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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회]
당수련, 무림사화(武林四花) 중 한 명으로 발군의 미모를 자랑하는 여인이었다.
더구나 당문이란 배경을 두고 천수암제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기에 강호에서 그녀를 무시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때문에 금이야 옥이야 자랐을 그녀의 얼굴에는 한줄기 도도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고운 이마에 희미한 상처가 나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당문의 의술로도 완전히 흉터를 없애지 못한 상처, 그것은 그녀에게 절대 지워지지 않는 저주받은 낙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볼 때마다 상처를 남긴 주인에 대한 증오를 불태웠다.
무림맹도 그 때문에 온 것이다. 가문의 어른들이나 가주인 당만천은 무언가 중요한 일 때문에 이곳에 왔다지만 그것은 그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녀에게는 오직 자신의 얼굴을 이렇게 만든 자를 찾아내 응징하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그것이 그녀가 무림맹에 온 이유였다.
싸늘한 미소를 피워 올리고 있는 당수련, 그녀의 모습은 왠지 묘한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남궁영은 그런 당수련의 모습을 보며 넋이 빠진 듯 입을 벌렸다.
싸늘하면서도 도도한 매력을 풍기는 그녀의 모습은 이제까지 그가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유형의 것이기 때문이다.
“반갑습니다. 당소저, 난 남궁영이라 하오.”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남궁영 소협.”
그녀의 말에 남궁영의 얼굴에 금세 웃음꽃이 피었다. 그 모습을 보는 남궁도학이 내심 고개를 저었지만, 그보다 당만천을 대하는게 급했기에 그냥 넘어갔다.
“먼 길을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당대협.”
“오랜만이오. 남궁 대협.”
남궁도학과 당만천은 그렇게 인사를 주고받고 자리에 앉았다.
그들은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어차피 오늘은 그저 친목을 다지기 위해 함께한 자리였다. 중요한 일은 나중에 남궁가의 가주가 도착하면 가주들끼리 의논할 것이다.
오늘은 단지 남궁가와 당문이 모임을 갖는다는 데 의의를 두면 될 것이다.
“꽤 자리가 시끄럽군요.”
“무림맹에서 아직 별도의 공간을 배려해주지 않아서 말입니다.”
“흥! 무림맹의 준비가 부족하군요. 감히 우리를 이렇게 대하다니 말입니다.”
“천하대회의 때 보면 알겠지요.”
무림맹에서 구파일방(九派一幇)과 오대세가(五大世家)의 영향력은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예전의 그들은 무림맹이 더 이상 커나가는 것을 경계해 스스로 무림맹에서 인원을 주렸다.
하지만 무림맹은 백무광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맹주로 맞이하고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천하의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덩치를 불렸다.
때문에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구파일방이 조금 밀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남궁가와 당문이 같이 자리를 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무림맹에서 자신들의 발언권이나 영향력을 증가시킬 속셈으로 이렇게 같이 자리를 한 것이다.
하나는 무시할 수 있지만 오대세가 중 둘이 같이 한다면 그 누구도 쉽게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그 세가라는 것이 오대세가 중 수위를 다툰다는 남궁가와 가장 상대하기 까다롭다는 당문이다.
때문에 그들은 자신할 수 있었다. 이제 무림맹에서 그들의 영향력이 커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들은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주위사람들은 그들처럼 마음 편하게 술을 마실 수 없었다.
삼층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조금전부터 두통과 구역질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고통이 심해지자 그 이유를 깨닫고 자리를 비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모두 당만천 때문이었다.
비록 그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지만 그의 움직임 하나에도, 내뱉는 숨결에도 모두 독이 배어 있었다.
비록 그것은 사람의 생명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지만 무공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위험요인이 될 수 있었다.
당만천은 그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었지만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싫었고, 번거러운 것도 싫었다.
때문에 그들이 알아서 자리를 비워주길 바랬다. 그리고 그런 그의 의도는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당만천의 눈가에 이채가 떠올랐다.
모두가 자리를 비웠는데 오직 탁자 한쪽에 있는 사람들만 가만히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젊은 사람들이였는데, 비록 미약하지만 그래도 당만천의 독에도 끄떡없는 것으로 봐서 꽤나 내공이 심후한 듯 보였다.
“흠~. 제법......기초가 제대로 잡힌 녀석들이군.”
당만천이 그들을 보며 중얼거렸다.남궁영은 그런 당만천을 보며 말했다.
“그래도 강호의 후기지수 중 손꼽히는 자들입니다. 소림과 무당의 제자, 그리고 마선의 고명딸이라면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자들이지요.”
