 죽인 마음입니다.” 했다. 사영이 반박해 말하기를, “그대는 아들 원각이 살해된 원한을 풀기 위함이지 태숙(숙무)을 위해서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니, 원훤이 말하기를, “제가 항상 말하기를, ‘자식이 죽은 것은 개인적인 원한이다. 나라를 지키는 것은 전체를 위하는 큰일이다.’ 라고 했습니다. 내가 비록 보잘것없는 사람이지만 감히 사사로운 원한 때문에 큰일을 버리지는 않습니다. 그날 태숙이 편지를 써서 진문공에게 보내어 그 형을 복위시켜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 편지는 제 손으로 쓴 것입니다. 만약 내가 자식의 죽음에 원한을 품고 있었다면 어찌 이러한 일을 기꺼이 할 수 있었겠습니까? 나는 단지 주공이 일시적 잘못으로 저지른 일이라 후회하는 마음의 싹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다시 태숙을 살해하여 이런 나쁜 짓을 저지를 줄은 몰랐습니다.” 했다. 사영이 또 말하기를, “태숙이 군주 자리를 찬탈할 뜻이 없었다는 사실은 주공도 역시 이미 알았습니다. 천견의 손아귀에 잘못 놀아난 것뿐이지 주공의 본마음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했다.
元咺曰:「君既知太叔無篡位之情,從前歂犬所言,都是虛謬,便當加罪;如何又聽他先期而行?比及入國,又用為前驅,明明是假手歂犬,難言不知。」鍼莊子低首不出一語。士榮又折之曰:「太叔雖受枉殺,然太叔臣也,衛侯君也。古來人臣,被君枉殺者,不可勝計。況衛侯已誅歂犬,又於太叔加禮厚葬,賞罰分明,尚有何罪?」元咺曰:「昔者桀枉殺關龍逢,湯放之。紂枉殺比干,武王伐之。湯與武王,並為桀紂之臣子,目擊忠良受枉,遂興義旅,誅其君而弔其民。況太叔同氣,又有守國之功,非龍逢比干之比。衛不過侯封,上制於天王,下制於方伯,又非桀紂貴為天子,富有四海之比。安得云無罪乎?」
원훤이 말하기를, “주공은 이미 태숙(숙무)이 군주 자리를 빼앗지 않을 것을 알았다면, 이제까지 천견의 말이 모두 거짓이니 당연히 죄를 주어야지, 어찌하여 다시 천견의 말을 듣고 앞서가게 했습니까? 나라에 들어오게 되자 또 선발대를 만들게 하였으니, 그것은 분명히 천견의 손을 빌린 것이라. 몰랐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니, 침장자가 고개를 숙이고 한 마디도 말하지 못했다. 사영이 또 변명하기를, “태숙이 설령 억울하게 죽었다고 해도, 태숙은 신하요, 위성공은 군주입니다. 옛날부터 군주에게 억울하게 죽은 신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하물며 위성공은 이미 천견을 잡아 죽였고 또 태숙의 장례를 후하게 치러 주어서 상벌을 분명하게 행하였으니, 아직 무슨 죄가 있다고 하십니까?” 했다. 원훤이 말하기를, “옛날 하나라의 걸왕(桀王)이 관룡봉(關龍逢)을 무고하게 살해하자, 은나라의 탕왕(湯王)이 토벌하여 나라 밖으로 추방했습니다. 은나라의 주왕(紂王)이 충신 비간(比干)을 무고하게 살해하자 주나라의 무왕이 토벌했습니다. 탕왕과 무왕은 모두 걸왕과 주왕의 신하였지만, 충성스럽고 훌륭한 신하들이 죄도 없이 살해당하는 모습을 본 탕왕과 무왕은 즉시 의로운 병사들을 일으켜 그 군주 되는 자를 죽여 백성들을 위로했던 것입니다. 하물며 태숙은 위후와 형제간이며 또한 나라를 지켜 낸 공이 있는 사람이라 관룡봉이나 비간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 위나라는 비록 후작으로 봉해진 나라이기는 하나, 위로는 천자를 모시고 밑으로는 방백의 명령을 받아야 하는 처지로, 걸왕이나 주왕처럼 천자의 고귀한 지위도 갖고 있지 않으며 사해(四海)에 걸친 부(富)를 가지고 있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죄가 없다고 하십니까?” 했다.
