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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폭이 좁은 호젓한 길’이라고 나온다. 그 어원을 들여다보면 ‘오’는 외롭다(單)는 의미의 ‘외’가 ‘오’로 바뀐 것으로 외아들·외기러기·외나무다리처럼 ‘단지 하나뿐인 것’을 나타내는 접사로 쓰인다.
‘솔’은 바느질의 봉합선이 옷의 겉과 속을 뚫고 가느다랗게 이어진 것을 말하며‘가늘고 좁다’는 뜻으로 쓰인다. 따라서 오솔길은 이미 그 어원에서 가늘고 좁으면서도 호젓함 또는 외로움의 뉘앙스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오솔길의 느낌을 오롯이 간직한 곳이 바로 가리산(1051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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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산행은 다솜산악회(02-482-9966)와 함께했다. “다소 길고 남들이 잘 가지 않는 등산로를 택한다”는 김기윤 대장의 자랑 그대로 가리산 산행의 출발점을 홍천고개로 택했다. 차도 뜸하게 다니는 구불구불한 길을 버스로 한참을 오른 후에야 비로소 땅에 발을 내딛는다.
고개부터 시작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사람의 손길이 별로 닿지 않은 덕분인지. 길은 그야말로 실타래에서 풀린 실처럼 이어졌다. 두 명이 걷기엔 좁고 한 명이 조금 여유있게 걸을 만큼의 폭으로 난 흙길의 연속이다. 주위의 나무와 바위는 모두 한결같이 푸른 이끼옷을 입었다. 벌써부터 울고 있는 매미 소리가 반갑다. 시끄러울 법도 하건만 그 소리마저도 숲이 삼켜 버려 고요함의 일부가 된다.
잠깐 고개를 넘자마자 왼쪽으로 시야가 탁 트이면서 말끔하게 수염을 깎은 산의 모습이 비친다. 아마도 조림 사업을 다시 하는 것인 듯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돋아난 연초록 풀들이 목장의 모습을 풍긴다. 하지만 곧 시야는 빽빽히 들어찬 나무들로 막혀 버린다.
말없이 오솔길 걷기를 40여 분. 눈앞에 처음으로 산의 정상이 보인다. 단으로 묶은 곡식이나 땔나무 따위를 차곡차곡 쌓아 둔 큰 더미인 ‘가리’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가리산. 정말 정상은 고깔 모양의 노적가리를 연상시킨다. 산의 전체 윤곽을 볼 수 있는 이곳은 마치 농장 같다. 곳곳에 취와 고사리들이 지천이다. 취는 때가 조금 지나 뻣뻣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향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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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햇빛을 본 후 다시 녹음 속으로 들어간다. 외줄을 타는 심정으로 끝없이 이어진 흙길을 50여 분 걸었을까? 처음으로 이정표를 만난다. 정상까지 겨우 900m. 중간 중간 발견한 멧돼지 똥이 주는 긴장감이 없었다면 다소 지루했을 성싶다. 하지만 정상 앞에 서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제까지 보여 준 흙길은 정상의 암봉 세 개를 감추기 위한 위장이었던 것일까?
2봉과 3봉을 먼저 오른 후 두디어 정상인 1봉에 다다른다. 바위 옆에 박아 둔 쇠난간과 받침대 덕분에 큰 어려움은 없다. 날씨만 좋다면 소양호는 물론 북쪽으로 설악산을 거쳐 오대산으로 힘차게 뻗은 백두대간 등을 조망할 수 있다지만 이날은 안개가 훼방꾼으로 나섰다.
정상에서 잠깐 요기를 하는 것도 괜찮지만 전망이 그리 좋지 않아 바로 샘터로 내려갔다. 샘터는 바위 사이에서 나오는 석간수로 1년 내내 마른 날이 없고. 사계절 먹으면 장수한다고 한다. 힘차게 솟아날 것 같은 예상과는 달리 바위 틈으로 간신히 이름값을 해내고 있다. 간혹 “도대체 어디서 물이 난다는 거야” 하며 눈앞에서 찾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물맛은 아무리 칭찬을 해도 과하지 않을 것 같다. 땀을 흠뻑 흘린 탓도 있겠지만 그 시원함은 냉장고와 비견할 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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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을 축이고 나서 본격적 하행길. 휴양림 쪽으로 나 있는 길은 여유롭다. 들머리로 잡았던 오솔길에 비한다면 고속도로다. 그래도 여전히 호젓한 산행. 합수곡에 이를 즘에야 양 옆 계곡으로부터 물소리가 들려온다. 바람소리를 닮은 두 물소리는 닮은 듯 다르다. 쭉쭉 뻗은 낙엽송 사이로 들려오는 소리와 물푸레나무·참나무 사이로 들려오는 소리가 서로 더 크다고 싸우지 않고 절묘한 화음을 낸다.