“무당의 제자? 혹 명왕이란 자와 같이 다닌다는 그 무당의 제자를 말하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당대협!”
순간 당만천의 얼굴이 한 겹 얼음이 덮인 듯 차갑게 변했다. 그리고 그것은 당수련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황, 당문의 공적이었다. 그는 난주에서 당문의 제자를 도륙했다. 그들은 모두 당문의 후기지수들이었고, 그 중에는 당만천의 아들도 끼어 있었다.
또한 태원에서도 그에게 당문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태원에서 신황이 당문의 사람을 죽였다는 증거는 없었으나 신황이 행적과 당문의 사람들이 행방불명 된 시점이 일치한다.
때문에 당문에서는 신황이 그 일에 관계되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또한 당수련의 이마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겨준 것도 바로 신황이었다.
이제까지 당문의 일에 사사건건 관여해 엄청난 상처를 남겨준 인물, 그가 바로 신황이었다.
때문에 당문에서는 신황의 일거수일투족에 모든 신경을 기울이고 정보를 수집했다.
하지만 그의 곁에 접근한 자들은 이제까지 모두 목숨을 잃었기에 그에 대해 그들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들에게 골칫덩이가 되는 성수신의와 같이 동행을 한다는 것, 또한 무당의 제자와 그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여인이 동행한다는 것 정도가 그들이 신황에게 대해 아는 전부였다.
"신황과 같이 다니는 무당의 제자라..... 어찌 명문정파인 무당의 제자가 그런 사파의 인물과 같이 다니는 것인가?"
당만천은 신황을 사파의 인물이라 규정했다.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그에 있어 신황은 사파의 인물이었고, 또한 같은 하늘 아래 절대 존재할 수 없는 세불양립의 적이었다.
때문에 그와 같이 다니는 사람들도 그에겐 적일 수밖에 없었다.
남궁도학은 당만천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했다. 그러나 그의 의문은 곧 풀렸다. 순간 당만천이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당대협?"
"잠시 다녀오겠소이다. 마침 잘 되었구려. 그렇지 않아도 찾아 나서려던 참인데 일이 수월하게 되었소."
당만천의 눈가에 미세한 빛이 스쳐지나갔다. 그 모습에 남궁도학은 그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강호에 천수암제가 성격이 급하고 앞뒤를 가리지 않는다고 하더니... 그 말이 진실인 것 같구나. 아무리 원한이 있어도 이곳은 무림맹일진데.....'
그는 약간은 걱정서린 눈으로 당만천의 뒤를 바라봤다.
일행들과 술을 마시던 초풍영은 당만천이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해도 대륙십강의 일인을 그냥 무시할 수 없는 법이다.
초풍영과 일행은 일제히 일어나 당만천에게 분분히 포권을 했다.
"당대협을 뵙습니다. 혁련혜라 합니다."
"천수암제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전 소림의 광불이라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무당의 제자 초풍영이라 합니다."
그들의 인사를 받으면서도 당만천의 굳은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그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냉기를 풀풀 날리며 말했다.
"자네들에게 내가 찾아와야 인사를 한는 건가? 요즘 강호의 후학들은 정말 버릇이 없군."
순간 초풍영과 일행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들이 당만천을 먼저 찾아가 인사를 하지 않은 것은 당만천이나 남궁도학이 개인적인 만남을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보통 그런 경우 방해하지 않기 위해 인사를 미루는 것이 강호의 관행이었기에 그들 역시 인사를 할 기회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트집 잡아 말하니 말문이 딱 막히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강호에서의 명성과 권위가 절대적인 당만천의 말에 감히 토를 달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죄송합니다. 중요한 말씀을 나누시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사죄의 말을 했다.초풍영도 사죄의 말을 했지만 끝에 토를 달았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후배들에게 직접 찾아와 인사를 강요하는 것도 그리 보기 좋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순간 초풍영이 앉아 있는 탁자뿐 아니라 삼층 전체가 정적에 잠겼다. 감히 대륙십강의 일원인 당만천에게 이런 말을 하는 자가 있다니!
설혹, 초풍영의 말이 맞다 하더라도 강호의 관행상 선배 고수들이 하는 말에 후배들은 그저 따르는 것이 도의였다.
그런데 지금 초풍영은 그런 관행에 정면도전을 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초풍영은 주위의 공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을 느꼈지만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았다.
'젠장! 이젠 나도 간덩이가 부을 데로 부었나 보군! 감히 대륙십강한테 이런 말을 하다니.... 이게 다 형님 때문이야. 쳇~!'
초풍영은 자신이 이러는 게 신황 때문이라고 책임을 넘겼다.
