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종교는 인간의 완성과 구원을 지향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종교는 개인
적 차원에서 내세적 구원을 강조할 뿐 그 사회적 책무와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
기 일쑤입니다. 때문에 칼 맑스는 종교의 이러한 부정적 측면을 가르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무섭게 비판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종교의 사회적 책무
는 과연 무엇인가? 모두 진지하게 고민하여 숙고해야 할 과제입니다.
19C말부터 그리스도교는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라는 기존의 신조에
대해 신학적 비판과 함께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을 꾀했습니다. 도대체 예수는
누구인가? 믿음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구원이란 무엇인가라고 근원적 물음을 제기한 것입니다.
첫째로 그렇다면 예수는 누구입니까?
사실 예수는 신앙과 기적의 예수, 하느님의 아들, 부활의 예수이기 이전에 바
로 이 세상 현실에서 사람과 함께 살았던 지상의 예수, 역사의 예수, 사람의 아
들이 아니었습니까? 그의 신관, 인간관은 철저하게 현실에 기초를 둔 그리고
세상과 함께 한 연대성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전통 종교의 법과 제도적
현실에 앞서 인간의 가치를 선포했고 만민의 평등을 선언했습니다. 예수의 행
업은 3중의 해방을 뜻합니다. 곧 죄와 죽음으로부터 그리고 법으로부터의 해방
입니다. 말하자면 예수께서는 모든 면에 있어서 인간이 주체가 되고 인간이 목
적이 되는 종교와 사회를 선언했으며 이것은 하느님의 주권, 그 나라에서 연유
된 것으로 가르쳤습니다. 때문에 예수는 법 중심의 종교인물과 불의한 로마 총
독에 의해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게 됩니다. 예수의 관심사는 하느님의 최상권
과 함께 인간을 모든 억압에서부터 해방하는 일이었습니다.
둘째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구체적 현실에서 하느님 때문에 내리는
결단과 선택입니다. 거기에는 늘 현실 안에서의 갈등과 고민 또는 모험을 수반
하기 마련입니다. 인격적 결단 이면에는 숱한 끊음과 포기, 그리고 거부가 전제
됩니다. 실생활과 무관한 결단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믿음이란 현실에서
보다 아름다운, 보다 진실한, 보다 큰 가치에 대한 선택입니다. 때문에 믿음은
또한 결단의 반복이며 일상의 삶 가운데서 성장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굳센
믿음은 타인에게 귀감이 됩니다.
셋째로 구원이란 내세의 관념이 아닌 현실에 기초한 이상의 실현입니다.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인간적 삶과 꿈을 실현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행위가 바
로 구원입니다. 때문에 구원은 현실에서 시작하여 미래에 완성되는 가치입니
다. 구원은 또한 인간적 노력과 투쟁 그리고 하느님의 도우심에 의한 결실입니
다. 즉 구원이란 신인(神人) 합작입니다. 인간의 노력은 현실과 세상을 긍정하
며 사회적 투신을 전재로 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현실에 충실하며 그 결실로 맺
어지는 미래의 구원을 이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남미, 아프리카, 그리고 부분적으로 아시아를 침
략하고자 해왔던 유럽 열강들의 식민 통치는 자연스럽게 그리스도교 선교의 토
대가 되었습니다. 사실 식민지에서 선교사들의 역할과 영향은 대단히 컸습니
다. 이들은 물론 침략자 장본인들은 아니었지만 지배자로서의 특권을 누리며
그리스도교를 전파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들이 전한 복음과 선포한 예수의 가
르침은 지배국의 선교사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침략이라는 불의를
묵인하고 전재로 한 채, 예수의 복음을 전하니 결과적으로 예수의 가르침 중 일
부만이 전달되고 정의와 진실, 불의에 대한 거부 등 자유와 해방의 메시지는 약
화되기 마련이었습니다. 20C후반 이른바 제3세계 민중들은 선교사들로부터 전
수 받은 성경을 기초로 보다 분명한 신관을 정립하여 예수의 해방 작업을 깨닫
게 됩니다. 말하자면 억압자의 신관과 피억압자의 신관은 다를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해방을 위한 투신을 다짐하게 됩니다. 특히 군사 독재하의 남미는 부익
부 빈익빈이라는 구조적 악, 사회적 모순의 상황 속에서 “이것은 아닌데!”라는
확신과 함께 출애급의 해방을 기초로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무를 깨닫고 해방
실천에 뛰어들게 됩니다. 하느님은 누구인가? 하느님은 일체의 억압과 종살이
에서 인간을 해방 해 주신 분입니다.
야훼 하느님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해방자로 체험되신 분입니다. 이와 같이 종
교적 체험은 바로 현실적 억압에서 구체적으로 인간이 해방되고 그 자유로워
진 삶을 통해 확인된 결실입니다. 따라서 억압과 불의, 모순을 외면한 종교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종교적 구원이란 필연적으로 인간 해방을 기초로 한 미래
이상의 실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종교가 개인적 차원의 내세 구원에만 치
중한다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세상을 외면하고 현실의 불의와 모순을 묵과한 우
를 범하게 됩니다. 구원이란 전인적 구원으로 개인과 사회, 현실과 미래를 함
께 구원하여 이상적 꿈을 실현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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