합수곡에 다다르니 수량이 늘어 청량한 느낌을 준다. 이곳에서부터 휴양림까지는 향기에 취한다. 소나무·잣나무 향뿐만 아니라 복숭아향을 닮은 달콤한 향까지 정신을 몽롱하게 만든다. 향에 취하다 보니 벌써 휴양림 입구에 도달했다. 계곡이 다소 짧은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운행 방식에 따른 등산의 분류와 가리산 등산로
가리산은 운행 방식에 따라 색다른 맛을 주는 산이다.
먼저 횡단 등산으로 출발지에서 능선이나 계곡을 따라 올라 주능이나 산정에 올랐다가 출발지와 다른 지점(주로 반대편)으로 하산하는 방식이 있다. 가리산은 휴양림에서 출발해→가삽고개→정상→춘천 물노리(선착장)까지 총 8㎞·3시간 30분 코스가 있다. 물노리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계단식 분지형으로 색다른 맛을 준다.
출발지와 도착지가 다르기 때문에 교통편에 주의해야 한다. 사전에 교통 수단·소요 시간·요금·배차 간격·막차 시간 등을 체크해야 한다. 선착장(033-241-4833·011-9797-4833) 배 시간은 오전 9시 50분. 오후 4시 40분(동절기엔 3시 40분) 두 번 밖에 없어 시간을 잘 맞추어야 한다. 반대로 갈 수도 있는데 소양댐 선착장(033-242-2455)에서 물노리까지 가는 배는 오전 8시 30분. 오후 4시(동절기엔 달라짐) 두 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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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원점 회귀 등산이 있다. 횡단 등산과는 달리 출발지와 도착지가 같은 등산 방식이다. 능선이나 계곡을 따라 주능이나 산정에 올랐다가 다시 올랐던 코스나 다른 코스로 출발지로 되돌아 오는 것으로 최근 자가용을 교통 편으로 많이 이용하면서 일반적 등산 방식이 되었다. 가리산의 경우엔 가리산휴양림→가삽고개→정상→천현리(휴양림)로 되돌아오는 것으로 총 6㎞·3시간이 걸린다. 이 등산로는 휴양림의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마지막으로 종주 등산으로 봉우리와 능선을 연결하는 능선 코스를 따라 등산하는 방식이다. 노고단에서 천황봉까지 지리산 종주. 십이선녀탕에서 화채봉까지 이어지는 설악산 서북 주능 종주 등이 대표적이다. 가리산의 경우엔 종주 코스라고 정해진 등산로가 따로 없으나 굳이 잡자면 홍천고개→등잔봉→새득이봉→가삽고개→정상→철정리(약 12㎞·5시간) 쯤으로 할 수 있겠다. 호젓한 오솔길의 산행을 만끽할 수 있다.
■가는길
▲자가용: 서울→6번 국도 이용→양평삼거리→홍천 44번 국도→철정 검문소→역내리삼거리에서 좌회전→가리산 휴양림. 홍천고개로 가고 싶다면 역내리에서 44번 국도를 타고 인제 방면으로 더 가다 자은삼거리에서 좌회전. 원동리·조교리 쪽으로 가면 된다.
▲대중 교통: 서울 동서울터미널이나 상봉터미널서 홍천까지. 홍천 시외버스정류장(033-432-7788)에서 가리산자연휴양림(033-435-6034)까지는 6시 40분. 12시 10분 두 번 다님. 또는 원통가는 버스(약 60분 간격·30분 소요)를 타고 역내리삼거리 휴양림 입구에서 내려 4㎞ 정도 걸어가면 휴양림에 갈 수 있다.
첫댓글 이글을 보는 회원님들께...가리산 뒷쪽(소양강방향)이 아주 좋은 구광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