정말 신황과 같이 다니면서 험한 일만 겪다 보니, 어지간한 일에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 굵은 신경을 가지게 된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이런 말을 토해내게 된 것이다.
당만천의 얼굴에는 노기가 서려 있었다.
"네 말은....내가 이렇게 온 것이 잘못이란 것이냐?"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남들이 보기에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거듭되는 초풍영의 벽력탄 같은 발언에 광불과 혁련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제아무리 그들이 강호사웅(江湖四雄), 강호삼화(江湖三花)에 속해있다고 하지만, 천수암제 당만천의 명성에는 발끝에도 미칠 수 없었다.
그것은 그들이 아무리 발악하더라도 그를 당할 수 없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런데 지금 초풍영이 하는 모양을 보면 자살하지 못해 안달난 사람과 같았다. 지금 그는 자신의 목을 베어달라고 당만천에게 들이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초풍영의 태도는 시큰둥했다.
그의 생각대로 그는 신황과 너무 오래 붙어 다녔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의 신경을 거슬리고 있는지 미처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러설 생각은 전혀 없었다.
똑바로 당만천을 바라보는 초풍영, 그리고 그를 바라보며 무서운 눈빛을 뿌리는 당만천. 그들의 대치는 주위를 긴장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때 끼어든 사람이 바로 남궁영이었다.
"당대협! 그만 하시지요. 아마 자신의 의형이라는 신대협을 믿고 저러는 것 같은데.... 확실히 그가 무섭긴 한가봅니다. 하긴, 요즘 강호에서 위명을 보면 그럴 만도 하지요."
얼핏 들으면 말리기 위해 하는 말인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남궁영의 말은 교묘히도 당만천과 초풍영의 신경을 긁고 있었다. 그리고 당수련마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확실히 신황이란 사람, 대단하긴 하지요. 그러니 그리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는 것이겠지요."
이를 뿌득 갈며 말하는 당수련, 그녀의 눈에는 원독의 기운이 가득 담겨 있었다.
신황을 떠올리자 그날 그에게 얻은 이마의 상처가 다시 쑤셔오는 것을 느꼈다. 그에 따라 그녀의 인상은 더욱 험악해져 갔다.
그녀의 뇌리 속에는 자신들 때문에 죽은 무이의 엄마는 들어있지도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은, 그날 신황의 손에 의해 처참하게 죽어간 자신들 식구들뿐이었다.
당만천의 주위에 남궁영과 당수련까지 합세해 압박을 하자 점점 분위기는 험악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에 기가 죽을 초풍영이 아니었다. 그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말을 꺼냈다.
"훗~! 그렇게 우리 형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형님에게 이야기하십시오. 괜히 애꿎은 저한테 화풀이하지 말고 말입니다.
우리 형님 찾아가면 아마 잘 맞이해주실 겁니다. 그 양반 결코 자신에게 오는 사람을 피하는 법이 없으니 말입니다."
"초형~!"
"초소협!"
옆에서 광불과 혁련혜가 말렸지만 초풍영은 멈추지 않았다.
"제가 아무리 형님과 친하다고 하지만, 이렇게 천하에 명성이 자자하신 당대협과 여러분이 저 하나를 핍박하는 것은 정말 우습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감히 네 녀석이!"
순간 당만천이 노호를 터트리며 초풍영을 향해 번개같이 손을 휘둘렀다.
퍼~억!
짧은 격타음과 함께 초풍영이 뒤로 밀려났다. 그것은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제대로 초풍영이 반응할 틈이 없었다.
그의 손에는 반쯤 뽑히다 만 검의 손잡이만 잡혀 있었다. 당만천의 공격을 느끼고 반격을 하려 했지만 그의 반응보다 당만천의 공격이 훨씬 빨리 이뤄진 것이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통증에 초풍영은 이를 악물며 고통을 참아내려 했지만, 순식간에 다리가 힘을 잃고 제멋대로 풀리며 초풍영의 의지를 배반했다.
"감히 네놈이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다니! 네가 죽고 싶어 환장 했구나!"
당만천은 바닥에 주저앉은 초풍영을 보며 으르렁거렸다.
이 한수는 워낙 불시에 일어난 일이었고, 또한 초풍영이 알았다 하더라도 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바로 초풍영과 당만천의 차이였다.
"크~으!"
초풍영의 입가로 한줄기 검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시커멓게 죽은 피, 그것은 그만큼 초풍영이 엄중한 내상을 입었다는 것을 뜻했다.
"보자보자 하니.... 네 녀석의 방자함이 끝이 없구나.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그런 망말을 하는 것이냐?"
"제~엔장!"
