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군 가평읍 복장리의 사모바위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복장리에서 고성리로 가는 길가에 ‘사모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있다. 그리고 북한강을 사이에 두고 춘천시 남면 관천리에는 ‘족두리바위’가 있다. 이들 사모바위와 족두리바위는 사람들이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바위였지만, 지금은 땅에 파묻혀 사모와 족두리 부분만 일부 땅위로 올라와 있다.
돌이 된 신랑과 신부
조선시대 무렵 총각 한 명이 가평군 복장리에 살고 있었다. 총각은 키가 크고 용모가 뛰어났으며, 총명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집안이 가난해서 배우지 못하고 하루하루 품을 팔아 생계를 이어갔다. 집안 형편이 어렵다보니 혼례를 치룰 나이가 되었는데도 장가를 들지 못하고, 늙은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총각이 강으로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다가 물웅덩이에 알몸으로 빠진 처녀를 보았다. 총각은 알몸의 처녀라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처녀를 구해주기 위해 물웅덩이로 뛰어 들었다. 그리고 처녀를 구한 총각은 자신의 옷을 벗어서 처녀의 몸을 가려주었다. 총각은 처녀에게 물었다.
어쩌다 물에 빠지게 되었소?
처녀는 총각 덕택에 살아났지만, 너무 부끄러워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총각은 처녀에게 다시 “어디 사는지는 모르나 저의 집에 가서 옷을 빌려 입고 가십시오. 저의 집에는 제 어머니 한 분밖에는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래도 처녀가 아무 말을 하지 않자, 총각은 혼자 집으로 가 저고리와 치마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는 옷을 건네며, “옷이 남루하지만 우선 이것이라도 입고 가십시오.”라고 하였다. 처녀는 총각이 건네주는 옷을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저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아야 할지요?”라고 하며 고개를 숙였다. 총각은 “어려운 형편에 놓이면 도와야 하는 것이 도리이니 아무 염려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처녀는 열아홉 살로 복장리 앞 강 건너에서 늙은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는데, 날이 더워 목욕을 하러 나왔다가 바위에 벗어놓은 옷이 바람에 날려 물웅덩이에 빠져서, 그 옷을 건지려다가 물에 빠진 것이었다. 총각과 처녀는 하늘이 맺어 준 인연이라 생각하고, 혼인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음력 7월 7일을 혼례일로 정하였다. 혼례일이 되었는데, 새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아침에는 소나기로 쏟아졌다. 그래도 혼례를 치러야 하기에 강을 건너기 위해 혼례복을 입은 신랑 일행이 강가로 나와 비가 멈추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려 순식간에 강물이 불어났다.
신랑 신부가 돌로 변한 사모바위
강 건너편에 있던 처녀도 혼례 준비를 마치고, 신랑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계속되는 비에 총각이 강을 건너오지 못해 처녀는 집 앞마당에 나아가 강 건너를 바라보았다. 강가에 사모관대를 한 총각이 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다. 신랑과 신부측 일행들은 혼례식을 못할 것이라 여기고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총각과 처녀만이 강을 마주하고 남게 되었다. 비는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 되었다. 총각과 처녀는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일주일이 넘도록 비가 내렸다. 혼례를 기다리던 두 사람은 강 건너를 바라보다가 지쳐서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 때 하늘에서 밝은 빛이 두 사람을 비췄다. 그 순간 신랑은 사모를 쓴 바위로 변하고, 신부는 족두리를 쓴 바위로 변했다고 한다.
사모와 족두리를 닮은 바위
바위를 대상으로 한 설화는 그 형상에 기인한 것이 많다. 사람들은 바위 형상에 따라서 이름을 짓고, 더 나아가 설화를 만든다. ‘사모’와 ‘족두리’는 각각 신랑과 신부가 혼례에서 머리에 장식용으로 쓰는 것이다. 바위 형상이 사모와 족두리를 닮았고,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기에 사람들은 신랑과 신부의 슬픈 인연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