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41)
작년
며칠을 헐었더니
한 해가 시름시름 재빨리 지나갔다
- 송재학(1955- ), 『아침이 부탁했다, 결혼식을』, 문학동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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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가리키면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것은 불교의 명언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누군가가 달을 보라고 하면 달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자를 보라.”고 했다. 당신이 달을 보면 누구에게 유리하며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 살피라는 것이다.
푸코는 우리가 진리라고 받아들이는 지식은 권력이 가진 집단이 만들며, 그 지식이 다시 그 권력 집단을 지탱한다고 보았다. 진리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 또는 권력 집단에 의해 정해지는 하나의 지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천국을 이야기한다면, 당연히 그 사람은 죽어본 적도 없고 천국을 본 적도 없으므로, 그 말을 진리라고 믿고 따르기 전에 말하는 그 사람을 봐야 한다. 어떤 사람이 영적 깨달음을 이야기하거나 어떤 정치인이 정의와 국민을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 사람은 왜 그것을 말하며, 당신이 그의 추종자가 됨으로써 그 사람은 어떤 권력을 얻는가? (류시화(1959- ), 산문집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수오서재, 2022, 182-183쪽)
“작년”뿐이겠습니까. 지나간 뒤에 보면 우리의 시간은 하루든, 한 주든, 한 달이든, “한 해”든, 헐기만 하면 전부 “재빨리” 지나가고 없습니다. 뭘 했지? 퍼뜩 떠올리면 아득한 것이 모든 지나간 시간의 공통적인 속성입니다. 분명 뭘 아니 하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지나고 보면 순간 그렇게 느껴집니다. 오늘은 총선일입니다. 요즘은 사전 선거 이틀에 본 선거가 하루로 오늘은 그중 본 선거일입니다. 저는 사전 선거일 첫날에 투표를 마쳤습니다. 선거가 있는 해는 유세 기간과 관계없이 해를 시작할 때부터 선거 이야기로 소란스러워 언제 이 시간이 지나가나 짜증스럽기도 하지만, 역시나 이 시간도 지나갑니다. 소란이 완전히 잠잠해지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기는 하겠습니다만, 어떤가요, 다들 “달을 보라는 자”들을 유심히 살피셨나요.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건 꽃을 피우는 환경을 바꾸는 힘이 선거에서 나오기 때문일 겁니다. “유권자로 산 지 40년이 넘어 귀가 두꺼워졌다. 담 밖의 소리는 어느 섬에서 온 확성기인가. 쓰나미도 없었는데 섬들이 우후죽순 솟아났다. 쓰나미가 있었는가. 올해는 더 유난하니 어쩌면 떠밀렸을까. 저 섬들 중 무사히 항해를 떠날 섬은 쓰나미가 결정하리라……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걸어와 섬들을 매몰차게 밀어내는 쓰나미. 나다! 너다! 우리다!”(제 졸시 「쓰나미」 전문) 변화가 없거나 너무 느린 판에 기우뚱하게 무너지는 마음을 저는 이렇게 다잡기도 해서 혹 다른 흔들리는 마음에도 도움이 될까 하여 옮깁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돌아가서, 헐면 “재빨리” 지나가기는 해도 곰곰이 돌이키면 아마 의미 없이 지나간 시간은 거의 없는 것이 우리 삶이니 구태여 허무해하기까지 할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나면 곧 또 잊을지라도 오늘도 역시나 당신은 아름다운 하루를 만들 거니까요. (20240410)
첫댓글 송재학과 푸코와 류시화 잘 읽었습니다. 모두 투표 잘 하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