당만천의 말에 초풍영은 이를 악물고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기이한 열기가 일어나 그의 몸이 움직이는 것을 막고 있었다.
초풍영이 내력을 유동시켰으나 열기는 초풍영의 내력을 꽉 막아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흥! 내력을 운용하겠다고? 네 숙부에게 달려가기 전에는 어림없을 것이다."
당만천은 초풍영을 보며 비웃음을 던졌다.
조금 전의 한수는 비록 간단히 손을 휘두른 것처럼 보였으나, 실상 그 속에는 당문의 절기인 철독수(鐵毒手)의 기운이 담겨 있었다.
철독수는 당문의 최고절기인 만천화우(滿天花雨)를 익히기 위해 반드시 익혀야 하는 수법으로 손에 당문 비전의 극독을 흡수해 익힘으로써 강철보다 더 강한 손을 얻게 된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손이 독수(毒手)로 변하게 된다. 때문에 간단히 휘두른 한수에도 극독의 기운이 숨어 있는 것이다.
"초형!"
"초소협!"
광불과 혁련혜가 부르는 사이에도 초풍영의 얼굴은 시꺼멓게 흑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초풍영은 내력을 운용해 자신을 침범해오는 기운을 물리치려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극독은 그의 내력을 하나하나 무력화 시키면서 급속도로 전신을 잠식하고 있었다.
"이건 내가 신황에게 보내는 경고다. 더 큰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 녀석이 직접 나를 찾아와야 할 게야.... 감히 내 식구를 건드리고도 무사할 것이라 생각했다면 오산이야."
"허...윽! 당....신 분명 그 말을 후....회하게 될 겁니다."
"후회? 이제까지 태어나 한 번의 후회도 하지 않았던 사람이 바로 나 당만천이다."
"당...신 후회하게 될....."
털썩!
초풍영은 끝가지 당만천을 노려보다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 이후로 그의 몸을 변색시키던 검은색이 급속도로 번져나갔다. 당만천은 그런 초풍영을 잠시 내려 보다 광불과 혁련혜에게 싸늘히 말했다.
"데리고 가거라. 시간이 늦을수록 회생하는 게 늦을 게야. 어쩌면 살아나지 못할지도 모르지."
그의 말에 광불이 급히 초풍영을 등을 업고 객잔을 나섰다. 혁련혜는 그를 따라나가기에 앞서 당만천을 돌아봤다.
오연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 당만천, 그리고 마찬가지 표정을 짓고 있는 남궁영과 당수련.
그들의 모습에 그녀는 앞으로 커다란 파란이 일 것을 직감했다.
'아무래도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 같구나. 작정을 하고 이리 사람을 건드렸으니.......'
이미 초풍영은 인사불성이었다. 그것은 당만천이 작정을 하고 손을 썼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광불과 혁련혜가 자리를 떠난 뒤, 남궁도학이 걱정스런 얼굴로 당만천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그래도 무당의 제자인데 저리 심하게 손을 써도 괜찮습니까?"
"흥! 무당이든 신황이든 난 하나도 겁나지 않소. 내 아들과 당가의 아이들이 죽었소. 그 복수를 위해서라면 무당이 아니라 소림이라도 상대할 용의가 있소."
너무나도 광오한 당만천의 말에 남궁도학은 그만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사람은 성질을 죽일 때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그는 너무 성급하구나. 이래서 어디 큰일을 의논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무공이 강하고, 가문이 대단하더라도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는 법이다. 남궁도학은 독불장군식인 당만천의 그런 점이 걱정되었다.
그런 남궁도학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당만천은 차가운 미소를 머금고 광불이 사라진 계단을 내려다보았다.
후두둑!
그렇지 않아도 흐렸던 밤하늘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르릉! 콰콰쾅!
낮부터 잔뜩 흐려있던 하늘에서는 기어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신황은 나무 밑에서 명상을 하다 어깨를 때리는 빗줄기에 눈을 떳다.
크릉~!
설아는 몸을 적시는 빗물이 싫은지 금세 신황의 품안으로 파고 들었다.
"훗~!"
신황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낫다.
하늘을 보니 빛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게, 그리 쉽게 그칠 비 같지는 않았다.
"비가 오는데 어서 안으로 들어오게나."
별채에서 초관염이 신황을 보며 이야기했다.
초관염은 조금 전까지 장사우에게 침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 비가 오는 것을 느끼고 밖으로 나왔다.
"신가가도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따끈한 차 한 잔 하면 좋을 것 같아서 차를 내왔어요."
초관염의 옆에서 홍염화가 찻잔과 주전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에 초관염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허허~! 처음에 봤을 때는 그저 선머슴 같더니.... 제법이구나. 네가 차도 끓이고."
