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외시리즈
V. 경외와 교리/신학 (Awe and Doctrine/Theology)
1) 거룩, 경외의 불꽃을 당기는 도화선
본문 성경 : 레위기 10:3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공을 나타내리라 하셨느니라 아론이 잠잠하니”
거룩과 경외가 충돌하는 현장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레위기의 가장 두려운 장면 앞에 서 있습니다. 성막이 완공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던 축제의 날,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의 ‘불’에 삼켜져 즉사했습니다. 그들이 드린 ‘다른 불’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기술적인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성’에 대한 ‘경외심’의 부재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거룩(Holiness)과 경외(Awe)의 상관관계를 깊이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비로소 우리 영혼에는 ‘경외’라는 거룩한 떨림이 시작됩니다. 거룩이 하나님의 속성이라면, 경외는 그 속성을 마주한 인간의 마땅한 반응입니다.
거룩의 빛이 경외를 깨우다
1. 거룩(카도쉬): 피조물이 넘을 수 없는 ‘절대적 타자성’
하나님은 당신을 가까이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다고 하십니다.
‘카도쉬’는 본래 ‘자르다’, ‘분리하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비슷하신 분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완전히 구별된 ‘절대 타자(Wholly Other)’임을 의미합니다.
개혁주의 신학에서 하나님의 거룩은 그분의 모든 속성의 ‘영광스러운 면류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거룩한 사랑이며, 그분의 공의도 거룩한 공의입니다. 이 절대적 거룩 앞에 선 인간은 이사야처럼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경외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을 내 수준으로 끌어내리지 않고, 그분의 ‘높음’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2) 거룩의 ‘세속화’와 경외의 ‘증발’
나답과 아비후의 죄는 거룩한 것을 ‘공통된 것(속된 것)’으로 취급한 것입니다.
익숙함의 함정: 그들은 제사장의 직무에 익숙해진 나머지, 하나님을 두려워함 없이 자기들의 방식대로 ‘이상한 불’을 드렸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예배와 삶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내 편’, ‘내 소원을 들어주는 분’으로만 여기며, 그분의 거룩한 위엄 앞에 신을 벗는 행위는 잊었습니다. 하나님을 너무 만만하게 대하는 ‘불경건한 친밀함’이 경외를 증발시켰습니다. 거룩에 대한 인식이 사라진 자리에 이기적인 탐욕과 형식적인 종교 생활만 남았습니다.
3) 거룩의 불꽃이 은혜의 빛이 되기까지
하나님은 거룩을 나타내심으로 ‘내 영광(카바드)’을 나타내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나답과 아비후를 치신 것은 잔인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거룩이 훼손될 때 인간이 생명의 근원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생명 자체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인을 멸하셔야 하지만,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나아갈 길을 여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절대적 거룩(죄를 심판함)과 절대적 사랑이 만난 곳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입어 그 거룩한 불꽃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경외는 공포가 아니라, ‘나 같은 죄인이 거룩한 분 앞에 설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거룩한 감격입니다.
삶의 적용: 거룩의 옷을 입고 경외의 길을 걷다
하나님의 거룩을 경시한 ‘경솔한 삶’을 우리의 일상에서 찾아 회개합시다.
예배의 태도 회개: 예배를 내 기분 전환의 도구로 삼거나, 준비 없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가볍게 여겼던 교만을 회개합시다.
삶의 부정함 회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가치관으로 욕망을 쫓으며, 내 몸이 거룩한 성령의 전임을 잊고 살았던 무감각함을 회개합시다.
경외는 거룩한 ‘떨림’과 ‘끌림’의 공존이다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을 두려워함(Tremendum)과 그분께 매혹됨(Fascinans) 사이에 있습니다.
거룩을 인식할 때 우리는 죄에 대해 ‘떨림’을 갖게 되고, 그 거룩한 분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에 ‘끌림’을 갖게 됩니다.
이 떨림과 끌림이 하나가 된 상태가 바로 진정한 경외입니다. 아론이 아들들의 죽음 앞에서 ‘잠잠’했던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주권에 압도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내 뜻이 꺾이는 순간에 잠잠히 하나님의 거룩을 인정하는 경외의 수준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경외는 거룩의 심연에서 길어 올리는 생수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그분이 얼마나 높고, 정결하며, 위엄 있으신 분인지 인식하십시오. 그때 비로소 우리의 기도는 진지해지고, 우리의 삶은 구별될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은 우리를 죽이려는 위협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 찬란한 영광에 참여시키려는 초대입니다.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에서 ‘다른 불’을 끄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 앞에 무릎 꿇는 ‘경외의 불’을 지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여러분의 삶을 정결케 하고, 그분의 영광이 여러분의 순종을 통해 온 땅에 드러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