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교과서 이것만은 바꿔야! ⑰
‘우리 민족’의 생일은 언젠가요?(하)
민족사에 있어서 민족의 형성 시기가 사람의 생일과 같이 중요한데도 문교부의 지침이나 교과서 어디에서도 명확하게 기술하지 않고 있음은 앞 호에서 지적한 바 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우리 역사학자들 간에 민족의 개념과 그 형성시기가 정립되지 못하고 있으므로 어느 한 쪽의 주장만을 따를 수 없는 사정 때문일 것이다.
문교부의 한국사 집필기준에서 ‘선사 시대에 민족 형성의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했듯이 교과서에서는 구석기, 신석기 시대를 거치면서 겨레붙이와 관련되는 씨족, 부족사회가 형성되다가 청동기 시대로 접어들 때쯤에는 혈연과 전혀 다른 정치집단인 ‘군장사회’를 거쳐 ‘국가’사회로 발전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 이유는 ‘민족’이 국가처럼 법적ㆍ제도적 실체를 갖는 집단이 아니고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역사적 인간 공동체이므로 그 형성 시기를 똑 떨어지게 말할 수 없는 점도 있지만, 우리나라 국사학계의 실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첫째, ‘민족’의 개념에 대해 우리 역사학자들 간에 우리 식 겨레붙이와 서양식 정치집단의 구성원으로 보는 시각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며, 둘째는 인류사회의 발전단계를 혈연을 중심으로 씨족–부족–종족(또는 부족연맹)-민족으로 보거나, 정치 집단 중심으로 무리(떠돌이) 사회–마을사회–고을사회(군장사회가 여기 해당할 수 있다)–국가 사회 식으로 보아야 일관성이 있는데 이 두 주장을 서로 섞어 서술함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이해를 어렵게 하고 있다. 셋째, 더불어 ’청동기 시대에 민족이나 국가가 형성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면서도 우리 겨레의 청동기 시대에 대한 편년이 정립되어 있지 않은 것도 한 이유가 된다. 넷째, 서구 주류 학자들의 주장과 같이 국가가 생긴 후 정치적 필요에 의하여 민족이 만들어졌느냐(근대론자), 오랜 역사를 함께 하면서 형성된 민족을 바탕으로 국가가 형성되었느냐(박정학 등) 하는 데 대한 의견 일치가 되지 않고 있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학자들은 대부분 혈연을 서구학자들보다 중시하면서도 정치집단을 먼저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다섯째, 우리가 역사시대라고 말하는 국가사회나 민족이 형성되려면 그 형성계기가 있어야 하는데, 현 문교부 지침과 교과서의 내용은 신용하의 군사공동체설처럼 ‘청동기 문화의 진전으로 무기가 발달되어 강력한 군장들이 주변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국가가 형성되었다’고 해놓고 부족 내지 종족간의 무력 충돌의 사례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사서 등에서 구체적 사례를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민족의 개념만큼이나 그 형성시기에 대해서도, 고조선 초기로 보는 윤내현, 신용하, 김종서 등으로부터, 고조선 후기로 보는 이종욱, ‘삼국시대에 준비되고 통일신라에서 시험되다가 고려조에 들어와 성립되었다’는 최남선, 고려의 북방개척시기 이후로 보는 이기동, ‘씨족사회는 배태기, 예맥…고조선 등은 시초기, 6국-3국 통합 등 민족운동 추진기, 신라통일을 민족 결정기, 고려 때는 민족의식 왕성기, 세종대왕 때 우리 민족이 완성되었다’는 손진태 등 학자들의 의견이 다양해지고, 정부 지침이나 교과서에서도 이런 실상이 그대로 투영되어 여러 학자들의 주장을 섞어 나열함으로써 오히려 학생들을 혼란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먼저 민족의 개념과 인류사회 발전단계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중요한 청동기 시대의 편년, 민족과 국가의 선후에 대한 개념을 정립해놓고 거기에 따라 교과서가 집필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많은 역사책에서 ‘치우천왕 시기 이상의 큰 전쟁 기록을 찾기 힘들며, 금속무기를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기록과 이를 입증하는 발굴 실적도 있으므로 단군조선 이전인 치우천왕 시기에 국가와 민족이 형성되었다’는 박정학의 박사학위 논문도 무시할 수 없다. 근래 들어 이 분야의 연구가 제법 활발해지고 있으며 고고학적 발굴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다양한 학자들의 주장에 휘둘리거나 모두 수용하려고 하지 말고 조직적이고 체계적 토의와 연구를 통해 민족의 개념, 사회 발전 단계론, 민족과 국가의 성립시기 전후 문제와 청동기 시대의 편년 등에 대해 권위 있는 정리를 하여 교과서에 반영해야 한다. 그래야 치우천왕을 승리의 신으로 숭앙하고 있는 많은 붉은악마들도 정체성을 찾게 될 것이며, 우리 민족도 생일을 가질 수 있게 되고, 단군조선 때나 고구려 때 우리 민족이었던 거란, 여진, 왜 등과의 관계도 논리적으로 정립되어야 앞으로의 협력관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