"헤헤! 저도 이 정도는 할 줄 안다구요."
홍염화가 혀를 내밀며 콧등을 찡그렸다.
"그래! 향기가 아주 좋구나."
초관염은 주전자에서 풍기는 향기가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그덕였다.
그때 빗줄기를 뚫고 누군가 별채 안으로 급히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초대협! 초소협이 위험합니다."
등에 초풍영을 업고 경신술을 펼쳐 거의 날아오듯 하는 남자, 그는 다름 아닌 광불이었다. 그의 뒤에는 혁련혜가 함께 경신술을 펼쳐 달려오고 있었다.
"뭐? 풍영이가 ...... ?"
그 소리에 초관염이 벌떡 일어났다. 그는 급히 맨발로 뛰어나갔다.
광불의 등에는 이미 인사불성이 된 초풍영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초관염은 급히 그런 초풍영을 안아들고 전신없이 그를 흔들었다.
"풍영아! 이 녀석아 네가 왜 이렇게 된 거냐? 이놈아!"
그는 소리를 치며 다급히 초풍영의 맥문을 잡았다. 그런 그를 보며 광불이 말을 했다.
"당문의 가주인 당만천 대협과 시비가 붙어 그만 이렇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중독된 것 같습니다."
"당가주가?"
초관염은 침음성을 삼키며 급히 품에서 호심환 한 알을 꺼내 초풍영의 입 안에 넣었다.
"어떻습니까?"
"위험하네. 어려서부터 영약을 밥 먹듯 먹어서 어지간한 독에는 면역이 있는 아이인데 이리 된 것을 보면 당가주가 지독한 극독을 사용한 모양이야. 얼른 해독해야 하네."
신황의 말에 초관염은 다급히 말하며 초풍영을 별채로 데려갔다.
어지간한 일에는 절대 여유가 사라지는 법이 없던 그의 얼굴에는 다급한 빛이 떠올라 있었다. 그만큼 초풍영의 상태가 좋지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는 초관염을 보는 신황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는 초관염을 따라 들어가려는 혁련혜에게 이유를 물었다.
"왜 저렇게 된 것이오?"
"객잔에서 술을 마시는데, 당가주와 시비가 붙었어요. 부분이 초소협을 저리 만들고 신대협에게 하는 경고라고 하였습니다."
"당가주가?"
그렇지 않아도 무심하던 신황의 눈이 스산하게 가라앉았다. 그 모습에 혁련혜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돋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급히 신황에게 말을 이었다.
"일단 초소협의 상세를 살피는 게 우선입니다. 그런 다음에 당가주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에 신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우선 급한 것은 초풍영을 살리는 것이었다.
일련의 사건은 금세 무림맹의 수뇌부로 알려졌다.
제갈문은 비영의 보고를 받으며 일이 생각보다 재밌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 당가주가 신황과 같이 다닌다는 무당의 제자에게 중상을 입혔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의도적으로 시비를 건 것 같습니다."
"하간, 그럴 만도 하지.... 아들의 원수랑 같이 다니는 자인데 눈이 돌아버릴 만도 하지."
제갈문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당문과 신황을 어떻게 충돌시킬까 생각했는데,
이건 자신들이 어떻게 손을 쓰지 않아도 알아서 스스로 충돌하지 않는가! 이것은 그야말로 하늘이 도와준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이 정도로는 좀 부족한 듯싶은데....."
"이미 비각을 움직였습니다. 아마 내일 오전이 되면 매우 볼 만한 광경이 벌어질 겁니다."
제갈문의 말에 비영이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에 만족스러운 듯 제갈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영은 그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법을 알았다. 제갈문은 비영의 그런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후후, 내일 오전이라.... 나도 구경을 하고 싶군."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갈문의 눈에는 어떤 기대 같은 것이 떠올라 있었다.
주적주적 비가 내리는 밤, 시위는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당문의 사람들도 별도의 별채를 배정받아 숙소로 삼았다. 당문에서 들어온 인물만 백 명이 훨씬 넘는다. 그들 중 누구하나 강호에서 빠지는 인물이 없다.
그만큼 당문에서는 이번 무림맹의 행사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곳에 머무르다보니 경계가 삼엄했다. 더구나 그들의 위치가 위치이다 보니 별채의 경계는 철통과 다름없었다.
때문에 누가 이곳을 무단침입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세상일에는 늘 예외가 있는 법이다.
분명 당문의 사람들이 머무는 곳은 외부와 철저히 차단회어 있었는데, 내부에서 은밀히 움직이는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민첩한 움직임으로 당문의 사람들이 머무는 별채를 누볐다. 그러나 경계를 서고 있는 당문의 무사 중 그 누구도 그의 기척을 감지한 사람은 없었다.