士榮語塞,又轉口曰:「衛君固然不是,汝為其臣,既然忠心為君,如何君一入國,汝便出奔?不朝不賀,是何道理?」元咺曰:「咺奉太叔守國,實出君命;君且不能容太叔,能容咺乎?咺之逃,非貪生怕死,實欲為太叔伸不白之冤耳!」晉文公在座,謂子虎曰:「觀士榮元咺往復數端,種種皆是元咺的理長。衛鄭乃天子之臣,不敢擅決,可先將衛臣行刑。」喝教左右:「凡相從衛君者,盡加誅戮。」子虎曰:「吾聞寧俞,衛之賢大夫,其調停於兄弟君臣之間,大費苦心,無如衛君不聽何?且此獄與寧俞無干,不可累之。士榮攝為士師,斷獄不明,合當首坐。鍼莊子不發一言,自知理曲,可從末減。惟君侯鑒裁!」
사영이 말이 막히자 다시 말을 돌려 말하기를, “위성공이 본디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그대는 그의 신하인데, 이미 충심으로 군주를 받들다가 어찌하여 군주가 입국하자, 문득 나라 밖으로 도망쳐서 조회도 오지 않고 하례도 안 했으니, 그것은 무슨 도리입니까?” 했다. 원훤이 말하기를, “제가 태숙을 받들어 나라를 지킨 것은, 실은 위성공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위성공이 태숙도 용납하지 못하고 죽이는데 어찌 저를 용납하겠습니까? 제가 나라 밖으로 도망친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여 목숨을 탐해서가 아니라 실은 태숙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서였습니다.” 했다. 진문공이 자리에서 왕자호에게 말하기를, “사영과 원훤 사이에 오고 가는 말을 들어보니, 원훤이 하는 말이 모두 이치에 맞습니다. 위후 정(鄭)은 곧 천자의 신하이니, 제가 감히 멋대로 처리하지 못하겠으나, 우선 위성공의 신하들부터 형을 집행해야 되겠습니다.” 하고, 진문공이 좌우에 고함쳐 명령하기를, “위성공을 따라온 신하는 모조리 죽여라!” 했다. 왕자호가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영유는 위나라의 어진 대부라는데, 그가 형제와 군신 사이에 조정하느라 마음고생이 매우 심했을 것이나 결국 위성공이 듣지 않았으니, 어찌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옥사에서 영유는 별로 관계가 없으니, 그는 연루시키지 마십시오. 사영은 위나라의 사사(士師 ; 법무장관)를 맡았을 뿐만 아니라 송사를 결정하는 것이 밝지 못해서 죄가 가장 크다고 하겠으며, 침장자는 한마디도 하지 못해 스스로 그 이치가 틀렸음을 알았으니 그 죄를 조금 감하는 좋겠습니다. 오직 진문공께서 잘 생각하시어 본보기를 보이십시오.” 했다.
文公依其言,乃將士榮斬首,鍼莊子刖足,寧俞姑赦不問。衛侯上了檻車,文公同子虎帶了衛侯,來見襄王,備陳衛家君臣兩造獄詞:「如此冤情,若不誅衛鄭,天理不容,人心不服。乞命司寇行刑,以彰天罰!」襄王曰:「叔父之斷獄明矣;雖然,不可以訓。朕聞:『《周官》設兩造以訊平民,惟君臣無獄,父子無獄。』若臣與君訟,是無上下也。又加勝焉,為臣而誅君,為逆已甚!朕恐其無以彰罰,而適以教逆也。朕亦何私於衛哉?」
진문공이 그 말에 따라 사영은 참수하고 침장자는 한쪽 다리를 잘랐다. 영유는 그 죄를 사면하여 불문에 부쳤다. 진문공과 왕자호가 위성공을 함거에 싣고 동행하여 주양왕을 뵙고, 위나라 군신 간의 옥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를, “이처럼 위성공에 대한 원한이 높으니, 만약 위나라 정(鄭)을 죽이지 않으면 하늘도 용서하지 않고, 백성들도 복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사구(司寇 ; 형조판서)를 불러 위성공에 대한 형을 집행하여 천자의 형벌을 밝히십시오.” 하니, 주양왕이 말하기를, “진문공의 판결은 명백합니다. 비록 그러하나 백성들에게 훈계가 되지 못할 것이오. 짐은 듣건대, ‘주관(周官 ; 주왕실의 법)에 평민이 제기하는 소송에는 원고와 피고 쌍방을 두어 각기 곡절을 들은 연후에 판결하고, 오직 군신이나 부자간에는 소송할 수 없다.’ 고 했소. 만약 신하가 그 군주와 소송하면 상하가 없어지고, 또 신하가 소송에서 이겨 그 군주를 죽인다면 이것은 반역이 심한 것이오. 짐은 군주의 죄를 물어 벌을 내림으로써 반역을 널리 가르칠까 두렵소. 그렇다고 짐이 또한 위성공에게 무슨 사사로움이 있겠소?” 했다.
文公惶恐謝曰:「重耳見不及此。既天王不加誅,當檻送京師,以聽裁決。」文公仍帶衛侯,回至公館,使軍士看守如初。一面打發元咺歸衛,聽其別立賢君,以代衛鄭之位。元咺至衛,與群臣計議,詭言:「衛侯已定大辟,今奉王命,選立賢君。」群臣共舉一人,乃是叔武之弟名適,字子瑕,為人仁厚。元咺曰:「立此人,正合『兄終弟及』之禮。」乃奉公子瑕即位。元咺相之。司馬瞞、孫炎、周歂、冶廑一班文武相助。衛國粗定。
진문공이 황공하여 사죄하기를, “중이의 부족한 소견이 미처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미 천자께서 죽이지 않으시겠다면 마땅히 위성공을 왕도로 호송하시어 처분대로 하옵소서!” 하고, 진문공이 다시 위성공을 함거에 싣고 공관으로 돌아와서 군사를 시켜 처음과 같이 지키도록 했다. 한편으로 원훤을 위나라에 돌아가게 하여 별도로 어진 공자를 택해 위나라 군주로 세워 위성공을 대신하라고 했다. 원훤이 위나라에 도착하여 여러 신하와 의논하며 거짓으로 말하기를, “위성공은 이미 사형이 결정되었고, 지금은 왕명을 받들어 어진 군주를 골라 세우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여러 신하가 모두 한 사람을 천거하니 그는 숙무의 동생으로 이름은 적(適)이고 자는 자하(子瑕)인데 사람됨이 어질고 후했다. 원훤이 말하기를, “이분을 군주로 세우면 ‘형이 죽어 동생이 그 뒤를 잇는다.’라는 예에 잘 들어맞습니다.” 하고, 이에 공자하를 받들어 즉위케 하였다. 원훤은 재상이 되었다. 사마만(司馬瞞), 손염(孫炎), 주천(周歂), 야근(冶廑)등 일반 문무 대신들이 서로 힘을 합쳐 원훤을 돕자 위나라는 조금 안정되었다.
畢竟衛事如何結束,且看下回分解。
마침내 위나라의 일은 어떻게 될 것인지,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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