그는 별채의 구조를 매우 잘 알고 있는지 매우 능숙하게 움직였다. 경비무사들의 사각을 골라서 절묘하게 움직인 그는 어렵지 않게 별채 내부에 숨어들 수 있었다.
검은 그림자가 향한 곳은 당문의 사람들 중에서도 여인들이 주로 머무는 숙소였다.
당미소는 당문에서도 귀여운 얼굴과 애교로 인해 많은 사랑을 받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이번에 무림맹에 오기 위하여 그녀의 사촌 오빠와 장로들에게 갖은 애교를 부려야 했다.
워낙 귀여운 얼굴로 애교를 부렸기에 그녀의 사촌오빠와 장로들은 알면서도 넘어가줬다. 그 결과 , 그녀는 이렇게 일행들 틀에 섞여 무림맹에까지 들어오게 됐다.
"흐응~! 그래도 명식이 천하대회의니 분명 젊고 잘생긴 무인들이 많이 올 꺼야."
당소미는 수욕을 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녀의 나이 열일곱, 한참 꿈 많은 나이였다.
때문에 이곳 무림맹에서의 회합에 거는 기대도 무척이나 컸다. 그녀의 꿈은 이곳 무림맹에서 멋진 청년고수를 만나 함께 무림을 주유하는 것이었다.
"분명 멋진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꺼야."
당소미는 상상만 해도 즐거운지 욕조에서 몸을 배배 고며 물장구를 쳤다.
첨벙첨벙!
물소리가 실내를 울렸지만 당소미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서 독방을 쓰는 사람은 당수련과 자신뿐이기에 누구도 신경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공간에서 당소미는 수욕을 끝마쳤다.
"아~아! 개운해."
당소미는 밖으로 나오면서 커다란 천으로 몸을 닦았다.
"응? 내가 창문을 열어 놓았나?"
당소미는 자신의 방에 창문이 열린 것을 보았다. 분명 창문을 닫은 것 같은데 열려있다니, 그러나 누군가 침입했다고 하기에는 느껴지는 기척이 전혀 없었다.
비록 여자지만 그래도 당문의 절기 중 일부를 배우었기에 당소미는 자신의 무공에 무척 자신이 있었다.
"바람 때문인가 보지."
당소미는 피식 웃으며 쉽게 생각했다.
지금 밖에는 거세게 비가 내리면서 바람까지 불고 있었다. 이런 날 창문이 열린다고 하더라도 그리 이상할 것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창문을 닫으려 창가에 다가가는 순간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물?"
분명 창문 밑에는 물 자국이 있었다.
누군가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분명 자신의 감각에는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 있다고 생각하니 그녀의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당소미는 급히 천으로 몸을 가리며 외부에 도움을 청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채 소리를 지르기도 전에 혈도가 제압당하는 것을 느꼈다.
"누....구?"
소리 없이 그녀를 제압한 검은 그림자, 그가 당소미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당소미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런 그녀의 눈동자 속에 그림자의 하얀 이빨이 들어왔다.
당문의 장로인 당만황은 자신의 방안에서 당문이 무림맹에서 얻어내야 할 사항을 점검하고 있었다.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것도 있는 법이다.
당연히 당문은 무림맹에 제공한 것이 있었고, 이제 그 대가를 받아내야 할 때였다.
당만천은 그에 대해 모든 것을 당만황에게 일임했다. 어차피 머리 쓰는 것은 자신보다 당만황이 훨씬 낫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사천에서 일어난 무림맹 지부의 몰살에 대해 언급을 하며 사의를 표해야겠군. 그래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게 훨씬 수월해질테니...."
당문에서도 이번에 사천에서 일어난 혈사에 대해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근거지인 사천에서 일어난 일인데, 그들이 모른다면 다시는 사천당가라는 말을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사천은 그들의 앞마당이나 마찬가지였다.
"흉수가 누군지 모르지만 대단하구나. 감히 무림맹의 지부를 이렇게 흔적도 없이 몰살을 시킬 수 있다니.....
더구나 사천에서 본가의 이목을 피해서 일을 저지르고, 또한 청성과 아미의 이목까지 감쪽같이 속이다니."
사천에는 당문이 아니더라도 청성(靑城)과 아미(峨嵋)라는 걸출한 문파가 존재한다.
그들 또한 구파에 속하는 거대 문파인데 그들 역시 사천의 혈사가 일어나기 전에는 그런 조짐을 감지조차 하지 못했다.
비록 외부에 말은 안 했지만, 이 사건이 그들에게 던져준 충격은 대단했다.
사천에서 그들의 이목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은 또다시 언제라도 사천에서 혈사를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천에 있는 문파들은 바짝 신경이 곤두선 상태였다. 언제 자신들의 문파가 그 표적이 될 줄 몰랐기에.
하여튼 당문은 사천에서 무림맹의 활동에 최대한 편의를 바주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런 표면적인 이유보다 더 큰 이유는 당문과 무림맹이 매우 오래전부터 밀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그 자세한 내용이야 오직 당만천만 알고 있지만, 그래도 밀약이 있다는 것 정도는 당문의 장로급 이상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어차피 급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저들이니..... 일단 저들이 나오는 것을 살펴보면서 반응하는 것이 낫겠군."
당만황은 스스로 생각해놓고 매우 만족스러운 듯 웃음을 떠올렸다.
사천에서 일어난 무림맹의 혈사덕분에 그들과의 협상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어차피 급한 것은 무림맹이지 자신들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오늘 비가 무척이나 많이 내리는군. 아직 이렇게 내릴 시기가 아닌데....."
창밖에는 장대 같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아까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도무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당만황은 잠시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창문 밖으로 내밀었다.
투두둑~!
그의 얼굴을 때리는 굵은 빗줄기가 무척이나 시원하게 느껴졌다.
"허~어! 이렇게 비를 맞아본 것이 얼마만인가?"
늦은 시각이라 침침해지던 눈과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끼고 당만황은 빙그레 웃었다. 그는 이어 창문을 잡으며 고개를 다시 방 안으로 집어넣으려 했다.
그 순간이었다.
쉬~익!
마치 찰나에 빛나는 섬전처럼 한줄기 빛이 아래에서 위로 번쩍였다. 그것은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당만황은 미처 자신의 몸에 닥친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다.
투~욱!
데구르르!
당만황의 몸통에서 무언가 굴러 떨어져 바닥을 뒹굴었다. 그제야 검은 그림자가 창문 밑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잠시 머리를 잃은 당만황의 시체를 바라보더니 곧 이어 아직 핏물이 흐르는 검을 들었다.
번~쩍!
순간 근처에 떨어진 낙뢰가 검은 그림자의 얼굴을 환하게 비추었다.
"조금 더 그럴싸하게 만들어야겠지?"
검은 그림자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다시 검을 들었다.
비가 그친 다음 날, 당문이 발칵 뒤집혔다.
또한 무림맹에도 비상이 걸렸다. 무림맹의 성내에서, 그것도 당문의 숙소에서 살인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더구나 피살된 사람들의 신분이 당문에서 차지하는 위치 또한 범상한 것이 아니었다.
우선 당만황만 하더라도 이번 당문의 행사에 당만천을 대신해 모든 것을 책임지던 사람이었다. 당연히 당문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가 범상치 않을 리 없었다.
그런 그가 목이 잘린 채 온몸이 난자 되어 자신의 방에 죽어 있었다. 전신에 입을 벌리고 있는 수 많은 자상들이 보는 사람의 시선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또한 당소미의 시신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끔찍했다.
당만황과 마찬가직로 난자되어 있는데다, 그녀의 몸에는 겁간을 당한 흔적이 뚜렷했다.
아직 어린 소녀의 이 처참한 죽음에 당문의 사람들은 물론 무림맹에서 나온 무인들도 할 말을 잃었다.
그 중에서도 당문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 대단했다.
"누가 감히 당문의 숙소에서 이런 짓을!"
"어느 놈이 소미를.... 이 귀여운 아이를 이렇게 처참하게....!"
그들은 당소미의 처참한 시신에 치를 떨었다.
당문의 사람들치고 당소미를 귀여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기에 그들의 분노는 더욱더 불타올랐다.
당만천도 그 중의 하나였다. 감히 자신이 머물고 있는 숙소에 잠입해 당문의 두 사람을 죽이다니. 당만천은 노기를 피워 올리며 당문 사람에게 싸늘하게 말했다.
"언제까지 넋을 잃고 있을 것이냐? 빨리 이들의 시신을 검사해라. 하나의 흔적이라도 놓치지 말고 찾아내라!"
"옛! 가주님."
당만천의 명령에 당문의 식구들이 서둘러 시신에 달라붙어 검사를 하기 시작했다.
의술과 독술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을 가진 가문이 바로 당문이다.
그만큼 구성원 하나하나가 대단한 의술을 소유했기에 일단 정신을 차리자 그들의 일처리는 그야 말로 일사 분란했다.
당문의 장로들은 그들의 시신에서 여러 지 증거를 찾아냈다.
그리고 곧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해 시신의 몸에 난 상처가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추론해냈다.
그
리고 잠시 후 그들이 결론을 내렸는지 당만천에게 다가왔다.
당만천이 입을 열었다.
"결론은?"
"날카로운 검기에 의해서 당한 상처입니다. 그것도 아주 잘 벼려진..... 이 정도 검기를 뽑아낼 정도면 보통의 고수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또?"
"이들, 아니면 우리들에게 대한 원한을 가진 것 같습니다. 아주 작심하고 잔인하게 손을 썼습니다.
그리고 소미 같은 경우에는 겁간을 당한 후, 살아있는 채로 최대한의 고통을 느끼며 죽어갔습니다. 혈을 짚어 정신을 잃지도 못하게 한 뒤에 손을 쓴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추측을 하기 힘든 고수에다... 잔인한 독심을 지닌 자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원한을 가진 자입니다."
당만천의 얼굴에 살기가 감돌았다. 그는 그런 자를 한 명 알고 있었다.
자신들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으면서 고수이고, 또한 잔인하게 손을 쓸 수 있는 독심을 지닌 자, 그리고 어제 자신은 그에게 경고장을 보냈다.
그런데 즉각 대답이 돌아왔다. 그것도 아주 최악의 형태로.당만천은 자신했다. 흉수가 그라고.
휙~!
그는 소리나게 몸을 돌렸다. 그 뒤를 따라 당문의 사람들이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맹목적으로 당만천을 따랐다. 그들의 눈에는 분노의 기운이 담겨 있었다.
당문의 숙소 밖에는 참사를 듣고 달려온 수많은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당문 사람들에게 심상치 않은 기세가 풍겨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많은 무인들이 당문 사람들의 뒤를 따랐다.
그들의 눈에는 한줄기 기대감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이런 시끄러운 사건이 벌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강호인들은 조용하고 지루한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하니까.
당만천은 신황이 머무는 별채 앞에 섰다.
그의 뒤에는 마찬가지로 노기를 피워 올리고 있는 당문의 사람들과 수많은 무인들이 어떤 기대감을 가지고 서있었다.
당만천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다 곧 내공을 끌어올려 노호성을 터트렸다.
"나와라! 신황. 밖으로 나와라!"
마치 불문의 사자후와도 같은 그의 노호성은 대기를 쩌렁쩌렁 울리며 퍼져 나갔다. 그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무언가 일이 터지기를 기대하고 따라왔지만, 설마 당문이 찾아온 사람이 바로 신황인 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때 다시 당만천이 외쳤다.
"나와라! 시~인~황!"
그에 동조해 누군가 소리치기 시작했다.
"나와라!"
"나와라. 신황!"
"밖으로 나와라!"
무엇 때문에 당문이 이러는지, 혹은 이유가 무엇이든지 상관없었다. 단지 그들의 눈에는 대륙십강의 일인이 존재했고, 또한 그가 노호성을 터트린다는 게 중요했다.
당만천 같은 초절정 고수가 화를 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짐작하며 그에 동조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군중심리였다.
이제 수많은 무인들은 한마음이 되어 소리쳤다.
"신황, 나와라!"
"나와라~!"
별채는 기이한 열기에 휩싸이고 있었다.
제갈문은 신황의 별채가 보이는 근처 건물의 지붕에서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비영과 천산파의 주인인 적무영이 서 있었다.
적무영이 제갈문을 보며 말했다.
"좋은 구경이라는 것이 저것입니까?"
"왜, 보기 좋지 않소?"
"후후~. 재미는 있습니다."
무인들 사이에 섞여 있는 비각의 고수들, 그들이 바로 무림인들을 충동질 하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그에 동요해 같이 소리치는 군웅들의 모습은 그들에게 묘한 쾌감을 안겨주고 있었다.
제갈문은 별채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 어떻게 할 거냐? 저 많은 군웅들 앞에서 어떻게 할 것이냐? 신황!'
결코 주먹 하나가 여럿을 당할 수는 없는 법이다. 제갈문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때 군웅들이 있는 쪽의 공기가 요동쳤다.
별채의 안쪽에서 장포를 걸친 남자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군웅들의 시선에 기이한 열기가 담기기 시작했다.
"네놈!"
당만천이 신황을 보며 살기를 폭출했다.
순간 신황의 눈에도 스산한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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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
감사합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잘봅니다^^
ㅈ.ㄹ감
감사합니다
고맙게 잘보고 있어요~~~
즐감
ㄳㄳ
즐독
잘봅니다
즐독 하구 갑니다
즐독요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 하고 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